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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단검 300개가 1,360만 원이 됐다 일러스트

# 버려진 단검 300개가 1,360만 원이 됐다

“정산 끝! 회식하러 가자고!”

파티장 민도혁의 외침에 환호성이 터졌다. 하급 고블린 둥지 공략이 막 끝난 참이었다. 피와 내장, 시큼한 오물의 냄새가 동굴을 채웠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승리자였다.

강유찬은 그들 중 하나가 아니었다.

그는 파티의 정식 멤버가 아닌, 일당 15만 원짜리 F급 짐꾼이었다. 전투가 끝나고 모두가 전리품을 나눌 때, 유찬의 일은 시작됐다. 그는 헌터들이 벗어 던진 오염된 방호구나 부서진 장비를 챙겼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고블린의 귀나 이빨 같은 부산물을 자루에 쓸어 담았다.

“야, 강유찬. 저것도 네 담당이야.”

민도혁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시커먼 단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고블린들이 쓰던 조잡한 무기였다. 어림잡아 300개는 족히 넘어 보였다.

“폐기 전 기록 남겼습니다. 수량 약 300개. 오염도 심각. 현장 폐기 처리 요망.”

파티의 서포터가 태블릿에 몇 자 입력하더니 유찬에게 확인 서명을 요청했다. 유찬은 익숙하게 서명했다.

“이거 다 버립니까?”

“그럼 저걸 들고 갈까? 운송비에, 협회 가서 오염 검사받고, 보관 창고 빌리고, 감정 맡기는 비용이 더 나오겠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책임은 네가 지고 여기서 처리해. 뒤처리 비용은 일당에 포함된 거 알지?”

민도혁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런 저급 폐기품은 정식으로 처리하려면 돈이 더 들었다. 그래서 짐꾼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현장에 버리고 가는 게 관행이었다. 만약 나중에 환경 오염 문제라도 터지면, 최종 처리 기록에 서명한 짐꾼이 모든 걸 뒤집어썼다.

“자, 가자! 오늘은 내가 쏜다!”

파티원들이 왁자지껄하게 동굴 출구를 향해 멀어졌다. 유찬은 홀로 남아 단검 더미를 바라봤다. 썩은 쇠 냄새와 함께 고블린의 저주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걸 언제 다 수습한단 말인가.

그때였다.

끼이이익…!

동굴 안쪽, 어둠이 짙게 깔린 통로에서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유찬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티원들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통로였다.

“크아아아!”

일반 고블린보다 두 배는 큰 덩치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붉은 눈과 떡 벌어진 어깨. 놓쳐버린 고블린 투사였다. 놈의 손에는 사람 머리만 한 철퇴가 들려 있었다.

젠장.

유찬은 F급이었다. 전투 능력은 전무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으악!”

몸을 돌리는 순간, 발밑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동시에 등 뒤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고블린 투사가 휘두른 철퇴가 벽을 강타하며 파편을 튀겼다. 만약 넘어지지 않았다면 머리가 깨졌을 터였다.

하지만 운은 거기까지였다. 넘어지면서 바닥의 날카로운 돌에 허벅지가 깊게 찢어졌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피가 왈칵 솟았다. 다리를 절뚝이며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블린 투사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죽음의 그림자가 유찬을 덮었다.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무기라고는 버려진 단검 더미뿐. 저걸 던져봤자 놈의 두꺼운 가죽에 흠집도 내지 못할 것이다.

시선이 바닥의 작은 틈새에 꽂혔다. 그곳에 젤리처럼 생긴 작은 생명체가 있었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슬라임. 하지만 상태가 이상했다. 몸체는 군데군데 녹아내린 것처럼 흐물거렸고, 색깔도 탁했다. 병들고 버려진 하급 슬라임이었다.

슬라임은 유찬의 시선을 느꼈는지 미세하게 떨었다. 그 순간, 유찬의 눈앞에 푸른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계약 가능 대상 감지]`

`[개체: 버려진 하급 슬라임]`

`[상태: 심각한 영양실조, 산성 중독]`

`[계약하시겠습니까?]`

`[YES / NO]`

이런 상황에 계약? 유찬은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고블린 투사는 이미 철퇴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찢어진 허벅지의 고통 속에서, 유찬은 떨리는 손을 뻗어 허공의 ‘YES’ 버튼을 눌렀다.

선택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미약한 연결감이 흘러들었다. 마치 가느다란 실이 이어진 듯한 감각.

고블린의 철퇴가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피할 수 없었다.

‘저놈 발!’

유찬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마음속으로 외쳤다. 명령이라기보다 절규에 가까웠다.

그 순간, 바닥에 붙어 있던 작은 슬라임이 몸을 꿈틀했다. 놈은 아주 작은 점액 덩어리를 고블린 투사의 발 앞으로 토해냈다.

투둑.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작은 소리. 하지만 육중한 철퇴를 휘두르며 발을 내딛던 고블린 투사는 정확히 그 점액을 밟았다.

쭈르륵!

“크엑?”

균형을 잃은 거구가 순간 휘청였다. 포포가 만든 미끄러운 한 뼘 때문에, 철퇴의 궤적이 살짝 빗나가 유찬의 어깨 옆 바닥을 강타했다.

콰앙!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유찬은 그 반동으로 나가떨어졌다. 단 한 뼘 차이로 죽음을 피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이쪽이다! 잔챙이 하나 더 있다!”

동굴 밖에서 파티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찬이 비명을 지르지 못했던 게 오히려 시간을 벌어준 셈이었다. 뒤늦게 남은 위협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고블린 투사는 당황하며 파티원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짧은 틈이면 유찬이 몸을 피하기엔 충분했다.

***

“다친 데는 괜찮나? F급치고 운 좋았다.”

민도혁은 별일 아니라는 듯 툭 내뱉고는 다시 돌아섰다. 추가로 나온 고블린 투사의 전리품은 당연히 파티의 몫이었다. 유찬에게는 한마디 위로나 걱정조차 없었다.

유찬은 동굴 구석에 주저앉아 찢어진 허벅지를 압박했다. 가져온 응급처치 키트에서 소독약과 압박붕대를 꺼내 서투르게 상처를 감았다. 병원에 가야겠지만, 당장은 피부터 멎게 해야 했다.

한숨 돌리고 나자, 아까 그 작은 슬라임이 생각났다. 고개를 돌리니 녀석은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고블린 투사에게 밟히지 않은 게 용했다. 여전히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유찬은 절뚝거리며 다가가 녀석을 살폈다. 상태 창에 보였던 ‘산성 중독’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아까 뱉어낸 점액이 녀석에게는 무리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수통을 열어 물을 조금 따라 손바닥에 부었다. 그리고 슬라임 앞에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

슬라임은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을 할짝였다. 그러자 녀석의 몸체에서 작은 기포가 올라왔다.

뽀글.

그 모습에 유찬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포포. 네 이름은 이제부터 포포다.”

그는 중화 기능이 있는 하급 포션 패치를 꺼내 잘게 찢었다. 그리고 그 조각을 포포의 몸 위에 올려주었다. 패치가 스며들자, 포포의 탁했던 몸이 아주 조금, 아주 미세하게 맑아지는 것 같았다.

응급처치를 마친 포포는 유찬의 손바닥 위에서 얌전히 몸을 웅크렸다.

그때, 포포가 갑자기 꿈틀거리며 한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녀석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바로 버려진 단검 더미였다. 정확히는, 단검들 중 유독 푸르스름한 막이 낀 몇몇 개를 향하고 있었다.

“저게 신경 쓰여?”

유찬은 포포를 내려놓고 가장 가까운 단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시커멓게 녹슨 칼날 위로 기분 나쁜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고블린 주술의 잔재였다.

어차피 버려야 할 물건. 폐기 처리 책임을 떠안은 이상, 어떻게든 여기서 흔적을 없애야 벌금을 물지 않는다. 혹시 포포가 저걸 분해라도 할 수 있을까?

유찬은 단검을 포포 앞에 내려놓았다. 포포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단검 위로 올라가 몸으로 감쌌다. 그러자 단검이 스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치이익….

잠시 후, 단검이 있던 자리에는 시커먼 폐액 한 무더기만 남았다.

“오… 처리는 된다.”

이것만으로도 수확이었다. 이 많은 단검을 땅에 묻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유찬은 푸른 막이 낀 다른 단검을 또 가져다주었다. 포포는 이번에도 단검을 녹여버렸다.

그렇게 몇 개를 더 처리했을 때였다.

이번에도 단검을 삼킨 포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평소보다 격한 반응이었다. 유찬이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순간, 포포의 몸에서 무언가 작은 알갱이가 톡, 하고 튀어나왔다.

토독.

바닥에 떨어진 것은 새끼손톱만 한 투명한 결정이었다. 시커먼 폐액이 아닌, 맑고 영롱한 빛을 띤 고체.

“…이게 뭐지?”

유찬은 조심스럽게 결정을 집어 들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 안쪽에서는 희미한 마력이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는 푸른 막이 낀 단검만 골라 포포에게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다친 다리 때문에 멀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손이 닿는 가까운 곳의 단검들만 골라냈다.

결과는 놀라웠다. 푸른 막이 없는 단검은 여지없이 폐액이 되었지만, 푸른 막이 낀 단검 중 몇몇은 이 작은 결정을 만들어냈다. 물론 실패도 잦았다. 똑같이 푸른 막이 있어도 그냥 폐액으로 변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포포도 지쳐가는 게 눈에 보였다. 몸의 탄력이 줄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유찬은 서둘렀다. 언제 파티가 마음을 바꿔 돌아올지 몰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원래 있던 단검은 약 300개.

유찬이 앉은 자리에서 손을 뻗어 골라낸 단검은 42개.

그중 포포가 지쳐 쓰러지기 전까지 처리한 단검은 29개.

그리고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반짝이는 결정 17개였다.

***

“이, 이게 전부 저주받은 고블린 단검에서 나왔다고요?”

협회 감정소의 젊은 감정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의 앞에는 유찬이 내민 결정 17개가 놓여 있었다.

“예. 현장에서 처리하다가 나왔습니다.”

감정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스캐너를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잠시 후, 화면에 뜬 금액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일, 십, 백…….”

그는 몇 번이나 숫자를 다시 세어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찬을 바라봤다.

“이거, 정식 감정 전인데도 13,600,000원까지 나옵니다!”

1,360만 원.

유찬은 화면의 숫자를 보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밀린 월세 넉 달 치, 어머니 요양병원 본인부담금, 그리고 방금 찢어진 다리 치료비까지. 이번 달에도 미루면 바로 독촉장이 날아올 항목들이 머릿속에 줄줄이 떠올랐다. 병원 창구에서 전화가 와도, 어머니는 받지 못한다. 중환자 장기요양병동의 보호자 번호는 늘 유찬의 휴대폰 하나뿐이었다. 아직 확정된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받을 수만 있다면, 최소한 이번 달 고지서들은 막을 수 있었다.

“대단하군요. 보통 폐기되는 장비에서 이런 고순도 결정이 나오는 건 정말 드문 일인데….”

감정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다가도,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다만, 이건 간이 감정 결과라 정밀 감정을 거쳐야 정확한 금액이 나옵니다. 그리고… 버리기 전 기록상 단검 주인이 파티로 남아 있으면, 저쪽에서 이 결정은 자기들 몫이라고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현장 폐기 처리로… 최종 책임자는 접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정밀 감정 신청을 접수하겠습니다. 접수하면 파티 승인 기록도 같이 확인됩니다. 그쪽 단말에도 알림이 갈 거고요.”

유찬이 정밀 감정 신청서에 서명했다. 어차피 민도혁이 명백히 ‘폐기’하라고 지시한 물건이었다.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위이잉-

유찬의 주머니에서 헌터 단말기가 짧게 진동했다. 새로운 알림이었다. 무심코 화면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폐기 단검에서 나온 결정에 대한 권리 이의가 접수되었습니다.]`

`[권리 이의 접수자: 민도혁]`

`[정제 결정의 대금 지급 보류]`

`[분쟁 해소 전까지 해당 결정에 임시 압류가 적용됩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민도혁: 야, 강유찬.]`

`[민도혁: 그거 우리 파티 전리품이지?]`

`[민도혁: 착각하지 마라. 네 돈 아니야.]`

막 손에 닿으려던 1,360만 원이, 민도혁의 이름 하나에 멈춰 섰다.

버린 단검이 돈이 됐다.

그런데 그 돈을, 버리라고 명령했던 놈이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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