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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계약서 일러스트

지옥 계약서

추락의 충격은 없었다.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충격은 오지 않았다.

조나단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유황 냄새와 젖은 시멘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곳은 불지옥이 아니었다. 망해가는 회사 로비에 가까웠다.

갈라진 검은 타일, 깜빡이는 형광등, 낡은 안내 데스크. 벽면에는 부서별 실적표가 붙어 있었고 바닥에는 결재 서류가 흩어져 있었다.

조나단은 일어났다. 먼지를 털고 호흡을 정리했다. 태산을 무너뜨리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진 직후였다. 후회할 시간은 옥상에 두고 왔다.

그의 시선이 로비 중앙 벽면에 거대하게 떠 있는 붉은색 홀로그램 전광판으로 향했다.

‘헬 대시보드(Hell Dashboard).’

화면은 한 장짜리 요약표가 아니었다.

왼쪽에는 실시간 지표가 수십 줄로 흘렀다. 가운데에는 이세계 권역별 매출 지도와 던전 길드별 납품 비율이 떠 있었다. 오른쪽에는 최근 12분기 추세선, 고객 불만 접수, 마몬 식품 계약 갱신률, 포만죽 재고 회전일, 폭식 에너지 수확량이 동시에 갱신됐다.

[제7사업부 폭식 식탐 전환율: 3.1%]

[이세계 시장 자발적 미식 수요: 전년 대비 -72%]

[마몬 탐욕 사업부 의존 구매율: 91.8%]

[고객 만족도: 4%]

[강제 재구매율: 87%]

[던전 길드 표준 보급식 마몬 점유율: 94.6%]

[포만죽 평균 재고 회전일: 1.2일]

[식후 추가 구매 발생률: 0.8%]

[맛 관련 불만 접수: 전년 대비 +311%]

[폭식 에너지 수확량: 6분기 연속 하락]

[마몬 계약 해지 위약금 평균: 예상 매출의 300%]

[권역별 길드 급식 계약 갱신률: 96.2%]

[던전 귀환 후 외식 소비 전환율: 2.4%]

[마몬 지정 물류망 외 거래 적발 건수: 418건]

[저가 전분 원가율: 11%]

[포만죽 판매 마진율: 68%]

그 아래로 세부 탭이 계속 열렸다. 길드별 식단 사진, 모험가 설문 답변, 납품 지연 기록, 원재료 단가 변동, 반품 사유, 부서별 책임 회피 메모까지 붙어 있었다. 대시보드는 숫자만 보여주는 장식물이 아니었다. 망한 시장의 장부 전체를 벽에 펼쳐 놓은 것에 가까웠다.

조나단은 화면을 훑었다. 숫자는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읽혔다. 재고는 빨리 돌고, 강제 재구매율은 높고, 만족도와 추가 구매는 바닥이었다. 팔리기는 하는데 욕망이 남지 않는 구조였다.

주변에서는 하급 악마 직원들이 서류 뭉치를 안고 뛰어다녔다. 반품 집계표, 길드별 클레임, 분기 손익표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번 분기 식탐 보고서도 완전히 박살 났어. 이대로 가면 대표님이 우리 영혼부터 회수해서 소각할 거라고.”

“어쩌겠어? 이세계 놈들이 죄다 마몬 식품만 사 먹는데. 배는 부르니까 더 이상 먹고 싶어 하질 않아.”

“맞아. 포만감만 가득 차서 식탐이 안 올라온다고. 애초에 식욕을 느끼질 않는데 어떻게 매출을 내라는 거야?”

스치듯 지나가는 하급 악마들의 다급한 대화가 조나단의 귀에 꽂혔다.

조나단은 다시 전광판을 봤다. 길드별 납품표와 불만 사유가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재구매율은 높은데 만족도가 바닥이야. 맛으로 번 돈이 아니지.”

그는 추가 구매 발생률을 손끝으로 짚었다.

“배는 채웠는데 더 먹고 싶게 만들진 못했어. 시장을 키운 게 아니라 막아 놓은 거야.”

“어이, 신입 영혼.”

그때, 등 뒤에서 쇳소리 섞인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조나단이 고개를 돌리자, 큰 경비 악마가 서 있었다. 쇠사슬이 감긴 창을 쥔 채 조나단을 내려다봤다.

“차원 이동 안정화가 끝났으면 메모리 코어부터 제출해라. 규정 위반자는 즉시 보일러실로 직행이다.”

경비 악마가 가죽처럼 질긴 손을 뻗어 조나단을 잡으려 한 그 순간이었다.

“거기 손 치우시죠, 무식한 경비원 씨.”

밝은 목소리가 로비 소음을 끊었다.

검은 수트를 입은 작은 악마가 걸어왔다. 머리 위에는 작은 뿔, 손에는 투명 단말기. 꼬리가 단말기 리듬에 맞춰 흔들렸다.

“그 영혼은 이번 분기 폭식 사업부의 신규 프로젝트 임시 확보 자산입니다. 손을 댔다가 훼손이라도 되면 그쪽 연봉에서 감가상각 처리할 텐데, 괜찮겠어요?”

그녀가 단말기를 두드리자 경비 악마가 뒷걸음질 쳤다.

“쳇, 폭식의 수수료 귀신이네. 재수 없게.”

경비 악마가 사라지자 그녀는 조나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눈동자가 금빛으로 반짝였다.

“반가워요, 조나단 씨! 지옥 제7사업부 폭식 소속, 계약 담당관 겸 임시 자산 관리 담당 페니예요.”

페니는 인사치레도 없이 곧장 단말기를 들어 조나단의 눈앞에 홀로그램 문서를 띄웠다.

“자, 청구서부터 확인하시죠. 계약 전 비용이라 따끈따끈해요.”

조나단은 눈앞에 떠오른 상세 청구 내역을 훑어내렸다.

차원 이동 안정화 비용: 4,500,000 골드

영혼 임시 보존료 (일일): 120,000 골드

폭식 사업부 고객 전환 가능성 측정비: 800,000 골드

식탐 반응 스캔 수수료: 350,000 골드

마몬 의존 식품 독성 필터링 비용: 1,200,000 골드

조나단은 청구서 숫자를 하나씩 짚었다. 그리고 페니를 봤다.

“사람을 부른 게 아니야. 시장조사용 샘플로 불렀어.”

페니의 꼬리가 멈췄다. 곧 입꼬리가 올라갔다.

“보통 인간들은 여기가 진짜 지옥이냐며 울부짖거나 싹싹 빌기 바쁜데. 청구 항목을 바로 보셨어요?”

“조사비를 샘플한테 청구해?”

조나단은 단말기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장부 더럽게 쓰네. 본사 비용이지. 내 빚 아니다.”

페니는 바로 단말기를 두드렸다.

“좋아요! 지옥 상법 제4조 2항, 정확히 걸렸어요. 대부분은 겁먹고 자기 채무로 떠안거든요. 그럼 잡수입 수수료가 생기고요.”

페니는 단말기 화면의 청구서 상태를 ‘분쟁 조정 중 임시 보류’로 변경했다.

“항변 접수! 임시 보류로 묶어둘게요. 정식 계약만 따내면 법인 비용으로 넘길 수 있어요. 실패하면요? 연체 이자 200% 붙어서 영혼 쪽으로 바로 갑니다.”

페니가 생긋 웃으며 손짓했다.

“따라오시죠.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도 직전의 회사라 성격이 아주 날카로우시거든요.”

최고경영자실 문은 닫혀 있었다.

페니가 단말기를 대자 철문이 열렸다. 안쪽은 투자회사 집무실처럼 정리돼 있었다. 큰 책상 뒤에 검은 수트를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빗어 넘긴 머리 사이로 뿔이 솟아 있었다.

제7사업부 폭식의 CEO, 벨제부브였다.

그는 괴물보다 투자자에 가까웠다. 실적이 말라붙은 부서의 책임자였다.

“태산을 무너뜨리기 위해 제 발로 지옥을 선택한 인간이라기에 기대했는데.”

벨제부브가 말했다.

“내 눈에는 현생에서 파산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실패자로만 보인다. 조나단 강.”

벨제부브는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 서류를 힐끗 보더니, 그것을 옆으로 쓸어버렸다. 그리고 세 개의 물건을 책상 위에 거칠게 올려놓았다.

“장황한 자기소개나 기획서는 치워라. 내 부서의 실적을 갉아먹고 있는 요인들이다. 이걸 진단해라. 네 능력이 그 장부에 적힌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면, 네 영혼은 1초 뒤에 로비 경비원들의 간식으로 던져질 거다.”

책상 위에는 세 가지가 놓였다.

검은 포만죽 한 대접.

붉은 소스 병.

마몬 인장이 찍힌 길드 납품 계약서 사본.

그 옆으로 추가 자료가 펼쳐졌다. 권역별 식재료 단가표, 던전 길드 납품 스케줄, 모험가 식후 설문, 마몬 식품 클레임 처리 내역, 12분기 매출 추이표였다. 벨제부브는 조나단이 한두 줄 보고 찍는 인간인지, 자료를 엮어 읽는 인간인지 보려는 얼굴이었다.

조나단은 망설임 없이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먼저 검은 죽을 숟가락으로 살짝 떠서 입에 넣었다.

혀끝에 닿자 맛이 비었다. 향도, 지방감도, 산미도 없었다. 끈적한 질감만 목으로 넘어갔다. 배는 부른데 입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 같았다.

다음으로 조나단은 중독성 소스를 살짝 손가락에 묻혀 맛을 보았다.

중독성 소스의 자극은 조잡했다. 매운맛이 먼저 튀어나오고, 곧 혀끝의 감각이 먹먹해졌다. 원재료 맛을 살리는 소스가 아니었다. 가리는 소스였다.

마지막으로 조나단은 계약서와 첨부표를 넘겼다.

던전 진입 전, 마몬 식품 유한회사가 공급하는 ‘포만죽’을 모험가 1인당 최소 3리터 이상 의무 구매할 것.

타 부서 및 개인 조달 식품의 던전 내 반입을 금지하며, 적발 시 계약 파기 및 길드 라이선스 박탈.

본 계약의 해지 시, 잔여 기간 동안 예상되는 총매출의 300%를 위약금으로 배상함.

마몬 식품의 납품 단가는 분기별 원재료비 변동분을 자동 반영함.

길드 보급 담당자는 마몬 지정 물류망 외 공급자와 직접 거래할 수 없음.

첨부표에는 지역별 포만죽 소비량과 클레임 사유가 붙어 있었다. ‘맛 없음’ 항목은 해마다 늘었고, ‘던전 입장 조건 때문에 구매’가 설문 1위였다. 길드별 표본 수, 구매 시간대, 귀환 후 추가 소비 여부도 같이 묶여 있었다. 조나단은 계약서 한 장이 아니라 판매 흐름 전체를 보고 있었다.

조나단은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이세계 음식 문화가 왜 이 모양인지 알겠어.”

“보급식 기준이 너무 낮아. 전쟁터 식단이 시장 표준이 됐어. 귀족 요리는 성 안에 있고, 길드는 배만 채우면 끝. 그러니 마몬이 들어온 거지.”

조나단이 검은 포만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음식이 아니라 연료다. 칼로리만 채워. 그리고 이 소스는?”

그가 붉은 소스 병을 집어 들어 흔들었다.

“원재료 냄새를 덮는 물건이야. 자극은 센데 끝맛이 없어. 다시 찾을 이유가 안 남아.”

그가 마지막으로 계약서를 툭 쳤다.

“마몬은 길드 입구를 샀어. 모험가들은 밥을 사는 게 아니라 입장권을 사는 거고. 그래서 클레임이 쌓여도 매출이 안 꺾인 거야.”

벨제부브가 턱을 괴었다.

“진단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마몬은 이 구조로 매 분기 수억 골드의 매출을 올린다. 만족도가 4%면 어떻고, 재구매가 강제면 어떤가? 돈은 들어오는데.”

“돈은 들어오겠지. 하지만 당신 사업부는 말라 죽어간다.”

조나단이 헬 대시보드를 가리켰다.

“당신들은 식탐으로 먹고살지. 그런데 저건 식탐을 남기지 않아. 배만 눌러 버려. 팔릴수록 당신들 밭이 줄어드는 구조야.”

“고객은 묶여 있고, 만족도는 바닥. 대체재도 없어. 빈 시장이다.”

벨제부브는 상체를 일으켰다.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조나단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숫자와 조건을 보고 있었다.

“내 앞에서 그렇게 버티는 인간은 오랜만이다.”

벨제부브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 비어 있는 시장을 어떻게 뚫을 셈이지? 마몬의 길드 납품 계약은 단단하다. 법적으로든, 무력으로든 깰 수 없어.”

“정면으로 안 친다. 비싸니까.”

조나단은 단호하게 말했다.

“길드는 입구만 잡았어. 돈은 출구에서 벌면 돼. 전투식량 말고 귀환 직후 회복식. 배가 아니라 욕망을 건드린다.”

그가 검은 포만죽을 담은 대접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포만죽은 저가 전분 베이스로 쓸 수 있어. 산미, 향, 지방만 잡으면 노동식이 된다. 원재료를 바꾸지 않아도 돼. 배합과 온도만 맞추면 값이 오른다.”

“레시피 표준화와 배합 제어라...”

벨제부브가 중얼거렸다.

“소스도 단순한 자극 말고 산미와 감칠맛으로 다시 짠다. 맛을 느끼게 만들면 마몬 포만죽은 밀린다. 배부른 음식이 아니라 다시 찾는 음식. 그때 식탐 전환율이 오른다.”

옆에서 페니가 단말기를 두드렸다.

“대표님! 정면 파기 안 해도 돼요. 입구 말고 출구 상권이면 계약 충돌 낮아요. 수수료도 살아나요!”

페니가 조나단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소환비랑 조사비, 개인 청구에서 뺐어요! 프로젝트 개발비로 묶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조나단 씨. 빚쟁이에서 돈벌이 후보로 승급!”

벨제부브가 낮게 웃었다.

“좋다. 단순한 요리사는 아니었어. 제법 쓸 만한 장사꾼이다.”

“전략은 합격이다. 그럼 이제 진짜 계약서를 쓰지.”

벨제부브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붉은 가죽으로 된 정식 계약서가 실체화되어 내려앉았다.

조나단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는 계약서를 집어 들고 첫 줄부터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사소한 문구 하나가 영혼을 묶을 수 있었다.

기본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목표 지분 가치: 1억 골드 달성.

실패 시: 영혼 영구 압류 및 지옥 위약금 채무 이행.

성공 시: 현실 세계로의 생명력 복원 및 태산 M&A 권한 획득.

지분 분배: 벨제부브 60 / 조나단 40.

조나단은 만년필을 쥔 채 계약서 조항들을 톡톡 두들겼다.

“이대로는 서명하지 않는다. 네 가지를 고쳐.”

벨제부브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옥의 주권자 앞에서 조건을 수정하겠다고?”

“내 목숨과 영혼이 걸린 계약이다. 당연히 내 값을 받아야지.”

조나단은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고 수정을 요구했다.

“첫째, 매출만 보지 마. 전환율, 신규 상권, 레시피 권리, 마몬 점유율 하락까지 내 성과로 잡아. 난 잔돈 줍는 일 하러 온 게 아니야.”

“계속해라.”

“둘째, 1억 골드 찍는 순간 바로 복귀. 태산 M&A 권한도 같이 열어. 승인 대기니 심사니, 그런 장난은 빼.”

조나단은 계약서의 여백에 직접 수정 문구를 적어 넣었다.

“셋째, 소환비, 경호비, 시장조사비, 구내식당 테스트비. 전부 사업부 비용으로 처리해. 나한테 청구서 꽂지 마.”

페니가 단말기를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이건 승인하셔야 돼요! 개인 채무로 묶으면 이자밖에 못 먹지만, 프로젝트 비용이면 공제도 잡혀요. 장부가 훨씬 예뻐집니다!”

조나단은 마지막 조항을 적었다.

“넷째, 첫 테스트 통과하면 시범 상권 독점권을 줘. 운영 자금 5,000만 골드도. 현장 계약권과 메뉴 권한은 내 손에 둔다.”

조나단은 펜을 내려놓고 벨제부브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요리사는 맛 탓을 해. 회계사는 숫자 탓을 하지.”

조나단은 계약서를 밀어냈다.

“나는 새는 돈을 막는다. 일꾼 필요하면 영혼 창고 뒤져. 파트너가 필요하면 서명해.”

침묵이 방 안을 채웠다. 벨제부브는 조나단을 봤다.

이 인간은 겁을 참는 게 아니었다. 계산을 끝낸 상태였다.

“파트너라. 재미있다.”

벨제부브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불꽃이 계약서에 찍히며 문구들이 새롭게 재배열되었다.

계약서가 반으로 갈라졌다. 한 장은 조나단의 가슴으로, 한 장은 벨제부브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페니의 단말기에 청구 상태가 바뀌었다.

[소환 안정화 비용: 개인 채무 → 제7사업부 회생 프로젝트 비용]

[경호 비용: 개인 채무 → 프로젝트 부대비]

[기초 시장조사 비용: 개인 채무 → 개발비]

[담당 수수료: 보류 → 확정 대기]

페니가 활짝 웃었다.

“좋아요! 청구처 변경 완료! 조나단 씨, 이제 돈 나가는 분이 아니라 돈 벌어 올 분이에요.”

“서명은 끝났다. 이제 증명해라, 조나단 강.”

벨제부브가 차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첫 번째 이세계로 보내줄 줄 알았나? 내 부서의 기초 체력도 증명하지 못한 자를 현장에 내보낼 수는 없지.”

벨제부브의 몸이 어둠 속으로 흩어지며 목소리만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본사 지하로 내려가라. 그곳에 네 첫 번째 시험대가 있다.”

페니가 단말기를 조나단에게 비추었다. 단말기 화면에 새로운 경고 수치들이 팝업창으로 떠올랐다.

[본사 구내식당 식탐 전환율: 1.7%]

[직원 배급 만족도: 측정 불가]

[최근 30일 자발적 추가 구매: 0건]

[마몬 검은 포만죽 비상 납품 의존도: 76%]

조나단은 짧게 웃었다. 본사 구내식당마저 마몬 식품에 잡혀 있었다.

“본사 직원들 식단부터 마몬에게 잡혀 있어. 꼴이 말이 아니야.”

“어쩔 수 없었어요.”

페니가 한숨을 쉬며 단말기를 내렸다.

“구내식당 조리 악마들이 만드는 유황 스튜는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아무도 안 먹거든요. 결국 다들 맛없어도 간편한 마몬의 포만죽만 사 먹다 보니, 식당 적자가 누적되어 폐쇄 직전이에요.”

페니가 단말기를 다시 올렸다.

“조건 떴어요. 30분, 예산 0골드, 중급 악마 직원 50명. 추가 배식 요청하고 지갑 열면 성공이에요.”

페니가 숫자를 읽었다.

“실패하면 영혼 전부 압류. 한 명이라도 재구매 거부하면 끝이에요. 괜찮으시죠?”

조나단은 소매를 걷었다.

“재료는.”

“주방 냉장고에 남은 검은 포만죽 멀티 팩, 어제 끓이다 만 유황 스튜 잔해, 죄인의 뼈로 만든 딱딱한 호밀빵, 그리고 정체불명의 냉동 고기 덩어리가 전부예요. 조미료도 거의 없고요.”

조나단이 주방 문을 밀었다. 식은 솥, 굳은 기름, 방치된 조리대가 보였다.

조나단은 식탁 위 고기 덩어리를 짚었다.

“충분해. 주방 꼴은 늘 이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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