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아르케시아 왕국의 겨울은 길었다.
왕궁의 창문 밖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궁전 안은 여전히 따뜻했다. 벽에는 오래된 전쟁의 깃발이 걸려 있었고, 촛불은 황금 장식 위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왕 레오르 4세는 그 깃발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대륙의 전쟁터를 누비던 기사였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고, 그의 이름은 전설처럼 퍼졌다. 하지만 지금 그는 늙었다. 손은 떨렸고, 숨은 짧아졌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하나였다.
후계자가 없다는 사실.
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죽으면 이 왕국은 어떻게 되는가…”
왕국의 귀족들은 이미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공작 발렌은 자신의 군대를 늘리고 있었고, 기사단장 루드릭은 왕궁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대주교 세르반은 교회의 권위를 앞세워 왕권을 견제하고 있었다.
왕이 죽는 순간, 왕국은 찢어질 것이 분명했다.
왕은 마지막 희망으로 궁정 점술가 마티온을 불렀다.
마티온은 조용한 노인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별을 읽는다고 믿었다.
“마티온.”
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후계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는가.”
마티온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오래된 점석들이 들어 있었다.
돌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마티온은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폐하의 후계자는 귀족이 아닙니다.”
왕의 눈썹이 움직였다.
“그렇다면 기사인가?”
“아닙니다.”
마티온은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 생각하는 어떤 사람도 아닙니다.”
왕은 잠시 침묵했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마티온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를 찾으셔야 합니다.”
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말인가.”
마티온은 말했다.
“거지로 변장하십시오.”
왕은 잠시 말을 잃었다.
마티온은 계속 말했다.
“삼 일 동안 왕국을 돌아다니십시오. 그 사이에 폐하를 구할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나를 구한다고?”
“그가 바로 폐하의 후계자입니다.”
왕은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웃었다.
“늙은 왕에게 마지막 모험을 하라는 것이군.”
그날 밤, 왕은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
왕궁의 비밀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곳에서 한 노인이 나왔다.
낡은 옷을 입은 거지였다.
그가 바로 왕이었다.
레오르 4세는 왕궁을 떠나 처음으로 왕이 아닌 사람으로 거리를 걸었다.
도시는 낯설었다.
그는 젊은 시절 전쟁터를 누볐지만, 왕국의 거리를 이렇게 걸어본 적은 없었다.
시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어두웠다.
한 상인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세금이 또 올랐다고!”
“귀족들이 또 전쟁 준비를 한대.”
“우린 다 굶어 죽으라는 거냐?”
왕은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그는 몰랐다.
왕국이 이렇게 변해 있다는 것을.
조금 더 걸어가자 기사 둘이 농민을 때리고 있었다.
“세금을 못 냈다고 했지?”
농민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다음 달에 꼭…”
퍽.
기사가 발로 농민을 찼다.
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날 밤 왕은 술집 뒤편에서 잠을 잤다.
차가운 바닥 위였다.
왕은 처음으로 왕국의 밤을 느꼈다.
둘째 날.
왕은 더 먼 곳까지 걸어갔다.
마을들은 가난했다.
아이들은 굶주렸고,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왕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이 왕국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하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점술가의 말은 틀린 것 같았다.
셋째 날 밤.
왕은 숲 근처 길을 걷고 있었다.
달빛이 희미하게 길을 비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이, 늙은이.”
세 명의 도적이 길을 막았다.
“돈 있으면 내놔.”
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젊은 시절 같았다면 그들을 모두 쓰러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몸이 늙었다.
도적 하나가 웃었다.
“봐라, 그냥 거지잖아.”
그 순간.
숲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 청년이 나타났다.
넝마 같은 옷.
허리에 낡은 칼.
도적들이 웃었다.
“뭐냐, 광대냐?”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적 하나가 칼을 뽑았다.
“둘 다 죽여버리자.”
그리고 달려들었다.
그 다음 순간.
빛이 번쩍였다.
도적의 칼이 공중에서 멈췄다.
그리고 떨어졌다.
도적도 함께.
왕의 눈이 크게 뜨였다.
청년은 움직였다.
마치 바람처럼.
두 번째 도적이 쓰러졌다.
세 번째 도적이 도망치려 했지만 늦었다.
모든 것이 끝나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왕은 숨을 멈춘 채 서 있었다.
청년의 칼을 보았다.
그것은 녹슬어 있었다.
이가 몇 군데 나가 있었다.
누군가 버린 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칼은 방금 세 명을 쓰러뜨렸다.
청년은 칼을 털었다.
그리고 왕을 잠깐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왕은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찾았다.”
왕의 눈에는 확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