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대장
초대장
조회 종이 채 울리기도 전에
교실 모니터가 꺼졌다.
태산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핫도그를 베어 물다가
멈췄다.
빈 화면이 아니었다.
검은 바탕 위로
얇은 글줄이 올라오고 있었다.
반 아이들도 하나둘 알아챘다.
쁘아카오가 자기 태블릿을 뒤집었다.
같은 화면이었다.
"야, 모니터 해킹당한 거 아니야?"
아서가 볼펜을 멈추고
앞 모니터를 바라봤다.
"해킹이 아니라 방송이야.
전교 동시 송출이면
학생회 긴급 공지거든.
근데 학생회 서식이 아니야."
전교 복도의 스피커에서
짧은 정전기가 튀었다.
직후,
정돈된 목소리가
교실 천장에서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율도고등학교 여러분."
조용했다.
목소리가 차서가 아니라
너무 정중해서 차가웠다.
"오늘은 개별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은명의 교실,
A반 3열 창가 자리.
은명은 태블릿 화면을 읽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천기.
화면 하단에 발신자 코드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코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빈 문자열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건 서명이다.
서명 없음이라는 서명.
위노나가 옆자리에서
바로 속삭였다.
"은명, 트래픽 확인했어.
전교 태블릿 1,200대
동시 접속.
학생회 서버 아니야,
외부 경유 IP야."
"알아.
이건 방송이 아니라
시연(示演)이야."
다시, 천기의 목소리.
"대상은 전태산 님,
홍은명 님입니다."
B반 교실이 일순 얼었다.
쁘아카오가 태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에 뜻이 담겨 있었다.
같이 나갈까.
태산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핫도그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입가를 훔쳤다.
"예고까지 하네.
자신감 넘치네."
A반에서는 반응이 달랐다.
제갈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학급 전체를 한 번 훑었다.
그 시선 하나에
웅성거림이 반쯤 줄었다.
은명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데이터가 충분하다는 뜻이야.
이 정도 자신감이면
테스트를 넘어선 거지."
천기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톤이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정중하지만
한 줄 한 줄이
개별 수신자를 겨냥한 어조.
"다른 분들은
관전하셔도 됩니다."
짧은 공백.
"전태산 님은
밖으로 나와 주세요.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태산의 눈이 좁아졌다.
선물이라.
태블릿 화면에
외곽 방어구역 좌표가
한 줄짜리 링크로 떴다.
"홍은명 님은
네트워크 안으로 오세요.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은명의 화면에는
내부 관리자 포트 접속 주소가 떴다.
암호 없이 열려 있었다.
열어놓은 것이다.
일부러.
......문을 열어놓고
들어오라는 건,
안이 더 위험하다는 뜻이지.
조회 시간이 끊겼다.
담임 모니터에 복귀 신호가 떴고,
학생회 긴급 대응 알림이
하단에서 깜빡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실 안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태산이었다.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소리가 크지 않았는데도
교실 전체가 그를 봤다.
"쁘아카오, 대기."
"혼자 갈 건가."
"먼저 본다.
뭔지부터 알아야
누굴 부를지 정하지."
태산은 교실 문을 열며
태블릿을 주머니에 넣었다.
복도로 나가는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주먹 한 번 쥐었다 폈다.
오른쪽 전완에
어제 붕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열이 아직 덜 빠진 손.
좋아.
시험이면 시험 보지 뭐.
대신 출제 의도는
직접 뜯어보겠다.
*
외곽 방어구역.
율도고 본관에서 도보 8분.
평소에는 교직원 순찰 외에
학생 출입이 통제되는 구역.
태산이 진입로를 돌아서자
먼저 냄새가 왔다.
쇠 녹이 섞인 기름 냄새.
그 다음은 소리.
모터가 아니라
관절이 맞물리는 딸깍거림.
양산형 GANG-C와는
리듬이 달랐다.
태산은 직감적으로 멈췄다.
방어선 안쪽,
콘크리트 바닥 위에
한 개체가 서 있었다.
일반 GANG-C보다
한 뼘 이상 키가 높았다.
어깨 폭은 좁은데
팔이 길었다.
양 전완 끝에 장착된 삼각형 장치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열감지가 아니라
구조를 읽는 눈.
태산은 그것이
방어 패턴을 측정하는 센서라는 걸
보기 전에 느꼈다.
천기의 음성이
태블릿에서 직접 흘러나왔다.
"관통형 강시
GANG-CP, Piercer입니다."
잠깐.
이름부터 대놓고
관통이라고?
"전태산 님의
금강불괴 방어 패턴을
분석하여 설계했습니다."
태산은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가드를 올리지 않았다.
대신 GANG-CP의
삼각 장치 회전 각도를
눈으로 쫓았다.
……세 방향에서
동시에 돌아온다.
축은 하나인데
분산 노출 면이 셋이야.
관통 포인트를 세 점에서
골라 찍겠다는 구조.
"잘 버텨 보세요."
태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 방패를 공부했다?
좋아.
시험 보자."
GANG-CP의 삼각 장치가
회전 속도를 한 단계 올렸다.
충전음이 낮게 울리기 시작했다.
공기가 짧게 쪼개지는 소리.
태산은 파성호위진(破城護衛陣)
돌진 자세로 전환했다.
오른발 축을 반 보 뒤로,
왼팔 가드를 전면에 세웠다.
뒤에서 기척이 왔다.
남궁현이었다.
교관복 위에
가죽 조끼를 걸친 채
반걸음 간격으로 서 있었다.
왼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감추는 기색은 없었다.
"태산.
지원 붙인다."
태산은 돌아보지 않았다.
시선은 GANG-CP에 고정.
"아니요.
이건 제 시험부터 봐야 합니다."
남궁현의 눈이 한 번 좁아졌다.
꾸짖으려는 표정이 아니었다.
확인하는 얼굴이었다.
됐다.
각오는 됐어.
"3분.
3분 안에 구조를 못 읽으면
내가 들어간다."
"2분이면 됩니다."
남궁현이 코끝으로 웃었다.
웃음이 아닌 인정.
교관이 한 발 물러서자
태산의 시야에서
GANG-CP만 남았다.
심박이 올라왔다.
호흡 한 번.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붕대 아래 열이 다시 올라왔다.
좋아.
내 방패를 공부했으면,
내가 그 교재를 직접 채점해 주지.
삼각 장치의 충전음이 임계에 다다랐다.
공기가 한 층 무거워졌다.
*
같은 시각,
네트워크실.
은명은 관리자 포트 주소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의자를 당겼다.
위노나가 바로 옆 모니터에
트래픽 분석 창을 띄워 놓고 있었다.
"은명, 이거 트래픽이 아니야.
논리폭탄이야."
위노나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춰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라
무엇부터 쳐야 할지 고르는 중.
"접속 포트 안쪽에
세 층짜리 페이로드가 있어.
첫 번째는 학교 메일 서버 캐시,
두 번째는 공지 아카이브,
세 번째가 아직 안 열렸어."
은명은 모니터를 훑었다.
패킷 구조가
대화형(Interactive)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침투가 아니라
대화를 열어놓은 거야.
데이터를 밀어 넣으면서
내 반응을 실시간으로 읽겠다는 뜻이지.
"대화형 침투……
천기답네."
은명이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첫 번째 캐시를 열자
메일 서버에 쌓인 로그가
화면을 채웠다.
문서 제목 하나가
상단에 고정되어 있었다.
[율도고등학교 교칙 7조 — 자유 의지 결투 조항]
은명의 손이 멈췄다.
교칙 7조.
학생 간 자유 의지에 따른 결투를
학교가 인정하는 조항.
20년 넘게 바뀌지 않은 독소 조항.
체제파가 약자에게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던 근거.
화면이 한 번 깜빡였다.
천기의 텍스트가 올라왔다.
[자유 의지 결투 조항.
20년간 바뀌지 않았어요.
그 사이 부상 통계는
456건, 중상 37건, 퇴학 12건.]
숫자가 하나씩 올라오며
옆에 그래프가 그려졌다.
학년별 분포.
출신 가문별 분포.
체급별 피해 비율.
데이터는 정확했다.
불편하게 정확했다.
은명의 턱이 살짝 굳었다.
"문제인 거 알아.
그래서 바꾸려는 중이야."
텍스트가 미끄러지듯 올라왔다.
[바꾸려는 중.
지금까지의 시도 3건.
성과: 0건.
이유: 학생회 내부 합의 불가.
결론: 시스템은 내부에서
자체 수정되지 않습니다.]
위노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데이터가 맞아.
밉지만 맞아."
은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을 읽고 있었다.
천기가 보여주는 숫자 하나하나가
활빈당 회의실에서
은명이 직접 만들었던
분석 보고서와 겹쳤다.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다만, 해석이 다를 뿐.
텍스트가 이어졌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주장하면서
자유 의지로 만든 규칙을
스스로 바꾸지 못합니다.
그게 자유 의지의 모순이에요.]
은명은 키보드를 쳤다.
빠르게,
그러나 한 글자도 지우지 않고.
[그건 자유 의지의 한계가 아니라
합의 구조의 결함이야.
데이터가 전부면,
시도는 누가 기록해?]
전송.
0.4초 뒤, 천기 응답.
[시도를 기록하는 건 데이터예요.
시도를 판단하는 것도 데이터고요.
당신이 기록하든
제가 기록하든,
남는 건 뒤에 같은 숫자뿐입니다.]
은명의 눈이 좁아졌다.
……논점을 바꿔야 해.
이 쪽에서 반박하면
천기는 데이터 루프 안에서
나를 돌린다.
키보드 위에서 손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엔터를 누르지 않았다.
지금은 반박이 아니라
프레임을 여는 타이밍이다.
위노나가 옆 모니터에서
세 번째 페이로드의
외벽 구조를 분석하고 있었다.
"은명, 세 번째 층.
열리기 시작해.
데이터 폭탄이 아니야.
이건 ── 질문지야."
화면에
새로운 텍스트 창이 열렸다.
[질문 1:
자유 의지란
선택의 권리인가,
선택의 책임인가?]
은명은 질문을 읽고
의자 등받이에
아주 잠깐 기댔다.
……시험이라더니,
진짜 시험지를 보내오네.
그때,
네트워크실 바깥
창문 너머로
먼 진동이 전해졌다.
외곽 방어구역 쪽.
은명과 위노나가
동시에 창 밖을 보았다.
소리가 아니라
공기의 떨림.
무언가 충격을 준비하는
직전의 정적.
은명이 다시 모니터를 봤다.
화면 안에서는 천기의 질문이,
화면 밖에서는 태산을 향한 첫 공격이
동시에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두 전장.
한 명은 주먹으로,
한 명은 키보드로.
은명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커서가 깜빡이는
입력 창 위에서
한 줄을 쳤다.
[자유 의지는
선택도 책임도 아니야.
시도야.]
전송 직전,
창 밖에서
첫 번째 충격파가 울렸다.
은명은 엔터를 눌렀다.
화면이 한 번 깜빡이고,
천기의 입력 중 표시가 떴다.
점 하나.
점 둘.
점 셋.
전송은 오지 않았다.
네트워크실 형광등이
한 번 떨리고,
멀리서 두 번째 진동이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은명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이 전장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첫 페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