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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잘라드립니다.

병원의 자동문이 열렸다. 꽤 큰 병원이지만 은은한 조명만 비추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병원에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아이와 손을 잡고 들어왔다. 옅은 화장 위로 눈가의 잔주름이 보였다.

여성은 깔끔한 복도를 지나 가장 구석에 있는 작은 문 앞에 섰다. 놋쇠가 닳아 군데군데 검은 속살이 드러난 낡은 종이 문 위에 달려있었다. 손이 떨렸다. 멈칫하다가 그대로 문을 열었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여성이 먼저 들어갔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팔을 당기자 아이가 겨우 따라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예약하신 분이시죠?"

아이는 여성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두려워하는 표정도 없고 궁금해하는 반짝임도 없다. 그냥 앞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아이가 석달 전부터 배가 아프다는 말만 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대학병원에서도 이상이 없다는 소리만 하고, 정신병동에서 보자는 말만 하는데..."

여성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손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둘째 일 이후로 말씀이시군요"

의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성은 흠칫하면서 아이의 귀를 막았다.

"그렇게 해도 소용 없으실 겁니다. 그래 아이야 이름이 뭐니?"

"찬우요.."

아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한손으로 오른쪽 배를 어루만지더니 다시 말했다.

"아파요.."

의사는 싱긋 웃으며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을 다시 조여맸다.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커튼 뒤에서 긴머리를 질끈 동여맨 의사가 나왔다. 긴 콧수염을 잠시 쓰다듬다가 웃으며 말했다.

"이런건 저희 전문이죠. 저희가 수술을 좀 해야 되서요. 비용은 알고 계시죠? 그리고 저희가 무엇을 가져가는 지도요?"

여성의 눈이 잠시 흔들리다가 굳어졌다.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보호자분께서는 밖에 나가 계시구요. 치료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두건을 쓴 의사는 아이의 손을 잡고 리듬있는 걸음걸이로 진료실 안쪽 문을 열었다. 소독약 냄새가 아니었다. 오래된 나무와 마른 풀, 그리고 뭔지 모를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안에는 작은 침대, 그리고 나무로 된 기계가 있었다. 튜브가 연결되어 있고 작은 마스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의사는 아이를 안고 침대에 눕혔다. 손을 탁 튕기자 이불이 내려와 아이의 몸을 덮었다.

"야 어차피 벗겨야 하는데 왜 덮냐"

방 구석에 기대어 서있던 외과의가 이죽거렸다.

"마취하기까지 아이가 추울 수도 있지 않냐, 여튼 외과의사들이란"

마취의는 대꾸하고는 아이를 바라봤다. 빈 아이의 눈은 그대로 천장을 향해 있었다. 손을 꼼지락거리지도 이불을 발로 차지도 않았다.

"자 우리 선생님이랑 숫자 놀이 할까? 1부터 10까지 세어서 먼저 잠드는지 볼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선생님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마취의는 고개를 잠시 긁적이더니 기계를 조작했다. 기계에서 연기가 프스스 나오자 발로 한 대 찼다. 어디선가 악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 착한아이 그대로 자고 끝나고 봐~"

마스크를 쓴 아이의 영혼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물도 아닌 공기도 아닌 어느 공간. 그 안에서 떠오르듯 기억이 위로 올라왔다.

햇살이 좋은 날의 마당. 작은 갈색 개. 아이가 마당에서 개를 부르자 까만 코를 아이에게 비볐다. 아이는 그대로 잔디 위로 넘어져 한껏 웃었다. 매미 소리가 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퍼져갔다.

마당 한쪽에 파란 호스가 꼬여 있었다. 아이가 호스를 틀자 물이 뿌려졌고 개가 물줄기를 따라 뛰어다녔다. 아이가 호스를 높이 들면 개가 뒷발로 섰다. 아이가 낮추면 개가 엎드려 코를 물에 박았다. 그때마다 아이가 웃었다. 개도 꼬리를 흔들었다. 아무런 사건도 없는, 아무 의미도 없는, 그냥 좋은 오후였다.

"얘들아 수박먹자"

어디선가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호스를 내려놓고 뛰어갔다. 개가 뒤를 따랐다. 마루에 수박이 잘려 있었다. 아이는 한입에 여러 번을 먹었다. 즙이 턱을 타고 흘러 티셔츠에 떨어졌다. 개는 수박을 한참 바라보다가 뼈다귀 모양의 개껌을 씹었다.

"지지 맛있어?"

아이가 개껌을 씹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웃음소리가 수박향과 함께 아지랑이처럼 수술실을 메웠다.

"아 너무 넓네, 야 예약 좀 가려받으라니까"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외과의가 큰 칼을 가져왔다. 반짝여야 할 곳에 빛이 없고 어떻게 보면 투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위치를 잠시 가늠하더니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붉은 피가 올라오는 대신 웃음소리, 개의 갈색 털, 마당 한쪽의 나무 그루가 점점 사라졌다. 그 밑에서 다른 기억이 잠깐 비쳤다. 같은 마당, 붉은 입 그리고 울음소리. 외과의가 망설이지 않고 한 번 더 칼을 휘둘렀다.

마취의는 씩 웃으면서 기계를 조작했다. 기계 소리가 점점 잦아들자 아이의 혈색이 돌아왔다. 눈에 빛이 돌아오자마자 바로 손을 들어 이불을 끌어당겼다.

"선생님 여기 너무 추워요."

진료실 밖에서 아이는 밝은 얼굴로 달려가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 아이의 손등에 떨어졌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 왜그래? 어디 아파? 엄마도 여기서 치료받고 가자"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아이를 다시 안았다. 아이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마취의가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마취의가 아이에게 시선을 내렸다.

"저희 현금만 받는거 아시죠? 그리고 지지랑 잘놀아~"

엄마의 손이 아이의 어깨 위에서 멈췄다. 아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를 올려다봤다.

"지지가 누구야?"

엄마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눈웃음을 만들었지만 입술은 꾹 다물어져 있었다. 아이의 손을 꽉 잡았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더니 고개를 돌려 복도 쪽을 바라봤다. 이미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문을 나섰다. 종이 울렸다.

외과의가 병에 담긴 이빨모양의 조직을 꺼냈다. 진료실 구석의 나무 상자. 열쇠를 들고 상자를 열어 조직을 던져 넣었다.

"오늘도 아주 맛있는걸 주는구나. 이거말고 또.."

상자가 말했다. 외과의는 콧수염을 신경질적으로 꼬으며 뚜껑을 닫고 열쇠를 잠갔다.

"범위가 넓었어." 외과의가 말했다.

마취의는 아무 말 없이 기계를 닦고 있었다. 형광등의 웅 하는 소리만 진료실을 채웠다.

다시 종이 울렸다.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작가의 말

1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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