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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스파링 일러스트

첫 스파링

오후 종이 울리자,

B반 훈련장 공기가

한 톤 내려앉았다.

매트 가장자리에

1학년과 2학년이

반원으로 갈라섰다.

떠들던 소리가 줄고,

신발 바닥 마찰음만 남았다.

남궁현이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왼손을 등 뒤로 넘기고,

오른손 검지로 링 선을 한 번 긋는다.

"오늘 합동 스파링 한다."

"선배가 후배에게

보여줘라."

"말로 가르치지 말고,

몸으로 가르쳐."

짧게 끝났다.

규칙 설명도 짧았다.

유효타 누적.

금지 부위 준수.

판정은 남궁현.

그뿐이었다.

남궁현이 명단을 접지 않고

한 줄을 더 깔았다.

"한쪽이 밀려도

거기서 끝이라 생각하지 마."

"버티는 법,

무너지는 법,

둘 다 오늘 배운다."

그 말이 떨어지자

훈련장 뒤쪽 공기가

더 조여졌다.

2학년 몇 명은 웃었고,

1학년 몇 명은 턱을 굳혔다.

1학년 쪽에서

낮은 수군거림이 일었다.

"오늘 진짜 붙는다고?"

"2학년이랑 바로?"

"B반 첫 합동부터

이 강도로 가네…"

2학년 뒤편에서

리오가 어깨를 들썩였다.

"좋다!

이제 좀 학교 같네!"

올가가 리오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너 기준의 학교는

항상 전쟁이냐."

태산은 스트랩을 풀며

링 가장자리를 봤다.

입꼬리는 평소처럼 올라가 있었는데,

눈동자는 이미 거리 계산 중이었다.

공기부터 다르네.

장난은 여기까지.

좋아, 이건 재밌겠다.

남궁현이 명단을 펼치려는 순간,

1학년 줄에서

한 사람이 한 발 나왔다.

홍천무였다.

교복 소매를 단정히 걷고,

시선은 정면으로 고정한 채

허리를 짧게 숙였다.

"전태산 선배와

스파링을 신청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훈련장이 조용해졌다.

1학년 몇 명이

서로 얼굴을 봤다.

"저 선배를

바로 지목해?"

"첫 합동에?

진짜 세다…"

태산은 잠깐 눈을 깜빡였다가

천무를 향해 씩 웃었다.

"좋지."

"나도 네 주먹

궁금했거든."

천무 눈빛이

아주 가늘게 흔들렸다.

피하지 않는다.

웃고 있다.

더더욱 꺾어야 한다.

관중석 끝,

A반 쪽 자리에서

은명이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태산이 저렇게 웃으면,

속은 더 진지하다는 뜻이지."

카이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 형 저 표정이면

내일 근육통 확정."

무사 이브라힘도

한 칸 떨어진 벤치에 앉아

노트 패드를 켰다.

금빛 눈동자가

링 중앙만 따라간다.

남궁현이 손짓했다.

"둘, 링으로."

태산과 천무가

동시에 선 안으로 들어왔다.

거리 3미터.

발끝 각도는 서로 반대.

호흡은 서로 다르게 길었다.

태산은 어깨를 툭 풀고,

천무는 가드 높이를

눈썹 아래로 맞췄다.

천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배."

"전력으로

오셔도 됩니다."

태산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후배가 선배한테

허가를 주네?"

천무는 표정 변화 없이

짧게 대답했다.

"저도 전력입니다."

태산 입꼬리가

더 또렷하게 올라갔다.

"좋다.

그 말, 맘에 든다."

정석형이네.

그럼 더 세게 부딪혀보자.

어디까지 버티는지 보자.

남궁현의 손바닥이 올라갔다.

"시작."

첫 발은 천무였다.

활빈팔식(活貧八式)

제1식·쇄(碎).

발이 매트를 짧게 누르자,

충격이 종아리를 타고

골반으로 붙는다.

허리가 반 박자 돌고,

어깨가 접혔다 열리며

정권이 직선으로 뻗었다.

퍽.

태산 턱 옆을 스치며

공기를 찢었다.

멈추지 않는다.

제1식·쇄 두 번째.

세 번째.

직선 3연.

교본 그대로인데,

속도가 교본을 넘었다.

태산이 웃었다.

몸이 옆으로 흐려졌다.

잔상분격(殘像分擊).

왼발이 짧게 미끄러지고,

오른발이 중심축을 빼며

상체가 사각으로 빠진다.

남은 잔상 위치에

천무의 주먹이 꽂힌다.

허공.

태산 주먹이

반 박자 늦게 돌아왔다.

짧은 견제.

천무는 팔꿈치로 받아 흘렸다.

홍천무 눈이

태산 어깨와 골반을

번갈아 찍는다.

형파·감(形破·鑑) 초견.

3타 안에 읽는다.

왼쪽 페인트 후

오른쪽 전환.

0.3초 공백.

잡았다.

천무가 한 걸음 파고들며

제2식·절(截)로

태산의 복부선을 끊어냈다.

탁.

천무는 끊은 팔을 바로 회전시켰다.

제3식·전(轉).

축을 바꾸며 측면으로 돌아

태산 갈비선을 노린다.

휙.

태산은 상체를 접어 피한 뒤

팔뚝으로 밀어냈다.

힘으로 밀어낸 동작.

정교하진 않은데

거리엔 정확했다.

천무가 뒤로 반 걸음 빠지며

제6식·산(散) 난타로 리듬을 깼다.

왼쪽 어깨.

오른쪽 옆구리.

턱 밑 견제.

짧은 세 타가

연속으로 박힌다.

툭.

탁.

턱.

태산이 숨을 짧게 뱉었다.

큰 데미지는 아니다.

그런데 눈빛이 조금 밝아졌다.

"오.

좋네, 후배."

태산이 입술 안쪽을

짧게 씹었다.

읽혔네.

근데 이건 좋다.

읽히는 순간부터가

진짜 스파링이거든.

관중석에서

낮은 탄성이 터졌다.

"천무가 읽는다!"

"태산 선배 동작을

벌써 쫓아?"

은명이 턱을 괴었다.

"읽는 속도는

천무가 빠르네."

"근데 저 형은

읽혔다는 걸 알면

판 자체를 바꿔."

태산이 왼발을 뒤로 빼며

호흡 박자를 의도적으로 틀었다.

둘, 셋, 하나.

정상 리듬을 깨는 박자.

천무가 눈을 좁혔다.

패턴이 아니다.

패턴을 깨는 패턴이다.

태산 상체가 한번 꺼졌다가

반대로 솟는다.

잔상분격 두 번째 전개.

이번엔 단순 회피가 아니었다.

사각으로 빠지며

어깨로 중심을 밀어

천무 발목 축을 흔든다.

툭.

천무가 균형을 잃기 전에

제3식·전으로 축을 회수했다.

회전 반동으로 하단을 찌른다.

태산 종아리에 짧은 타격.

탁.

태산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와, 진짜 꼼꼼하다.

네 주먹."

천무는 대답 대신

가드 높이를 한 칸 올렸다.

형파·감이 계속 돌고 있었다.

오른어깨 선행.

왼발 반박자.

근데 박자가 고정되지 않는다.

읽기 어렵다.

아니, 읽히지 않게 만든다.

그때 남궁현이

관전석 쪽으로 한마디 던졌다.

"봐라.

정석은 천무가 위.

난전 문법은 태산이 위다."

1학년 학생 하나가

무사에게 작게 물었다.

"선도부 대표,

누가 더 강합니까?"

무사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지금은 선배.

하지만 후배가 배울 속도는

이미 선배급입니다."

천무가 다시 들어왔다.

제1식·쇄 한 번,

제6식·산 두 번,

다시 제2식·절.

직선과 난타를 섞어

태산 선택지를 줄인다.

태산은 팔을 맞대며

한 걸음씩 뒤로 빠졌다.

물러나는 듯 보였는데,

발끝 각도는 계속 정면.

은명이 중얼거렸다.

"후퇴가 아니라

유도네."

카이가 눈을 크게 떴다.

"저 형, 링 모서리로

끌고 가려는 거야?"

은명이 고개를 저었다.

"반대야.

천무를 중앙에 묶어두고

가속 공간을 만드는 중."

다음 순간,

태산 발뒤꿈치가

매트를 깊게 긁었다.

폭진풍각(暴震風脚).

지면이 둔탁하게 울리고,

분진이 반원으로 치솟았다.

쿵.

시야가 흐려졌다.

먼지와 기류가

링 중앙을 덮는다.

태산 그림자가

먼지 속에서 튀어나왔다.

직선잠입.

돌아가지 않는다.

가장 짧은 길로

정면을 뚫는다.

천무는 물러서지 않았다.

철권무영·연(鐵拳無影·鍊).

호흡이 아래로 내려가고,

내력이 양 전완으로 모인다.

피부 아래 기공이 응결하며

주먹과 팔뚝이 단단해졌다.

철권.

철완.

정면 충돌.

발.

골반.

허리.

어깨.

주먹.

태산의 체중이

연쇄로 실리고,

천무의 경화된 팔이

그 출력을 받아낸다.

꽝.

충격파가 퍼지자

링 바닥에 방사형 균열이 번졌다.

관중석 발밑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바닥 갈라졌다!"

"저게 수업이냐?"

리오가 벌떡 일어났다.

"와아, 이건

진짜 경기다!"

올가가 리오 어깨를 눌러 앉혔다.

"앉아.

진동 때문에 네가 먼저 넘어진다."

남궁현이 팔짱을 낀 채

낮게 중얼거렸다.

"읽는 건 천무가 빠르다."

"버티는 건

태산이 위지."

은명이 그 말을 들으며

시선을 링 바닥으로 내렸다.

균열 중심이

미세하게 태산 쪽으로

덜 이동해 있다.

충격을 받아내는 쪽보다

밀어넣는 쪽의 중심이

조금 더 안정적이라는 뜻.

은명이 입 안으로

짧게 숨을 삼켰다.

……저게 체질의 버팀목이구나.

충돌 뒤,

천무는 반 걸음 밀렸고

태산은 제자리에서

손목을 한 번 털었다.

미세한 떨림.

태산은 그걸

못 본 척했다.

천무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전완 안쪽이 뜨겁게 부어오른다.

내력이 빠르게 줄어든다.

읽힌다.

그런데 무너뜨릴 출력이 부족하다.

이게 금강불괴의 차이인가.

천무가 다시 접근했다.

이번엔 유인.

제7식·인(引)으로

왼쪽 빈틈을 일부러 열고,

태산 반응을 끌어낸다.

태산이 왼쪽으로

체중을 싣는 척했다.

천무 눈동자가 그쪽으로 붙는 순간,

태산 발끝이 반대로 틀어졌다.

잔상 한 겹.

천무는 함정이란 걸

0.2초 만에 눈치챘다.

제2식·절로 궤도를 끊고

바로 제4식·벽으로 전환한다.

정석 전환이 빨랐다.

빠른데도 늦었다.

태산은 읽힌 페인트를

아예 미끼로 던진 뒤

진짜 타이밍을 늦게 꺼냈다.

태산은 낚인 척하지 않았다.

아예 가까이 들어가

거리 자체를 짓눌렀다.

가슴과 가슴이 닿을 듯한

근접 1.5미터.

태산 오른주먹이

짧은 궤도로 튀었다.

천무가 제4식·벽(壁)으로

양팔을 교차해 받는다.

퍽.

또 한 번.

퍽.

세 번째는

더 짧고 더 무거웠다.

발이 매트를 박찼고,

골반이 축을 밀며,

허리가 접혔다 펴진다.

어깨가 회전하고,

주먹 끝이 선을 지웠다.

쾅.

천무 발뒤꿈치가

링 선을 긁었다.

밀려나는 와중에도

눈은 태산 어깨를 놓치지 않았다.

아직 끝 아냐.

천무가 이를 악물고

제5식·추(追) 보법으로

밀린 발을 다시 전진 축으로 바꿨다.

물러난 만큼 따라붙는 추격.

태산 눈에

짧은 감탄이 스쳤다.

"좋다."

"끝까지 오네."

천무가 마지막으로

철권무영을 끌어올렸다.

기공이 전완을 타고 오르다

중간에서 한번 끊긴다.

출력이 붙지 않는다.

그 찰나,

태산이 압박을 한 번 더 밀었다.

직권은 짧았고

어깨는 무거웠다.

천무 자세가 흔들렸다.

제4식·벽을 유지한 채

버티려 했지만,

오른무릎이 먼저 무너졌다.

천무가 뒤로 미끄러졌다.

한 발, 두 발,

세 번째에서 버텼다.

그러나 오른무릎이

매트에 닿았다.

쿡.

한쪽 무릎.

양팔은 아직 교차 자세.

무너지진 않았는데,

버티는 데 필요한 호흡이 끊겼다.

남궁현의 목소리가

짧게 떨어졌다.

"여기까지."

"전태산 판정승."

기록 담당 2학년이

태블릿에 판정을 입력했다.

전태산 승 / 유효타 우세 / 상대 무릎

입력창엔 한 줄이 더 붙었다.

양측 과부하 징후 있음.

추가 무리 금지

하지만 태산과 천무는

둘 다 그 줄을 못 본 척했다.

태산은 손을 쥐었다 폈다.

두 번째 마디가

의식적으로 늦게 접힌다.

천무는 팔을 내릴 때마다

전완 안쪽이 타는 듯했지만

표정은 끝까지 무표정이었다.

강한 척이 아니다.

둘 다 진짜로

강해지고 싶은 쪽의 표정이었다.

환호가 먼저 터졌다가,

이상하게 곧 잦아들었다.

태산 얼굴이

평소 승리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웃고는 있는데,

그 웃음이 절반쯤 비어 있었다.

이기긴 했다.

근데 개운하지가 않네.

뭔가 남는다.

천무가 천천히 일어났다.

팔을 내리자

전완 안쪽이 붉게 부어 있다.

태산도 손을 펴려다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둘 다 멀쩡한 척했다.

스파링이 끝난 뒤,

훈련장 소음이 다시 커졌지만

벤치 쪽만 묘하게 조용했다.

태산이 먼저 냉장고에서

물병 두 개를 뽑아왔다.

한 병을 천무에게 건넨다.

"잘 싸웠다, 후배."

천무가 물병을 받고

짧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배."

뚜껑을 돌리는 소리만

짧게 났다.

태산은 벤치 등에 기대

숨을 고르는 척,

천무의 전완 상태를 슬쩍 확인했다.

예의 바른데 날카롭다.

이 타입, 오래 간다.

다음도 붙겠네.

천무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시선을 정면에 둔 채 말했다.

"선배."

"실례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태산이 턱으로 신호했다.

"해."

천무가 숨을 고르고

또렷하게 문장을 꺼냈다.

"선배는 체질로

이겼습니다."

"기술로는

제가 위였습니다."

벤치 주변 공기가

순간 멈췄다.

가까이 있던 1학년 둘이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와…

저걸 직접 말해?"

"상대가 태산 선배인데?"

리오가 멀리서 입을 벌렸고,

카이는 휘파람을 삼켰다.

태산은 물병을 내려놓았다.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서다가

곧 풀렸다.

화나는 건 말투가 아니다.

정확해서 아프다.

맞는 말이니까 더 아프다.

태산이 천무를 바라보며

천천히 웃었다.

"……그래."

"맞는 말이네."

"다음엔 기술로도

이겨볼게."

천무가 망설이다가

한 문장을 더 붙였다.

"2라운드 첫 충돌에서,

선배 오른어깨가

0.1초 먼저 열렸습니다."

"그 공백을

제가 끝까지 못 찔렀습니다.

그게 제 패배입니다."

태산이 눈썹을 올렸다.

"와,

나중엔 초 단위로

혼내겠네."

천무가 고개를 저었다.

"혼내려는 게 아닙니다.

다음에 이기려는 겁니다."

태산 웃음이 조금 커졌다.

"좋다.

그게 라이벌이지."

천무가 물병을 내려놓고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가 방금 말한

'기술로 이긴다'는 말."

"허세라면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태산이 코웃음을 쳤다.

"허세 안 해.

귀찮거든."

"나 진짜로

배울 거다."

"그리고 다음엔

네가 말한 0.1초,

그거 없애서 올게."

천무는 그 문장을

한참 받아들이다가

짧게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저도

그 0.1초가 없어진 선배를

읽어내 보이겠습니다."

벤치 뒤에서 듣고 있던

1학년 하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건 싸움 끝난 대화가 아니라

다음 싸움 예약이네."

옆 학생이 팔꿈치로 찔렀다.

"쉿.

저런 약속은

크게 들으면 더 무섭다."

태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천무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음엔

오늘보다 길게 붙자."

천무가 그 손을 잡았다.

손바닥 온도가 달랐다.

태산 쪽은 뜨겁고,

천무 쪽은 단단했다.

"네.

다음에는

끝까지 읽겠습니다."

천무 눈이

아주 짧게 흔들렸다.

분노를 예상했다.

비웃음을 예상했다.

근데 돌아온 건

인정이었다.

천무가 다시 머리를 숙였다.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

태산이 손등으로

천무 어깨를 가볍게 쳤다.

"좋아.

다음엔 더 세게 와."

그때 남궁현이

벤치 앞에 섰다.

그림자부터 무거웠다.

"태산."

"이긴 건 사실이다."

"그런데 배울 건

지금부터다."

태산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면으로 고개를 숙였다.

"...네."

"다음엔 기술로도

이기죠."

남궁현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됐고, 다시."

"내일부터

제1식·쇄 교정 천 회.

힘 반으로."

"출력으로 때우면

처음부터다."

남궁현이 발걸음을 멈추고

반쯤 돌아봤다.

"그리고 천무."

천무가 즉시 일어나

자세를 바로 세웠다.

"네."

"너는 읽는 건 빠르다."

"근데 읽은 다음에

망설인다."

"정석은 망설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천무가 짧게 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남궁현이 두 사람을

같은 눈높이로 훑었다.

"둘 다 과제 같다."

"태산은 문법을 채워.

천무는 결단을 채워."

"다음 스파링 때

지금 얼굴 들고 오지 마."

"다음 얼굴로 와."

태산이 헛웃음을 뱉었다.

"사부님,

그건 거의 고문인데."

"그래서 수련이다."

남궁현은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태산은 남궁현 등을 보다가,

빈 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이 간 바닥.

먼지가 아직 가라앉는 중.

손을 쥐었다.

힘은 있다.

근데 기술이 비어 있다.

도망칠 말이 없다.

이번엔 진짜로 배우자.

웃기만 해선 못 넘는다.

관중석 끝에서

은명이 천천히 일어났다.

태산 눈과 시선이 잠깐 마주친다.

은명이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기술.

태산도 입모양으로 답했다.

알아.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사람들이 흩어지는 사이,

무사 이브라힘이 천무 곁에 와

붕대와 냉찜질 팩을 내밀었다.

"전완 부종입니다.

오늘은 경화 수련 금지."

천무가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

무사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자가 무리하면

약한 자가 따라 무리합니다."

"선배든 후배든,

회복도 규율입니다."

천무가 조용히 붕대를 감는 동안,

태산은 그 장면을 한 번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저 후배들,

생각보다 좋네.

은명이 관중석 계단을 내려와

태산 옆에 섰다.

둘은 나란히 링을 봤다.

금이 간 선 위로

분진이 느리게 가라앉는다.

은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겼네."

태산이 짧게 웃었다.

"응.

근데 숙제가 더 커졌다."

은명이 물병 라벨을

손톱으로 긁으며 말했다.

"좋은 승리네.

상대가 찔러준 약점이

정확할수록."

태산이 고개를 기울였다.

"너도 요즘

비슷한 거 있지?"

은명이 잠깐 멈췄다.

천기 질문이 스쳐갔지만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있어."

"근데 오늘은

네 이야기 먼저."

태산이 씩 웃었다.

"그럼 먼저 배울게."

"그리고 네 것도

나중에 듣지."

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

둘은 주먹을 부딪치지 않았다.

그냥 같은 링을 봤다.

그걸로 충분했다.

훈련장 문이 하나둘 닫히고,

불빛이 반 칸씩 줄어들었다.

태산은 마지막까지

빈 링을 한 번 더 봤다.

아까 충돌 지점에

가느다란 금이 남아 있었다.

태산은 그 선을 눈으로 따라가며

오늘 말을 하나씩 떠올렸다.

체질로 이겼습니다.

기술로는 제가 위였습니다.

태산, 기술을 배워야 한다.

하산 선배도 비슷한 말을 했고,

남궁 사부도 같은 말을 했고,

이제 후배도 거길 찔렀다.

같은 말이 세 번 반복되면

핑계는 끝이다.

태산이 주먹을 꽉 쥐었다.

손등 힘줄이 불끈 섰다가

천천히 풀렸다.

좋아.

인정하지 뭐.

배우면 되는 거잖아.

태산은 손바닥을 펴서

금 가루처럼 묻은 분진을 털었다.

오늘 남은 건 승리 기록보다

손끝 떨림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진 않았다.

찔렸고,

아팠고,

그래서 방향이 또렷해졌다.

힘으로만 이긴 날은

오래 안 간다.

문법으로도 이겨야

다음 전장이 열린다.

오늘 링 위에 남은 금은

바닥 균열이 아니라

내 습관의 모양이었다.

그 모양을

내 손으로 고친다.

다음 스파링 전까지.

후배가 던진 한 문장이

오늘 수련표의 첫 줄이 됐다.

피할 이유는 없다.

배울 이유는 충분하다.

오늘 패턴은 오늘 끝낸다.

다음은 기술이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간다.

그리고 걸었다.

다음 수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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