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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반 실질 1위 일러스트

# B반 실질 1위

B반 실질 1위

6월 중순 오전,

B반 훈련장 링 주변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종합 스파링 날이면

원래 소리부터 커지는데,

오늘은 기록 장비 켜는 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전태산이 링 중앙에 섰다.

장갑 끈을 조이고,

발목 각도를 맞추고,

호흡을 한 번 길게 뽑았다.

리오가 반대편에서

양팔을 털며 웃었다.

"선배.

오늘은 봐주기 없어요."

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끝나고

로그부터 같이 보자."

시작 신호.

리오는 솔라카포에라 회전으로

초반부터 측면을 파고들었다.

첫 킥은 허공,

둘째 킥은 페인트,

셋째에서 착지하며

하단 각을 열어 젖히는 패턴.

태산은 정면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착지 0.2초.

그 타이밍만 기다렸다.

발.

골반.

허리.

어깨.

주먹.

융합 직권이

착지 직후 리오 가드 위에 꽂혔다.

툭.

리오가 두 걸음 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

아까 직권이랑

지금 직권 완전 다른데요?!"

태산이 숨을 고르며 답했다.

"같은 주먹인데

길이 다르지."

무사가 타이머를 찍었다.

"리오전,

첫 유효타 00:42.

착지 타이밍 절단 성공."

다음 상대 올가.

올가는 프로스트발키리 방어진으로

정면 진입을 전부 눌러버리는 타입이었다.

정면에서 밀면 손해.

측면 각을 못 먹으면

시간만 빠진다.

태산은 첫 10초를 버렸다.

때리지 않고 걸으며

올가 가드 회전 속도를 봤다.

좌측 반 박자 늦음.

상방 전환 0.3초 공백.

그는 링 2시 외곽에서

육정육갑 소형 발판을

발밑에 짧게 깔았다.

도약 높이는 낮고,

수평 이동은 길게.

올가가 상방 가드로 바꾸는 찰나,

태산 낙하 직권이

가드 위를 긁으며 들어갔다.

퍽.

올가가 이를 악물고

한 걸음 물러섰다.

"전태산...

너, 전보다

훨씬 더 귀찮아졌어."

태산은 피식 웃었다.

"칭찬으로 듣는다."

무사가 곧바로 읽었다.

"올가전,

측면 진입 성공.

발판 사용 1회.

착지 안정 유지."

태산 발목에 열감이 올라왔다.

종아리가 당겼다.

대가를 모른 척하면

다음 경기에서 갚아야 한다.

그는 링 모서리에서

호흡을 두 번 길게 맞췄다.

세 번째 상대,

마르쿠스.

글라디에이터식 직선 돌진은

빠르고 무거웠다.

장점은 압도력,

약점은 관성.

태산은 첫 교차에서

일부러 우측 가드를

얇게 열어뒀다.

너무 크게 열면 함정 티가 난다.

너무 작게 열면 안 문다.

마르쿠스가 그대로 물었다.

돌진 관성은 줄지 않았다.

태산은 끝까지 힘을 미뤘다.

돌진이 닿는 마지막 순간,

역카운터 직권을 정면으로 꽂았다.

쿵.

마르쿠스가 밀려나며

링 중앙선을 밟고 멈췄다.

짧은 침묵 뒤,

남궁현이 손을 들었다.

"여기까지.

전태산 3연승."

훈련장 소음이 한 번에 터졌다.

"연속으로 다 잡았어?"

"상대 스타일이 전부 다른데..."

"이제 라이벌전 전용이 아니네.

범용으로 먹히네."

태산은 환호 쪽을 보지 않고

오른쪽 전완을 한번 눌렀다.

경미한 충격통.

발목 피로 누적.

몸은 대가를 내고 있었다.

이길 수 있게 됐다.

그다음은

어떻게 쓰느냐다.

남궁현이 훈련생들을 모아

공식 브리핑을 시작했다.

말은 길지 않았다.

"오늘부로 B반 실질 1위는

전태산.

기록 반영한다."

공기가 한번 내려앉았다.

이 문장은 환호보다 무거웠다.

랭킹은 숫자지만,

숫자 뒤에 책임이 붙는다.

태산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와

짧게 말했다.

"1위면...

뒤에서 뛰는 애들까지

챙겨야죠."

남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자리보다 기준.

그 말 잊지 마라."

브리핑 해산 뒤,

복도에서 아서와 스쳤다.

아서는 벽에 기대

반쯤 웃으며 말했다.

"B반 1위 축하해.

전교 1위는 아직 아니지."

태산이 멈추지 않고 답했다.

"알아.

순서대로 갈게."

아서는 짧게 손을 들고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도발이라기보다

상위 판의 좌표를 찍어준 한마디였다.

오후,

훈련장 구석 테이블.

홍천무는 오전 연승 로그를

반복 재생하고 있었다.

같은 장면을 0.5배속,

다시 1배속,

다시 프레임 단위.

그는 노트 상단에 적었다.

패턴이 없는 게 아니다.

패턴이 살아서 바뀐다.

형파는 고정 패턴엔 강하다.

오늘 태산은

고정 자체를 거부했다.

그럼 해독법도 바뀌어야 한다.

천무는 펜으로 기존 항목을 지우고

새 분류를 만들었다.

1. 예비동작 계층.

2. 회수 방향 우선.

3. 목적 기반 분기.

그는 낮게 말했다.

"형파만으로는 안 된다.

다른 해석법이 필요해."

무사가 조용히 옆에 앉아

로그 사본을 건넸다.

"선배,

이 구간 보시면

태산 선배가 발판을 쓰는 순간보다

발판을 안 쓰는 순간에서

오히려 더 흔듭니다."

천무는 화면을 확대했다.

발판 카드가 공개되자

상대도 대비한다.

진짜 위협은

카드가 아닌 척하는 순간.

그는 즉시 메모를 남겼다.

해독 불가 -> 해독법 갱신.

그리고 바로 아래

새 문장을 덧붙였다.

형파를 넘는 법부터 만든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의외로 크게 들렸다.

패배감보다는

연구 시작의 소리였다.

저녁 무렵,

태산은 훈련장 불을 끄기 전에

오늘 로그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리오전: 착지 절단.

올가전: 측면 도약.

마르쿠스전: 미끼 역카운터.

각기 다른 상대,

각기 다른 해결.

공통점은 하나.

경로 먼저.

태산은 메모 하단에

짧게 적었다.

1위는 결과.

기준은 일과.

멀리서 은명이

복도를 지나며 그를 봤다.

둘은 말없이 손만 들어 인사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오늘 서로가 무엇을 얻었는지

이미 아는 얼굴이었다.

복도 전광판엔

랭킹 반영 예고가

천천히 스크롤됐다.

주변 소음은 커졌고,

시선은 더 많이 붙었다.

태산은 소음 쪽을 보지 않고

가방 지퍼를 닫았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도 같은 기준."

홍천무는 훈련장 구석에서

그 말을 듣고

노트를 덮었다.

"네.

내일은 다른 해석으로."

둘의 대화는 짧았고,

다음 화의 긴장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B반 실질 1위는 확정됐다.

하지만 판은 멈추지 않았다.

랭킹은 숫자고,

숫자는 곧 다음 싸움의 좌표였다.

공식 공표가 끝난 뒤,

남궁현은 태산을 따로 세웠다.

훈련장 한쪽 화이트보드에

세 가지를 적었다.

1. 주도권 유지율.

2. 동료 지원 기여.

3. 실수 관리 속도.

"실질 1위는

개인 승률만으로 안 준다.

뒤를 챙길 수 있는지까지 본다."

태산이 보드를 읽고

짧게 물었다.

"그럼 오늘부터

제 훈련도 바뀝니까?"

"바뀐다.

혼자 이기는 루트에서

팀이 같이 사는 루트로."

태산은 숨을 고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받아들입니다."

남궁현은 마지막으로

짧게 던졌다.

"1위는 벨트가 아니다.

근무표다."

그 말이 태산 귀에

오래 남았다.

환호보다,

도발보다,

그 한마디가 더 무거웠다.

오후 보강 세션.

남궁현은 일부러

태산에게 후배 둘을 붙였다.

역할은 분명했다.

태산은 전면 압박,

후배 둘은 측면 봉쇄.

첫 시도는 실패.

태산이 앞을 너무 빨리 열어

후배 한 명이 타이밍을 놓쳤다.

남궁현이 바로 중단했다.

"네 속도 기준으로

팀을 맞추지 마.

팀 속도를 네가 맞춰."

태산은 이를 다물고

다시 배치를 잡았다.

이번엔 먼저 손신호를 줬다.

하나.

둘.

지금.

후배 둘이 측면을 닫는 순간,

태산이 중앙을 밀었다.

라인이 깨끗하게 맞았다.

무사가 기록했다.

"팀 연계 2차 시도,

성공.

전면 압박과 측면 봉쇄

동시 성립."

태산은 후배들을 보며

짧게 말했다.

"좋아.

내가 맞춘다.

너희는 박자만 유지해."

후배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은 그 반응을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1위면,

진짜로 뒤를 봐야 한다.

훈련장 밖 복도.

랭킹 공지판 앞에

학생들이 계속 모였다.

누군가는 감탄했고,

누군가는 불편해했다.

"전태산이 B반 실질 1위면,

A반이랑도 판도 바뀌나?"

"아직 전교는 아니잖아.

근데 속도는 미쳤지."

"홍천무는?

3차전 졌다는데."

그 질문이 나오자

천무가 뒤에서 지나가다

잠깐 멈췄다.

그리고 정면으로 답했다.

"졌습니다.

하지만 데이터는 얻었습니다.

다음엔 다른 방식으로 갑니다."

수군거림이 조용해졌다.

굴욕이 아니라

연구 선언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천무는 그대로 훈련장 구석

개인 분석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는 오전 연승 로그에서

세 구간을 따로 잘라

새 프로젝트로 만들었다.

R-착지절단.

O-사각도약.

M-미끼역카운터.

그리고 항목마다

공통 변수를 표시했다.

고정 패턴 부재.

목적 기반 분기.

그는 펜을 세게 눌러

아래 문장을 적었다.

형파는 정답을 찾는 기술이 아니라,

질문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기술로 전환.

그 문장을 적자

표정이 조금 풀렸다.

패배는 결론이 아니라

알고리즘 버전 업 신호였다.

무사가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무,

그럼 기존 형파는 버리는 거야?"

천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코어는 유지합니다.

해석 계층을 하나 더 올릴 겁니다."

"이름은 정했어?"

천무는 잠시 생각하다

노트 우측 상단에 적었다.

형파 2.1

가변 경로 대응층.

무사가 웃었다.

"버전명이네."

천무도 아주 작게 웃었다.

"개발 방식이 맞습니다."

저녁,

태산은 아지트 회의에 잠깐 들렀다.

리오와 올가가

오늘 대련 로그를 벽에 띄워 두고 있었다.

리오가 손을 들며 말했다.

"선배,

오늘 리오전 타이밍은

인정이지만 다음엔 안 맞아요.

착지 패턴 바꿀 거라서."

올가도 바로 덧붙였다.

"나도 상방 지연 고친다.

다음엔 그 도약,

공짜로 안 들어온다."

태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나도 바꾼다.

서로 업데이트 하자."

아지트 벽 문구가

불빛 아래 또렷했다.

약한 자의 곁에 서는 것이

활빈의 도.

태산은 그 문장을 한번 보고

오늘 공지에서 받은 무게와

같은 결로 받아들였다.

강한 사람이 앞에 서는 이유는

뒤를 비우지 않기 위해서.

밤 10시,

은명은 방에서

랭킹 재편 공지를 다시 읽었다.

태산 이름 옆에 붙은 숫자를 보며

잠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바로 창을 닫았다.

지금 중요한 건

숫자보다 다음 질문이었다.

그는 천기 대화창 초안에

새 카드를 붙였다.

검증 항목:

목적 변동 상황 시

보호 대상 일관성 확인.

태산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1위 축하 2차.

근데 내일부터는

팀판도 같이 봐.

태산 답장.

ㅇㅋ.

혼자 1위 말고,

B반 전체 업데이트로 간다.

은명은 그 답장을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숫자가 사람을 먹는 게 아니라,

사람이 숫자를 쓰는 방향.

심야 직전,

남궁현은 교관실 모니터에

오늘 데이터 요약을 띄웠다.

전태산:

다중 스타일 대응 성공.

팀 연계 항목 개선 필요.

홍천무:

재분석 전환 완료.

형파 계층 확장 착수.

그는 마지막 줄을 입력했다.

B반 내부 균형:

경쟁적 안정 상태 진입.

그리고 모니터를 끄며

혼잣말처럼 던졌다.

"좋다.

판이 살아 있네."

다음 날 아침 공지 전,

복도 전광판은 잠깐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학생들은 여전히 모였고,

질문은 더 많아졌다.

전태산은 공지판을 스쳐 지나가며

한 번만 멈췄다.

자기 이름을 확인하고,

다시 걸었다.

오래 보지 않았다.

홍천무는 반대편에서

노트를 펴고 있었다.

페이지 상단 문장 두 개.

해독 불가 -> 해독법 갱신.

형파를 넘는 법부터 만든다.

둘은 눈이 마주치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의 승부를 오늘의 기준으로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신호였다.

B반 실질 1위는 확정됐다.

하지만 확정된 건 자리뿐.

기준은 매일 다시 증명해야 했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후 마지막 자율시간,

무사는 천무 옆에서

새 분석표 양식을 만들었다.

표제는 간단했다.

가변 경로 대응 테스트.

항목 1.

예비동작 신뢰도.

항목 2.

회수 방향 분기 확률.

항목 3.

목적 기반 루트 선택 징후.

천무는 세 번째 항목에서

펜을 잠깐 멈췄다.

목적 기반.

예전엔 이 단어가

분석표에 없었다.

지금은 핵심이었다.

상대가 왜 그 동작을 쓰는지

읽지 못하면,

어떤 경로도 끝까지 못 읽는다.

그는 무사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동작만 기록하지 마.

상황 목적도 같이 붙여."

무사가 바로 입력했다.

"예.

공격 목적,

보호 목적,

유도 목적,

세 가지로 분류하겠습니다."

천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게 다음 해독의 시작입니다."

같은 시각,

태산은 후배 둘과

짧은 보조 대련을 돌고 있었다.

이번엔 본인이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후배가 먼저 진입하면

태산이 뒤에서 경로만 열어주는 훈련.

첫 세트는 엉켰다.

태산이 타이밍을 너무 늦춰

후배가 고립됐다.

둘째 세트에서

태산은 신호를 바꿨다.

손가락 두 번,

짧은 어깨 틀기,

측면 열기.

후배가 그 신호를 읽고

자연스럽게 빠졌다.

라인이 맞았다.

태산은 후배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좋아.

내가 먼저 치는 것보다,

네가 안 다치게 빼는 게 먼저다."

후배가 숨을 헐떡이며 웃었다.

"선배,

1위가 이런 말 하니까

묘하게 무섭네요."

태산도 웃었다.

"무섭게 들리면

제대로 들은 거다."

훈련이 끝난 뒤,

태산은 개인 메모에

새 줄을 추가했다.

실질 1위 체크리스트:

내 승률이 아니라

팀 생존률.

그 문장을 저장한 뒤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저녁 식당 앞 복도.

랭킹 재편 얘기가

아직 끊기지 않았다.

"B반 1위 바뀌면

A반도 재배치 들어가나?"

"전교 판은 아직이래.

근데 곧 붙겠지."

"홍천무도 가만있진 않을 텐데."

바로 그때,

천무가 트레이를 들고 지나갔다.

누군가 장난처럼 물었다.

"천무,

다음엔 이길 자신 있어?"

천무는 멈추지 않고 답했다.

"자신보다 준비가 먼저입니다.

준비가 맞으면,

결과는 따라옵니다."

가벼운 장난이

조용히 끝났다.

밤 9시 30분,

은명은 방에서

천기 대화창과 랭킹 공지를

나란히 띄워 놓았다.

두 화면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힘을 어디서 가져왔는가.

힘을 누구에게 쓰는가.

그는 태산의 오늘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혼자 1위 말고,

B반 전체 업데이트로 간다.

은명은 그 문장을 복사해

자기 노트 하단에 붙였다.

개인 답변을

팀 문장으로 확장할 것.

그리고 천기 대화창에

보내지 않을 문장을 하나 썼다.

너도 목적을 바꿀 수 있다면,

질문이 달라질까.

그 문장은 전송하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은명은

그 문장을 지우지도 않았다.

지우지 않은 문장도

때로는 진행이었다.

심야,

남궁현은 교관실에서

다음 주 훈련 편성표를 작성했다.

태산 이름 옆엔

리더십 보강,

천무 이름 옆엔

가변 해독 실험.

그는 둘 사이에

작은 화살표를 그어 연결했다.

상호 업데이트.

펜을 내려놓고

짧게 말했다.

"서로를 이기려다,

서로를 키우는 단계.

좋다."

창밖 훈련장 불이

하나씩 꺼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조명 아래,

태산과 천무가 각자 반대편에서

동시에 장갑을 벗었다.

둘은 서로를 보지 않았지만,

같은 타이밍에 움직였다.

오늘 할 일 끝.

내일 할 일 시작.

복도 끝 전광판은

다음 알림을 예고했다.

전교 통합 점검 일정

곧 공지.

학생들 수군거림이

다시 커졌다.

B반 실질 1위라는 단어는

하루 만에 자리 잡았고,

그다음 좌표를 부르기 시작했다.

태산은 전광판을 보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순서대로 간다 했지.

좋아.

다음 순서도 간다."

천무는 옆에서

노트를 닫으며 말했다.

"그 전에,

저도 한 번 더

해석을 갈아엎겠습니다."

둘은 짧게 눈을 마주치고

각자 다른 계단으로 걸어갔다.

실질 1위의 하루는 끝났다.

하지만 실질 1위의 책임은

이제 시작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무사는 전날 세 경기 로그를

한 화면에 겹쳐 띄웠다.

리오전,

올가전,

마르쿠스전.

세 그래프가 다른 모양인데

한 지점에서 겹쳤다.

적중 직전,

힘 삽입 지연 시점.

무사는 그 지점을 확대해

태산에게 보여줬다.

"선배,

세 경기 공통으로

힘을 늦게 넣을수록

오차가 줄어듭니다."

태산은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로 먼저,

힘은 마지막.

이제 숫자로도 박혔네."

홍천무도 옆에서

같은 그래프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읽는 타이밍도

계속 늦었습니다.

끝 시점 변조가

핵심 변수입니다."

태산이 피식 웃었다.

"좋아.

그럼 다음엔

그 시점도 바꾼다."

천무가 바로 받았다.

"네.

그럼 저도

끝 시점 예측층을 따로 만들겠습니다."

무사는 둘 대화를 기록표 하단에

짧게 옮겨 적었다.

승부 후 대화 품질:

매우 높음.

남궁현이 그 문장을 보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항목 같지만,

제일 중요한 항목이다."

태산은 장갑을 들어 올리며

마지막으로 공지판을 한번 봤다.

실질 1위라는 글자 옆에서

그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은명은 같은 순간

아지트 노트 첫 페이지에

챕터07 첫 문장을 적었다.

판이 바뀌면,

질문도 바뀐다.

하지만 목적은 버리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 보지 않았지만

같은 속도로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그게 오늘의 진짜 공표였다.

랭킹이 아니라,

방향의 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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