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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가 진다는 것 일러스트

# 선배가 진다는 것

선배가 진다는 것

의무실 침대 시트가

팔꿈치에 닿을 때마다

따끔한 열이 올랐다.

태산은 오른쪽 전완을

천천히 펴 봤다.

어제 남긴 타박 자국이

보랏빛으로 번져 있었다.

승부는 끝났는데

몸은 아직

끝났다는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주먹보다 무거운 건,

뒤처리네.

의무 교사가 소독약을

거즈에 적셔 눌렀다.

차가운 액이 닿자

피부가 한 번 움찔했다.

"움직이지 마.

이건 통증보다

습관 문제야.

다친 쪽을 또 쓰려는

습관."

태산은 작게 웃었다.

"선생님,

습관이 밥줄이라서요."

"그 밥줄 끊기기 전에

조심하란 말이다."

문 쪽에서

기척이 멈췄다.

전서린이 문틀을 잡고

한참 서 있었다.

교복 소매 끝이

조금 구겨져 있었다.

급히 뛰어온 표정.

눈은 더 먼저 사과하고 있었다.

"들어와.

서서 반성하면

다리만 아파."

태산이 손짓하자

서린이 천천히 들어왔다.

침대 끝에 앉지도 못하고

두 손을 모은 채 섰다.

"태산 선배...

저 때문에

일이 커졌어요."

태산은 의무 교사 쪽을

한 번 봤다.

교사는 눈치를 채고

기록판을 들고

잠깐 커튼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자,

의무실 공기가

조금 낮아졌다.

"마음은 맞았어.

근데 방법이 위험했지."

서린이 고개를 더 숙였다.

"저 혼자 빨리 움직이면

선배들 부담을

줄일 수 있을 줄...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게 함정이야.

혼자 빨리 움직이면

남은 사람은

더 늦어져."

태산은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받쳤다.

힘을 주면 미세하게

떨림이 올라왔다.

"어제도 이겼지.

근데 이긴 뒤에

누구부터 챙겨야 하는지

순서가 꼬이면,

그 승리는 반쪽이야."

서린은 입술을 깨물다가

겨우 물었다.

"그럼 저는

뭘 먼저 해야 해요?"

태산은 답을 고르지 않았다.

바로 말했다.

"먼저 말하고,

함께 들어간다.

다음엔 혼자 뛰지 마.

선배는 그래서 있는 거야."

서린의 어깨가

아주 조금 풀렸다.

"...네.

같이 뛰어들게요."

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꾸짖는 말보다

합의 문장 하나가

더 오래 남는다.

커튼이 열리고

의무 교사가 돌아왔다.

새 붕대를 꺼내

태산 전완을 감싸며 말했다.

"두 사람 다 들었지?

의무실은 치료하는 데고,

다음 부상 예약받는 데

아니다."

복도 쪽에서

누군가 킥킥 웃었다.

대기 의자에 앉은 1학년 둘이

수군거렸다.

"전태산 선배도

혼나네."

"근데 저 분위기,

무서운데 이상하게

안심된다."

붕대가 마무리되자

태산은 천천히 팔을 내렸다.

완전히 낫진 않았다.

그래도 각도는 잡혔다.

오늘부터는

주먹 힘보다

말의 순서를 먼저 쓴다.

오전 수업이 끝날 무렵,

서린은 의무실 문 앞에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선배,

아까 말...

잊지 않을게요."

태산은 손을 흔들었다.

"기억만 하지 말고

다음에 써먹어.

그게 진짜 복습."

서린이 처음으로

작게 웃었다.

조심스러운 웃음인데

방금 전 죄책감보다

훨씬 단단했다.

방과 후,

활빈당 회의실 벽면에는

세 가지 색의 표가

나란히 떠 있었다.

빨강은 의도 전파,

노랑은 불안 공유,

회색은 관망.

은명은 레이저 포인터로

회색 구역을 짚었다.

"이번 라운드는

우리가 막았어.

완승은 아니고."

회의실 안이

짧게 조용해졌다.

안도하려던 표정들이

절반쯤 멈췄다.

그게 맞다.

안도는 필요하지만

끝났다는 착각은

제일 비싸다.

은명이 다음 장을 넘겼다.

"엘레나 라인은

1차 무력화.

근데 진짜 변수는

엘레나 위 라인이다."

제갈린이 팔짱을 풀며

의자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학생회 전환은

내가 맡겠다.

다만 시간은 필요해."

"얼마?"

"최소 일주일.

내부 인사 건드리면

반동이 커."

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록에 체크를 남겼다.

"좋아.

우리는 그 일주일 동안

과시 금지.

흔적만 남겨."

위노나가 손을 들었다.

"흔적만 남기면

사기가 떨어진다는 말

또 나올 텐데."

은명이 곧바로 답했다.

"그래서 기준을 공개해.

조용히 버티는 것도

성과로 계산한다.

숫자로 보여주면

불만이 줄어."

회의실 뒷줄 1학년이

메모를 하다 물었다.

"선배,

그러면 저희는

공격 안 해요?"

"공격한다.

다만 지금은

공격 자세를 숨겨.

상대가 우리를

성급하다고 믿게 놔둬."

제갈린이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정치 언어로 번역하면,

'침묵한 척하면서

의제 선점'이네."

"맞아.

네가 그런 말로

포장해 주면

더 잘 먹히겠지."

회의실에

낮은 웃음이 돌았다.

긴장 위에 잠깐 얹는

완충재 같은 웃음.

은명은 마지막 슬라이드를

띄웠다.

화면에는 세 줄만 있었다.

1. 개인 보복 금지

2. 유도 질문만 허용

3. 이상 접속 즉시 공유

"이건 지시가 아니라

생존 규칙이야.

어기면 영웅 놀이,

지키면 팀."

위노나가 키보드를 닫으며

중얼거렸다.

"영웅 놀이 금지라.

이 학교에서

제일 어려운 과목이네."

"그래도 이번 시험은

그 과목이 필수야."

은명은 말끝을 낮췄다.

"지금부터는

이겼다는 말

입 밖에 내지 마.

상대는 우리가 방심했다고

믿어야 하니까."

회의 종료 알림이 뜨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트북 덮는 소리,

의자 미는 소리,

숨을 크게 내쉬는 소리.

제갈린이 문 앞에서

은명을 잠깐 불렀다.

"카지미르 쪽,

정말 돌아설 것 같아?"

은명은 즉답하지 않았다.

복도 유리창에 비친

자기 눈을 한 번 보고

대답했다.

"돌아서는 건

본인 선택이야.

근데 적어도

지금은 질문을 시작했어.

그걸로 충분해."

"질문은 체제를

느리게 만들지."

"느려진 체제는

틈이 생긴다.

그 틈은 네가 맡아."

제갈린이 짧게 웃었다.

"일이 많네, 선배님."

"원래 후폭풍 정리는

웃으면서 하는 거야."

회의실 불이 절반 꺼지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에도

은명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위노나와 기록 담당 둘만 남아

로그 파일을 다시 접었다.

표면상 사건은 정리됐다.

하지만 정리와 종료는

늘 다른 단어다.

위노나가 컵라면 뚜껑을

젓가락으로 눌러 놓고 물었다.

"정말 '저강도 경계'로

갈 거야?

지금 압박하면

두어 라인은 더 뽑을 수 있어."

은명은 테이블 위에

흩어진 인쇄물을

번호 순서대로 맞췄다.

"뽑는 건 쉬워.

버티게 만드는 게 어렵지.

이번엔 오래 가야 해."

"오래."

위노나가 그 단어를

천천히 되뇌었다.

"넌 늘

단기 승부 싫어하더라."

"단기 승부는

이긴 날 밤이 제일 위험해.

다 끝났다고 착각하거든."

기록 담당 2학년이\n

모니터를 돌려 보여줬다.

익명 질문함에

새 메시지 스무 개가

쌓여 있었다.

[활빈당 명단은 안전한가요]

[지금 지지하면 불이익 있나요]

[선배들 진짜 우리 편 맞죠]

은명은 질문을

하나씩 읽고\n

항목 옆에 표시를 넣었다.

불안형,

유도형,

도발형.

같은 문장처럼 보여도

목적은 다르다.

답변도 같으면 안 된다.

"답장은 이렇게.\n

불안형엔 절차.

유도형엔 원칙.

도발형엔 침묵."

위노나가 엄지를 들었다.

"깔끔하네.\n

감정 소비 제로."

"감정은 나중에 써.

지금 쓰면

상대가 계산한다."

회의실 문이 다시 열렸다.

제갈린이 서류 뭉치를 들고

잠깐 얼굴을 비쳤다.

"은명,

하나만 더.\n

학생회 쪽에서

내일 아침 긴급 생활지도

공지를 띄울 거래."

"명분은?"

"루머 차단.\n

실제 목적은

정보 흐름 정렬."

은명은 짧게 웃었다.

"예상대로네.\n

우리는 대응 공지 안 올린다.

대신 담임 라인으로

생활 멘트만 넣어.\n

'확인 안 된 정보 공유 금지',

'상담 창구 일원화'.\n

딱 그 수준."

제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띄지 않게

방향만 잡는다?"

"응.

이 화는\n

누가 크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버티느냐다."

제갈린이 서류를\n

탁 치며 돌아섰다.

"알겠어.

정치도 체력전이네."

문이 닫히자\n

위노나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체력전이라...

틀린 말은 아닌데,

네 옆에서 들으니까

무슨 군사 보고 같다."

"우린 학생이니까\n

군사까진 아니지.

대신 출석과 과제가

탄약이야."

잠깐 정적.

셋 다 웃었다.

웃음이 끝난 뒤,\n

은명은 마지막 파일을 열었다.

제목은 단순했다.

[후폭풍 관리 체크리스트]

1. 피해 학생 개별 접촉\n

2. 수업 방해 요소 최소화\n

3. 외부 확산 경로 기록\n

4. 보복성 언행 선제 차단

그는 1번 항목 옆에\n

태산 이름을 적었다.

보호는 결국

현장에서 끝난다.

말은 문서에서 시작해도

사람에서 완성된다.

같은 시간,\n

의무실 뒤편 창가.

태산은 처방받은 얼음팩을

전완에 대고 서 있었다.

손끝은 아직 둔했고

어깨는 묵직했다.

이긴 날의 몸은\n

항상 느리다.

느려져야 보이는 게

뒤처리라는 것도\n

이제는 안다.

서린이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

하나는 온수,\n

하나는 미지근한 보리차.

"선배,

뜨거운 거랑\n

덜 뜨거운 거.

뭐가 나아요?"

태산이 컵을 받아

김을 한 번 들이마셨다.

"지금은\n

덜 뜨거운 거.

너무 뜨거우면

급하게 마시다가 데여."

서린이 피식 웃었다.

"그거\n

물 얘기 아니죠?"

"맞네.

이제 눈치도 빨라."

서린은 창틀에 기대

복도 끝을 힐끗 봤다.

"선배,\n

아까 제가\n

너무 울먹였죠."

"울먹이는 건 괜찮아.

근데 그 상태로

판단하면 위험해."

"판단..."

그녀가 단어를\n

입 안에서 굴렸다.

태산은 종이컵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몸이 먼저 나가는 타입은

장점이 커.

대신 규칙이 없으면\n

제일 먼저 다친다."

"규칙이면

아까 말한 그거요?\n

먼저 말하고,

함께 들어간다."

"응.\n

그거 하나면

절반은 산다."

서린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휴대 메모에\n

문장을 그대로 적었다.

[먼저 말하고 함께 들어간다]

글씨가 삐뚤했다.

급히 적은 흔적.\n

태산은 그게 좋았다.

완벽한 메모보다\n

급한 결심이 더 오래 간다.

창문 아래 벤치에서

다른 1학년 둘이

그 모습을 힐끗 보며

소곤거렸다.

"전서린 선배,\n

완전 혼났나 봐."

"아닌데?

표정 보면\n

오히려 더 단단해졌어."

태산은 들은 척하지 않았다.

소문은 막는다고 멈추지 않는다.

대신 방향을 고를 뿐.

"서린아,\n

내일 아침에

네가 먼저 할 일 알지?"

"네.\n

어제 얽힌 후배들

한 명씩 만나서

상황부터 듣기."

"그리고?"

"제가 해결하겠다고\n

약속 안 하기.

같이 정리하자고 말하기."

태산이 미소를 지었다.

"정답."

멀리서\n

종례 종이 울렸다.

학생들이 복도로 쏟아졌다.

소란은 금방 커졌고,

두 사람 목소리는\n

그 안에서 작아졌다.

작아도 충분했다.

필요한 말은\n

이미 들어갔다.

잠시 뒤,\n

은명이 의무실 앞에 도착했다.

태산과 눈이 마주치자

둘 다 먼저 말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이 먼저 갔다.

은명이 태산 팔의 붕대를 보고

턱으로 가리켰다.

"몇 퍼센트?"

태산이 팔을 돌려 보였다.

"통증은 40.\n

쓰는 건 70쯤."

"무리하지 마."

"누가 할 소리."

은명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서로

감시하자는 거지."

태산은 컵을 비우고

휴지통에 던졌다.

"회의는 어땠어?"

"이겼는데\n

이겼다고 말하면

지는 구조."

"복잡하네."

"너처럼 단순하게\n

주먹으로 끝나면

나도 편해."

태산이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끝났어도\n

팔은 아프다."

"그래서 너한테\n

후속 맡기는 거야.

사람 챙기는 건\n

네가 더 빨라."

태산이 잠깐 눈을 좁혔다.

"나 칭찬했냐?"

"팩트 전달."

둘은 동시에 웃었다.

짧고 건조한 웃음.\n

익숙해서 편한 리듬.

저녁 자율학습 직전,

의무실 앞 복도는

작은 장터처럼 붐볐다.

근육통 파스 찾는 2학년,

발목 테이핑 받는 1학년,

그 옆에서 과자 뜯는 구경꾼.

태산은 벽에 기대

붕대 감긴 전완을

가볍게 돌려 봤다.

그때 전서린이

약품 트레이를 들고

성큼 다가왔다.

눈빛이 이상하게 결연했다.

"은명 선배,

예방 치료예요!"

마침 복도 끝에서

은명이 물병을 들고

걸어오던 참이었다.

"안 다쳤다니까?"

서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트레이 위 소독솜을

진지하게 집었다.

"다치기 전에

막는 게 예방이죠.

어제 선배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태산이 고개를 돌려

작게 킥 웃었다.

"응용력이 좋아졌네."

은명은 한 걸음 물러났다.

"그건 전투 원칙이고,

지금은 의무실 남용이야."

바로 그때,

제갈린이 서류철을 들고

복도를 지나오다

장면을 멈춰 봤다.

"의무실 소란은

규정 위반이야."

서린이 즉시 반박했다.

"소란 아니고

교육입니다!"

"교육은 교실에서.

여기선 환자 우선."

둘 사이에

짧은 정전기가 튀었다.

주변 학생 둘이

팝콘 대신 젤리를 들고

속삭였다.

"A반 반장 모드 나왔다."

"근데 전서린도

안 밀리네."

태산이 손을 들어

타임을 걸었다.

"좋아, 잠깐.

의무실에 사람 너무 많다.

입장권 받아야겠네."

은명이 곧장 받았다.

"조용히 해."

"농담도 금지냐?"

"네 농담은

소음이 커."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의무 교사가 커튼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거기 네 명.

병실 앞에서

회의하지 마라.

아픈 사람보다

너희가 더 시끄러워."

서린이 급히 트레이를

가슴으로 끌어안고

작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갈린도 서류철을 세워

한 발 물러섰다.

"규정은

다음에 다시 읽자."

은명은 물병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신 뒤,

서린 쪽으로 턱짓했다.

"예방 치료는

열정 점수 인정.

대신 다음부턴

대상 동의부터 받아."

서린이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동의 먼저!"

태산이 웃으며

은명 어깨를 툭 쳤다.

"선배 교육 효과 좋다.

이제 나보다

말 잘 듣겠는데?"

"그건 네가

평소에 말을

너무 늦게 해서 그래."

짧은 티키타카가

복도에 부딪혀

가볍게 튀었다.

소란이 정리되나 싶더니

서린이 다시 은명 앞에 섰다.

이번엔 트레이 대신

작은 체크리스트를 들고 있었다.

"그럼 동의 절차\n

지금 연습할게요.

은명 선배,\n

어깨랑 손목\n

예방 스트레칭

3분 괜찮으세요?"

은명이 눈썹을 올렸다.

"문장 좋아.

다만 한 줄 추가.\n

거절해도 불이익 없음."

서린이 곧바로 메모를 고쳤다.

"아, 맞다.

거절해도 불이익 없음."

태산이 박수를 한 번 쳤다.

"완성.\n

이제 진짜 선배 같다."

제갈린이 작게 헛기침했다.

"칭찬은 좋지만\n

복도 점유는

여전히 규정 위반."

은명이 제갈린을 보며 말했다.

"그 규정 조항,

번호 몇 번이지?"

제갈린이 서류철을 넘기다가

잠깐 멈췄다.

"정확한 번호는...

잠깐."

태산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반장도\n

번호는 바로 안 나오네."

주변에서

또 한 번 웃음이 번졌다.

제갈린도 결국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n

오늘은 경고로 끝.

대신 정시 자습 시작 전에

다 해산."

"명령 접수."

은명이 경례 흉내를 내자

서린이 따라 하다가\n

자기가 민망했는지\n

얼굴을 붉혔다.

그때 의무 교사가\n

카트 밀고 지나가며

무심하게 한마디 던졌다.

"너희 네 명,\n

환자보다 건강해 보여.

그 에너지\n

청소에 쓰고 가라."

태산이 즉시 걸레 자루를 집었다.

"네, 선생님."

은명이 작게 말했다.

"봐라,\n

이게 진짜 명령 체계다."

위노나가 복도 끝에서

음료 캔을 흔들며 나타났다.

회의실 정리 끝난 얼굴.\n

피곤한데 눈은 살아 있었다.

"너희 여기 있었네.

은명,\n

회색 계정 둘이

방금 노랑으로 이동."

은명이 곧바로 물었다.

"시간?"

"19시 12분,\n

19시 14분.

공통 접속지는\n

본관 와이파이 B섹터."

제갈린이 즉시 받아 적었다.

"그 시간대면

생활지도 공지 직후네."

은명이 짧게 끄덕였다.

"예상 범위 안.\n

내일 오전엔

회색 둘 중 하나가

직접 질문 던질 거야."

태산은 걸레질을 하다

고개만 돌렸다.

"정보전은\n

청소랑 비슷하네."

위노나가 웃었다.

"어디가?"

"눈에 띄는 얼룩보다

안 보이는 끈적임이\n

더 오래 남잖아."

잠깐 정적이 흘렀다.

은명이 고개를 들었다.

"좋은 비유다.

그래서 매일 닦는 거고."

복도 바닥이\n

조금씩 반짝이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이상한 장면이었다.

전투 끝낸 선배 둘,

반장 하나,

후배 둘이\n

의무실 앞 바닥을

말없이 닦고 있었다.

지나가던 1학년이\n

걸음을 멈추고\n

속삭였다.

"저 사람들 뭐 해?"

"몰라.\n

근데 저렇게 하니까\n

우리도 떠들면 안 될 것 같아."

소란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강한 말보다\n

보이는 행동이 빠를 때가 있다.

청소를 끝낸 뒤,\n

서린이 빈 양동이를 들고

태산 옆에 섰다.

"선배,\n

저 내일 아침\n

후배들 만나고\n

점심 전에 보고할게요."

"좋아.

보고는 짧게,\n

감정은 솔직하게."

"감정도 써요?"

"써야지.\n

숫자만 보면

사람이 빠진다."

은명이 옆에서 덧붙였다.

"대신 해석은 금지.

본 사실만.\n

판단은 같이."

서린이 두 사람을\n

번갈아 보다가\n

작게 웃었다.

"두 선배가\n

팀플 과제 같아요.

한 명은 기준,\n

한 명은 실행."

태산이 엄지로 은명을 가리켰다.

"쟤가 기준.

난 실행."

은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기준도 한다.

다만 말하기 전에

먼저 주먹이 나갈 뿐."

태산이 손을 들었다.

"반박 불가."

이 정도 소란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어제의 잔열이

오늘의 농담으로

식어 가는 속도.

웃음이 가라앉은 복도에서

모두가 다음순서를 기다렸다.

조용하게.

그때,

태산 태블릿이

짧게 진동했다.

화면 상단에

발신자 불명.

메시지 미리보기 한 줄.

태산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멈췄다.

웃음기던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왔다.

그가 화면을 열었다.

[발신자 불명]

"전태산 님, 후배를 지키는 모습이 아름다웠어요.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예요."

문장을 읽는 동안

복도 소음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태산은 화면 아래

작은 점 세 개를 봤다.

입력 중 표시였다.

점이 한 번 깜빡였다.

두 번 깜빡였다.

세 번째에서 사라졌다.

아무 추가 문장도 없다.

그래서 더 선명했다.

...천기다.

복도 조명이

시간표대로 하나씩 꺼졌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교실로 흩어졌다.

남은 빛은

태산 손안 태블릿뿐.

차갑고 얇은 화면이

밤의 시작을

정확히 잘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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