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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권 조각의 줄 일러스트

식권 조각의 줄

다음 날 아침, 빈민가 광장의 공기는 바싹 마른 가죽처럼 팽팽했다. 밤새 식어버린 잿더미의 퀴퀴한 내가 먼저 코를 찔렀고, 그 뒤로 마른 흙먼지 비린내가 따라왔다. 어제와 같은 하늘이었지만, 햇살의 온기마저 서늘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고블린들의 발걸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서로의 눈치만 살피며 질척한 침묵을 견디고 있었다.

마몬 상회의 포만죽 배식대 앞에서 거대한 오크가 드디어 움직였다. 그는 국자를 솥에 쇠몽둥이처럼 박아 넣고, 그 울림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목청을 터뜨렸다.

“잘 들어라, 이 버러지 같은 놈들아! 마몬 님의 인장이 찍힌 식권은, 오직 마몬 님의 위대한 솥에서만 쓰는 거다!”

침방울이 광장 바닥으로 튀었다. 그는 일부러 더 거칠고 위압적인 목소리를 쥐어짰지만, 그 끝은 갈라진 틈으로 새어 나오는 바람처럼 떨리고 있었다.

“어제처럼 다른 솥에 그 종잇조각을 가져가 봐야 전부 무효다! 알아들어? 무-효!”

‘무효’라는 외침이 벽에 부딪혔다가 메아리치며 흩어졌다.

“그건 여기서만 돈이다! 다른 곳에서는 그저, 똥 닦는 휴지 쪼가리일 뿐이야!”

오크의 포효에 수백의 고블린들이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어젯밤, 그 그윽한 향이 밴 국물 한 모금을 위해 망설임 없이 찢어 썼던 식권 조각. 이제 그것은 주머니 속에서 죄지은 증거품처럼, 혹은 식어버린 잉걸불처럼 차갑고 무겁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다리에 붙어 서 있던 어린 고블린이 자기도 모르게 제 주머니를 작은 손으로 꾹 눌렀다. 어제 처음 맛본, 뼛속까지 스며들던 그 따스함이 아직 혀끝에 맴도는 듯했다. 하지만 오크의 목소리는 그 기억 위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이는 고개를 들어 제 어미를 보았다. 어미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지만, 그 손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콜록, 콜록. 마른기침 소리가 군중 속에서 터져 나왔다. 병든 고블린이었다. 그는 낡은 천 조각으로 입을 막은 채였다. 어제의 국물은 잠시나마 그의 폐부를 덥히고 기침을 멎게 해주었다. 그는 주머니에 든 식권 조각을 꺼내보지도 못한 채 손가락 끝으로 더듬었다. 바스러질 듯 얇고 연약한 종이 조각. 마지막 남은 약처럼 소중했던 그것이 한순간에 힘을 잃었다는 생각에, 그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곁에 선 늙은 보호자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더욱 패였다. 노인은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희미하게 떠오르는 고기 향을 지우려는 듯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손은 어느새 병든 이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짐수레 옆에 버티고 선 거구의 고블린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는 어제 두둑한 힘줄이 붙은 뼈다귀를 국물값으로 받아들고 흡족해했었다. 그는 오크의 외침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미간을 찌푸린 채, 그는 솥에서 피어오르는 포만죽의 시큼한 냄새와, 바람을 타고 아스라이 실려 오는 푸른 용 여관 뒤뜰의 구수한 냄새를 번갈아 맡았다. 그는 투박하고 갈라진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였다. 하지만 찢어진 식권 조각을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나무껍질처럼 두꺼운 손바닥 안에 그것을 감추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그의 시선은 이미 포만죽 배식대를 떠나 광장 건너편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광장의 질서정연한 긴장감 속으로 불협화음 같은 발걸음 소리가 파고들었다. 가름의 부하로 보이는 한량 대여섯이 어깨를 흔들며 나타났다. 그들은 일부러 발을 끌며 먼지를 일으켰고, 그들의 눈은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번들거렸다.

놈들은 곧장 빈민가 공동 우물가로 향했다. 두레박이 놓인 길목 한가운데 멈춰 서서 어깨를 펴고 침을 찍 뱉었다. 물을 길으러 오던 고블린들의 발걸음이 그 앞에서 얼어붙었다. 그들은 대놓고 길을 막지는 않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았다.

또 다른 무리는 장작을 모아둔 공터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 몇몇은 아예 장작 더미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떨었다. 그들의 히죽거리는 웃음소리와 무언의 압박감에, 고블린들은 우물과 장작 더미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수군거릴 뿐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포만죽을 향해 길게 늘어선 줄은 어제보다 갑절은 길었지만, 그들의 불안한 눈동자는 자꾸만 다른 곳을 향했다. 한 모금의 온기를 향한 갈망과, 가진 모든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뒤섞인 시선이었다.

푸른 용 여관 뒤뜰의 두 번째 솥은 어제와 다른 불길 위에서 끓고 있었다. 조나단은 솥 앞에 서서 밤새 물에 담가 핏물을 마저 뺀 뼈와 힘줄을 살폈다. 첫날 끓여낸 물은 이미 전부 버렸다. 잡내와 불순물이 가득한 초벌 국물에는 미련을 둘 값어치가 없었다. 진짜는 두 번째 우린 국물부터였다. 뼛속 골수가 은근히 배어 나오고, 질긴 힘줄이 풀어지며 국물에 묵직한 감칠맛을 더하는 단계.

그는 국자 끝으로 솥 바닥을 긁으며 재료가 눌어붙지 않게 저었다. 약한 불에도 뼈와 뼈가 부딪히며 내는 둔탁한 소리가 뒤뜰에 울렸다. 어제 국물 맛을 본 오스카와 고블린 몇몇이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오스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봐, 젊은이. 빵집에서 남은 빵 부스러기를 좀 얻어왔는데. 이걸 넣으면 양이 불지 않을까?”

옆에 있던 다른 고블린도 거들었다. “그래, 그럼 더 걸쭉해져서 배가 든든할 거야. 포만죽처럼.”

조나단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의 모든 감각은 솥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김에 집중되어 있었다.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공기 중의 맛 입자를 가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빵가루는 국물을 텁텁하게 만들고, 향을 죽여. 양을 늘리는 건 의미 없어.”

그의 낮은 목소리에 고블린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솥 위로 떠오른 맑은 기름을 작은 국자로 공들여 걷어냈다. 갈색으로 그을린 토기 접시에 기름을 옮겨 담고,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말린 채소 뿌리와 이름 모를 풀씨를 빻아 만든 가루였다. 가루를 기름에 조금 뿌리자,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견과류를 볶는 듯한 고소한 향이 피어올랐다.

“국물은 양을 늘리는 게 목표가 아니야. 향을 지켜서, 멀리 있는 놈들까지 끌어오는 게 먼저다.”

조나단은 그렇게 만든 향미유를 다시 솥에 딱 한 방울 떨어뜨렸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하고 깊은 향이 연기 기둥처럼 솟구쳤다. 어제 맡았던 고기 국물 냄새와는 결이 달랐다. 허기진 배를 직접 채우는 향이 아니라, 뇌리를 파고들어 식욕의 기억을 헤집는 듯한, 더 교활하고 강력한 냄새였다. 구경하던 고블린들의 목에서 저도 모르게 꿀꺽, 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 향기는 성벽의 바람을 타고 광장으로 퍼져나갔다. 마몬 상회의 포만죽 줄에 서서 시큼한 죽 냄새에 코가 마비되었던 고블린들의 대열이 술렁였다. 마침내 몇몇이 대열에서 이탈했다. 찢어진 식권 조각을 부적처럼 손에 쥔 채, 홀린 듯 푸른 용 여관의 뒤뜰로 향했다.

“자, 어서 오세요! 냄새 맡고 오셨죠?”

페니가 국물 솥 앞에 작은 탁자를 놓고 밝게 외쳤다. 그 모습에 주춤거리던 고블린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가장 먼저 용기를 낸 것은 아직 어린 고블린이었다. 녀석이 더러운 손으로 꼬깃꼬깃한 식권 조각을 내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기다려.”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페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조나단이었다. 그는 고블린의 손에 들린 식권 조각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줄을 선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저놈들 종이를 돈으로 받지 마.”

페니가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럼, 그럼 값은 뭘로 받아요?”

고블린들 사이에서도 불안한 술렁임이 파도처럼 번졌다. 이 종잇조각마저 안 된다면, 이제 뭘 내밀어야 한단 말인가. 절망감이 아이의 얼굴에 어렸다. 조나단은 아이를 지나 줄을 선 모두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 종이를 받는 순간, 우리가 저놈들 규칙의 노예가 되는 거야.”

그는 식권 조각을 든 어린 고블린을 턱으로 가리켰다.

“어제는 저 종이가 어디까지 먹히는지 봤다. 오늘부터는 달라. 그 종이는 돈이 아니야. 네가 포만죽 솥에서 버려졌다는 표식일 뿐이다. 그걸 우리에게 돈처럼 내밀지 마.”

병들고, 굶주리고, 모든 것을 빼앗긴 얼굴들 위로 그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국물 한 모금이 마시고 싶다면, 응당한 값을 치러야지. 하지만 그 값은 마몬의 종이가 아니야.”

조나단의 시선이 우물가를 향했다. 가름의 부하들이 여전히 어깨를 펴고 길목을 막고 있었다.

“저길 뚫고 물 한 통을 길어 오면 국물 한 잔. 저쪽 장작 더미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두 뼘만큼 가져와도 국물 한 잔이다. 여기 쌓인 그릇을 씻거나, 이 줄이 멋대로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일도 값으로 쳐주지. 그게 진짜 값이고, 너희의 일이다.”

그는 페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페니. 찢어진 식권을 가져온 놈은, 우리 줄에 설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그 증표를 확인하고 손등에 표식을 해줘. 그리고 무슨 일을 해서 값을 치렀는지 작게 기록해. 물인지, 장작인지, 설거지인지.”

그제야 페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장사가 아니라, 새 줄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작은 잉크병과 뭉툭한 깃펜을 꺼내 들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자자, 여러분! 지금부터 마몬 상회 거부자 딱지 확인 들어갑니다! 딱지 확인되신 분은, 국물값 치를 일을 손등에 표시해 드릴게요!”

새로운 규칙에 고블린들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 의미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몬에게 버림받은 자들이 모여, 제 힘으로 작은 온기를 얻는 다른 줄.

첫 번째 어린 고블린이 다시 한번 식권 조각을 내밀었다. 페니는 받지 않고 눈으로 힐끗 확인만 한 뒤, 그의 거친 손등에 작은 잉크 점을 콕 찍었다.

“자, 줄 표식 완료! 그럼 우리 손님은 뭘로 국물값 치르실래요?”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옆에 쌓인 작은 국물 잔들을 가리켰다. “저, 저거 씻을게요.”

“좋아요! 설거지로 국물값 받았습니다! 반짝반짝하게 닦아주세요!”

페니의 활기찬 목소리에 다른 고블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작은 잔들을 닦고, 힘없는 노인들은 마른 천으로 그릇의 물기를 훔쳤다. 모두의 손등에 검은 잉크 점이 찍혔다. 아이들은 여관 뒤뜰에 남아 있던 물을 조금씩 나눠 받아, 한쪽에선 국물 그릇을 헹구고 다른 한쪽에선 마른 천으로 닦아냈다. 고사리손으로 잔을 닦는 모습은 제법 진지했다.

변화의 바람은 우물가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거세게 불었다.

“비켜라.”

힘깨나 쓰는 고블린 대여섯이 작심한 듯 우물가로 향했다. 길목을 막아선 가름의 부하가 어깨를 펴며 앞을 막았다.

“어딜 기어들어가. 여기가 니들 놀이터로 보여?”

선두에 선 고블린은 아무 말 없이 상대를 노려봤다. 그의 눈빛은 분노가 아닌, 마른 우물 바닥 같은 공허한 결의로 차 있었다. 뒤이어 물통을 든 고블린 대여섯이 더 도착했다. 어느새 열댓 명의 고블린이 부하들을 반달 모양으로 에워싸듯 섰다. 그들은 무기를 들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침묵 속에서 빛나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조용히 길을 요구할 뿐이었다. 한 놈, 두 놈 얕잡아보던 허세는 통하지 않았다. 부하들은 잠시 서로 눈치를 보며 버텼지만, 떼로 몰려드는 무언의 압박에 결국 질척한 욕설을 내뱉으며 슬금슬금 길을 터주었다. 고블린들은 묵묵히 그들 사이를 지나 차례차례 물을 길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물통이 그날의 첫 승리품이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고블린들도 각자의 방법을 찾았다. 병든 아내와 자식들을 둔 한 고블린은 집에서 땔감으로 쓰려던 마른 장작 한 줌을 가져와 조나단의 솥 옆에 내려놓았다. 그는 국물을 받아 들고 뒤를 돌아봤다. 페니가 장작을 내려놓은 그의 손등에 잉크 점을 찍고, 가족들에게는 빈 잔을 닦을 천을 나눠주는 모습이 보였다. 수레를 끄는 덩치 큰 고블린은 줄의 양옆에 버티고 서서 다른 고블린들이 새치기하지 못하게 막았다. 누군가 슬쩍 끼어들려 하자, 그는 육중한 몸으로 조용히 앞을 가로막고 짧게 말했다.

“줄 서.”

그 한마디에 끼어들려던 고블린은 꽁무니를 뺐다. 페니는 그 광경을 보고 달려와 수레꾼 고블린의 손등에 다른 이들보다 유독 큰 점을 찍어주며 윙크했다.

“우와, 줄 지킴이! 줄 지키는 값이면 특별 대접이죠! 나중에 뼈다귀 하나 더 챙겨드릴게요!”

페니는 손등에 점을 찍어주고, 그들이 한 일을 작은 양피지에 간략하게 기록했다. 물통을 가져온 고블린의 이름 옆에는 물방울 무늬, 장작을 가져온 이름 옆에는 나뭇가지, 잔을 씻은 아이들 이름 옆에는 동그라미. 마몬 상회가 식권의 힘을 깎아내렸지만, 조나단의 국물 줄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뭉쳤다. 고블린들은 끌려다니기만 하는 손에서 벗어났다. 이 작은 솥을 함께 끓이는 손들이었다.

그 광경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푸줏간 주인과 빵집 주인이 마침내 결심한 듯 조나단에게 다가왔다. 마몬 상회 쪽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들의 걸음걸이는 조심스러웠고, 목소리는 나직했다. 저 작은 불씨가 과연 꺼지지 않고 타오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도, 제 발로 움직이기 시작한 고블린들의 모습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던 터였다.

푸줏간 주인이 먼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솥에서 피어오르는 허연 김을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어이, 젊은이. 자네 제안 말인데. 아주 흥미로운 구경거리이긴 하더군.”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살폈다. 마몬의 감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내일 아침, 장사 준비 전에 딱 한 수레만 보내주지. 상해서 시퍼렇게 변한 내장 같은 건 빼고, 아직 국물 내기에는 쓸 만한 뼈와 힘줄 위주로. 그 이상은 곤란해. 그리고 그건 외상이야. 알아들었나?”

그의 말에 빵집 주인이 마른침을 삼키며 거들었다. 그는 푸줏간 주인보다 더 소심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가게는… 해 질 녘에 팔고 남은 딱딱한 빵이 있다면 그걸 주겠네. 매일은 약속 못 하고, 어디까지나 남는 게 있을 경우일세.”

조나단은 끓어오르는 솥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말을 잠잠히 들었다. 그리고는 빵집 주인을 향해 짧게 말했다.

“곰팡이가 핀 것은 골라내시오.”

버려진 것을 받는다 해도, 먹지 못할 것을 섞어 양을 불릴 생각은 없다는 단호한 목소리였다. 빵집 주인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는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순간, 페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양피지 두 장과 잉크병을 들고 나타났다.

“자, 두 분 사장님! 여기 간단한 약속문입니다!”

그녀가 내민 양피지에는 어렵고 까다로운 말이나 복잡한 조건 따위는 없었다. ‘푸줏간: 아침에 쓸 만한 뼈와 힘줄 한 수레.’ ‘빵집: 저녁에 남은 딱딱한 빵.’처럼 누가 봐도 알기 쉬운 말로 간략하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페니는 깃펜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윙크했다.

“원래 이렇게 중요한 약속문에는 도장값도 두둑하게 받아야 하지만, 첫 약속 기념으로 제가 특별히 그냥 해 드리는 겁니다! 완전 거저죠?”

페니의 명랑한 목소리에 두 상인은 잠시 망설였다. 이 종잇조각에 인장을 찍는 순간, 마몬의 눈 밖에 나는 일로 비칠 수 있었다. 그들의 등 뒤로 느껴지는 서늘한 시선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는, 스스로 길어 온 물로 그릇을 씻고, 주워 온 장작으로 불을 피우는 고블린들이 있었다. 마몬의 식권이 없어도 스스로의 일로 온기를 만들어내는 저 새로운 흐름. 그들은 이내 결심한 듯 품에서 작은 나무 인장을 꺼냈다. 푸줏간 주인이 먼저, 그리고 빵집 주인이 뒤따라 양피지 위에 자신들의 표식을 꾸욱 눌러 찍었다.

페니는 약속문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활짝 웃었다. 그 모든 과정을 말없이 지켜보던 조나단은 끓어오르는 국물 위로 뜬 기름을 걷어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저들을 매일 이곳으로 오게 만들면 그만이다.”

오늘 찍힌 도장보다 중요한 건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이어질 저들의 발걸음이었다.

그날 밤, 마몬 상회 지부의 작은 사무실에는 등잔불 하나만 켜져 있었다.

가름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젠장! 식권을 막았는데 왜 줄이 그대로인 겁니까!”

책상 맞은편의 장부 담당자는 깡마른 인간이었다. 그는 가름의 고함을 듣고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그날 올라온 양피지가 놓여 있었다. 푸른 용 여관의 폐기물 줄, 푸줏간의 아침 한 수레, 빵집의 해 질 녘 남은 빵. 세 줄 모두 마몬 상회 장부 밖으로 빠져나간 이름이었다.

“줄이 남은 게 끝이 아닙니다, 가름 씨.”

장부 담당자는 펜촉으로 양피지를 두 번 두드렸다.

“식권을 못 쓰게 만들었는데도 고블린들이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물을 길어 오고, 장작을 대고, 그릇을 씻었습니다. 저놈은 식권 없이도 솥을 굴릴 손을 만든 겁니다.”

“그럼 당장 가서 엎어버리면 되잖습니까!”

가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장부 담당자는 창밖의 어둠을 보았다. 멀리 포만죽 솥의 불빛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솥 하나 엎으면 끝날 줄 압니까. 오늘 물통을 든 놈들이 내일 돌을 들고 옵니다.”

가름이 이를 갈았다. 장부 담당자는 새 양피지에 짧은 문장을 적어 내밀었다.

“배를 채우는 쪽으로 끌어오십시오. 싸움은 그다음입니다.”

그날 밤, 포만죽 솥 옆에 새로운 푯말이 걸렸다.

「오늘만 식권 한 장에 두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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