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2-373화 합본. 반환되지 않은 젖은 손잡이에서 놓친 손의 접수 시간까지
372화. 반환되지 않은 젖은 손잡이
보증금 반환란: 젖은 이름이 아직 주인을 모름.
장부의 마지막 줄에서 번진 잉크는 도무지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습기가 가득 찬 Gate B의 공기는 종이의 섬유질 사이로 끈적하게 파고들어, 정갈하게 적혔어야 할 글자들을 축축하고 흉측하게 부풀렸다. 이네스는 깃펜을 쥔 손가락 끝에 하얗게 피가 안 통할 정도로 힘을 주었다. 잉크가 번진 자리는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젖은 손가락으로 문지른 것처럼 기괴한 윤곽을 그리며 외연을 넓혀 나갔다. ‘반환 보류’라는 네 글자 위로 이네스가 단호하게 취소선을 그었을 때, 기이한 현상이 장부 위를 덮쳤다.
가로지른 취소선은 잉크의 궤적을 지우거나 무효로 만드는 대신, 그 자체가 새로운 장부의 줄칸이 되어 아래로 길게 늘어졌다. 지우려 할수록 기록은 스스로를 복제하며 증식했고, 기록이 증식할수록 그 자리에 묶인 반환되지 않은 보증금의 무게는 실체적인 압박이 되어 일행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것은 단순한 금전적 가치가 아니었다. 누군가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 지불했으나 끝내 돌려받지 못한 시간, 혹은 존재의 일부가 장부라는 그릇에 담겨 썩어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다면, 그 빈자리는 반드시 다른 것이 채우게 됩니다. 그것이 이곳의 법칙이지요.”
베라가 낮고 서늘하게 읊조리며 이네스의 옆으로 다가왔다. 베라의 시선은 잉크가 번지는 장부가 아니라, 그들 앞에 거대한 침묵처럼 놓인 화물함의 손잡이에 머물러 있었다. 화물의 손잡이는 차가운 금속제였으나, 그 표면은 마치 방금 깊은 수렁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기분 나쁘게 축축했다. 맺힌 물방울은 천장에서 떨어진 낙수도, 단순한 결로 현상도 아니었다. 손잡이의 굴곡을 따라 선명하게 남은 다섯 손가락의 자국은, 과거의 누군가 그것을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압력을 남긴 주인은 주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반환되지 않은 보증금이 젖은 손잡이 위에 고여 있습니다. 이름 대신 남겨진 것은 무언가를 붙잡으려 했던 처절한 압력, 그리고 결국 놓쳐버린 찰나의 시간뿐입니다. 저 손잡이를 잡는 순간, 누군가의 실패한 인계가 이쪽의 책임으로 전이될 것입니다.”
베라의 경고는 타당했다. 젖은 손잡이 위에는 미세한 보풀들이 끈적한 수분과 엉겨 붙어 있었다. 그것은 이전 수취자가 끼고 있었을 장갑 섬유의 파편이었다. 금속의 거친 단면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한 섬유 가닥들은 수분을 머금어 검게 변해 있었고, 마치 끊어진 신경세포처럼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섬유질 하나하나에 깃든 것은 공포였다. 수취자가 손을 떼려 했을 때, 손잡이가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흔적이었다.
피핀이 화물함의 금속 외벽에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소년의 눈동자가 긴장으로 인해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한 먼지조차 가라앉을 듯한 정적 속에서, 피핀의 감각은 화물 내부의 기묘한 소동을 포착해 냈다.
“안쪽에서 소리가 나요. 겉은 이렇게 젖어 있는데, 안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조한 소리예요.”
피핀의 보고는 구체적이고도 기괴했다. 짐 안쪽 마른 긁힘이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바짝 말라버린 손톱이나 굳은 가죽 같은 무언가가 상자 내부의 거친 벽면을 신경질적으로 긁어내리는 소리였다. 소리는 고정된 위치에 머물지 않았다. 손잡이가 젖어 있는 지점의 바로 안쪽 벽면에서 시작된 그 긁힘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손잡이 너머의 바깥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내부의 존재는 밖을 열려 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누군가 손잡이를 잡아주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문 바로 너머에…… 무언가 더 있어요.”
피핀이 말을 멈췄다. 소년의 호흡이 주변의 습한 공기를 단숨에 들이마시듯 멎었다.
“문 안쪽 숨소리가 한 번 끊겼어요. 들이마시는 소리는 들렸는데, 내뱉는 소리가 없어요. 그것이 우리를…… 아니, 이쪽을 기다리고 있어요.”
로웬은 허리춤에 걸린 검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평소라면 단숨에 문을 베어 넘기거나 강제로 개방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 이 상황에서 철제 무기를 노출하거나 화물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하는 것은 성급한 수취 확인으로 간주될 위험이 컸다. 그것은 이 알 수 없는 부채를 온전히 떠안겠다는 서약이나 다름없었다. 로웬은 숙련된 움직임으로 칼집을 고정하던 칼집 끈의 잘린 끝을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가죽과 섬유가 섞인 그 끈은 이미 수많은 전장을 거치며 닳아 있었으나, 그 끝단은 날카로운 칼날에 잘려 나간 채 빳빳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로웬은 직접 손잡이를 잡는 대신, 칼집의 끝부분과 잘라낸 천 조각을 이용해 일종의 지렛대를 구성했다. 그는 화물의 무게 중심을 살짝 옮겨 내부의 반응을 살피려 시도했다. 하지만 손잡이에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닿지 않자, 화물은 마치 지면의 암반과 하나로 용접된 것처럼 요지부동이었다. 물리적인 무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관측자가 자신의 존재를 담보로 제공하지 않았기에 발생하는 거부 반응이었다.
“비접촉 증명을 유지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살점이 닿는 순간, 장부의 취소선은 기록자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될 겁니다.”
베라가 로웬의 신중한 움직임을 지원하며 덧붙였다. 그녀는 품 안에서 작은 수정 렌즈를 꺼내 손잡이 위의 장갑 섬유를 관찰했다. 비접촉 증명은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원인 모를 오염으로부터 일행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절차적 방벽이었다. 베라는 손가락 끝 하나 대지 않고 오직 시선만으로 화물의 표면에 새겨진 보이지 않는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다. 기록되지 않은 보증금의 정체는 결국 누군가의 상실된 신체 부위나 기억의 파편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네스는 장부의 기록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글자로 현상을 기술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잉크가 번질수록 과거의 유령들이 기록의 빈틈을 타고 기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반환 보류’라는 단어 옆에 숫자를 기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치나 수량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숫자가 아니었다. 젖은 손잡이와 로웬의 칼집 끝 사이의 미세한 거리, 피핀이 들은 마른 긁힘의 불규칙한 빈도, 그리고 문 안쪽의 숨소리가 멈춘 뒤 다시 시작되기까지 걸린 기나긴 침묵의 초 단위 기록이었다.
숫자가 장부의 빈 공간을 채워 나가자, 기이하게도 번지던 잉크의 확산이 멈추었다. 현상을 이름 붙이는 대신 측정하는 행위는, 화물함과 일행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그어주었다. 이네스의 손끝에서 탄생한 새로운 장부선은 취소선의 변칙적인 증식을 억제하며, 보증금이 반환되지 못한 이유를 논리적인 수치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유예였다. 화물 안쪽의 긁힘 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손잡이에서 흘러내린 습기는 이네스의 발치까지 스며들어 검은 얼룩을 남겼다.
로웬의 손등을 감싼 장갑의 미세 섬유들이 거칠게 일어났다. 화물 표면에 음각된 수치 기록들이 불길한 빛을 머금자, 장갑은 마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저항하듯 팽팽하게 수축하며 경고를 보냈다. 기록된 숫자들이 뒤틀리며 비정상적인 마력 밀도를 출력하는 모습에 이네스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습기를 머금은 검은 얼룩이 장갑의 섬유와 닿을 때마다 기분 나쁜 열기가 피어올랐고, 그 열기는 인근의 공기마저 기괴하게 왜곡시켰다.
동시에 피핀의 손가락 사이를 경쾌하게 오가던 동전의 박자가 뚝 끊겼다. 일정한 리듬으로 주변의 긴장을 달래던 금속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화물을 긁어대는 소름 끼치는 소음만이 남았다. 피핀은 멈춰버린 동전을 움켜쥐며 화물 궤짝의 떨림에 집중했다. 동전의 진동마저 억누르는 이질적인 파동이 감지되자, 베라는 차가운 감각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무기 수납함 쪽으로 몸을 틀었다.
로웬은 칼집 끈의 잘린 끝을 다시 추슬러 쥐었다. 직접 닿지 않고도 화물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지만, 화물은 여전히 침묵의 무게를 고수했다.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는 이제 단순한 호흡을 넘어, 무언가 간절하게 바깥의 온기를 갈구하는 흐느낌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젖은 손잡이에 남은 장갑 섬유는 마치 낚싯바늘처럼 다음 희생자의 피부를 기다리며 허공을 향해 미세하게 휘어졌다.
현장의 공기는 갈수록 무거워졌다. Gate B의 폐쇄된 공간 속에서, 반환되지 않은 보증금의 무게와 수취되지 않은 화물의 압박은 일행의 이성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네스는 장부의 마지막 장을 넘기지 못한 채, 방금 기입한 숫자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기록된 수치들은 하나같이 불완전한 균형을 가리키고 있었다.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고, 놓고 싶어도 이미 붙잡혀 있는 상태. 그것이 이 화물함이 처한 영원한 보류의 실체였다.
베라는 바닥에 고인 습기의 패턴을 분석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비접촉 증명 기록은 완벽하게 이행되고 있었으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화물을 영원히 열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수취를 위해서는 접촉해야 하고, 접촉하는 순간 보증금이라는 명목의 저주에 휘말린다. 이 모순된 순환 속에서 화물함은 제자리를 지켰고, 내부의 마른 긁힘은 어느덧 문 안쪽 벽면을 완전히 갉아먹을 듯이 격렬해졌다.
피핀은 귀를 감싸 쥐었다. 이제 소리는 단순히 귀로 들리는 수준을 넘어 뼈를 울리는 진동으로 변해 있었다. 문 안쪽 숨소리는 이제 일행의 심장 박동과 기묘하게 일치하기 시작했다. 마치 화물 자체가 살아있는 거대한 폐가 되어 Gate B 전체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로웬의 칼집 끈 끝부분이 화물의 자장에 끌려가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로웬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버텼으나, 팔 근육에 돋아난 핏줄은 그가 감당하고 있는 무형의 압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게 했다.
이네스는 깃펜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의 기록은 장부를 찢어버릴 뿐이었다. 잉크가 멈춘 자리에는 오직 숫자로 치환된 공포만이 정연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반환되지 않은 보증금은 이제 돈이나 물건이 아닌, 현장을 장악한 거대한 의지가 되어 있었다. 손잡이에 고인 습기가 마침내 바닥을 타고 장부의 표지까지 닿았을 때, 이네스는 그것이 인계의 시작이 아니라 거부의 증명임을 깨달았다. 주인 없는 이름은 손잡이 위에 박제되어, 다음 누군가가 자신의 운명을 지불할 때까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화물을 떠나지 못했고, 화물 또한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접촉하지 않음으로써 얻어낸 안전은, 역설적으로 그 자리에 영원히 묶여야 한다는 구속이 되어 돌아왔다. 젖은 손잡이는 빛을 반사하며 기괴하게 번들거렸고, 그 위를 부유하는 장갑 섬유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문 안쪽의 긁힘 소리가 일순간 멈췄다. 그리고 곧이어, 무언가 육중한 것이 문 너머에서 손잡이를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 들려왔다.
기록은 여기서 멈췄다. 더 이상의 수치 기입은 무의미했다. 이네스가 마지막으로 본 장부의 칸은 잉크가 아니라 투명한 수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눈물 같기도 했고, 끝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의 찌꺼기 같기도 했다. 일행은 침묵 속에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며, 이 거대한 정체 현상이 요구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다시금 곱씹었다. 책임자는 없고 수취자는 거부하며 보관자만 남은 현장에서, 시간은 습기 속으로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인계 보류란: 손잡이가 놓친 손을 기억함
373화. 놓친 손의 접수 시간
차가운 금속 표면 위로 배어 나온 것은 단순한 결로가 아니었다. 복도 전체를 지배하는 습기는 끈적하고 비릿한 금속취를 머금은 채, 폐부 깊숙한 곳까지 축축하게 가라앉아 일행의 호흡을 방해했다. 인계 보류라는 기괴한 판정이 내려진 직후, 거대한 철문 손잡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의 점막처럼 투명하고 끈질긴 액체를 끊임없이 내뿜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군가 땀 흘리는 손바닥으로 간절하게 손잡이를 움켜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힘이 빠져 미끄러져 버린 찰나의 흔적을 물리적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수분은 그 자체로 거대한 놓친 손의 압력이 되어 네 사람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네스는 기록판을 든 손끝을 가늘게 떨었다. 문손잡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으나, 그 정지된 금속체 너머에서는 보이지 않는 행정적 요구가 빗발치고 있었다. 문은 단순히 외부인의 침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육중한 철문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러나 끝내 자신을 돌리지 못하고 허공으로 미끄러진 ‘그 손’의 정보를 완벽하게 복원하고 증명하라고 로웬 일행에게 종용하고 있었다. 그 절차적 강요는 공포보다 더 지독한 질식감을 동반하며 사방의 벽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인계 보류 판정에 따른 추가 요건이 갱신되었습니다. 현시점부로 이 구역의 물리 법칙은 기록의 무결성에 종속됩니다.”
이네스의 목소리가 눅눅한 공기 사이를 비집고 낮게 깔렸다. 그녀가 들고 있는 기록판의 종이 위로 원인 모를 습기가 차올라 종이 결을 흐물거리게 만들었다. 이네스는 깃펜을 들어 필요한 항목을 채워 넣으려 했으나, 잉크는 종이에 닿자마자 기이한 형상으로 번져 나갔다. 검은 잉크는 마치 누군가의 팔목을 강하게 붙잡았다가 남겨진 젖은 손목 자국처럼, 기록판 위에서 타원형의 시퍼런 멍자국으로 변해갔다. 이네스는 잉크가 번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깃펜의 각도를 조절하며 가장 시급한 항목인 시간란에 집중했다.
“손잡이가 요구하는 수치가 지나치게 구체적입니다. 놓친 손의 압력, 그리고 그 손이 마지막으로 가했던 미세한 회전의 방향. 이 두 가지가 정밀하게 일치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인계 절차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판정입니다. 무엇보다 시점이 불분명합니다.”
이네스는 떨리는 손으로 일단 ‘접수 시간 미확정’이라고 적어 넣었다. 기록의 체계를 유지함으로써 상황을 통제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그 글자는 적히는 순간 형태를 잃고 뭉그러졌다. 잉크는 종이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이 표면에서 솟아올라 이네스의 손목을 타고 역류했다. 기록되지 못한 시간은 숫자가 아닌,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흔적으로 치환되어 이네스의 소매 끝을 시커멓게 물들였다. 차가운 액체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소름 끼치는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로웬은 검 손잡이에 직접 손을 올리는 대신, 허리춤에 매여 있던 칼집 끈의 잘린 끝을 천천히 매만졌다. 그는 이 현상이 단순한 무력이나 물리적인 힘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손잡이를 직접 잡는 행위 자체가 함정이 될 수 있었다. 만약 일행 중 누군가가 저 젖은 손잡이를 잡는 순간, 문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전 ‘놓친 손’의 데이터를 ‘잡은 손’의 골격과 근육에 강제로 주입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팔의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전제로 하는 동기화였다.
“직접 닿지 않고 움직인다. 그것이 이 항목을 우회할 유일한 방법이겠군.”
로웬이 짧게 단언하며 단검으로 자신의 칼집 끝에 달린 가죽 끈을 완전히 끊어냈다. 그는 거친 천 조각을 그 끝에 단단히 묶어 가느다란 올가미를 만들었다. 로웬의 목표는 금속 손잡이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는 바닥의 습기 위로 길게 늘어진, 손잡이의 실체보다 더 짙고 선명한 손잡이 그림자에 주목했다. 바닥에 고인 물기가 그림자의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고 있었다.
로웬은 천 조각과 가죽 끈을 이용해 문손잡이의 실체가 아닌, 차가운 바닥에 고여 있는 손잡이 그림자만을 살며시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면서도 문이 요구하는 ‘회전의 의지’만을 그림자를 통해 전달하려는 시도였다. 칼집 끈의 잘린 끝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허공에서 기묘한 마찰음을 냈다. 로웬의 손목에 가해지는 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단지 그림자를 당기고 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팔 근육은 마치 거대한 성벽을 혼자서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바닥의 습기는 로웬의 장화 끝을 적시며 올라왔고, 가죽 끈에서는 마찰로 인한 희미한 타는 냄새가 비릿한 금속취와 섞여 진동했다. 로웬은 손목의 통증을 견디며 그림자의 각도를 아주 미세하게 틀었다. 손잡이 실체는 움직이지 않았으나, 바닥의 그림자는 마치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의 손처럼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때, 복도 끝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금속음이 예리하게 끊겼다. 피핀은 손가락 사이로 동전을 굴리며 일정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챙, 챙, 하며 일정하게 허공을 가르던 동전 소리가 돌연 단절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이 공간의 시간이 일시적으로 고착되었음을 의미하는 신호였다.
“동전 박자 단절 확인. 시간의 흐름이 고착되었습니다. 현재 위치에서의 관측 정보가 내부와 동기화되기 시작합니다.”
피핀이 무미건조하게 보고했다. 피핀의 눈은 허공의 한 점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동전이 멈춘 찰나, 피핀은 보이지 않는 시각적 일치를 포착해냈다.
“단절과 동시에 문 안쪽 숨소리 재개되었습니다. 정확히 4초 전입니다. 문 너머의 존재는 지금 일행이 손잡이를 돌리기를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림자의 회전 속도와 문 안쪽의 호흡 주기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로웬, 조금 더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문 안쪽 숨소리는 젖은 폐가 쥐어짜는 듯한 거친 소리였다. 그것은 문 밖의 습기와 공명하며 네 사람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피핀은 손바닥에 맺힌 땀을 닦지도 못한 채, 동전이 멈춰버린 궤적을 따라 공중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었다. 보이지 않는 숨소리가 시각적인 파동으로 변해 피핀의 시야에 박혔다.
베라는 상황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깨달았다. 그림자를 당기는 로웬의 팔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떨리고 있었고, 이네스의 손목은 잉크와 습기로 인해 검게 죽어 있었다. 이대로 가면 ‘놓친 손’의 압력에 일행 전체가 함몰될 판국이었다. 베라는 이 절차적 미궁을 깨기 위해 더 극단적인 행정적 대처를 결심했다.
“인계 확정을 늦춰야 한다. 지금은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정하는 게 우선이 아니야. 누가 이 손잡이를 잡지 않았는지를 먼저 확정한다. 존재하지 않는 접촉을 공식화함으로써 저 손잡이의 판정 요건을 무효로 돌린다.”
베라는 품 안에서 다른 양식의 서류 한 장을 꺼내 이네스의 기록판 위에 겹쳤다. 그것은 수령 명단이 아닌 ‘비접촉 명단’이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그 대상은 이 공간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권을 박탈당하는 대신 공간이 가하는 직접적인 압력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존재 증명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 비싼 선택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었다.
“로웬, 이네스, 피핀, 그리고 베라. 네 사람 중 그 누구도 이 문손잡이에 피부를 접촉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접촉할 의사가 없음을 이 공간의 요건에 선언한다. 기록해, 이네스. 비접촉 명단이 완성될 때까지 이 문은 ‘공석’이며, 그 어떤 인계 절차도 유효하지 않다. 네 사람이 이곳에 직접 닿지 않은 상태로 남음으로써 이 공간의 요구를 거부한다.”
비접촉 명단이라는 역설적인 논리가 제시되자, 문손잡이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던 습기가 일시적으로 갈 곳을 잃고 공중에서 일렁였다. 손잡이 표면의 끈적한 액체가 거꾸로 솟구치며 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비접촉을 증명하기 위해 명단에 이름을 적어 넣는 행위 자체가, 역설적으로 네 사람이 이 눅눅하고 불길한 공간에 확실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족쇄가 되었기 때문이다.
로웬이 당기고 있는 칼집 끈의 장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기괴하게 강해졌다. 그림자만을 붙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웬의 손목 관절에서는 으드득거리는 뼈 소리가 들려왔다. 잘린 가죽 끈의 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며 살이 타는 듯한 악취가 났다. 로웬의 눈등에 핏발이 섰고, 바닥의 물기는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로웬의 발목을 휘감아 그림자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압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무게입니다. 단순한 물리적 저항이 아닙니다.”
로웬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목소리는 압력 때문에 짓눌려 거칠게 쇳소리를 냈다.
“그림자가 무거워지고 있어. 실체도 없는 그림자가 젖은 솜덩이처럼 변해가는군. 손잡이 그림자 자체가 놓친 손의 주인 대신, 그 손이 흘린 수십 년의 시간과 후회의 무게를 한꺼번에 흡수하고 있는 것 같소. 이 끈이 끊어지기 전에 판정을 끝내야 하오!”
손잡이는 이제 단순히 물리적인 압력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것은 이 문을 열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자의 극심한 좌절감, 그리고 문 앞에서 망설였던 모든 초단위의 고통을 보상받으려 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로웬의 팔을 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닿지 않겠다는 선언을 비웃듯, 그림자는 로웬의 발치까지 길게 뻗어 나와 그의 장화 끝을 적시기 시작했다.
피핀은 다시 동전을 움직여 박자를 되찾으려 했으나, 동전은 여전히 허공에 박힌 채 요지부동이었다. 문 안쪽 숨소리는 이제 문 바로 앞까지 다가와, 얇은 철판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일행과 대치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문 반대편에서 손잡이를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이쪽에서 누군가 그 압력을 이기고 손잡이를 돌려주기를, 혹은 함께 이 끝없는 인계 보류의 늪에 빠져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네스는 간신히 비접촉 명단의 마지막 항목을 완성했다. 그녀의 손목에는 어느새 기록판에서 옮겨붙은 듯한 젖은 손목 자국이 시퍼런 낙인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명단에 이름을 적어 넣은 대가로 지불한 존재의 훼손이었다. 잉크는 이제 종이를 넘어 이네스의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혈관을 타고 번지고 있었다.
“명단 작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요건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비접촉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은 여전히 누군가의 도착을 기록하려 합니다.”
이네스가 신음하듯 내뱉었다. 그녀의 시야 속에서 기록판의 종이가 스스로 뒤틀리며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어야 할 ‘접수 시간 미확정’의 공백 위로, 일행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글자들이 차가운 습기를 머금고 스스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네 사람 중 그 누구의 시간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이 문앞에서 손을 놓쳐버린 자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자, 이 공간이 영원히 반복하고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이었다. 기록판의 잉크가 마지막 비명을 지르듯 종이 위로 흩뿌려졌고, 마침내 결정된 항목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접수 시간란: 놓친 손이 먼저 도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