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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대장 일러스트

돌파대장

B팀 출격 신호가 울리자

전태산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기지 바닥을 한 번 구르며

주먹을 말아 쥔 자세.

파성호위진(破城護衛陣) 돌진 자세였다.

"좋아! 전원 돌격!!"

"내가 앞에서 길 연다!"

올가가 헛웃음을 삼켰다.

작전표를 들고 있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작전표는 없고,

구호만 있네."

전태산은 대답 대신

바닥을 박찼다.

발목에서 튄 힘이 종아리를 타고,

골반이 밀려 올라오며

허리가 반 박자 늦게 꺾였다.

어깨가 회전하는 순간,

금강불괴 50%를 실은 직권이

전면 방패를 정면으로 후려쳤다.

쿵.

소리가 먼저 왔다.

그다음 먼지가,

그다음 균열이 왔다.

적 전위 둘이 동시에 밀려나며

B팀 중앙 통로가 열렸다.

"미친, 지휘는 거칠어도

전방은 뚫어버리네."

"저건 작전이 아니라

공성추 아냐?"

관전석 수군거림이 올라왔다.

전태산은 그 소리를 듣지도 못한 채

두 번째 발을 내디뎠다.

멈추면 막힌다.

막히면 다 같이 멈춘다.

오늘은 부딪혀서 연다.

복잡한 계산은 뒤가 아니라,

아예 옆으로 치워 버린다.

"오른쪽 둘!

내가 끈다!"

태산의 어그로가 전면에 꽂히자

적 셋이 동시에 그를 물었다.

견제 각도는 거칠었지만,

효율은 분명했다.

적 시선이 전부 앞으로 쏠렸다.

그 틈에 아군 둘이 측면으로 빠졌다.

전선이 앞으로 한 칸 미끄러졌다.

그때였다.

B팀 기지 뒤편 경보등이

짧게 두 번 깜빡였다.

무사이브라힘이

뒤를 보며 외쳤다.

"태산 선배!

후방이 뚫립니다!"

전태산의 고개가 반 박자 늦게 돌았다.

전방 셋을 묶은 상태에서

시야를 뒤로 넘기기엔 거리가 멀었다.

"어?! 뒤까지 한 번에

못 보겠는데...!"

홍천무는 그 한마디를

정확히 들었다.

전방은 이미 충분하다.

지금 더 필요한 건 한 명의 주먹이 아니라

뒤를 닫을 한 번의 판단.

후방이 무너지면

앞에서 여는 길도 의미가 없다.

전태산이 다시 외쳤다.

"천무! 앞으로 와!

지금 밀어붙이면 끝나!"

홍천무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명령은 분명했다.

하지만 승리 조건도 분명했다.

지시를 따르면 점수는 안전하다.

지시를 어기면 감점이 붙는다.

그래도 팀이 무너지면

점수 자체가 사라진다.

천무의 시선이 후방으로 꺾였다.

"죄송합니다, 선배.

후방으로 가겠습니다."

짧은 불복종이었다.

그러나 반항의 어조는 없었다.

선택의 책임만 남긴 목소리였다.

"야, 잠깐!

천무!"

전태산이 불렀지만,

홍천무는 이미 뛰고 있었다.

기지선까지 네 걸음.

셋째 걸음에서 체중을 낮추고,

넷째 걸음에서 축을 틀어

후방 골목으로 미끄러졌다.

적 유격 둘이

기지 단말 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무사이브라힘이 앞을 막고 있었지만,

방어 각이 무너질 타이밍이었다.

"무사!

3초만 버텨!"

무사가 이마의 땀을 털어내며

짧게 답했다.

"3초, 가능합니다!"

첫째 초.

무사가 상단을 올려 막는다.

팔꿈치가 떨린다.

충격을 흘리긴 했지만

하중이 누적됐다.

둘째 초.

적 한 명이 사선으로 파고들며

무사의 옆구리를 노렸다.

홍천무가 발끝을 안으로 접고

제3식 전(轉)으로 축을 바꿨다.

직선이 아닌 반원.

정면이 아닌 사선.

활빈팔식·극의 회전 궤적이

적의 손목과 발목 사이를 같은 박자로 끊었다.

탁.

균형이 먼저 무너졌다.

적 하나의 중심이 뒤로 꺾이자

구도가 일시적으로 1대1로 갈렸다.

셋째 초.

천무의 숨이 거칠어졌다.

지금 안에 고정타가 필요했다.

시간이 끝나기 전에

결과를 확정해야 했다.

홍천무가 바닥을 세게 밟았다.

발바닥 압력이 무릎을 밀고,

골반이 전진하며

허리가 일직선으로 잠겼다.

고정된 축 위에서 어깨가 터지고,

제1식 쇄(碎) 직선 타격이

적의 복장뼈 중앙에 꽂혔다.

퍽.

적 한 명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접었다.

남은 한 명은 무사가 방패 각을 바꿔

목선 아래를 눌러 제압했다.

"후방 정리!

기지선 유지!"

"확인!

전방 합류하세요!"

홍천무는 대답 대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끝이 저릿했다.

전완에 피로가 차올라

주먹을 완전히 쥐기 어려웠다.

정석은 느린 게 아니다.

낭비가 없으면

오히려 더 빠르다.

지금 필요한 낭비 없는 동작은

뒤를 보는 게 아니라

다시 앞으로 붙는 것.

전방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관전석에서 작은 탄성이 터졌다.

"지시 어겼는데

팀을 살렸어."

"저건 반항이 아니라

판단이네."

전태산은 여전히 전면에서

적 셋을 묶고 있었다.

호흡은 거칠었고,

왼쪽 어깨는 이미 반쯤 굳어 있었다.

금강불괴를 절반으로 유지한 반작용이

근육 사이에 뜨거운 모래처럼 쌓였다.

그런데도 발은 멈추지 않았다.

"천무! 어디야!"

홍천무가 슬라이딩하듯

좌측 사각으로 붙었다.

"선배!

왼쪽 비어 있습니다!"

전태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케이!

그럼 내가 오른쪽 끈다!"

설명은 거기서 끝났다.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

태산이 정면 압박을 한 칸 더 밀자

적 시선 셋이 또다시 그쪽으로 빨렸다.

천무는 그 반대편 그림자에 몸을 붙였다.

계획한 적 없는 합.

그런데 어긋나지 않는 박.

태산이 세 번째 직권을 뻗었다.

이번엔 맞히는 주먹이 아니라

시선을 묶는 주먹이었다.

적 선두가 상단을 올리는 찰나,

홍천무가 제5식 추(追)로 거리를 찢었다.

한 걸음, 반 걸음, 반 걸음.

짧은 보폭 세 번으로

적 수비 라인의 옆면에 꽂혔다.

활빈팔식·극.

첫 타는 손목.

둘째는 무릎.

셋째는 어깨 뒤 축.

연속 리듬이 끊기자

적 진형이 접혔다.

기지 접근로가 열렸다.

"이거 계획했나?

아닌데 완전 맞물린다."

"말 안 하는데도

합이 맞아?"

관전석의 속삭임이 커졌다.

전태산은 짧게 웃으며

마지막 저항 둘을 앞으로 끌었다.

말 안 해도 된다.

내가 여는 길을

쟤가 읽는다.

지휘는 내가 못할지 몰라도,

길 여는 건 내가 한다.

그 길을 완성하는 건

지금은 저 녀석이 더 정확하다.

태산이 크게 외쳤다.

"지금!"

홍천무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정확한 타이밍에 침투했다.

제2식 결(結)로 팔을 묶고,

짧은 걸음으로 안쪽 축을 빼앗은 뒤,

태산의 압박과 같은 박자로

기지 점령선에 발을 올렸다.

삐이이익.

점령 신호음이 필드를 갈랐다.

적 잔여 병력이 뒤로 물러났다.

전광판 숫자가 뒤집혔다.

B팀 승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잠깐 숨을 고르며

서로를 봤다.

태산의 턱에 먼지가 묻어 있었고,

천무의 오른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태산이 주먹을 내밀었다.

"지시 안 해도 되네.

네가 다 보더라."

홍천무는 반 박자 늦게

그 주먹에 맞댔다.

"선배가 앞을 열어주니까

보이는 겁니다."

짧은 충돌음.

그걸로 충분했다.

남궁현은 관전석 난간에 팔을 얹고

작게 중얼거렸다.

"지휘가 아니야.

공명이다."

올가가 곁에서 코웃음을 쳤다.

"둘 다 제멋대로인데,

결과는 또 맞네."

남궁현이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제멋대로가 아니지.

목표만 같다."

필드 정리 방송이 흘렀다.

의무조가 들어오고,

타박상 체크가 시작됐다.

전태산은 어깨를 돌리다

짧게 얼굴을 찌푸렸다.

근육이 굳었다.

금강불괴 반작용이

늦게 올라오는 중이었다.

홍천무는 손목 보호대를 감으며

호흡을 길게 뽑았다.

전완 피로가 남아 있었다.

아까 제1식 쇄를 꽂을 때

힘을 조금 과하게 실었다.

성공했지만 대가가 남았다.

무사이브라힘이 둘 사이로 와서

환하게 웃었다.

"후방, 완벽히 지켰습니다.

두 분 전방도 완벽했습니다."

전태산이 씩 웃었다.

"완벽은 무슨.

난 뒤를 못 봤지."

홍천무가 보호대를 고쳐 매며

조용히 받았다.

"그 대신,

앞을 끝까지 열었습니다."

전태산은 잠깐 말을 멈췄다.

웃음기만 남은 얼굴로

천무를 한번 쳐다봤다.

"다음에도

네 판단대로 뛰어.

대신 나중에 꼭 말은 해라.

심장 떨어질 뻔했거든."

홍천무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알겠습니다.

다음엔 선배 심장도

전술 범위에 넣겠습니다."

올가가 듣고 고개를 젓더니

혼잣말처럼 던졌다.

"저건 화해가 아니라

새로운 사고 방식 체결인데."

관전석 뒤편,

A팀 쪽 단말기를 보던 은명이

짧게 메모를 남겼다.

돌발은 제거 대상이 아니다.

전환 대상이다.

그는 화면을 닫고

필드를 다시 바라봤다.

시끄럽게 무서운 팀이,

방금은 정확하게 무서웠다.

전광판 하단에

다음 안내가 떴다.

B팀 라운드 종료.

평가 브리핑 20분 후 시작.

태산은 안내 문구를 보며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평가?

또 혼나겠네."

홍천무가 짧게 답했다.

"혼날 건 혼나고,

맞을 건 맞으면 됩니다."

"맞는 건 싫은데?

혼나는 건 더 싫고."

"그래도 가야죠.

오늘은 이유가 있습니다."

태산이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좋다.

그 이유, 내가 먼저 말할게.

네가 왜 뒤로 갔는지,

내가 먼저 인정한다."

홍천무는 대답 대신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감점이 붙을 수도 있다.

지시 불이행은 기록에 남는다.

하지만 팀은 무너지지 않았고,

승리는 실전처럼 완성됐다.

그 사실이 오늘의 핵심이었다.

멀리서 남궁현의 호출이 울렸다.

"B팀.

평가실 집합."

세 사람의 발걸음이

동시에 움직였다.

먼지 냄새가 아직 옷깃에 남아 있었고,

주먹 관절에는 전투의 열이 남아 있었다.

승부는 끝났지만,

판정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D와 S가 같은 종이에

함께 찍힐 수 있는지.

오늘 그 이상한 결과의 이유를

모두가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설명이 끝나는 순간,

태산과 천무의 관계는

단순한 선후배에서

다른 이름으로 바뀔 것이다.

돌파대장 라운드는 끝났다.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였다.

평가실로 가는 복도는

필드보다 조용했다.

대신 소리가 더 또렷했다.

신발 밑창 마찰음,

보호대 벨크로 뜯는 소리,

누군가 물병을 쥐는 소리.

전투가 끝난 뒤에만 들리는

현실적인 소음들.

전태산은 오른쪽 어깨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근육이 한 번 버티다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아, 이건 좀 세게 왔네."

홍천무가 시선을 옮겼다.

어깨 앞쪽, 삼각근 접합부가

미세하게 부어 있었다.

금강불괴를 반으로 걸고

전면 충돌을 세 번 반복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빙찜질 먼저 하셔야 합니다.

평가 끝나면 의무실 가십시오."

"명령이야, 조언이야?"

"오늘은 제안입니다.

다음엔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전태산이 크게 웃다가

바로 기침을 삼켰다.

"좋네.

이제 나한테도

명령할 줄 아는구나."

무사이브라힘이 둘 사이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두 분 대화,

전투 때보다 위험합니다."

"무사는 오늘 몇 타 막았지?"

"정확히 열한 번.

아홉 번째부터

팔꿈치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무사는 사실을 말했고,

표정은 덤덤했다.

홍천무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홉 번째부터 감각이 사라졌다면

셋째 초 직전 각도는

0.2초만 늦어도 무너졌다.

그 순간 무사가 버텨 준 덕분에

자신의 제1식 쇄가 의미를 가졌다.

"좋은 방어였습니다.

제가 늦었으면

후방 점령당했을 겁니다."

무사가 작게 웃었다.

"아닙니다.

늦지 않으셨습니다.

정확했습니다."

세 사람 앞쪽으로

남궁현이 먼저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걸음은 늘 일정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평가실 문 앞에서

남궁현이 멈춰 섰다.

그리고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안에서 변명하지 마라.

대신 판단의 근거를 말해라."

짧은 지시였다.

그러나 셋 모두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았다.

평가실 문이 열리자

시원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긴 테이블 위엔

각 팀 로그가 정리된 단말기와

프레임 단위 영상이 떠 있었다.

전광판 숫자가 아니라,

행동과 선택의 기록이었다.

A팀 쪽 좌석엔

홍은명, 제갈린, 전서린이 앉아 있었다.

은명은 이미 페이지를 넘기며

B팀 로그에 표식을 여러 개 찍어 둔 상태였다.

그가 고개를 들어

태산과 천무를 번갈아 봤다.

"둘 다 살아 돌아왔네.

생각보다 빨리 끝냈고."

전태산이 턱을 긁적였다.

"살아는 왔지.

근데 곧 죽을 것 같은데?

평가 때문에."

전서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은 아마

새로운 방식으로 혼날 거야."

제갈린은 단말 화면을 돌려

한 장면을 정지시켰다.

후방 경보등이 점멸하던 순간,

태산의 시선은 전면에 묶여 있고

천무의 축만 뒤로 빠지는 프레임.

"여기.

전술 전환의 시작점.

재밌는 건,

팀 명령은 전진인데

팀 승리 확률은 후퇴 선택에서 올라갔어."

홍천무가 화면을 바라봤다.

자신의 선택이 숫자로 보이자

오히려 감각이 또렷해졌다.

불복종은 감정이 아니라

확률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다음에도 같은 조건이면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

은명이 손가락으로

로그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이 장면이 핵심이라고 본다.

태산이 길을 열고,

천무가 빈칸을 메움.

서로 역할이 겹치지 않는다.

겹치지 않으니까

충돌 대신 합이 나왔지."

전태산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근데 지시 어긴 건 사실이잖아.

그건 어떻게 보는데?"

은명은 잠깐 생각하다

담백하게 말했다.

"규칙 기준으로는 감점.

승리 기준으로는 가점.

그래서 오늘 평가는

한 줄로 안 끝날 거다."

홍천무가 입을 열었다.

"감점은 받아들입니다.

다만 같은 상황이면

다시 같은 선택을 하겠습니다."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그 말은 사과가 아니라 선언에 가까웠다.

남궁현이 그 침묵을 끊었다.

"좋아.

드디어 학생다운 말이 나왔네."

그는 중앙 스크린으로

B팀 로그 전체를 띄웠다.

오프닝, 전환점, 결정타.

세 구간이 다른 색으로 묶였다.

"태산.

네 지휘는 아직 D다.

이유는 간단하다.

후방을 놓쳤다.

시야 분배가 없다."

전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하지 않았다.

"천무.

네 전술 판단은 S다.

후방 전환 타이밍,

무사와의 3초 연계,

전방 재합류까지

낭비가 없었다."

홍천무는 표정 변화 없이

짧게 숨만 내쉬었다.

"하지만,

지시 불이행 기록은 남긴다.

왜냐면 팀은 개인의 정답보다

공유된 신호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남궁현의 목소리는

냉정하게 평평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만

미세하게 온도가 올라갔다.

"문제는 틀렸는데,

답은 맞았다.

그래서 너희 팀은

지금부터 더 위험해진다."

전서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위험?

이겨 놓고 왜 위험해요?"

남궁현은 스크린을 넘겨

다음 라운드 상대 예상표를 띄웠다.

강한 팀일수록

불완전한 패턴을 먼저 노린다.

태산의 전면 유인,

천무의 자율 보정.

오늘 통했던 구조가

내일은 역이용될 수 있었다.

"상대가 멍청하면

너희는 계속 이긴다.

상대가 똑똑하면,

오늘의 장점이

내일의 함정이 된다."

은명이 낮게 중얼거렸다.

"공명이 패턴이 되는 순간,

예측 가능해진다..."

제갈린이 바로 받아 적었다.

"대응책은 두 가지.

신호 체계 추가,

혹은 가짜 빈칸 설계."

전태산이 고개를 갸웃했다.

"가짜 빈칸?"

홍은명이 의자를 돌려

태산 쪽을 보며 설명했다.

"네가 일부러 빈틈을 보이고,

상대가 물게 만든 뒤

천무가 아니라 다른 카드가 닫는 거.

항상 같은 사람이 메우면

읽히는 건 시간문제야."

전태산은 잠시 생각하다가

천무를 봤다.

"들었지?

다음엔 네가 안 메워도 된다네."

홍천무는 짧게 답했다.

"네.

대신 누가 메우는지

사전에 정해야 합니다."

"오케이.

그건 내가 한다.

이번엔 진짜로,

뒤까지 보는 방식으로."

말은 가벼웠지만

태산의 눈은 가볍지 않았다.

아까 필드에서 놓친 후방이

아직 그의 어깨에 걸려 있었다.

그 무게를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표정.

그게 오늘의 진짜 변화였다.

평가실 뒤쪽 문이 열리며

운소하가 들어왔다.

차분한 걸음,

손엔 얇은 평가 파일.

방 안의 공기가 한 톤 낮아졌다.

"여기까지가 현장 평가.

이제 공식 판정을 고지하겠습니다."

학생들 시선이

파일로 모였다.

운소하는 첫 장을 넘기고,

B팀 항목에서 멈췄다.

"전태산.

지휘 항목 D.

돌파 기여 S.

종합 판정은..."

그녀가 문장을 끝내기 직전,

필드 비상 알림이

평가실 단말을 전부 덮었다.

붉은 창이 동시에 떴다.

외부 접속 감지.

훈련 로그 무단 열람 시도.

접근 권한: 교직원급 위장.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남궁현이 즉시 단말을 닫고

운소하에게 시선을 보냈다.

은명은 화면 하단의

접속 경로를 읽다가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접속 원점 표시,

익숙한 코드였다.

아주 오래전에 한 번 본 적 있는

그 패턴.

홍천무가 낮게 물었다.

"아는 겁니까?"

은명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몇 초 뒤,

입술만 움직였다.

"...알고 싶은 종류의 이름은 아니야."

운소하가 파일을 덮었다.

"공식 판정은 보류합니다.

전원 대기.

지금부터는 평가가 아니라

보안 절차다."

전태산은 아직 내밀지 못한 주먹을

천천히 폈다.

승리 직후보다,

지금이 더 조용하고 더 위험했다.

돌파대장은 끝났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돌파의 기록을 훔쳐보려 했다.

다음 문이 열리는 순간,

점수보다 먼저

이름이 불릴 것이다.

남궁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평가실 조명을 절반만 남겼다.

밝기를 낮추자

단말 경고창의 붉은색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기록은 거짓말을 안 한다.

하지만 기록을 훔치는 놈은

항상 진실을 제일 먼저 안다."

그 말에 태산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까지는 점수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싸움의 종류가 바뀌었다.

주먹으로 밀어붙이는 싸움이 아니라

누가 먼저 의미를 읽어내는 싸움.

은명은 천무 쪽으로

로그 화면 일부를 밀어 보였다.

"이 경로,

10년 전 사건 자료 접근 패턴이랑

너무 닮았다.

우연이면 좋겠는데,

난 우연을 잘 안 믿어."

홍천무는 화면을 잠깐 본 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라운드는

필드 안이 아니라

기록 안에서 시작되겠군요."

운소하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좋다.

오늘 판정은 다음 화 첫머리에서 고지한다.

그 전까지,

누구도 오늘 로그를

개인 단말로 옮기지 마라."

태산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문 옆에 선 채로

천무와 눈을 맞췄다.

둘 다 말이 없었지만

뜻은 같았다.

앞에서는 같이 뚫고,

뒤에서는 같이 지킨다.

그리고 이번엔,

누가 판을 흔드는지도

함께 찾아낸다.

평가표보다 먼저,

진짜 적의 이름이

드러날 차례였다.

다음 호출음이,

정적을 먼저 찢었다.

그리고낯익은이름하나가붉은경고창중앙에천천히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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