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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255화. 최초 심부름꾼에게 반송 / 출생 전 발신 시각 / 시간 보관료 미납 기록 일러스트

253-255화. 최초 심부름꾼에게 반송 / 출생 전 발신 시각 / 시간 보관료 미납 기록

253화. 최초 심부름꾼에게 반송

잿불길로 향하는 경유지의 공기는 무겁고 건조했다. 발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씨가 타오르는지, 장화 밑창을 타고 올라오는 열기가 종아리를 바싹 말리고 있었다. 일행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석조 창구였다. 창구 위로 차갑게 부유하던 문구가 형태를 바꾸며 붉은 인을 새겼다.

[누락 동행자의 배달물: 미회수]

그 문구가 허공에서 흩어짐과 동시에 접수 선반 위에 번호표가 돋아났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음에도 선반의 목재가 뒤틀리며 새로운 홈을 팠고, 그 너머 창구 뒤편의 깊은 어둠 속에서 스르륵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밀려 나왔다.

그것은 회색 재를 짓이겨 만든 것 같은 눅눅하고도 메마른 봉투였다. 봉투는 선반 위에 놓이자마자 기이한 빛을 내뿜었다. 이네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창구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녀의 시선은 봉투 표면에 적힌 문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순서가 틀렸어.”

이네스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붉은색 도장이 찍혀 있었다. 수취인 확인 칸은 아직 백지로 남아 있는데, 그 아래의 ‘회수 확인’ 칸에 먼저 진득한 인장이 박혀 있었다.

“받는 사람이 누군지도 확인하기 전에 돌려받았다는 도장부터 찍으라고? 이건 배달이 아니라 강탈이잖아.”

그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창구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대신 봉투가 스스로를 비틀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피핀이 귀를 쫑긋거리며 봉투에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무언가 속삭임을 기대하던 피핀의 눈동자가 이내 기이한 표정으로 흔들렸다.

“목소리가 아니에요.”

“뭐라고?”

“안에 든 게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꼭 말라비틀어진 빵껍질이 바닥을 굴러가는 것 같은 소리가 나요. 다 타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요.”

피핀의 말에 로웬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 순간, 선반 위의 봉투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봉투의 끝부분이 끈적하게 늘어나더니 로웬의 오른손을 향해 돌진했다. 그것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로웬의 손도장을 강제로 찍어내어 수취와 회수를 동시에 확정 지으려는 기괴한 시도였다.

챙!

무거운 금속음과 함께 베라의 검집이 로웬의 손등 앞을 가로막았다. 봉투의 끈적한 기운이 검집 표면에 닿자 치익 소리를 내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물러서라.”

베라의 짧은 경고에 로웬은 뒤로 물러나며 봉투를 응시했다. 창구의 석판에는 이제 새로운 문구가 새겨지고 있었다.

[대리 회수 확인 요구]

그 문구 아래로 로웬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바로 옆, 한동안 비어있던 ‘누락 동행자’의 칸이 로웬의 이름 아래에 사슬처럼 엮였다. 누락된 이의 짐을 로웬이 대리로 회수했다는 기록을 남기려는 시스템의 압박이었다. 만약 여기에 손을 대는 순간, 이름 모를 동행자의 실책과 그가 져야 했던 모든 무게가 로웬에게 전가될 터였다.

로웬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봉투를 살폈다. 그는 신성한 계시나 모호한 감각에 기대지 않았다. 대신 평생을 바쳐 익혀온 배달의 규칙과 절차를 하나하나 대조하기 시작했다.

“거부한다.”

로웬의 목소리가 창구 안쪽의 어둠을 때렸다.

“첫째, 봉인 매듭의 수가 일곱이다. 경유지를 통과하는 모든 정식 수하물은 여섯 매듭으로 묶여야 한다. 둘째, 수취 확인 칸의 방향이 심부름꾼의 인장이 아닌 수령인의 방향으로 뒤집혀 있다. 절차 위반이다.”

그의 손가락이 공중에 뜬 문구들을 가리켰다.

“마지막으로, 수취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회수 확인은 존재할 수 없다. 이 배달물은 배달된 적도 없는데 돌아가려 하고 있다. 따라서 규정에 의거하여 ‘미회수 보류’ 절차를 유지한다.”

로웬의 논리 정연한 거절이 떨어지자, 창구 너머에서 기괴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며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였다. 봉투를 감싸고 있던 재의 기운이 흩어지며, 창구 위에 새겨졌던 로웬의 이름이 흐릿하게 지워졌다.

동시에 누락 동행자의 빈칸 위로 새로운 잉크가 번졌다. 그것은 로웬 일행 중 누구도 아닌, 아주 오래전 이 길을 처음 닦았던 자를 향한 선언이었다.

로웬의 눈앞에 선명한 문구가 떠올랐다.

[최초 심부름꾼에게 반송]

그 문구와 함께 선반 위의 재 봉투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바스러져 먼지가 되었다. 창구 뒤편의 어둠이 걷히며, 잿불길로 향하는 묵직한 돌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누락된 동행자의 흔적은 이제 그들이 쫓아야 할 실마리가 아닌, 누군가에게 되돌아간 저주가 되어 길의 너머로 사라졌다.

254화. 출생 전 발신 시각

봉투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누런 지면 위로 검은 잉크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겉면에 적힌 글자가 아니라, 종이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살을 뚫고 나오듯 번져가는 문장이었다.

‘최초 심부름꾼에게 반송.’

로웬의 시선이 그 문구에 고정되었다. 단어들은 정갈한 서체로 인쇄된 듯 보였으나, 기묘하게도 그 끝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종이 반대편에서 꾹꾹 눌러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창구 너머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보이지 않는 행정의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창구 직원은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도장을 집어 들었다. 그 손길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직원이 펼쳐 놓은 서류의 발신자 칸과 수취인 칸에는 이미 로웬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도장은 그 두 칸을 동시에 짓누르려 허공을 가로질렀다.

“잠깐만요.”

이네스가 날카롭게 제지했다. 그녀의 손이 로웬의 어깨를 짚으며 창구 앞 서류를 가리켰다.

“절차적 모순입니다. 발신자와 수취인이 동일 인물일 수는 있지만, 이 서류는 ‘반송’ 절차를 밟고 있지 않습니까? 반송은 수취인이 수령을 거부하거나 주소지가 불분명할 때 발생하는 것인데, 로웬 씨를 발신자와 수취인 양쪽에 동시에 등록한다는 건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아요. 발신 주체와 반송 대상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네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창구 직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니, 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공허했다. 직원은 그저 정해진 궤적을 그리며 도장을 내리찍으려 할 뿐이었다.

그때, 피핀이 귀를 쫑긋 세우며 봉투 쪽으로 몸을 숙였다. 피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소리가 들려요.”

“무슨 소리 말이야?”

베라가 물었지만, 피핀은 대답 대신 봉투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차마 닿지는 못한 채 허공에서 손가락바닥을 떨었다.

“안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아주 작게, 톡, 톡 하고요. 그리고…… 발자국 소리가 나요. 그런데 이상해요. 앞으로 걷는 게 아니라, 자꾸만 반대로 걷는 소리에요. 멀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피핀의 말대로였다. 로웬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봉투 내부에서 진동하는 미세한 파동은 공간적인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인과적인 뒤틀림에 가까웠다.

베라는 창구 위에 놓인 반송장을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그녀의 예리한 눈이 서류의 하단을 훑었다.

“이것 봐. 반송 사유 칸이 완전히 비어 있어. 그런데 반송 완료 도장은 이미 찍혀 있잖아? 인과관계가 완전히 뒤집혔어. 이유도 없이 결과가 먼저 확정된 거야.”

베라의 말대로였다. 서류에는 사유를 적는 칸이 깨끗한 백색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 위에는 붉은색 ‘반송 완료’ 낙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선후 관계가 뒤섞인 행정 처리는 마치 이 공간 자체가 논리적인 붕괴를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로웬은 창구 직원의 손목을 강하게 쥐었다. 차가운 금속을 만지는 것 같은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직원은 여전히 로웬의 이름을 발신자와 수취인 칸에 동시에 박아넣으려 힘을 주고 있었다.

“보류하십시오.”

로웬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그는 계시를 받은 성자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저 이 불합리한 업무를 처리하는 감시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사태를 분석했다.

“발송 시각, 반송 사유, 그리고 수취 확인. 이 세 가지 요소의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사유가 명시되지 않은 반송은 무효이며, 수취 확인이 발송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이 서류는 절차상 명백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로웬은 직원의 손에서 도장을 빼앗아 책상 위로 던졌다. 둔탁한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는 다시 한번 봉투와 서류를 번갈아 보았다. 직전까지 로웬을 발신자이자 수취인으로 확정 지으려던 압박감이 서서히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논리적인 허점을 찌르자 기계적인 절차가 잠시 멈춰 선 것이다.

로웬은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아직 작성되지 않은 서류의 윗부분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작은 글자들이 서서히 형체를 갖춰가고 있었다.

가장 윗부분, ‘발신 시각’이라고 적힌 항목 옆에 숫자들이 나열되었다.

로웬은 그 숫자를 읽어 내려가다 멈춰 섰다.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발신 시각: 제국력 742년 5월 14일 04시 12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742년.

그것은 로웬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훨씬 전이었다. 그의 부모가 서로를 알기도 전이며, 그가 심부름꾼으로서 첫발을 내딛기 수십 년 전의 시간이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발신된 우편물이, 지금 자신을 발신자이자 수취인으로 지목하며 반송을 요구하고 있었다.

“……로웬 씨? 왜 그래요?”

옆에서 들려오는 이네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로웬은 봉투 안에서 들려온다는, 반대로 걷는 발자국 소리를 떠올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 소리가 이제는 자신의 귓가에서 선명하게 울리고 있었다.

최초의 심부름꾼이 누구인지, 그리고 이 배달의 시작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거대한 의문이 시커먼 심연처럼 발밑에 입을 벌렸다. 로웬은 차마 그 안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자신의 이름이 적힌 서류를 꽉 쥐었다.

255화. 시간 보관료 미납 기록

봉투의 봉인 아래로 잿빛 글자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종이가 타들어 가며 남긴 흔적처럼, 가느다란 연기가 글자의 형태를 갖추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로웬은 그 문구를 응시했다.

[발신 시각: 로웬 출생 전]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그것은 단순한 시간의 기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선언에 가까웠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점에 이미 자신을 수취인 혹은 발신자로 지정한 우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가 쌓아온 배달원으로서의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그 순간, 허공에 정지해 있던 창구의 인터페이스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투명한 유리판 같았던 표면 위로 수많은 수식과 행정 기호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창구는 마치 퍼즐의 조각을 강제로 맞추려는 것처럼, 과거의 발신 시각과 로웬의 손등에 새겨진 붉은 표식을 집요하게 한 줄로 정렬하려 들었다.

손등이 화끈거렸다. 보이지 않는 선이 과거의 시간대와 현재의 로웬을 관통하며 그를 역사의 부속품으로 고정하려는 감각이었다.

“잠깐, 이건 규정 위반이야.”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네스가 차갑게 끼어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창구가 출력하는 데이터의 모순점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발신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접수된 물품이라면, 이건 단순한 예약 배달이 아니야. 대리 발신인이 누구인지, 혹은 사후 등록 절차를 거친 것인지 명확한 구분이 필요해. 이대로 수취를 강요하는 건 행정적 폭력이야.”

이네스의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그 안에는 로웬을 이 기괴한 일치화 작업에서 떼어놓으려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그때, 피핀이 고개를 숙인 채 낮게 읊조렸다. 소년의 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소리가 들려요…….”

“피핀?”

“장부 안에서요. 보통은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이건 달라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에요. 그냥…… 빈 운동화 끈이 바닥을 질질 끄는 소리만 나요. 아무도 없는데, 신발만 걷고 있어요.”

피핀의 말은 장부 속에 기록된 ‘발신자’의 실체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증명하는 듯했다. 실체가 없는 기록, 존재하지 않는 발걸음. 그것이 로웬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봉투가 갑자기 로웬의 가방 쪽으로 강하게 끌려갔다. 가방 안쪽, 로웬조차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낡고 깊은 안주머니가 마치 입을 벌리듯 스르르 열리려 했다. 그곳은 비어 있는 공간이었지만, 봉투는 마치 그 자리가 원래 자신의 안식처였다는 듯 필사적으로 파고들려 했다.

“안 돼.”

베라가 전광석화처럼 손을 뻗어 봉투의 모서리를 낚아챘다. 그녀의 강한 완력이 봉투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저지했다. 봉투는 베라의 손아귀 안에서 마치 살아있는 짐승처럼 파닥거렸으나,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로웬의 가방 입구를 닫아버렸다.

“네 가방을 함부로 열게 두지 마, 로웬. 이 안에 뭐가 들었든, 지금은 네 허락 없이는 한 뼘도 움직일 수 없어.”

베라의 제지에 창구가 다시 한번 요동쳤다. 이번에는 붉은색 경고등이 비문처럼 허공에 박혔다.

[경고: 시간 보관료 장기 미납 기록 확인.]

[누적된 보관료가 수취인의 담보 가치를 초과함. 즉시 수취 확인 후 정산 절차에 진입하십시오.]

창구의 목소리는 이제 기계적인 중립성마저 잃어버린 채, 채무를 독촉하는 사채업자처럼 날카롭게 긁히는 소리를 냈다. 보관료 미납이라는 명분은 로웬의 목을 죄는 가장 강력한 올가미였다. 시스템은 로웬이 이 우편물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돈’과 ‘절차’라는 이름으로 그를 수렁에 밀어 넣으려 하고 있었다.

로웬은 심호흡을 하며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았다. 그는 배달원이다. 기록의 무게에 짓눌리기보다는 기록의 허점을 찾아내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정산 절차라고?”

로웬이 낮게 읊조리며 창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수취 확인 버튼을 누르는 대신, 그는 관리자 권한의 임시 조회 모드를 활성화했다.

“이 보관료 산출 근거를 대라. 발신 가능 시각이 수취인의 출생 전이라면, 최초의 보관 의뢰인이 누구인지부터 증명해야 해. 원 접수자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수취인에게 전가될 수 없다. 이건 연대보증의 원칙에도 어긋나.”

창구의 텍스트가 거칠게 점멸했다. 로웬은 멈추지 않았다.

“또한, 보관료 산정의 시작점이 ‘발신 시각’인지, 아니면 수취인이 ‘배달원 자격을 획득한 시점’인지도 명시되지 않았어. 기록상의 오류가 해결될 때까지, 이 시간 보관 기록의 모든 절차를 임시 봉인한다.”

로웬의 논리적인 반박에 창구는 마치 과부하가 걸린 듯 멈춰 섰다. 시스템은 로웬의 손등에 새겨진 표식을 강제로 읽으려 했으나, 로웬이 제시한 ‘절차적 오류’라는 방벽에 부딪혀 공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기록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시스템의 규칙을 이용해 시간을 벌었다.

잠시 후, 요동치던 잿빛 글자들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하나의 새로운 문장을 띄웠다. 그것은 독촉장도, 과거의 기록도 아닌, 물품의 현재 위치를 알리는 좌표였다.

[임시 봉인 완료. 물품 상태: 계류 중.]

[보관 장소: 첫 배달지 지하]

로웬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그가 처음으로 배달 가방을 메고 발을 내디뎠던 그 장소, 모든 시작의 공간 아래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무언가가 잠들어 있었다.

지하. 그곳은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장부의 뒷장과도 같았다. 로웬은 베라가 붙잡고 있는 봉투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기록의 모순을 끝내기 위해서는, 그가 출발했던 그 밑바닥으로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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