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136화 합본. 무가치품 성별식에서 선의의 대리인 문패까지
133화. 무가치품 성별식
로웬이 검은 천막을 걷어 올리자, 안쪽에서 훅 끼쳐오는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야적장의 흙먼지 냄새나 녹슨 철 비린내가 아니라, 금속과 알코올이 섞인 듯한 낯선 향이었다. 천막 안은 폐재 야적장의 무질서와는 전혀 다른, 정돈된 공간이었다. 바닥은 윤이 나는 검은 타일로 깔려 있었고, 양옆으로는 투명한 벽이 칸막이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천장에는 작은 종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황금빛이나 은빛이 아니라 무광택의 잿빛 금속으로 만들어진 종들이었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기척을 감지한 듯 맨 앞줄의 종 하나가 '짤랑' 소리를 냈다. 그 소리와 함께 투명한 칸막이 너머로 아이들의 낡은 장난감 하나가 미끄러져 내려와 첫 번째 칸으로 밀려났다. 이어서 다음 종이 '짤랑', 또 다음 종이 '짤랑'. 각각의 종소리에 맞춰 인형의 팔, 닳아 해진 신발, 빛바랜 그림책 따위가 순서대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첫 번째 칸 위에는 「값 없음」이라는 표찰이, 두 번째 칸 위에는 「주인 없음」이라는 표찰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칸 위에는 섬뜩하리만큼 간결한 「의식 재료」라는 표찰이 걸려 있었다. 아이들의 소중했던 물건들이 마치 영혼 없는 껍데기처럼 세 개의 칸 중 하나로 나뉘어 떨어지고 있었다.
베라의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졌다.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인형의 해진 옷자락, 닳아버린 신발 밑창, 빛바랜 그림책의 모서리마다 아이들의 체온과 웃음소리가 배어 있는 듯했다. 그중 몇몇은 기어코 「의식 재료」 칸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그 순간, 베라는 분노로 치솟는 숨을 애써 가라앉히며 눈을 빠르게 움직였다. 아이들의 물건이 떨어지는 순서를, 어느 칸으로 들어가는지를 빠짐없이 기억하려 애썼다. 이번에는 증언할 차례였다. 정확한 기억이 아이들의 목소리가 될 것이었다.
천막 바닥에 그려진 선별선들이 일행의 발밑까지 뻗어왔다. 검은 타일 위에 얇게 빛나는 은색 선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 선이 모르그의 발끝에 닿으려는 찰나, 이네스가 재빨리 움직였다. "방해물 제거." 짧게 중얼거린 이네스의 검이 섬광처럼 번뜩이며 은색 선 중 하나를 끊어냈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선이 끊긴 자리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지만, 곧이어 옆에 있던 또 다른 선이 끊어진 자리를 채우듯 재빨리 뻗어 나왔다. 이네스는 검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직감적인 한계를 느끼며 검을 거두었다.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이었다.
"이 판정들은 수취 완료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로웬의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그녀는 감정 한 조각 없이 선별실의 천장을 훑어보며 말했다.
"값 없음은 가치를 규정할 뿐 수취 여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주인 없음은 주인이 부재하다는 의미일 뿐, 수취인이 받아갔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의식 재료는 더더욱 수취 완료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소비를 뜻합니다."
모르그는 로웬의 말이 끝나자마자 등 뒤에서 낡은 장부와 펜을 꺼냈다. 선별실의 차가운 기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펜 끝이 종이 위를 거침없이 가로질렀다. 「값 없음」, 「주인 없음」, 「의식 재료」. 기존의 판정 항목들을 날카롭게 그어 지운 모르그는 그 옆에 새로운 단어들을 또렷하게 적었다. 「미수취」, 「증거 보류」, 「수취인 확인 전」. 장부 언어로 재해석된 항목들은 선별식의 본래 의도를 비틀어 무력화시키는 듯했다.
그때, 피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코를 킁킁거렸다. 종소리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분류되는 물건들 사이에서 유독 어떤 냄새가 그의 후각을 자극하는 듯했다. 그는 작게 팔짝 뛰어오르더니 「값 없음」 칸으로 밀려나기 직전의 물건들 사이에서 낡은 편지 봉투 하나를 낚아챘다. 주변의 물건들이 짤랑거리는 종소리에 반응하며 각자의 칸으로 미끄러져 내려갈 때에도, 피핀이 든 봉투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공간의 규칙에서 벗어난 유일한 존재처럼.
로웬이 피핀에게서 편지 봉투를 넘겨받았다. 봉투는 오래되어 가장자리가 바스러졌고, 한쪽에는 익숙한 문양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그녀는 봉투의 내용물을 꺼내 펼쳤다. 안쪽에는 잉크로 휘갈겨 쓴 짧은 문장이 전부였다.
「수취 확인 전 사망 처리 금지」.
그리고 그 아래, 간결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서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엘드
134화. 사망 보류 규정
로웬의 손가락 끝에서 얇은 봉투가 마치 고대의 유물처럼 흔들렸다. 잉크의 희미한 흔적 아래로 ‘수취 확인 전 사망 처리 금지’라는 문구가 서늘하게 박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간결하지만 잊을 수 없는 서명, 엘드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로웬은 그것을 감상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괸 채 규정의 효력과 적용 범위를 먼저 접수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때였다. 딩, 하는 종소리가 평소보다 한 박자 어긋나게 울렸다. 음계가 살짝 뒤틀린 불협화음은 공기를 타고 검은 천막 안을 불안하게 휘저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의식 재료 칸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던 아이들의 물건들이, 마치 태엽이 풀린 인형처럼 일제히 멈춰 섰다. 굴러가던 나무 인형의 눈은 허공을 응시한 채 고정되었고, 찢어진 동화책의 페이지는 더 이상 바스락거리지 않았다. 선별식 장치의 투명한 선별선 위에서 물건들은 위태롭게 균형을 잡았다.
장치 자체는 즉각 반응했다. 로웬이 든 봉투를 향해 강렬한 붉은 빛을 쏘아 올리며, 액정에는 ‘규정 효력 불명’이라는 글자가 섬뜩하게 떠올랐다. 그리고는 봉투를 무시하려는 듯, 다음 선별 단계를 진행하기 위해 다시금 물건들을 안쪽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안 돼!" 이네스가 짧게 외쳤다. 그녀의 검은 천막 안에서 빛나는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선별선 위로 날카롭게 뻗어 나간 검은 그녀의 의지를 담아 장치의 선별선을 정확히 끊어냈다. 찌직, 하는 스파크 소리와 함께 선별선이 두 동강 나며 봉투가 장치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물리적으로 저지했다. 이네스는 검이 판정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을 버는 것, 그것은 검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모르그는 이미 장부를 뒤지고 있었다. 먼지가 앉은 낡은 페이지들을 빠르게 넘기던 그의 시선이 한 지점에서 멈췄다. "여기입니다. 사망 처리 항목이 수취 확인 항목보다 먼저 찍힌 흔적이."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잉크가 번진 흐릿한 기록들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사실이 접수라는 형식적인 절차보다 먼저 기입된 명백한 오류였다.
로웬은 모르그의 발견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건조했다. "사망은 수취 확인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확인 절차 누락은 접수 반려 사유가 됩니다." 마치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지적하듯이, 그녀의 말은 반박할 여지 없는 돌처럼 단단했다. 장치와 천막을 가득 채웠던 불안정한 기운이 잠시 그녀의 말에 압도되는 듯했다.
베라는 그제야 분노를 정리하고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이들의 물건이 어떤 순서로 떨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칸을 거쳐 이동했는지를 정확하게 증언했다. "저 나무 인형은 처음부터 '가치 없음' 칸에 떨어졌고, 그 다음에 이 찢어진 책이 '주인 없음' 칸으로 갔어요. 하지만 둘 다 '폐재 편입'으로 가기 전에 이 봉투가 들어왔어요." 그녀의 증언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아이들의 물건을 다시 '미수취 증거' 묶음으로 돌려놓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피핀은 봉투를 쥔 로웬의 손 옆으로 다가섰다. 그는 봉투에서 코를 떼지 않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잉크 냄새… 엘드 할아버지 잉크 냄새랑요, 검은 우산 접수소 젖은 천 냄새가 겹쳐요." 그의 말은 모두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엘드와 검은 우산 접수소, 그리고 아이들의 물건 사이의 보이지 않던 연결고리가 그제야 희미하게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천막 뒤편의 검은 벽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안쪽에서는 그림자에 잠겨 있던 수많은 작은 관 모양의 보관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관함들 사이, 텅 비어 있는 수취 도장 옆으로 '대리 수취자 승인 대기'라는 문구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135화. 대리 수취자 승인 대기
작은 관 모양 보관함의 뚜껑이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열렸다. 안쪽에는 부드러운 빛을 머금은 하얀 천이 깔려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매끄러운 홈이 파여 있었다. 홈에는 어두운 색의 자개로 장식된, 비어있는 수취 도장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도장 안쪽, 움푹 파인 면에서는 푸른 기운이 감도는 미세한 빛이 잔물결처럼 일렁였다. 그 빛이 모여 흐릿한 글자가 되었다가, 이내 선명하게 새겨졌다.
대리 수취자 승인 대기
그 문구가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 베라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도장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이름으로 가득 차야 할 그 빈 공간이 그녀의 심장을 찢는 듯했다. 아이들의 물건을 넘겨받을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너무나 명확하고 잔인한 증거였다.
"이게… 이게 대체…!"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절망, 그리고 애써 억누른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감히 누가 아이들의 대리인이 된다는 말인가. 이 아이들의 물건을, 이 아이들의 흔적을.
장치는 베라의 분노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분하고 기계적인 음성이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본인 응답 없음 확인. 대리 수취자 승인 절차를 개시합니다."
작은 관 모양 보관함에서 가느다란 빛줄기가 뻗어 나와 허공에 거대한 서식지를 그려냈다. 서식의 상단에는 대리 수취 신청서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모르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서식을 훑었다. 그의 시선이 특정 칸에 멈췄다.
"이것 보십시오. 대리 수취 신청서라면 필수적인 서명란, 대리 권한 근거를 명시하는 칸, 그리고 대리 수취인 본인 확인 칸이 모두 비어 있습니다."
모르그의 손가락이 허공에 떠오른 서식의 빈칸들을 하나하나 짚었다. 형식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신청서가 실상은 텅 비어 있었다.
"빈칸이 가득한 문서는 승인서가 아니라 미비 서류입니다."
로웬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감정 없는 기계음과 다를 바 없는 단호한 어조.
"확인 절차가 누락된 접수를 반려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마찬가지로, 본인 확인 없는 선의의 대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마치 차갑게 식은 유리 조각처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시스템의 허점을 꿰뚫었다.
그때였다. 보관함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갑자기 강렬해지며, 홀 중앙에 드리워져 있던 일행의 그림자를 향해 마치 거대한 흡입구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림자들이 흐느적거리며 보관함 방향으로 길게 늘어붙는 모습은 마치 미지의 심연으로 끌려가는 듯했다.
"기록까지 가져가려 해!"
이네스가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재빠르게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그림자들이 마치 칼로 잘린 듯 정확하게 끊어졌다. 그림자의 끝부분만 간신히 보관함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고, 나머지 본체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일행은 잠시 숨을 고르며 시간을 벌었다.
베라는 이네스의 도움으로 얻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대리인이 되겠다는 분노 대신, 아이들의 실제 경로를 떠올렸다.
"이 아이들의 물건은 선별선에 의해 옮겨졌습니다. 처음부터 '의식 재료'로 분류되었고, 제물함에 보관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값 없음' 딱지가 붙었고, 다시 검은 천막으로 이동했죠. 성별식에 사용되기 위해!"
그녀의 목소리는 격정적이었으나, 내용은 정확하고 냉철했다. 시스템은 베라의 증언에 반응했다. 허공의 서식지 상단에 본인 경로 확인 중이라는 새로운 문구가 깜빡였다.
피핀은 작은 관 모양 보관함 안의 빈 수취 도장으로 고개를 숙였다. 푸른빛이 사라진 도장 안쪽에서 희미한 냄새가 올라왔다. 오래된 종이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한 검은 우산 기름 냄새와, 어딘가 익숙한 빵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기억의 조각처럼, 피핀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는 그 냄새를 쫓아 시선을 돌렸다.
홀의 가장자리, 거대한 벽면 한쪽이 스르륵 열리며 새로운 통로를 드러냈다. 통로 너머에는 어둠 속에 잠긴 공간이 있었다. 그곳으로 이어지는 문 위에는 매끈한 재질의 문패가 걸려 있었다. 문패에는 붓글씨처럼 유려한 글씨체가 새겨져 있었다.
대리 수취자 대기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조금 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본인 부재 시 선의의 대리인 입장 가능
136화. 선의의 대리인 문패
본인 부재 시 선의의 대리인 입장 가능.
문패에 새겨진 그 글귀가 섬뜩한 빛을 발했다. 금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듯한 미묘한 광채가 차가운 금속성 울림과 함께 공중에 가늘게 퍼졌다. 그 빛에 이끌린 듯, 로웬의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검은 우산 손잡이들이 일제히 기울어졌다. 날개 없는 박쥐 떼처럼 사방에서 몰려든 그것들은 차가운 금속의 비릿함과 낡은 나무의 끈적한 기운을 풍기며 기분 나쁜 침묵 속에서 다가왔다. 그 이질적인 존재감에 비하면 기묘하게도 위협적이지 않은, 맹목적으로 따르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저 기울어질 뿐이었다. 마치, 그들이 그 문패의 빛에 반응하여 정해진 규칙에 복종하듯.
이내, 닫혀 있던 문이 스스로 열리려 했다. 육중한 나무 문틈 사이로 묵직하고 서늘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텅 빈 공간의 냉기가 깃들어 있었다. 문패의 '선의'라는 단어가 마치 자동 개폐 장치의 트리거라도 되는 양, 어떤 명령 체계에 의해 작동하는 모양새였다. 문이 서서히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대기실 문을 임의로 개방하지 마십시오." 로웬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다. 감정 없는 기계음 같았지만, 그 단호함은 어떤 무형의 권능보다 강력하게 작용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선의는 권한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기울어졌던 우산 손잡이들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뒤틀린 나무 가지와 검게 녹슨 금속이 뒤섞인 것들이 수취 도장 자리, 그 비어있는 홈으로 줄지어 이동했다. 텅 빈 공간을 채우려는 듯, 혹은 그곳에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듯, 질서정연하면서도 징그럽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거미 다리들이 한 점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들은 주저함 없이 그 빈 도장 자리로 향했다.
"본인 부재 확인, 권한 증명, 수취인 확인. 세 가지 조건이 모두 부재합니다." 로웬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우산 손잡이들을 훑었지만,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어떤 형태의 대리 수취도 반려됩니다." 선의라는 감정적 호소는 그의 이성적이고 실무적인 장벽을 뚫고 지나가지 못했다. 그것은 그에게 그저 무의미한 단어일 뿐이었다.
그 순간, 우산 손잡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명백히 봉투와 모르그가 들고 있는 장부를 향했다. 얇은 천으로 된 서명 봉투와 닳아 빠진 가죽으로 제본된 장부를 낚아채려는 듯, 재빠르게 뻗어 나왔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발톱처럼 위협적이었고, 동시에 증거를 지우려는 듯한 교활함이 엿보였다.
"함부로 만지지 마라." 이네스의 낮은 경고음이 공기를 갈랐다. 그녀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고, 허리춤에 매달린 칼집이 움직였다. 섬광처럼 번뜩인 것은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었다. 번쩍이는 칼등이 우산 손잡이들을 정확히 쳐냈다. '챙!' 하는 금속성 소리가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고, 손잡이들은 마치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뒤로 밀려났다. 그들은 무언가를 움켜쥐려 했으나, 이네스의 칼등이 그보다 먼저였다. 그녀는 증거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칼날을 사용하지 않는 절제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의도는 증거의 탈취, 즉 소멸이었다. 이네스는 그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동시에 모르그가 움직였다. 그가 들고 있던 장부는 가히 난장판이었다. 선의, 대리, 수취, 사망 처리라는 각기 다른 성격의 항목들이 뒤죽박죽 한 장부에 뒤섞여 있었다. 마치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이질적인 정보들을 억지로 우겨넣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듯 보였다. 모르그의 손이 능숙하게 그 위조된 양식들을 갈라냈다. 그는 각각의 항목들을 마치 생물학 표본을 해부하듯 정교하게 분리하며, 그 안에 숨겨진 논리적 오류와 조작의 흔적을 드러냈다.
"아이들의 물건은… 아이들이 직접 찾아야 해요. 그게 먼저입니다." 베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결심은 단단했다. 아이들을 대신하고 싶은 깊은 연민과 따뜻한 마음이 그녀를 이끌었지만, 동시에 아이들 본연의 운명과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증언했다. 그녀의 내면에서 두 가지 강렬한 감정이 충돌하고 있었다.
피핀은 여전히 우산 손잡이들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바싹 마른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이상하다. 아무리 맡아봐도… 다 똑같은 기름 냄새밖에 안 나. 개별적인 냄새가 없어." 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수많은 우산 손잡이들이 제각기 다른 '대리인'을 상징한다면, 각기 다른 존재의 흔적, 즉 다른 냄새가 나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의 거대한 기름 통에서 갓 꺼낸 것처럼, 역겹도록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개별적인 존재가 아님을, 오히려 어떤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로웬은 고개를 들어 문패를 다시 보았다. 열리려 했던 문은 다시 닫히는 듯했으나, 그 문패의 빛은 아까보다 더욱 강렬하고 집요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새로운 글귀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떠올랐다.
선의 배급실.
그 아래, 섬뜩하도록 간결한 한 줄이 더.
대리인 감정 공급: 미열·연민·죄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