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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47화 합본. 대리 증언자의 봉인 신문에서 식기 전의 원문 회수까지 일러스트

144-147화 합본. 대리 증언자의 봉인 신문에서 식기 전의 원문 회수까지

144화. 대리 증언자의 봉인 신문

눈앞에 펼쳐진 기록 장치는 이제 막 새로운 페이지를 넘겼다. 143화의 마지막 문구, 네 번째 배달: 대리 증언자 확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가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두 손으로 들기에도 벅찰 만큼 두툼한 봉인 신문 묶음이었다. 겹겹이 쌓인 종이들은 모두 깨끗한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붉은색, 검은색, 푸른색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 묶음은 마치 거대한 기록 관리소의 한 부분을 통째로 가져온 듯한 위압감을 풍겼다.

베라가 조심스럽게 봉인 묶음의 가장 위쪽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 위에는 로웬의 거절 문장 원본이 작게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나 원본 바로 아래, 낯선 필체로 쓰인 긴 문단이 압도적인 크기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분은 낮추어 말씀하셨으나, 이는 실로 성자의 고결한 겸손함이셨다.’ 이 문장은… 로웬 님의 말을 성자식으로 해석한 거네.”

베라의 말처럼, 수많은 신문은 저마다 다른 필체와 어조로 로웬의 원문 거절을 ‘성자의 징후’로 재해석하고 있었다. 어떤 신문은 격정적으로 로웬의 행동을 칭송했고, 어떤 신문은 차분하고 논리적인 어조로 그의 겸손함이 기적을 숨기려는 시도였다고 증언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증언이 원문보다 훨씬 더 크고 눈에 띄게 인쇄되어 있었으며, 로웬의 실제 발언은 각주처럼 페이지 아래쪽으로 작게 밀려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게… 좋은 의도에서 나온 증언들인 건 알겠는데….” 베라는 한순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로웬을 ‘성자’로 만들려는 이 모든 노력이, 그의 진짜 말을 덮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흔들었다. “정말 로웬 님을 위하는 걸까? 그의 의도를 이렇게 바꾸는 게….”

바로 그때, 베라의 시선이 기록 장치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이들의 이름표와 로웬의 원문이 보관되어 있던 칸이 이제는 더 이상 ‘본문’으로 취급되지 않고, 희미한 글씨로 각주처럼 박혀 있었다. 자신들의 말이 곧 진실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이들의 순수한 증언조차 ‘해석된 진실’의 아래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그 순간 베라는 섬뜩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 그녀의 손에서 신문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선량한 의도라 해도, 증거가 아니면 진실을 왜곡할 수 있구나. 이 모든 증언은… 그 자체로 진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해석’이었던 거야.”

로웬은 이 모든 과정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봉인 묶음 가장 위쪽의 신문을 무심하게 집어 들었다. “대리 증언자 확보. 신문 숫자와 본인 확인은 무관합니다. 목격자가 아니라 해석자입니다.”

그의 시선은 원문이 각주로 밀려난 부분을 향했다. “증언은 원문 뒤에 붙습니다. 앞에 붙어 원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반려합니다.”

로웬의 말이 끝나자마자, 봉인 신문 묶음을 묶고 있던 붉은색 끈이 스르륵 풀리더니,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여 로웬의 오른손목을 휘감았다. 끈은 그의 손목에 단단히 고정되었고, 희미한 붉은빛을 내뿜으며 가늘게 진동했다.

이네스는 순간적으로 검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로웬의 담담한 표정을 보고 멈칫했다. 그녀는 끈을 베어버리려는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이 끈은 단순한 속박이 아니야. 발신 경로를 보존해야 해.’ 이네스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끈을 베는 대신 차분하게 다른 손으로 로웬의 손목에 감긴 끈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끈이 시작된 봉인 묶음의 한쪽 끝을 살짝 들어 올려 고정시키며 발신 경로가 유지되도록 했다.

모르그는 붉은 끈의 진동 주파수를 분석하며 중얼거렸다. “대리 증언이 생산되는 조건. 첫째, 목격 부재. 직접적인 관찰이 어려울수록 소문이 증언을 대체한다. 둘째, 소문 보정. 특정 목적에 맞춰 소문이 수정되고 강화된다. 셋째, 반복 신문. 동일한 내용의 반복적인 요청이 증언의 신뢰성을 높이는 착시를 일으킨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결합될 때, ‘성자담’과 같은 전설이 구축된다.” 그의 계산은 냉철하고 무미건조했다.

피핀은 코를 킁킁거렸다. 수많은 밀랍 봉인 사이에서 유독 강하게 풍기는 젖은 밀랍 냄새가 있었다. 그는 그 냄새를 따라 봉인 묶음의 가장 안쪽, 거의 맨 아래쪽에 숨겨진 봉인 신문을 찾아냈다. 다른 봉인들이 바싹 마른 상태인 것과 달리, 이 밀랍은 아직 촉촉했고 손끝에 끈적하게 묻어났다.

그때, 기록 장치에 다시 글자가 떠올랐다. 다섯 번째 배달: 증언자에게 감사 편지 발송. 그리고 그 아래, 수신자 칸에는 따뜻한 거짓말을 한 사람이라는 문구가 섬뜩하리만큼 선명하게 박혔다.

145화. 따뜻한 거짓말을 한 사람

봉인 신문 묶음이 떠다니는 작업대 위로, 다섯 번째 배달: 증언자에게 감사 편지 발송이라는 문구가 깜빡였다. 곧이어, 낡은 기록실의 정적을 깨고 철컥이는 기계음이 울렸다. 글귀는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발송대라는 명패가 솟아올랐다. 이내 작업대 중앙이 움푹 들어가며 부드러운 빛을 뿜어냈다. 빛 속에서 편지 봉투 하나가 서서히 떠올랐다.

봉투는 아무런 이름도 없이 오직 한 줄의 수신자만 인쇄되어 있었다. 따뜻한 거짓말을 한 사람.

장치가 그 의미를 분석하며 고요히 울렸다. 이내 봉투 주변으로 세 가지 분류어가 명멸했다. 공포 완화, 희망 보존, 선의. 장치는 대리 증언의 본질을 그렇게 규정했다. 겁에 질린 아이를 달래기 위한 부드러운 속삭임,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아주려는 작은 노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 안는 순수한 선의. 그것이 장치가 인지한 따뜻한 거짓말의 진정한 의미였다.

로웬은 잠시 굳어진 표정으로 떠오른 봉투를 응시했다. 무채색 안광이 차가운 빛을 반사했다.

"따뜻함은 배송 허가가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채 단호했다. 장치에 의해 분류된 선의라는 가치가 배송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분명한 거절이었다. 봉투는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지만, 로웬은 수신자를 공범으로 확정하지 않았다. 단지, 그 '따뜻함'이 모든 절차를 무시할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원칙을 고수할 뿐이었다.

베라는 그 분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이를 안심시키려 꾸민 말과, 그 말이 장치에 먹힌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녀는 선의를 표한 증언자의 의도와, 그것이 지금 이 기묘한 시스템에 의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구분했다. 아이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결국 봉인 신문 묶음의 틈새를 메우는 도구가 되었음에 대한 씁쓸함이 묻어났다. 장치가 얼마나 쉽게 인간의 선한 의도를 포섭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봉투가 파르르 떨리며 발송대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 허공으로 솟구치려 했다. 그 순간, 이네스의 기다란 칼집이 빠르게 움직여 봉투를 덮쳤다. 이네스는 날카로운 칼집의 끝으로 봉투 중앙을 정확히 눌렀다.

"증거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결연했다. 수신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싶어도, 당장 봉투를 찢어 증거를 없애는 행위는 이네스가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봉투는 칼집 아래서 꿈틀거렸지만, 찢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고정되었다.

모르그는 연기처럼 피어나는 데이터를 응시하며 조용히 계산했다. "감사 편지. 반복 증언 포섭 장치."

그의 결론은 단순하고도 섬뜩했다. 이 감사 편지는 단순히 고마움을 전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장치는 이 편지를 통해 '따뜻한 거짓말'을 한 사람을 시스템 안으로 더 깊숙이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일회성 증언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협력과 포섭을 유도하는 교묘한 장치였다.

로웬은 봉투가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도록 칼집으로 누르고 있는 이네스 옆으로 다가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손에 든 검은 고무 도장을 봉투 위에 찍었다. 사실 확인 전 발송 보류. 명확하고 간결한 글자가 봉투 위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사실 확인 전 발송 보류입니다."

로웬은 봉투를 응시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원칙을 강조했다. 어떤 '따뜻함'도, 어떤 '선의'도, 사실 관계에 대한 명확한 확인 없이는 이 시스템의 절차를 통과할 수 없었다. 그의 손에 들린 고무 도장은 차가운 이성과 흔들림 없는 원칙의 상징이었다.

그때, 기록실 한쪽 구석에 있던 피핀이 느릿하게 코를 킁킁거렸다. 그는 허공을 맴도는 미세한 냄새들을 따라 움직였다. 오래된 종이 냄새, 잉크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섞여 들어오는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 빵 껍질이 오븐 속에서 노릇하게 구워질 때 나는 그 특유의 향이었다. 피핀은 냄새를 쫓아 한 곳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방금 로웬이 찍은 도장과 같은 서체로 인쇄된 또 다른 문건이 떠올라 있었다. 피핀의 시선이 머문 곳에, 선명한 글귀가 새겨졌다.

수신자: 작은 빵집의 루미

그리고 그 아래, 시스템의 경고가 함께 깜빡였다.

직접 접촉 전 관계 형성 필요 / 겁먹은 증언자

146화. 작은 빵집 앞의 식은 빵

기록실 복도를 채운 냄새는 빵이었다. 갓 구운 빵 껍질의 고소함과 눅진한 설탕 향. 피핀은 납작한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의 근원을 좇았다. 봉인된 신문 묶음과 감사 편지 발송대가 오가던 기록실 한구석, 먼지 쌓인 책장 틈새가 아주 작게 접혀 있었다. 그 틈새는 빵 굽는 냄새를 따라 구부러진 시공처럼, 작은 빵집 골목으로 이어졌다.

“발견했습니다.” 피핀의 짧은 보고에 로웬이 성큼 다가섰다. 기록실 문이 접힌 자리엔 끈적한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직접 접촉 전 관계 형성 필요>

“루미를 부를 수 없습니다.” 로웬의 말은 단호했다. “이름 호출은 보류입니다. 관계 형성 전 심문 금지입니다.” 지극히 실무적인 어조였다.

작은 빵집 앞 골목은 아수라장이었다. 빵집 문 앞까지 검은 우산처럼 생긴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식은 빵들이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불만과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우산 줄의 끝, 빵집 문에는 반품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로웬이 한 장을 떼어 들자 붉은 글씨의 도장이 눈에 박혔다.

<성자에게 준 증언 보상 회수>

그때, 로웬의 허리춤에서 감사 편지 발송대가 다시 진동했다. ‘따뜻한 거짓말을 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겠다며 삑, 삑, 기계음이 울렸다. 발송대 액정에는 ‘수신자: 작은 빵집의 루미’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발송대는 루미를 여전히 ‘따뜻한 거짓말을 한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베라가 반품 행렬을 둘러보며 나직이 말했다. “겁먹은 아이를 안심시키려 한 말이 죄목이 된다면, 누가 감히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었다.

이네스는 망설임 없이 허리춤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챙그랑, 맑은 금속음이 골목에 울렸다. 이네스는 검은 우산 모양의 줄을 베어 끊었지만, 반품표들은 찢지 않고 조심스럽게 보존했다. “증거는 증거입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경계심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겁먹은 사람을 몰아붙이는 종류의 시선은 아니었다.

모르그는 반품표들의 숫자를 빠르게 훑었다. “반품표 번호는 감사 편지 발송대 번호와 일련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보상, 회수, 포섭. 이 모든 과정이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복잡한 계산식의 구조가 그의 머릿속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듯했다.

피핀은 반품된 빵들 사이를 헤집었다. 식은 빵 특유의 뻣뻣한 냄새 속에서 미세하게 다른 향을 찾아냈다. “이 빵 속에서... 따뜻한 잉크 냄새가 나요.” 피핀은 가장 덜 식은 듯한 빵을 가리키며 말했다. 갓 인쇄된 문서의,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잉크 냄새였다. 피핀은 빵을 먹고 싶어 코를 킁킁거렸지만, 이내 증거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아쉬운 표정으로 빵에서 멀어졌다.

로웬은 이네스가 보존한 반품표 더미에 다시 한번 도장을 찍었다. 이번에는 푸른색이었다.

<원문 확인 전 회수 불가>

그리고는 작은 빵집 문 앞에 준비해 온 안전 통지문을 두었다. 통지문에는 루미를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현재 상황과 로웬 일행의 역할, 그리고 어떠한 강요도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로웬은 루미에게 직접 질문하는 대신, 문 앞에 통지문을 놓아두는 것으로 소통을 대신했다.

골목의 소란이 잦아들자, 빵집 문 안쪽에서 조심스러운 기척이 느껴졌다. 이윽고 작은 손이 문틈으로 비어져 나와 통지문을 조용히 받아갔다. 문이 다시 닫히는가 싶더니, 빵집 문패의 뒷면이 천천히 뒤집혔다.

문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루미: 거짓말을 한 사람 아님 / 무서운 아이에게 빵을 식기 전에 준 사람>

그리고 그 아래, 새로운 봉인이 터져 열렸다.

<여섯 번째 배달: 식기 전의 원문 회수>

147화. 식기 전의 원문 회수

좁은 골목을 비추던 가로등 불빛 아래, 닫힌 빵집 문틈이 겨우 한 뼘 정도 열렸다. 그 틈새로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빵 하나가 조심스럽게 밀려 나왔다. 김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방금 오븐에서 꺼낸 듯한 따스한 감촉이 빵집 앞을 에워싼 서늘한 밤공기와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빵을 밀어낸 이는 루미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빵을 내밀 뿐이었다. 그 작은 빵에는 어제 보았던 반품표와 같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빵이 로웬의 손에 닿는 순간, 로웬의 손목에 차여 있던 장치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동시에 기계적인 음성이 울렸다.

「여섯 번째 배달: 식기 전의 원문 회수. 제한 시간, 3분 42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모르그가 침착한 목소리로 계산 결과를 덧붙였다.

"반품표 용지에 발라진 잉크는 특수 점성 재료입니다. 온기가 남아있을 때만 문자의 흔적을 액체 상태로 유지하며, 잉크가 식으면 빵의 밀도와 결합하여 고정됩니다. 그 경우, 원문은 영구히 반품표의 문구로 굳어지게 됩니다."

시간은 촉박했다. 갓 구운 빵의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골목 가득 퍼졌다. 피핀의 코가 움찔거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지금은 먹을 때가 아니었다. 빵에 담긴 온기는 단순한 온기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어쩌면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진실의 단서가 숨어 있었다. 피핀은 킁킁거리며 빵의 표면을 살폈다.

"따뜻한 잉크 냄새… 가장 진한 부분이 있을 거야!"

그의 예민한 후각이 빵 곳곳에 묻은 잉크 중, 특유의 향이 가장 강하게 피어나는 한 지점을 찾아냈다. 빵 한쪽 모서리에 찍힌 도장 자국 부근이었다.

로웬은 빵을 건네받으며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접촉은 한 단계만 진행합니다. 증거물 훼손은 금지입니다. 원문은 증언자보다 먼저 보호합니다."

그 순간, 골목의 좁은 천장에서 검은 우산 모양의 집게가 스르륵 내려왔다. 매끄럽고 차가운 금속 집게는 정확히 로웬의 손에 들린 빵을 향해 뻗어왔다. 단순한 회수라기에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이네스는 본능적으로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베어내지 않았다. 대신 칼집을 휘둘러 집게의 경로를 살짝 밀어냈다.

"경로 이탈은 곧 자폭으로 이어집니다. 충돌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네스의 차분한 설명처럼, 집게는 베어지는 순간 그대로 파괴될 것이었다. 그녀는 원본 회수라는 목적을 위해 방해물을 제거하는 대신, 그 방해물이 미처 닿지 않도록 움직이는 것을 택했다.

로웬은 빵을 찢는 대신, 손목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미한 열기로 도장 부분을 감쌌다. 정확히 잉크가 묻은 부분만을 가열하자, 빵의 표면에 희미하게 숨어있던 문장들이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떠올랐다. 온기로 인해 점성을 되찾은 잉크가 빵의 결 사이에서 고유의 빛을 발하며 글자를 형성했다.

베라가 빛나는 글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의 눈은 루미가 아이에게 건넨 따뜻한 위로의 말과, 시간이 지나며 성자담으로 부풀려진 과장된 문구들을 빠르게 분리해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정보의 실타래가 그녀의 능력 아래 명확히 갈라졌다.

「남겨진 문구 분석 완료.」

베라의 분석이 끝나자마자, 빵 위로 떠오른 문장들이 선명하게 하나의 의미를 이루었다.

『그 사람은 성자가 아니라, 비 맞은 아이에게 자기 장갑을 벗어 준 심부름꾼이었다.』

그것은 짧지만 명징한 문장이었다. 로웬의 선행이 어떻게 부풀려지고 왜곡되었는지를 단번에 설명해 주는 진실의 조각이었다. 빵에는 그 문장 외에 루미가 직접 쓴 듯한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말하면 빵집이 사라진다고 했어요.』

쪽지에는 엉성하지만 또렷한 글씨로 루미의 불안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로웬의 장치에서 새로운 푸른빛이 번쩍이며 다음 배달이 열렸다.

「일곱 번째 배달: 사라지는 가게의 임대장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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