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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주는 약속 일러스트

빛이 주는 약속

영하 40도의 극야(極夜)는 소리마저 얼어붙게 만든다.

1885년 겨울, 북극권 빙하 지대.

짐을 가득 실은 썰매 개들조차 눈 속에 파묻혀 미동도 하지 않는 깊은 밤이었다. 캔버스 천으로 얼기설기 엮은 베이스캠프의 텐트들이 칼날 같은 바람을 맞으며 펄럭였지만, 그 소리조차 거대한 빙원의 침묵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했다.

텐트 안에서는 내 탐사대원들이 침낭 속에 몸을 웅크린 채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극한의 추위는 육체의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낸다. 웬만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자라도 이 북극의 심장부에서는 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아니, 잠들어서는 안 된다는 기묘한 강박이 내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독일 출신의 지질학자, 칼 스키머프다.

내 나이 마흔넷. 수많은 지층을 파헤치고 대륙의 뼈대를 연구해 온 나조차도, 이 북극의 거대하고 적대적인 자연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지독한 추위 속에서도 내 시선을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저 텐트 밖, 어둠 속에 존재했다.

방한복의 깃을 목 끝까지 끌어올리고 텐트 밖으로 나섰다.

폐부로 밀려드는 공기는 차갑다 못해 불덩이처럼 뜨겁게 식도를 찢어발겼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칠흑 같은 장막 위로 초록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오로라가 마치 거대한 유령의 치맛자락처럼 기괴하게 너울거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아름다움이자, 인간의 이성을 짓누르는 공포스러운 풍경.

하지만 내 목적지는 하늘이 아니었다.

나는 허리춤에 매달린 피켈(얼음도끼)을 꽉 쥔 채, 캠프 외곽에 솟아오른 거대한 빙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눈보라를 뚫고 빙벽에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 박동은 묘한 긴장감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빙벽 깊은 곳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하늘의 오로라가 투명한 얼음에 반사된 것이려니 여겼다. 극지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광학적 착시 현상 중 하나일 거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오로라의 빛깔은 녹색과 자색을 띠었지만, 저 두꺼운 얼음의 장막 너머에서 아른거리는 빛은 창백하고도 고요한 푸른색이었다.

빛은 얼음의 표면이 아니라, 그 까마득한 내부에서부터 스스로 발산되고 있었다. 마치 빙하가 숨을 쉬며 맥박을 뛰게 하는 것처럼, 그 푸른빛은 일정한 주기로 밝아졌다가 희미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빙벽 앞에 멈춰 섰다.

장갑을 낀 손을 뻗어 빛이 새어 나오는 얼음 표면을 쓸어내렸다. 수만 년의 시간 동안 겹겹이 층을 이룬 단단한 얼음. 그 물리적 장벽을 깨부수고 저 빛의 근원을 확인해야 한다는 학자로서의 본능이, 생존을 외치는 이성을 짓눌렀다.

까앙—!

나는 피켈을 높이 치켜들고 얼음벽을 내리찍었다.

정적을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밤공기를 가르며 메아리쳤다. 얼음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내 뺨을 날카롭게 베고 지나갔지만,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깡! 까아앙—!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의 도끼질이 이어졌다. 팔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도 등줄기를 타고 뜨거운 땀이 흘러내렸다. 이윽고 빙벽에 사람의 상반신이 들어갈 만한 깊은 균열이 생겼다.

나는 균열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두꺼운 얼음 파편들을 맨손으로 걷어내자, 마침내 빛의 근원이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도대체……."

균열 속, 투명한 얼음 결정의 심장부에는 어른의 주먹만 한 크기의 기묘한 광물이 박혀 있었다.

아직 세상 그 누구도 '야비(Jav)'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은, 태초의 물질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음에서 그 광물을 파내어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나는 내 모든 과학적 지식이 밑바닥부터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따뜻했다.

영하 40도의 빙벽 한가운데 수만 년 동안 갇혀 있었을 돌덩어리가, 방한 장갑을 뚫고 미세한 온기를 전해오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열역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조차 이 작은 광물 앞에서는 완벽하게 무용지물이 되었다. 스스로 에너지를 내뿜고 스스로 열을 생산하는 물질이라니.

홀린 듯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광물을 움켜쥐었다.

돌의 표면은 매끄럽지 않았다. 얼음의 질감과 금속의 단단함을 동시에 지닌 이질적인 표면 위로, 마치 핏줄이 흐르는 것처럼 불규칙한 기하학적 패턴들이 푸른빛을 내며 쉴 새 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눈으로 읽어낼 수 없는 미지의 언어 같기도 했고,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의 맥박 같기도 했다.

어떤 지질학 교과서에서도, 어떤 광물 도감에서도 단 한 번도 묘사된 적 없는 완벽한 미지의 물질. 나는 지질학자로서 내 손에 쥐어진 이 작은 돌멩이가 기존의 모든 과학 체계를 전복시킬 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경외감.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

이것은 과연 자연이 만들어낸 순수한 광물인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득한 옛날, 무언가 거대하고 끔찍한 존재가 남기고 간 잔해인가.

나는 쫓기듯 광물을 품속 깊이 찔러 넣고 베이스캠프의 개인 텐트로 돌아왔다.

램프의 불을 밝히고,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가죽 장정의 연구 노트를 펼쳤다. 연필을 쥔 손끝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떨렸지만, 나는 학자로서의 이성을 강제로 쥐어짜 내며 흑연을 종이 위에 짓이겼다.

[ 1885년. 발견 좌표 북위 82도 부근 빙하 지대. ]

[ 굴착 깊이 약 1.5미터. 빙하층 연대 추정, 최소 수만 년 이상. ]

[ 물리적 특성: 투명한 얼음과 금속의 성질이 혼합된 외형. 영하 40도의 대기 중에서도 섭씨 15도 안팎의 미열을 항시 발산함.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자체적으로 창백한 푸른색의 발광 현상 유지. ]

거기까지 적어 내려간 나는 연필을 멈추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글자로 적어 놓고 보니 이 상황의 비현실성이 더욱 피부로 와닿았다. 에너지를 보존하고 열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스스로 열과 빛을 내뿜는 광물.

"만약 이것을 통제할 수 있다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혼잣말이 텐트 안의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만약 이 물질의 비밀을 풀어내어 인간의 동력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인류는 석탄과 증기기관의 시대를 단숨에 뛰어넘어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이 통제 불능의 에너지가 인간의 탐욕과 결합되어 무기로 쓰인다면?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다음 날 아침.

밤새 몰아치던 눈보라가 잦아들고, 창백한 극지의 태양이 지평선 위로 희미하게 떠올랐다. 나는 탐사팀을 구성하고 있는 러시아인 가이드들과 지질학 조수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품속에서 두꺼운 천으로 감싼 광물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그들의 눈앞에 내밀었다. 광물은 백주 대낮의 환한 빛 아래서도 여전히 표면에 기괴한 패턴을 일렁이며 희미한 푸른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어젯밤 빙벽 안쪽에서 발견한 것이네."

내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대원들이 웅성거리며 광물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 비교적 경험이 많은 지질학 조수 한 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광물을 이리저리 살폈다.

"음, 꽤 독특하게 생기긴 했군요. 하지만 교수님, 극지의 빙하 속에서는 종종 기형적인 결정들이 발견되지 않습니까?"

"단순한 결정이 아니야. 만져보게. 열을 내고 있어."

내가 재촉하자, 조수는 두꺼운 장갑을 낀 채로 광물을 만지작거리더니 곧 흥미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형석(螢石)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 백야 기간 동안 흡수한 미세한 태양빛이나 오로라의 전자기파를 머금고 있다가 뱉어내는 인광 현상이겠죠. 열기라고 해봤자 얼음의 마찰열이나 우리 체온이 반사된 수준에 불과할 겁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지질학의 범주를 벗어난 건 아니네요."

"……형석이라고?"

"네. 빙하가 압착되면서 섞여 들어간 불순물 덩어리일 뿐입니다. 학회에 보고할 만큼 가치 있는 샘플은 아닌 것 같군요."

대원들은 조수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광물에 대한 관심을 잃고 썰매에 짐을 싣기 위해 흩어졌다.

나는 광물을 든 채로 멍하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반박할 말은 수백 가지가 넘었다. 이것이 형석일 리 없다는 지질학적 증거, 외부 에너지 없이 밤새도록 발열을 유지했다는 물리적 사실을 외치며 그들의 멱살을 쥐고 흔들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떨리는 손을 말아 쥐며, 광물을 다시 두꺼운 천으로 감싸 품속 깊숙이 숨겼다. 반박하지 못한 비참함이 아니라,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안도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다행이다. 그들이 이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서.'

만약 저들이 이 광물의 진정한 본질—스스로 에너지를 무한히 창출하는 미지의 성질—을 깨달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황량한 얼음 감옥 속에서, 학문적 성취나 막대한 부를 향한 탐욕 때문에 내 목에 피켈이 날아들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 소식이 강대국들의 귀에 들어가 북극 전체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이건, 나만 알고 있어야 해."

나는 홀로 짐을 챙기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위대한 발견을 한 과학자가 마땅히 느껴야 할 성취감 대신, 평생을 짊어져야 할 거대한 비밀을 떠안은 자의 묵직한 절망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293년 동안 이어질 지독한 은폐와 봉인의 역사가, 바로 이 적막한 북극의 아침에 탄생한 것이다.

그날 저녁. 탐사를 마치고 문명 세계로 귀환하기 전 마지막으로 베이스캠프에 머무는 시간.

나는 작은 나무 책상 앞에 앉아, 내가 아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 끔찍하고도 위대한 발견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1869년, 베를린 대학의 학술 세미나에서 처음 만났던 러시아 제국의 젊은 기계공학자. 나의 오랜 동지이자, 예측 불가능한 러시아의 기후를 수치로 계산해내겠다는 미친 꿈을 꾸고 있는 사내.

얀 쿨로프스키.

"친애하는 나의 벗, 얀.

자네가 계산했던 대로 이곳 북극의 대기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고 파괴적이네. 자네의 수식이 맞았어.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자네의 그 위대한 수식으로도 결코 계산해낼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을 찾아내고야 말았네.

나는 아직 이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네. 이것은 지질학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 열을 뿜어내고, 스스로 빛을 내며, 스스로 맥박을 뛰게 하는 기괴한 파편.

벗이여. 나는 두렵다네. 이 작은 돌멩이 하나가 우리가 쌓아 올린 과학의 질서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하지만 나는 과학자일세.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외면할 수는 없어. 그러니 부디, 이 끔찍한 발견의 무게를 자네와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네.

나는 이 미지의 물질을 자네에게 가져갈 걸세. 오직 자네만이 이것의 진짜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서명을 마치고, 편지를 두껍게 밀봉했다. 이 편지 한 장이 훗날 우리 두 사람을 죽음의 위협으로 몰아넣고, 극지 연구소라는 거대한 감옥을 세우게 할 서막이라는 것을, 잉크 냄새 가득한 이 텐트 안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귀환을 앞둔 마지막 밤.

나는 두꺼운 모포에 광물을 둘둘 말아 내 코트 안쪽, 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품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영하 40도의 냉기 속에서도, 가슴팍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온기가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피로에 지친 뇌가 이내 얕은 수면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지독한 열병 같은 꿈이 시작되었다.

꿈속에서 나는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황동 톱니바퀴들 위에 서 있었다. 하늘은 검은 매연으로 뒤덮여 있었고, 알 수 없는 기계 장치들이 뿜어내는 수증기가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 품에 안긴 광물이, 그 모든 톱니바퀴와 기계들을 움직이게 하는 심장처럼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광물이 내게 속삭였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열과 빛으로 이루어진 지독하게 이질적인 파동.

숨이 막혀왔다. 기괴한 형상들이 내 목을 조여오는 감각에 발버둥 치다, 헉 하고 거친 숨을 들이켜며 눈을 번쩍 떴다. 온몸이 차가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나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텐트 밖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갔다.

극지의 차가운 바람이 땀에 젖은 뺨을 때렸다. 고개를 들자, 하늘 위로 며칠 전보다 훨씬 거대하고 선명한 오로라가 일렁이고 있었다. 칠흑 같은 우주의 심연에서 쏟아져 내리는 핏빛과 녹색의 장막.

나는 품속에서 희미하게 진동하는 광물의 온기를 느끼며, 압도적인 오로라의 빛을 향해 중얼거렸다.

"이 빛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는가."

거대한 과학적 진보를 이룩할 구원의 약속인지, 아니면 인류가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될 파멸의 경고인지. 북극의 밤하늘은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저 차갑게, 그리고 묵묵히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293년의 피비린내 나는 봉인의 사슬이, 그 어둠 속에서 조용히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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