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절문은 충성 서약이 되었다
거절문이 미로가 됐다.
나는 무도회장 한가운데서 깃펜을 들고 있었다.
앞에는 종이.
옆에는 예절서.
뒤에는 황실 전령.
그리고 주변에는 다섯 장미.
정확히 말하면, 다섯 장미를 든 다섯 사람.
아이리스.
릴리아.
레오나.
비앙카.
세라피나.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무도회장 사람들도 보고 있었다.
나는 종이를 보고 싶었다.
종이는 적어도 눈빛이 없다.
하지만 종이도 안전하지 않았다.
내가 쓴 거절문이 충성 서약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니.
글자도 내 편이 아니다.
예절서가 빨갛게 빛났다.
[황실의 크나큰 배려와 보호에 깊이 감사]
[막중한 역할을 감당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미로 오독 가능]
나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럼 감사를 빼겠습니다.”
예절서가 바로 팔락였다.
[황실 배려에 대한 감사 생략은 무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럼 넣으면요?”
[충성 서약으로 오독 가능]
“빼도 안 되고 넣어도 안 됩니까?”
[표현 조정이 필요합니다.]
표현 조정.
그 말은 작가나 서기관에게나 필요한 말이다.
나는 그냥 안 하겠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 세계는 ‘안 하겠습니다’를 너무 싫어한다.
비앙카가 옆에서 고개를 기울였다.
“재밌네.”
“재미없습니다.”
“거절문이 양자 상태야. 감사하면 충성, 감사 안 하면 무례.”
“양자 상태로 만들지 마십시오.”
“이미 됐어.”
또 이미.
나는 이제 그 단어를 들으면 몸이 먼저 지친다.
비앙카는 내 거절문을 보며 손끝으로 허공에 작은 선을 그렸다.
보랏빛 마력이 글자 위를 스치려 했다.
나는 바로 종이를 끌어안았다.
“만지지 마십시오.”
“안 만졌어. 보기만 했어.”
“마탑에서 보기만 한다는 말은 믿기 어렵습니다.”
“많이 배웠네.”
“배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비앙카는 웃었다.
그리고 더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근데 진짜야. 이 문장, 반응이 양쪽으로 갈라져.”
“갈라지지 마십시오.”
“한쪽은 거절. 한쪽은 황실 명예를 위한 겸양.”
“겸양도 하지 않겠습니다.”
“겸양 안 하면 무례.”
“그럼 저는 대체 뭘 해야 합니까?”
비앙카는 잠깐 생각했다.
그 잠깐이 무서웠다.
“아무 말도 안 하기?”
예절서가 팔락였다.
[공식 질의에 침묵은 결례입니다.]
“봤지?”
비앙카가 말했다.
“재밌어.”
“저는 지금 실험체가 아닙니다.”
“아직은.”
“아직은도 금지입니다.”
카르덴이 노트를 들었다.
“루카스 경.”
“적지 마십시오.”
“아직 안 적었습니다.”
“적을 표정입니다.”
“거절문이 충성 서약이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드문 걸 적지 마십시오.”
“드물어서 적어야 합니다.”
“그 논리 금지입니다.”
카르덴은 아주 아쉬운 얼굴로 깃펜을 멈췄다.
멈췄다.
적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눈으로 이미 적었다.
세라피나는 거절문을 조용히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빠르게 움직였다.
황실식 계산.
나는 그 눈빛을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모르고 싶었는데.
“루카스 님.”
세라피나가 말했다.
“문장을 조금 다듬으면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요?”
“감사는 유지하되, 임명 수락 의사와 분리하는 방식으로요.”
“그게 가능한 말입니까?”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는 말도 위험하다.
대체로 가능하면 더 복잡해진다.
나는 종이를 다시 봤다.
[존경하는 황실에 아룁니다.]
이건 괜찮다.
아마도.
[소인은 아직 사교관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감당할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예절서가 살짝 빛났다.
나는 바로 손을 멈췄다.
“이것도 문제입니까?”
[자격이 부족하다는 표현은 향후 자격을 갖추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아니.”
나는 머리를 감싸고 싶었다.
“부족하다고 하면 부족한 걸로 끝나야죠.”
[겸손 표현은 성장 의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겸손도 못 합니까?”
[황실 문맥에서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황실 문맥.
정말 싫다.
황실 문맥에서는 숨도 다르게 쉬어야 할 것 같다.
아이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부족하다는 말보다, 현재 직무와 맞지 않는다고 쓰는 편이 낫겠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바로 적으려 했다.
세라피나가 말했다.
“다만 황실은 맞지 않는 사람에게 직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나는 멈췄다.
“그러면 황실 판단이 틀렸다는 말이 됩니까?”
“그렇게 읽힐 수 있습니다.”
나는 깃펜을 내려놓았다.
또 막혔다.
릴리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건강상의 이유는요?”
나는 릴리아를 봤다.
천사 같은 제안이다.
하지만 예절서가 바로 팔락였다.
[공식 건강 사유는 진단과 회복 후 재임명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회복 후 재임명.”
나는 중얼거렸다.
“안 아픈 게 낫네요.”
릴리아가 미안한 얼굴을 했다.
“죄송해요.”
“성녀님 잘못 아닙니다. 제 인생 구조가 이상한 겁니다.”
레오나가 짧게 말했다.
“명령 거부라고 쓰면 되나.”
무도회장 공기가 얼었다.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레오나는 진지했다.
“명확하다.”
“너무 명확합니다.”
“명확한 게 낫지 않나.”
“황실 앞에서는 명확하면 위험합니다.”
세라피나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나는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다.
나도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맞는 말이다.
비앙카가 손을 들었다.
“그럼 연구 중이라 못 한다고 해.”
“그건 비앙카 님에게 묶입니다.”
“나쁘지 않은데?”
“나쁩니다.”
“공동연구자니까.”
“아직도 그 말입니까?”
“응.”
나는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하면 임명장이 남는다.
포기하지 않으면 거절문이 충성 서약이 된다.
둘 다 싫다.
이제 싫다는 말도 지친다.
세라피나는 나를 조용히 보고 있었다.
“루카스 님.”
“예.”
“거절 의사를 분명히 하시되, 황실의 명예를 세우는 표현은 피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황실의 명예를 세우면 왜 안 됩니까?”
“황녀의 명예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무도회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세라피나를 봤다.
세라피나는 미소를 유지했다.
하지만 귀 끝이 아주 조금 붉었다.
아.
이건 더 위험하다.
세라피나가 붉어지는 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좋은 먹잇감이다.
사교계는 그런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누군가 부채 뒤에서 눈을 크게 떴고,
누군가는 입가를 가렸다.
아니.
보지 마십시오.
그건 황실식 조명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조명 때문에 붉어질 수 있다.
아마도.
나는 그런 말도 못 했다.
말하면 더 커진다.
세라피나는 아주 작게 헛기침을 했다.
“문장 이야기입니다.”
“예. 문장 이야기입니다.”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빨랐다.
빨라서 더 수상해졌을 것이다.
“황녀의 명예를 위해 봉사.”
비앙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바로 말했다.
“반복하지 마십시오.”
카르덴의 깃펜이 움직였다.
“적지 마십시오!”
“중요합니다.”
“중요해서 적지 마십시오!”
카르덴은 멈추려 했다.
정확히는 멈추는 척했다.
깃펜 끝이 종이 위에서 아주 조금 움직였다.
나는 봤다.
“방금 적었죠?”
“점만 찍었습니다.”
“점도 기록입니다.”
“그렇군요.”
“깨닫지 말고 지우십시오.”
늦었다.
또 늦었다.
무도회장 앞줄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다.
황녀의 명예.
봉사 의지.
두 단어가 붙으면 안 된다.
붙는 순간 큰일이다.
나는 종이를 찢고 싶었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공식 거절문 훼손은 추가 결례입니다.]
“생각만 했습니다.”
[표정으로 드러났습니다.]
“표정도 검열합니까?”
책은 조용했다.
대답 안 하는 게 더 얄밉다.
나는 새 종이를 달라고 하려다가 멈췄다.
새 종이도 위험하다.
종이가 많아지면 기록도 많아진다.
기록이 많아지면 해석도 많아진다.
해석이 많아지면 나는 더 묶인다.
정말 무서운 연쇄다.
나는 종이 위의 문장들을 하나씩 다시 봤다.
존경.
감사.
부족.
사양.
전부 예쁜 말이었다.
예쁜 말이라서 문제였다.
예쁜 말은 사람을 안심시키고,
안심한 사람은 마음대로 해석한다.
차라리 못생긴 문장이 낫다.
나는 못생긴 문장을 떠올렸다.
[싫습니다. 안 합니다.]
간결하다.
정확하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살아 있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황실에 대한 노골적 거부는 중대한 결례입니다.]
“생각만 했다고.”
[표정으로 드러났습니다.]
“내 표정 좀 그만 봐.”
책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내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싶었다.
그것도 결례일까 봐 못 했다.
이제 얼굴도 마음대로 못 쓴다.
카르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루카스 경, 문장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쓰시면 어떻습니까?”
“직접적이면 무례라면서요.”
“직접적이되 예를 갖추는 방식입니다.”
“그건 무엇입니까?”
카르덴은 잠깐 생각했다.
“검을 뽑지 않고 결투를 거절하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비유가 위험합니다.”
“하지만 효과적입니다.”
“황실에 결투 비유를 가져오지 마십시오.”
카르덴은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비유도 적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모른 척했다.
세라피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직접적이되 예를 갖추는 건 가능합니다.”
“그럼 황녀님이 도와주시면 안 되는 상황이죠.”
“예.”
세라피나가 인정했다.
“제가 도와드리면 제 뜻이 들어간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황실은 왜 이렇게 복잡합니까?”
“오래됐으니까요.”
“오래된 건 다 복잡합니까?”
비앙카가 끼어들었다.
“대체로.”
“마탑도요?”
“응.”
“그래서 그렇군요.”
“방금 좀 무례했어.”
예절서가 팔락였다.
[사실 확인성 발언입니다.]
비앙카가 눈을 크게 떴다.
“책이 내 편을 안 들어?”
“드디어 좋은 일도 생기네요.”
나는 아주 작게 말했다.
비앙카는 웃었다.
그 웃음 덕분에 긴장이 아주 조금 풀렸다.
정말 조금.
한숨만큼.
세라피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제가 문장을 하나 제안해도 될까요?”
“황녀님이요?”
“예.”
“황녀님이 제 거절문을 도와주시면, 그건 더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세라피나는 잠깐 멈췄다.
정곡을 찔렀다.
나도 이제 조금 안다.
황실식 위험을.
“그럴 수 있겠군요.”
“그렇죠?”
“하지만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말은 작았다.
장난도 아니고,
황실식 계산도 아니었다.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세라피나가 처음으로 조금 곤란해 보였다.
나는 그 얼굴이 더 곤란했다.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거절문을 쓰는 건 진짜 어렵다.
나는 다시 깃펜을 들었다.
“그럼 이렇게 쓰겠습니다.”
모두가 나를 봤다.
나는 신중하게 적었다.
[황실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리나, 소인은 현재 임시 사교관 직무를 맡을 의사가 없음을 정중히 밝힙니다.]
예절서가 빛났다.
빨간색은 아니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노란색.
[주의]
“주의면 괜찮은 겁니까?”
[황실 배려에 감사하되 직무 의사 없음 명시. 거절 의사 확인 가능.]
좋다.
드디어.
무도회장 공기가 아주 조금 풀렸다.
누군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랬다.
살았다.
아마도.
나는 그 단어를 믿고 싶었다.
노란색이면 괜찮다.
빨간색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예절서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
나는 그걸 봤다.
좋은 징조가 아니다.
책이 닫히지 않으면, 보통 뒤에 더 있다.
[단, ‘황실의 배려’ 표현은 황실 호의 인정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는 감수하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세라피나가 나를 보았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괜찮지는 않습니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더 나빠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예절서가 다시 빛났다.
이번에는 빨간색이었다.
[경고]
나는 얼어붙었다.
“또 왜.”
[‘더 나빠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발언은 황실 보호를 차선으로 수락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무도회장이 조용해졌다.
나는 방금 내 입을 원망했다.
말.
말이 문제다.
글도 문제고,
표정도 문제고,
이제 즉흥 발언도 문제다.
비앙카가 거의 감탄했다.
“거절문은 어떻게 해도 황실 호감도가 올라가네.”
“호감도 올리지 마십시오.”
“내가 올리는 게 아니야.”
세라피나는 붉은 얼굴을 숨기듯 살짝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황실 전령은 내 거절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중한 충심으로 확인했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바로 말했다.
“거절입니다.”
전령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겸양의 뜻까지 확인했습니다.”
“아닙니다!”
내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황실 전령 앞 고성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주의만 하겠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소리치면 또 무례.
조용히 말하면 겸양.
이제 목소리 크기까지 덫이다.
전령은 흔들리지 않았다.
황실 전령은 사람을 화나게 하는 재능이 있다.
정확히는, 화내도 소용없게 만드는 재능이다.
무도회장이 술렁였다.
황실은 루카스를 더 마음에 들어 한다.
그 말이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전령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황실 시종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들은 내 거절을 거절로 듣지 않았다.
겸양.
충심.
황녀의 명예.
봉사 의지.
그 단어들이 보이지 않는 꽃가루처럼 퍼지고 있었다.
나는 재채기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채기도 결례일 것 같았다.
세라피나는 작게 말했다.
“잠깐만요. 이건 아직 확정된 해석이 아닙니다.”
“그 말은 좋습니다.”
나는 바로 말했다.
“그렇게 크게 말해 주세요.”
세라피나는 나를 보았다.
“황실 앞에서 공식적으로요?”
나는 멈췄다.
공식적으로 말하면 공식 해명이 된다.
공식 해명이 되면 또 기록된다.
기록되면 해석된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세라피나는 그걸 보고 아주 작게 웃었다.
“이제 아시겠지요.”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알게 됐다.
황실식 말하기는 체스보다 어렵다.
한 수를 두면 다음 세 수가 전부 덫이다.
전령은 붉은 봉투 아래에서 또 다른 작은 봉투를 꺼냈다.
나는 그걸 보고 뒤로 물러났다.
반사적이었다.
사람은 같은 날 봉투를 너무 많이 받으면 몸이 먼저 피한다.
초대장.
임명장.
그리고 이제 작은 봉투.
봉투가 작아졌다고 위험도 작아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작을수록 더 위험할 때가 있다.
중요한 명령은 가끔 작게 접혀 온다.
나는 그걸 오늘 배웠다.
배우고 싶지 않았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황실 전령 앞 후퇴는 결례입니다.]
“알아.”
나는 거의 울듯이 말했다.
전령은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루카스 에버렛 님을 직접 부르십니다.”
무도회장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나는 작은 봉투를 바라봤다.
직접.
황제.
부른다.
세 단어가 머릿속에서 따로 굴렀다.
그리고 전부 나쁜 방향으로 붙었다.
나는 세라피나를 봤다.
세라피나도 이번에는 바로 웃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황녀가 장난을 멈추면, 그건 진짜 큰일이라는 뜻이다.
아이리스는 조용히 입술을 다물었다.
릴리아는 손에 든 장미를 더 꼭 쥐었다.
레오나는 전령을 보고 있었다.
비앙카는 처음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르덴도 노트를 들지 않았다.
모두가 멈췄다.
나만 도망치고 싶었다.
예절서가 아주 작게 팔락였다.
[황제 폐하의 호출에 응답하십시오.]
나는 책을 내려다봤다.
“너는 정말 마지막까지.”
책은 조용했다.
전령은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정확히는 뻗지 못했다.
손 하나 움직이는 것도 결정처럼 보이는 밤이었다.
손을 내밀면 수락.
늦게 내밀면 겸양.
안 내밀면 결례.
세 가지 길이 전부 위험했다.
나는 손가락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예절서가 팔락였다.
[호출장 수령을 지연하지 마십시오.]
“지연이 아니라 신중입니다.”
[지연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보일 수 있다.
이 말도 이제 싫다.
이건 초대장이 아니다.
임명장도 아니다.
황제의 직접 호출이다.
종이 한 장이 아니라, 궁전 문 전체가 내 앞에 내려온 느낌이었다.
전령이 다시 말했다.
“즉시 알현 준비를 하라는 명입니다.”
즉시.
그 단어까지 붙었다.
나는 아주 작게 말했다.
“오늘 무도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요.”
세라피나가 낮게 말했다.
“황제 폐하의 호출은 무도회보다 우선합니다.”
그렇겠지.
당연히 그렇겠지.
나는 당연한 게 싫다.
당연한 건 늘 나를 끌고 간다.
황제가 루카스를 직접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