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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52화 합본. 미완료 접수인의 첫 배달 기록에서 누락 동행자의 미회수 배달물까지 일러스트

250-252화 합본. 미완료 접수인의 첫 배달 기록에서 누락 동행자의 미회수 배달물까지

250화. 미완료 접수인의 첫 배달 기록

창구 바닥에 찍힌 ‘원 접수인: 미완료 처리됨’이라는 문구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붉은 도장의 흔적은 딱딱하게 굳는 대신, 바닥의 미세한 틈을 타고 검게 번져나갔다. 그 그림자 같은 얼룩의 중심에서 묵직한 가죽 장부 한 권이 마치 늪에서 솟아오르듯 천천히 떠올랐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해진 가죽 표지에는 금박이 다 벗겨진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첫 배달 기록]

장부가 스스로 페이지를 넘겼다. 파르르 떨리는 종이 소리가 고요한 골목 안을 채웠다. 로웬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창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묘한 인력은 그의 발등을 바닥에 붙들어 매었다. 마침내 멈춰 선 페이지에는 단 하나의 기록만이 적혀 있었다.

발송인과 경유지, 그리고 수취인. 모든 칸이 기입되어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원 접수인’의 성명란만은 누군가 일부러 지운 듯 시꺼먼 먹칠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로웬의 시선을 강탈한 것은 그 아래에 위치한 수취 확인 칸이었다.

그곳은 글자를 쓰는 칸이 아니었다. 사람의 손등 모양으로 깊게 파인 홈. 그 굴곡과 형태는 로웬의 오른손등에 새겨진 기묘한 표식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기록의 귀속인가.”

로웬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검은 창구에서 뻗어 나온 서늘한 기운이 로웬의 손목을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장부의 홈에 손을 끼워 맞추라는, 강압적인 권고였다. 이름 없는 접수인의 공백을 메우고, 이 미완료된 기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압박이 공기를 짓눌렀다.

그때, 옆에서 기록을 살피던 이네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제지했다.

“잠깐만요, 로웬. 이 기록, 무언가 이상해요.”

그녀의 손가락이 장부의 각 행을 가리켰다.

“발송인의 필체는 날카롭고 급해요. 하지만 경유지를 기록한 필체는 지나치게 정갈하고 느긋하죠. 결정적으로 수취인 칸의 필체는 이 둘 중 누구와도 닮지 않았어요. 한 명의 접수인이 관리한 기록이라면 있을 수 없는 불일치예요.”

이네스의 지적대로였다. 기록의 연속성이 끊겨 있었다. 이는 배달의 과정에서 누군가 강제로 개입했거나,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기록이 오염되었음을 시사했다.

피핀 역시 귀를 쫑긋 세우며 창구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아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목소리가 들려요.... 두 개예요. 하나는 ‘첫 번째는 분명히 맡겼다’고 화를 내고 있는데, 다른 하나는 ‘두 번째는 결코 받지 못했다’고 울고 있어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로웬 형.”

상충하는 목소리. 그것은 장부 속에 갇힌 배달의 진실이 하나가 아님을 뜻했다. 창구는 로웬의 손을 빌려 이 모순을 강제로 봉인하려 들었다. 로웬이 이 장부에 낙인을 찍는 순간, 뒤섞인 거짓과 진실은 모두 그의 책임으로 귀속될 터였다.

그 순간, 창구 밑바닥에서 뻗어 나온 검은 그림자가 로웬의 어깨에 메어 있던 가방을 향해 촉수처럼 뻗어 나갔다. 가방 속,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 칸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기록의 공백이 로웬의 소지품 속에 존재하는 공백을 잠식하려던 찰나, 베라가 차가운 금속음을 내며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함부로 손대지 마라. 이건 이 남자의 소유지, 이 창구의 부속물이 아니다.”

베라의 단호한 일갈과 함께 서늘한 기세가 그림자를 쳐냈다. 로웬은 그 틈을 타 끌려가던 손목을 뒤로 빼며 장부를 노려보았다. 창구는 여전히 ‘임시 대리’라는 명목하에 그에게 배달의 완료를 종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웬은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이 상황을 운명적인 계시나 피할 수 없는 저주가 아닌, 철저히 ‘실무적인 오류’로 규정했다.

“접수인 부재로 인한 임시 대리 권한을 행사하겠다.”

로웬의 목소리가 사무적으로 가라앉았다.

“본 기록은 발송인과 수취인의 정보가 불분명하며, 필체의 불일치로 인해 기록의 무결성이 훼손되었다. 또한 경유지에서의 수취 확인 절차가 누락된 정황이 발견됨에 따라, 현시점에서의 기록 귀속을 거부한다.”

창구의 진동이 거세졌다. 마치 규정 밖의 답변을 들은 기계처럼 항의하는 듯했다. 로웬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해당 건은 ‘재검토 보류’ 처리한다. 원 접수인의 신원이 확인되거나, 기록의 불일치가 해소될 때까지 이 장부의 소유권은 유예된다.”

로웬이 선언함과 동시에, 그의 손등에 닿으려던 장부의 압박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억지로 손을 끌어당기던 인력이 풀리고, 검게 번졌던 바닥의 잉크가 다시 장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창구는 만족스럽지 못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리를 냈지만, 로웬이 제시한 절차상의 정당성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장부는 서서히 닫히며 다시 바닥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완전히 닫히기 직전, 장부의 뒷면이 로웬의 시야에 스치듯 보였다. 낡은 종이 위에 새로운 잉크가 번지며 한 줄의 문장을 새겨 넣고 있었다.

[경유지: 잿불길 이전]

로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잿불길. 그것은 그들이 향해야 할 목적지이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과거의 단편이었다. 장부는 이미 그곳을 ‘지나온 곳’ 혹은 ‘지나쳐야 할 곳’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장부가 사라진 바닥에는 차가운 정적만이 남았다. 문 없는 골목은 다시 벽으로 막혔고, 창구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러나 로웬은 알고 있었다. 방금의 기록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단지 다음 확인 절차를 기다리며 잠복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제 손등의 표식을 지그시 눌러보았다. 미완료된 첫 기록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251화. 잿불길 이전의 경유지

창구 너머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로웬이 밀어낸 장부의 마지막 장에는 ‘미완료 처리됨’이라는 붉은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서류상의 결락을 근거로 효력 발생을 억류한 직후, 공간 자체가 거대한 숨을 들이켜는 듯한 진동이 일었다.

가장 먼저 변화가 나타난 곳은 창구 뒤편의 거친 석벽이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던 벽면 위로 검은 먹물이 스며 나오듯 글자들이 번져 나갔다.

경유지: 잿불길 이전

문장은 단 한 줄이었으나, 그 아래로 이름 모를 지명들이 나열되어야 할 검은 칸들이 바둑판처럼 배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지도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실제 길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벽면의 그림자는 일렁거리며 깊은 구덩이처럼 보일 뿐,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실체적인 통로를 내어주지 않았다.

“길이 아니야.”

이네스가 창구 벽면에 떠오른 글자들을 유심히 살피며 낮게 읊조렸다. 그녀의 시선은 ‘이전’이라는 단어에 머물러 있었다.

“로웬, 이 ‘이전’이라는 표기가 시간상의 선후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구역을 지칭하는 경유지 코드인지 확정할 수 없어요. 만약 시간이라면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과거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코드라면 이 창구가 인식하는 논리적 공백을 뜻하는 것이겠죠.”

이네스의 지적대로였다. ‘잿불길’이라는 목적지 앞에 붙은 수식어는 명확한 위치를 가리키는 대신, 오히려 앞선 절차가 생략되었음을 알리는 경고처럼 보였다.

그때, 피핀이 귀를 쫑긋 세우며 장부 쪽으로 몸을 숙였다.

“……소리가 나요. 들려요?”

피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장부의 접수 번호란이었다. 잉크로 적힌 숫자들이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더니, 일정한 박자에 맞춰 뒤로 세어지기 시작했다.

탁, 탁, 탁.

낡은 톱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기괴한 소음이 창구 안을 메웠다. 접수 번호가 낮아질수록 창구 벽의 검은 칸들은 더욱 짙게 타올랐다. 그것은 누군가 강제로 기록을 소거하며 시간을 되감으려는 듯한 불길한 움직임이었다.

동시에 로웬의 옆에 서 있던 베라가 전신을 꼿꼿이 세웠다. 그녀의 시선은 로웬의 어깨에 메어 있던 가방 안쪽으로 향했다.

“로웬, 움직이지 마세요.”

베라의 손이 신속하게 로웬의 가방 끈을 붙잡았다. 가방 안쪽의 천이 마치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듯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벽면에 나타난 검은 칸들이 현실의 물질을 매개로 삼아 억지로 통로를 가설하려는 시도였다. 가방 안의 공간이 뒤틀리며 길의 형상을 갖추려 하자, 베라는 가방 안감을 강하게 잡아당겨 그 뒤틀림을 상쇄시켰다.

“공간이 물리적인 통로를 요구하고 있어요. 하지만 선행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로웬의 소지품을 제물로 삼으려는 모양입니다.”

베라의 제지가 없었더라면 로웬의 가방은 그대로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알 수 없는 ‘이전’의 공간 어딘가로 흩어졌을 터였다.

그 혼란의 와중에 창구 바닥에서 서늘한 냉기가 솟구쳤다. 창구 데스크 한복판에 새로운 칸 하나가 생성되었다.

선행 경유 확인

그 칸은 마치 누군가의 손바닥을 기다리는 것처럼 움푹하게 패어 있었다. 동시에 로웬의 왼쪽 손등에 새겨진 표식이 화끈거리는 열기를 내뿜었다. 창구는 로웬의 신분을 증명하는 그 표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손을 올리기만 하면 이 기괴한 진동과 소음이 멈출 것 같은 유혹이 일었다.

로웬은 뜨겁게 달아오르는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손을 뻗는 대신, 다시 한번 장부를 펼쳐 들었다.

“확인할 수 없다.”

로웬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단호했다.

“경유지 코드 미지정. 도착 예정 시각 누락. 수취 확인자 신원 불분명. 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비어 있는 상태에서 선행 경유를 확정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

그는 계시나 직관에 의존하지 않았다. 오직 눈앞에 놓인 행정적 미완결성에 집중했다. 기록되지 않은 길은 존재하지 않는 길이며, 확인되지 않은 수취인은 가상의 존재일 뿐이다.

로웬은 창구에 돋아난 확인 칸을 무시한 채, 깃펜을 들어 장부의 빈 여백에 휘갈겨 썼다.

[경유지 정보 부재에 따른 확인 보류.]

그가 마지막 점을 찍는 순간, 벽면을 메웠던 검은 칸들의 진동이 멈췄다. 억지로 길을 만들려던 공간의 뒤틀림이 서서히 잦아들었고, 베라가 붙잡고 있던 가방의 천도 다시 원래의 질감으로 돌아왔다.

피핀이 듣고 있던 숫자의 역행 소리도 멈췄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창구 벽면에 떠올랐던 ‘잿불길 이전’이라는 문구는 사라지지 않은 채, 그 아래에 새로운 문장을 띄웠다.

마치 처리되지 못한 오류가 마지막 비명을 지르는 듯한 형상이었다.

텅 빈 경유지 칸 아래, 잉크가 번진 듯한 흐릿한 글자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동행자 1명 누락

그 문구가 나타나는 순간, 로웬은 등 뒤에서 서늘한 시선을 느꼈다. 분명 이곳에는 그와 이네스, 피핀, 베라뿐이었다. 그러나 장부는 명확하게 지목하고 있었다. 이 행렬 속에 마땅히 있어야 할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가 사라진 것인가, 혹은 누구를 잊고 있는 것인가.

대답 없는 문구만이 창구의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일렁였다. 로웬은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차가운 숨을 내뱉으며, 보류 도장이 찍힌 장부를 덮었다. 아직 경유지는 열리지 않았고, 잿불길로 향하는 여정은 기묘한 결락을 품은 채 멈춰 섰다.

252화. 누락 동행자의 미회수 배달물

창구 너머에서 밀려오는 서늘한 기운이 장부의 가장자리를 검게 물들였다. ‘경유지: 잿불길 이전’이라는 문구가 선명해질수록, 로웬의 눈앞에 놓인 종이 위에는 존재하지 않던 칸들이 기괴한 형태로 돋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흉터가 터져 나오듯, 장부의 여백을 찢고 나타난 글자는 잉크가 아니라 마른 핏자국처럼 보였다.

[동행자 1명 누락]

그 문구가 나타남과 동시에 로웬의 발치에서부터 시작된 검은 그림자가 촉수처럼 뻗어 나갔다. 그림자는 바닥을 훑으며 뒤에 서 있던 이네스와 피핀, 그리고 베라의 발밑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장부 속 빈칸을 채우기 위해 현실의 존재를 끌어다 쓰려는 집요한 날인(捺印)의 시도였다.

이네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의 발치에 닿으려던 검은 칸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로웬, 조심해. 이건 단순한 기록 확인이 아니야.”

이네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날카로웠다. 그녀는 바닥에 찍히려는 검은 낙인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현재의 우리를 과거의 구멍 난 칸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고 있어. 지금 우리를 그 ‘누락된 동행자’의 대역으로 확정 지으려는 속셈이야. 절차상의 명백한 오류라고.”

그녀의 말대로였다. 장부는 첫 배달 당시의 결락을 메우기 위해 현재의 일행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이들의 존재가 ‘동행자’로 낙인찍힌다면, 이네스와 피핀, 베라는 현재의 동료가 아니라 ‘과거에 사라졌어야 할 누락자’의 인과에 묶여버릴 터였다.

그때, 피핀이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소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상해요. 발소리가 안 들려요.”

“뭐라고?”

“누락된 칸에서 들려야 할 소리가……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에요. 질질 끌리는 소리예요. 아주 길고 무거운 끈이 바닥을 긁는 것 같은 소리요.”

피핀의 시선은 허공의 한 점, 정확히는 로웬의 등 뒤를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피핀의 귀에는 이미 ‘누락된 동행자’의 흔적이 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존재의 걸음걸이가 아니라, 오직 배달물을 묶기 위해 존재하는 접수 끈이 바닥을 훑으며 내는 서늘한 마찰음이었다.

베라가 로웬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녀의 시선은 로웬의 어깨에 걸린 가방끈에 고정되어 있었다. 로웬은 어깨에 묵직한 압박감을 느꼈다. 평소 하나였던 가방끈이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마치 두 갈래로 찢어지려는 듯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로웬, 움직이지 마세요.”

베라가 신속하게 손을 뻗어 로웬의 가방끈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강인한 손아귀가 갈라지려던 가죽 끈을 억지로 하나로 뭉쳐 눌렀다. 로웬의 가방은 첫 배달 당시의 무게와 현재의 무게가 충돌하며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누락된 동행자가 짊어졌어야 할 ‘무엇’이 로웬의 어깨 위로 전이되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창구 안쪽의 어둠 속에서 무감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의 음성이라기보다, 오래된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가까웠다.

[동행자 확인 대리 서명을 요구합니다. 배달주, 로웬.]

탁자 위로 낡은 펜 한 자루가 툭 떨어졌다. 펜촉에는 진득한 검은 액체가 맺혀 있었다. 장부는 로웬에게 현재의 동료들을 누락자의 자리에 대입하는 서명을 종용하고 있었다. 그가 서명하는 순간, 이네스와 피핀, 베라 중 누군가는 ‘과거의 누락자’가 되어 이 장부 속으로 영원히 소멸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로웬은 펜을 잡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장부의 비어 있는 칸들을 하나하나 짚어 내려갔다.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서기(書記)의 시선이었다.

“거절한다.”

로웬의 단호한 목소리에 창구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 문서는 대리 서명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동행 확인 칸은 있으나, 해당 인원의 ‘동행 시작 시각’이 기재되지 않았고, 최초 승인자의 직인이 누락되어 있다. 결정적으로, 이탈 기록이 비어 있군.”

로웬은 손가락으로 장부의 여백을 가리켰다.

“누락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탈 사유가 기록되지 않은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동행자가 사라진 것인지, 혹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리 확인 서명을 요구하는 것은 행정적 월권이다.”

로웬의 지적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장부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절차의 맹점을 역으로 파고든 것이다. 장부는 로웬의 논리적인 거부 앞에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검은 잉크들이 갈 길을 잃고 종이 위에서 어지럽게 흩어졌다.

[……절차 보류.]

창구의 목소리가 불만스러운 듯 잦아들었다. 이네스와 피핀의 발밑을 조여오던 검은 낙인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베라가 붙잡고 있던 가방끈의 진동도 멈췄다. 하지만 긴장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로웬은 자신이 방금 막아낸 것이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 단지 시간을 벌었을 뿐임을 직감했다.

로웬이 장부를 덮으려던 찰나, 다시 한번 글자들이 소리 없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로웬의 눈앞에만 보이는 선명한 문장이었다.

[누락 동행자의 배달물: 미회수]

그 글자가 새겨진 순간, 로웬은 자신의 가방 안쪽 깊은 곳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질적인 무게감을 느꼈다. 그것은 누군가 두고 간 물건이자, 동시에 로웬이 언젠가 반드시 되찾아줘야 할 빚이었다.

누락된 이는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그 물건 자체였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로웬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굳게 닫힌 창구를 뒤로하고 일행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잿불길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뒤에는 회수되지 못한 과거의 잔재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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