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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01화. 좌석 배치 원본 없음 / 출석 처리란의 빈 손도장 / 장갑 없는 대리 서명 일러스트

199-201화. 좌석 배치 원본 없음 / 출석 처리란의 빈 손도장 / 장갑 없는 대리 서명

199화. 좌석 배치 원본 없음

장부의 누런 종이 위로 스며든 잉크는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로웬이 찍어 누른 ‘수동 종명 대리 서명 원본 제출 요구’의 명조체 문구 아래로, 글자 대신 깊게 파인 의자 다리 자국 네 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압흔 주위로,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글자를 뒤늦게 써 내려가는 것처럼 검은 얼룩이 번지기 시작했다.

[좌석 배치 원본 없음]

무심하고도 서늘한 문구였다. 단순히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통보가 아니었다. 존재해야 할 근거가 통째로 도려내진 듯한 공백이 장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코가 간지러워요.”

피핀이 코를 찡긋거리며 장부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는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는 기묘한 기운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오래된 먼지 냄새랑…… 마른 꽃잎 냄새가 나요. 아주 오래전에 말라 비틀어져서, 만지면 바로 가루가 될 것 같은 그런 냄새요.”

피핀의 말대로 장부의 종이 질감은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습기를 머금었던 종이는 바싹 말라 바스라지기 시작했고, 그 틈새로 정체 모를 보랏빛 꽃잎 가루 같은 것들이 배어 나왔다. 그것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멈춰버린 예식의 잔해처럼 보였다.

베라가 차가운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사고로 잃어버린 게 아니군.”

그녀의 손가락이 ‘원본 없음’이라는 문구의 가장자리를 훑었다. 잉크의 번짐이 아니라, 종이의 결 자체가 날카로운 칼에 잘려 나간 듯 매끄러웠다.

“분실(Lost)이 아니라 삭제(Deleted) 처리된 거야.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배치를 기록에서 지워버렸다는 뜻이지.”

“삭제라고요?”

이네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로웬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은 이미 다음 절차를 계산하고 있었다. 행정적인 관점에서 ‘삭제’는 ‘분실’보다 훨씬 복잡한 뒷수속을 요구한다. 기록을 없애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사유와 권한, 그리고 그 행위를 보증하는 승인 절차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로웬 님, 좌석 복원을 시도하는 건 나중 문제입니다. 지금 이 장부가 보여주는 건 ‘원본이 없다’는 사실 그 자체예요. 삭제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반드시 그 삭제를 승인한 기록이 어딘가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네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좌석 배치를 다시 그리라고 요구하지 마세요. 대신 ‘좌석 배치 원본 삭제 승인 기록’을 내놓으라고 압박해야 합니다. 기록의 공백을 만든 그 승인권자의 흔적을 찾아야 해요.”

그때, 묵묵히 압흔을 살피던 모르그가 낮게 읊조렸다.

“이 자국…… 이상하군.”

모르그의 커다란 손가락이 종이에 깊게 파인 네 개의 구멍을 가리켰다. 의자 다리 하나가 남긴 자국치고는 폭이 넓고 깊이가 제각각이었다. 그는 마치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의자를 재구성하듯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단순한 압흔이 아니야. 이건 네 개의 의자가 한 지점에 겹쳐져서 생긴 자국이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어야 할 좌석 네 개가 강제로 하나의 공간으로 밀어 넣어졌어. 그래서 원본 배치가 성립할 수 없게 된 거다.”

네 개의 의자가 한자리에 겹쳐졌다. 그것은 곧 네 명의 하객 혹은 증인이 앉아야 할 자리가 물리적으로, 그리고 행정적으로 소멸했음을 의미했다.

로웬은 이네스와 모르그의 조언을 곱씹으며 인장을 다시 고쳐 쥐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신성한 기적이나 예언자의 직관에 기대는 것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절차의 허점을 파고들어, 숨겨진 서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실무자의 투쟁이었다.

로웬이 품 안에서 새로운 활자를 꺼내 인장틀에 끼워 넣었다. 철컥, 하는 금속음이 장부의 침묵을 깨뜨렸다.

[좌석 배치 원본 삭제 승인 기록 제출 요구]

로웬의 손이 장부의 공백 위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콰앙!

단순한 타격음이 아니었다. 거대한 성문의 빗장이 풀리는 것 같은 묵직한 진동이 서고 전체를 울렸다. 장부는 로웬의 요구에 거세게 저항하듯 파르르 떨리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금방이라도 종이가 타버릴 것 같은 열기가 피어올랐지만, 로웬은 인장을 떼지 않고 무게를 실어 압박했다.

“내놔.”

로웬의 낮은 목소리가 공명했다.

“누가, 어떤 권한으로, 이 좌석들을 지웠는지 증명해라.”

장부의 페이지가 미친 듯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수백 장의 종이가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펄럭이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딱 멈춰 섰다.

하지만 나타난 것은 정식 보고서나 승인 문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칠게 찢겨 나간 하객 명단의 가장자리 조각이었다. 누군가 급하게 손으로 찢어낸 듯한 종이 끝부분에는 피처럼 붉은 잉크로 휘갈겨 쓴 단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좌석 배치도도, 승인권자의 직인도 없었지만, 그것은 삭제의 이유를 설명하는 그 어떤 서류보다도 강력한 실증이었다.

종이 조각 위에 떠오른 문자를 확인한 일행의 안색이 굳어졌다.

로웬은 천천히 인장을 떼어냈다. 장부가 마지못해 뱉어낸 마지막 기록이 그들의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참석하지 않은 증인 1명.]

그 문구 아래에는 아무런 이름도, 직함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그 한 줄의 문장이 기록된 순간, 서고 안의 빈 의자들이 일제히 끼익, 소리를 내며 로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치 오지 않은 그 누군가를 대신해 대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200화. 출석 처리란의 빈 손도장

장부의 갈라진 틈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단순한 먹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며 찢어진 하객 명단의 가장자리를 타고 넘었다. 이름도, 직함도 없이 오로지 ‘참석하지 않은 증인 1명’이라는 기괴한 문장만이 남았던 그 자리에 검은 얼룩이 번져 나갔다.

번진 잉크는 기이하게도 옆 칸으로 스며들었다. 그곳은 본래 하객이 식장에 들어서며 자신의 신원을 증명하기 위해 손도장을 찍어야 하는 ‘출석 처리란’이었다. 아무런 인장도, 지문도 남지 않았어야 할 빈 칸 위로 문장의 파편들이 덧씌워지듯 자리를 잡았다.

“잠깐, 이거 냄새가 이상해요.”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피핀이었다. 그녀는 코를 찡긋거리며 장부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보통의 인장이나 잉크라면 마땅히 나야 할 특유의 기름진 냄새나 서늘한 먹향이 아니었다.

“사람 손 냄새가 아니에요. 이건…… 아주 오래된 책장 구석에 박혀 있던 마른 꽃잎 냄새 같기도 하고, 아니면 사람이 한 번도 밟지 않은 지하 창고의 마른 먼지 냄새 같기도 해요.”

피핀의 말대로였다. 장부에서 배어 나오는 것은 생동하는 생명력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이 멈춘 곳에서나 날 법한, 건조하고도 서늘한 부동(不動)의 향취였다.

베라가 차가운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미참석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군. 명단에 이름이 없는데도 ‘출석 처리됨’이라고 시스템이 확정해버린 게 문제지.”

그녀의 손가락이 장부의 비어 있는 손도장 칸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아무런 자국도 없었지만, 장부는 분명히 그 유령 같은 존재가 이 자리에 존재했음을 공증하고 있었다. 행정적인 모순이었다. 존재하지 않으나 출석했고, 증거는 없으나 기록은 남았다.

“신원을 먼저 조회해야 할까요?”

이네스가 신중하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신원 조회보다는 이 출석 처리가 어떤 근거로 이루어졌는지를 먼저 따져야 해요. 기록이 논리를 건너뛰었다면, 그 건너뛴 징검다리를 찾아내는 게 순서니까요.”

옆에서 묵묵히 좌석 배치도의 각인을 분석하던 모르그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는 소매를 걷어붙인 채, 장부 위에 나타난 빈 손도장 칸과 자신이 기록해둔 네 개의 좌석 압흔을 대조하고 있었다.

“로웬, 이것 좀 봐. 이 빈 손도장 칸의 테두리 모양 말이야. 내가 아까 찾았던 네 개의 좌석 압흔 중 하나와 곡률이 일치해. 정확히는, 좌석이 눌린 게 아니라 ‘좌석이 있어야 할 자리가 지워진’ 흔적과 맞물린단 말이지.”

모르그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장부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교묘하게 숨길 뿐이다. 비어 있는 손도장 칸은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찍혔어야 할 권리’가 박탈된 상태에 가까웠다.

로웬은 숨을 고르고 인장을 쥐었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인장의 무게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이것은 성자의 기적도, 예언자의 신탁도 아니었다. 그저 엉망으로 꼬여버린 행정 절차를 바로잡기 위한 실무자의 단호한 집행이었다.

“출석 근거가 없는 기록은 무효지만, 장부가 이를 승인했다면 반드시 대체된 서류가 존재할 겁니다.”

로웬이 허공에 대고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시선은 ‘참석하지 않은 증인 1명’이라는 문구와 빈 손도장 칸이 교차하는 지점에 고정되었다.

철컥, 하는 기계적인 마찰음과 함께 인장이 장부의 표면을 때렸다.

[미참석 증인 출석 처리 근거 제출 요구]

인장이 닿은 자리를 중심으로 장부의 종이질이 변하기 시작했다. 빳빳했던 종이가 마치 물에 젖은 듯 흐물거리더니, 이내 스스로 접히고 펼쳐지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괴물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를 뱉어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잠시 후, 요동치던 장부가 잠잠해졌다. 그리고 페이지 사이에서 툭, 하고 종이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그것은 원래 명단의 일부였던 것처럼 보였으나, 재질이 확연히 달랐다. 훨씬 얇고 투명한, 마치 사람의 피부를 얇게 저며 만든 것 같은 섬뜩한 촉감의 종이였다.

그 조각 위에는 복잡하게 얽힌 좌석표의 일부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연회장의 배치가 아니었다. 좌석들은 기하학적인 곡선을 그리며 중앙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단 하나의 자리만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 비어 있어야 할 손도장 칸 아래에 새로운 문장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방금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장부가 억지로 짜내어 제출한 최종적인 답변이었다.

[대리 출석자: 좌석 없음]

로웬의 미간이 좁아졌다.

출석은 했으나 앉을 자리는 없다. 증인으로 불려 왔으나 이름은 남지 않았다. 이 모순적인 서술이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지, 장부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좌석 없음’이라는 네 글자가 주는 압박감은 연회장 전체를 짓누르는 기운보다도 무겁게 로웬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201화. 장갑 없는 대리 서명

검은 얼룩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번져 나갔다. 장부의 하얀 속지 위로 스며든 글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대리 출석자: 좌석 없음’이라는 문구가 빈 손도장 칸을 중심으로 맥동하듯 퍼지더니, 이내 가장자리를 시커멓게 물들였다. 잉크가 번진 것이라기보다는 종이 자체가 괴사하는 듯한 불길한 변색이었다.

로웬은 미동도 없이 그 변화를 응시했다. 눈앞의 장부가 내뱉는 정보는 명백한 모순을 가리키고 있었다. 예식의 법도상 모든 참석자는 지정된 자리에 앉아야 하며, 그 자리에 앉은 자만이 증인으로서의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지금 장부는 ‘자리는 없으나 출석은 처리된’ 유령 같은 존재의 흔적을 실토하고 있었다.

“……이상해요.”

피핀이 코를 씰룩거리며 장부 가까이 다가왔다. 평소라면 사람의 체취나 피 냄새를 먼저 가려냈을 그녀였지만, 이번에 감지한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사람 냄새가 아니에요. 이건…… 아주 오래된 향낭 냄새랑, 궤짝 속에서 썩어가는 천 냄새예요. 그리고 짓눌린 먼지 냄새도 나요.”

살아있는 인간의 손가락이 찍은 인장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피핀의 감각은 예리했다. 손도장이 찍혔어야 할 칸에는 지문 대신 거칠고 마른 섬유의 결이 미세하게 남겨져 있었다. 누군가가 손가락 대신 낡은 헝겊 뭉치나 장갑을 낀 채 이 장부를 억지로 눌렀다는 증거였다.

이네스가 로웬의 옆으로 다가와 차갑게 덧붙였다.

“신원 조회를 유도하는 미끼군요. 이 대리인이 누구인지 추적하게 만들어서 시간을 끌 생각인가 본데, 속지 마세요. 로웬. 지금 중요한 건 이놈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네스의 시선이 ‘좌석 없음’이라는 문구에 꽂혔다.

“대리 권한의 근거가 먼저예요. 자격 없는 자가 어떻게 이 장부에 손을 댈 수 있었는지, 그 허가 절차부터 따져 물어야 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규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베라가 짧게 판정을 내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실무적인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자리에 앉지 않은 자는 하객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부는 이자를 출석자로 처리했죠. 이건 기록의 오류가 아니라, 시스템의 우회입니다. 누군가 강제로 ‘처리됨’ 상태로 고정해버린 거예요.”

그때, 침묵을 지키던 모르그가 장부 옆에 놓인 좌석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아까 장부 사이에서 툭 떨어졌던, 기괴하게 접힌 종이였다. 모르그는 그 종이의 접힘선과 장부의 빈 손도장 칸을 대조해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각도가 일치합니다.”

“각도라니?”

로웬의 물음에 모르그가 종이를 다시 펼치며 설명했다.

“이 좌석표가 접힌 각도와 손도장 칸에 남은 눌린 자국, 그리고 검은 얼룩이 퍼져나간 방향이 소름 끼칠 정도로 딱 맞아떨어집니다. 이건 우연히 접힌 게 아니에요. 특정 위치의 좌석 정보를 가리고, 그 공간적 빈틈을 이용해서 대리 서명 칸을 만들어낸 겁니다. 기하학적인 사기극이죠.”

로웬은 상황을 정리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좌석 배치도를 조작해 ‘존재하지 않는 자리’를 만들었고, 그 유령 같은 자리에 근거해 대리 출석을 승인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겨진 것은 사람의 지문이 아닌 낡은 장갑의 흔적뿐이었다.

이것은 영적인 예언이나 성스러운 기적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서류상의 빈틈이자, 행정적인 기만이었다. 그렇다면 대응 또한 그에 맞춰야 했다.

로웬은 품 안에서 다시 한번 인장을 꺼냈다. 이번에 그가 겨냥한 곳은 ‘좌석 없음’이라는 문구가 아니라, 그 상단에 투명하게 가려져 있을 ‘허가’ 영역이었다.

[대리 출석 허가 근거 제출 요구]

인장이 장부의 표면을 강하게 때렸다.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장부가 거칠게 떨렸다. 마치 내부의 장치가 억지로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불쾌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얼룩 속에서 새로운 형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인영이었다. 사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속이 텅 빈 가죽 장갑 모양의 그림자가 장부 위로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펜을 쥐고 있는 것처럼 허공을 긁어댔다.

이윽고 장부의 한 귀퉁이가 부자연스럽게 찢겨 나가더니, 그 밑에서 숨겨져 있던 문구가 기어 나왔다. 마치 누군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종이를 긁어 만든 것 같은 처참한 필치였다. 허가 문구는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붉은 액체가 진득하게 배어 나왔다.

로웬의 미간이 좁아졌다. 제출된 ‘근거’는 온전한 문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누더기가 된 허가서의 파편이었고, 그 파편들은 오직 한 가지 사실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비정상적인 대리 출석을 최종적으로 승인한 자. 이 기만적인 서명을 묵인하고 장부의 규칙을 뒤튼 주체.

로웬과 일행들의 시선이 장부의 가장 하단, 승인자 날인 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름도, 인장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공백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공백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허가자: 신랑 측 공란’

장부 위로 흐르던 붉은 액체가 그 문구 아래에서 멎었다. 신부 측의 증인들을 검열하던 장부가, 처음으로 예식의 한 축인 ‘신랑’이라는 단어를 뱉어낸 순간이었다. 로웬은 손에 쥔 인장을 꽉 움켜쥐었다. 이제 이 서류 전쟁의 전선은 더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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