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화. 그 쓰레기, 법적으로 제 겁니다
F급 짐꾼의 펫은 버려진 아이템을 돈으로 바꾼다
2화. 그 쓰레기, 법적으로 제 겁니다
[정제 결정 대금 지급 보류]
[사유: 원물 소유권에 대한 권리 이의 제기 접수]
[관련 분쟁 해소 전까지 해당 대금은 협회 예치성 임시 압류 상태로 전환됩니다.]
강유찬은 단말기 화면에 뜬 붉은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눈앞이 흐렸다.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간 고블린 칼날 자국이 숨을 쉴 때마다 욱신거렸다. 허름한 모텔방 천장에 달린 누런 형광등은 깜빡거렸고, 벽지 틈에서는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올라왔다.
여기는 협회 지정 병원의 깨끗한 병실이 아니었다.
게이트 근처 변두리 모텔. 시간당 5천 원짜리 대실방.
침대 시트에는 누군가 흘린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고, 낡은 탁자 위에는 약국에서 산 가장 싼 소독약과 붕대가 굴러다녔다. 유찬의 옆구리에 감긴 붕대는 이미 피로 젖어 있었다. 붉은 얼룩이 천천히 번지는 걸 보면서도 그는 갈아 감을 여분이 아까워 손을 대지 못했다.
주머니를 뒤집어보면 동전 몇 개와 구겨진 천 원짜리 한 장이 전부였다.
그게 지금 강유찬의 전 재산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았다.
13,600,000원.
감정소 직원이 잠정 감정가를 불렀을 때, 유찬은 잠시 통증도 잊었다.
1,360만 원.
F급 짐꾼으로 1년을 굴러도 손에 쥐기 어려운 돈이었다. 밀린 월세와 어머니 요양병원 본인부담금 일부를 막고, 터진 장비를 최소한으로 수리할 수 있는 돈. 무엇보다도 당장 기운이 빠진 포포에게 고농축 영양제를 사 먹일 수 있는 돈이었다.
낡은 백팩이 무릎 위에서 아주 작게 떨렸다.
뽀글.
지퍼 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유찬은 손바닥으로 가방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안쪽에서 말랑한 몸이 힘없이 그의 손끝에 기대왔다.
“괜찮아.”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포포는 어젯밤부터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오염된 고블린 단검들을 정제하고 나서부터 기포가 올라오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평소라면 손가락을 건드리며 장난치듯 톡톡 튀었을 녀석이, 지금은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영양제가 필요했다. 최소한 깨끗한 물과 안전한 공간이라도 필요했다.
하지만 유찬에게는 동전 몇 개뿐이었다.
그래서 1,360만 원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숨통이었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증거였다.
그 숫자가, 민도혁의 권리 이의 한 줄에 묶였다.
삐빅.
개인 단말기가 짧게 울렸다.
발신자: 민도혁.
[그거 우리 파티 전리품이지?]
[착각하지 마라. 네 돈 아니야.]
짧은 문장 두 개.
유찬의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하…….”
웃음도 한숨도 아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네 돈 아니야?
어젯밤 폐기물 더미 앞에서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던 민도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야, 강유찬. 그거 싹 다 처리해.’
오염 수치가 높다며, 가져가 봐야 처리비만 나온다며, 더러운 건 짐꾼이 치우는 거라며 떠넘겼던 물건들.
그걸 포포가 정제해 결정으로 바꿨다. 유찬은 피를 흘리며 분류했고, 손가락 끝이 갈라질 때까지 기록했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나고 돈이 보이자, 이제 와서 자기들 것이라고 한다.
분노가 속에서 끓어올랐다.
하지만 유찬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F급 짐꾼이 소리쳐 봐야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이었다. 유찬은 지난 3년 동안 그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가 살아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기록.
“포포.”
유찬은 백팩 지퍼를 아주 조금 열었다. 안쪽에서 투명한 젤리 같은 몸체가 희미하게 떨렸다.
“조금만 버텨. 내가 받아올게.”
뽀글.
포포가 대답하듯 작은 기포를 터뜨렸다.
유찬은 이를 악물고 단말기를 켰다. ‘어제 작업’ 폴더를 열자 날짜별로 정리해 둔 파일들이 차례로 떴다.
[파티 임시 고용 계약서.pdf]
[전리품 1차 정산 목록.xlsx]
[현장 폐기 지시 인수 로그.pdf]
[오염 폐기물 처리 책임 확인서_전자서명.pdf]
[처리 전 현장 사진_14장.zip]
[음성메모_민도혁_폐기지시.m4a]
파일명들을 확인하는 유찬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민도혁은 착각하고 있었다.
F급 짐꾼이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구르고, 맞으면 맞는 대로 고개 숙이다가, 큰돈 앞에서는 겁먹고 포기할 거라고.
유찬은 단말기 화면에 뜬 ‘분쟁 조정 즉시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 쓰레기.
법적으로 누구 것인지, 한번 따져볼 시간이었다.
***
헌터 협회 강남 지부 3층 조정실.
싸구려 인조 가죽 의자와 차가운 금속 테이블이 전부인 방이었다. 벽 한쪽에는 감시 카메라가 있었고, 천장 환풍기는 오래된 기계음만 반복해서 토해냈다.
유찬은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었다.
어제 입었던 피 묻은 작업복 그대로였다. 붕대는 새로 갈지 못해 가장 바깥쪽만 대충 덧감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옆구리에서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지만, 그는 표정에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맞은편에는 민도혁이 앉아 있었다.
말끔한 전투복. 잘 닦인 부츠. 비싼 향수 냄새.
그의 옆에는 파티의 탱커 박성진이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있었다. 둘이서 혼자 나온 유찬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뻔했다.
조정관으로 나온 협회 직원 김민준 과장은 서류를 넘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양측 모두 출석 확인했습니다. 안건은 미확인 정제 결정 17건, 잠정 감정가 13,600,000원에 대한 원물 소유권 분쟁입니다. 현재 민도혁 헌터가 이끄는 블랙맘바 파티 측의 권리 이의가 접수되어 지급 보류 및 협회 예치성 임시 압류가 적용된 상태입니다.”
민도혁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 주장은 간단합니다.”
그는 유찬을 힐끗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던전 내에서 습득한 모든 유형, 무형의 자산은 파티 소유입니다. 이건 업계 상식이고, 우리 계약서에도 명시된 조항입니다. 강유찬은 우리 파티의 임시 짐꾼으로 들어왔고, 해당 물품들은 우리 파티가 공략 중 확보한 구역에서 나온 겁니다.”
민도혁은 준비해 온 계약서 사본을 테이블 위로 밀었다.
형광펜으로 그어진 조항이 보였다.
[제7조 3항: 던전 내에서 습득한 모든 전리품 및 부산물은 별도 합의가 없는 한 파티에 귀속된다.]
“그러니까 저 결정도 당연히 우리 파티 자산입니다. 폐기 지시를 내렸다고 해서 소유권까지 포기한 건 아니죠. 짐꾼이 일을 하다가 뭘 주웠으면 보고해야지, 몰래 감정소에 들고 와서 돈을 챙기려 들면 그게 횡령 아닙니까?”
박성진이 낮게 웃었다.
“F급이 1,360만 원 보니까 눈이 돌았나 보지.”
김 과장이 시선을 들었다.
“민도혁 헌터 측 주장은 확인했습니다. 강유찬 헌터님, 반박하시겠습니까?”
모든 시선이 유찬에게 꽂혔다.
민도혁의 눈에는 이미 승리를 확신한 여유가 어려 있었다. 계약서 조항만 놓고 보면 불리한 건 유찬이었다. F급 짐꾼에게 전리품 권리가 없다는 말은 이 바닥에서 거의 상식처럼 통했다.
하지만 유찬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반박하겠습니다.”
그는 낡은 서류철과 단말기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저는 파티의 자산을 몰래 가져간 게 아닙니다. 파티가 ‘잔존가치 없음’으로 분류하고, 처리 책임까지 제게 넘긴 폐기물을 인수했을 뿐입니다.”
민도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장난하지 마라.”
“말장난인지 아닌지는 기록을 보면 됩니다.”
유찬은 단말기를 조작해 첫 번째 파일을 열었다.
[현장 폐기 지시 인수 로그]
- 일시: 202X년 X월 X일 14시 32분
- 품목: 오염된 고블린 단검 외 297점
- 상태: 잔존가치 없음 / 현장 폐기 대상
- 지시자: 민도혁
- 인수자: 강유찬
- 비고: 오염 폐기물 처리 및 관련 책임은 인수자에게 귀속
김 과장이 화면을 가까이 당겨 확인했다.
“전자서명이 있습니다. 민도혁 헌터님 서명 맞습니까?”
민도혁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현장에서 매번 하는 형식적인 절차입니다. 쓰레기 치우라고 시킨 거지, 가지라고 준 게 아니라고요.”
“형식적인 절차라면 왜 ‘잔존가치 없음’과 ‘처리 책임 귀속’에 서명하셨습니까?”
유찬의 목소리는 낮았다.
조정실이 조용해졌다.
민도혁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강유찬. 너 지금 그 서류 하나로 파티 계약을 뒤집겠다는 거야?”
“서류 하나가 아닙니다.”
유찬은 다음 파일을 재생했다. 현장 폐기 인수 로그에 자동 첨부된 음성 기록이었다.
지직거리는 잡음이 흘렀다. 곧 익숙한 목소리가 조정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야, 강유찬. 이거 싹 다 폐기 처리해.>
<전부 말입니까? 양이 꽤 됩니다. 오염 수치도 높고요.>
<그러니까 버리라는 거잖아. 가져가 봐야 처리비만 더 나와. 뒤처리까지 네가 알아서 하고, 기록은 현장 폐기로 남겨. 알았어?>
민도혁 자신의 목소리였다.
‘처리비만 더 나온다.’
그 부분에서 김 과장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유찬은 음성 파일을 멈추고, 현장 사진을 펼쳤다. 시커멓게 부식된 단검들이 폐기물 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녹슨 날에는 오염된 마력이 얼룩처럼 엉겨 있었고, 누가 봐도 가치 있는 전리품으로 보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이게 파티장님이 주장하는 원물의 상태입니다.”
유찬은 사진 옆에 처리 비용 추산서를 올려놓았다.
“오염 수치 기준으로 협회 지정 업체에 맡겼을 경우, 운송비, 보관료, 오염 검사비, 정화 처리비까지 최소 80만 원 이상이 발생합니다. 파티장님은 이걸 자산으로 관리한 게 아닙니다. 돈을 내고 처리해야 할 폐기물로 취급했습니다.”
민도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처리해야 할 폐기물?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사람 우습게 만들지 마.”
“우습게 만든 건 제가 아닙니다.”
유찬이 민도혁을 똑바로 보았다.
“버릴 땐 처리비가 나오는 쓰레기라며 제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 비용과 제 노력으로 그걸 정제해서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자, 이제 와서 원래 파티 자산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끝이 테이블 위를 눌렀다. 붕대 안쪽 상처가 다시 터졌는지 옆구리에 뜨거운 감각이 번졌다. 하지만 유찬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만약 제가 그 폐기물을 처리하다 2차 오염 사고라도 냈다면, 파티장님께서 ‘우리 파티 자산이니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나서셨을 겁니까?”
민도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박성진도 입을 다물었다.
답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고가 났다면 책임은 전부 유찬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F급 짐꾼 하나 잘라내는 건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유찬은 마지막 서류를 김 과장 앞으로 밀었다.
“감정소 접수 기록입니다. 저는 해당 결정을 ‘던전 습득물’이 아니라 ‘폐기 대상물을 제 손으로 처리해서 얻은 결과물’로 접수했습니다. 접수 비용도 제가 냈습니다.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도 제 책임으로 감수했습니다.”
김 과장은 말없이 서류들을 넘겼다.
민도혁은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서? 결국 그 원물이 어디서 나왔는데. 우리 파티가 공략한 게이트 안에서 나온 거잖아. 그 사실은 안 바뀌어.”
“맞습니다.”
유찬은 순순히 인정했다.
민도혁의 입가가 다시 올라가려는 순간, 유찬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전액을 무조건 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전액을 파티 소유로 묶어두는 건 부당하다는 겁니다. 적어도 파티 측이 해당 물품을 자산이 아니라 처리 책임이 따르는 폐기물로 취급했다는 기록은 명백합니다.”
김 과장이 서류에서 눈을 떼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조정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양측 주장과 제출 자료를 확인했습니다.”
민도혁이 허리를 세웠다. 유찬도 숨을 죽였다. 가방 안에서 포포가 아주 작게 몸을 떨었다.
“민도혁 헌터 측이 제시한 파티 계약서의 포괄적 소유권 조항은 유효합니다. 원물이 블랙맘바 파티의 게이트 공략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라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민도혁의 표정에 안도감이 스쳤다.
“하지만,”
김 과장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강유찬 헌터가 제출한 현장 폐기 지시 인수 로그, 처리 책임 확인서, 음성 기록, 현장 사진은 모두 구체적입니다. 특히 해당 물품을 ‘잔존가치 없음’으로 판단하고, 처리 비용과 법적 책임을 강유찬 헌터에게 전가한 정황이 분명합니다. 파티 측이 당시 해당 물품을 자산이 아니라 돈을 들여 처리해야 할 폐기물로 봤다는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민도혁의 얼굴이 굳었다.
“과장님.”
“말씀 중입니다.”
김 과장이 서류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협회 조정실은 법원의 판결 기관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제 결정 17건의 권리자를 여기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현 단계에서 파티 측의 권리 이의만으로 대금 전액에 대한 지급 보류를 유지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판단됩니다.”
유찬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김 과장은 결정서를 단말기에 입력했다.
“협회 조정실의 임시 결정입니다. 원물 권리와 후처리 기여가 함께 다투어지는 경우, 긴급 생계성 정산금은 최대 70%까지 우선 지급할 수 있습니다. 잠정 감정가 13,600,000원 중 처리 기여도와 폐기물 인수 책임을 고려하여 70%인 9,520,000원을 강유찬 헌터에게 우선 지급합니다. 나머지 30%, 4,080,000원은 분쟁 조정이 종결되거나 파티 측에서 정식 소송을 제기할 경우를 대비해 협회 예치 계좌에 보관합니다.”
9,520,000원.
전액은 아니었다.
4,080,000원은 여전히 묶였다. 민도혁이 소송을 걸면 싸움은 더 길어질 것이다. 완전히 끝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유찬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952만 원이면 당장 숨은 쉴 수 있었다. 밀린 월세와 어머니 요양병원 본인부담금 독촉을 잠시라도 막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포포에게 영양제를 사 먹일 수 있었다.
가방 안에서 포포가 희미하게 몸을 움직였다.
뽀글.
마치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민도혁은 의자를 거칠게 밀며 일어났다.
“웃기는 결론이군.”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갈라져 있었다.
“F급 짐꾼 하나가 서류 몇 장 들고 와서 파티 돈을 뜯어간다? 협회 판단이 이렇게 허술한 줄 몰랐습니다.”
김 과장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이의가 있으시면 정식 소송 절차를 밟으시면 됩니다. 오늘 결정은 행정 조정에 따른 임시 지급 결정입니다.”
“그래. 법대로 하면 되겠지.”
민도혁은 유찬을 노려보았다.
“강유찬.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뭘 어떻게 했는지, 하나하나 다 까보면 꼬투리 하나는 나오겠지.”
그는 그대로 나가려다 문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섰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분노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떠올린 사람의 비열한 번뜩임.
“가만. 이상한데.”
유찬의 손이 가방끈을 움켜쥐었다.
민도혁이 웃었다.
“F급 짐꾼 새끼가 대체 무슨 수로 오염된 폐기물을 고순도 결정으로 바꿨지? 그거 정식 정제 시설에서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조정실의 공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불법 약품이라도 썼나? 아니면…… 미등록 계약 생물이라도 숨기고 있나?”
포포가 가방 안에서 움찔했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유찬에게는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크게 느껴졌다.
김 과장의 표정도 바뀌었다.
지금까지 그는 재산 분쟁을 다루는 조정관이었다. 그러나 ‘미등록 계약 생물’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그의 눈빛은 규정을 집행하는 협회 직원의 것으로 변했다.
“강유찬 헌터님.”
목소리가 딱딱했다.
“민도혁 헌터께서 제기한 부분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제출 자료에는 폐기물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했는지에 대한 상세 경위가 부족합니다.”
유찬의 입안이 바짝 말랐다.
민도혁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입꼬리를 비틀며 문에 기대섰다.
“왜. 찔리는 게 있나?”
유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 과장은 새 서류 양식을 띄웠다.
“정제 과정에 사용된 설비, 약품, 작업 장소, 부산물 처리 기록을 제출해 주셔야 합니다. 만약 생물학적 촉매나 계약 생물이 관여했다면 해당 개체의 등록번호와 관리 기록도 필요합니다.”
단말기 화면에 빈칸들이 떠올랐다.
[정제 작업 장소:]
[사용 설비 및 약품:]
[생물학적 촉매 사용 여부:]
[계약 생물 명칭 / 등록번호:]
[사육 및 격리 관리 기록:]
[부산물 처리 내역:]
유찬은 그 빈칸들을 보는 순간, 모텔방의 누런 조명과 젖은 수건, 세면대에 남은 오염 찌꺼기가 떠올랐다.
허가받은 작업 장소가 아니었다.
정식 설비도 없었다.
포포는 등록된 펫도 아니었다.
그저 죽기 직전, 폐기물 더미 속에서 만난 작은 슬라임. 유찬이 이름을 붙이고, 계약했다 믿고, 함께 살아남은 존재였다.
김 과장은 유찬의 침묵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미등록 생물을 이용해 던전 유래 물질을 가공한 경우, 협회 안전 규정 위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해당 생물은 잠재적 오염원으로 분류될 수 있고, 등록 적합성 심사가 끝날 때까지 보호소 격리 대상이 됩니다.”
격리.
그 단어가 유찬의 가슴을 후벼 팠다.
가방 안에서 포포가 불안한 듯 그의 손등을 톡 건드렸다. 유찬은 반사적으로 지퍼 위를 감싸 쥐었다.
“격리라면…….”
“협회 보호소로 이송됩니다. 조사 기간 동안 개인 접촉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위험성 판정이 나오면 추가 조치가 따릅니다.”
김 과장은 일부러 부드럽게 말하려 했지만, 내용은 칼날 같았다.
민도혁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게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았어야지.”
유찬은 고개를 들었다.
“남의 물건 아니라고 방금 판단 나왔습니다.”
“임시 판단이지.”
민도혁이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이제 돈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그 말은 정확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찬은 9,520,000원을 지켜낸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4,080,000원이 예치로 묶였어도, 그래도 최악은 피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포포의 존재.
세상에 등록되지 않은, 그러나 유찬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작은 생명체.
김 과장이 결정서를 출력해 유찬 앞에 놓았다.
“우선 지급 절차는 진행하겠습니다. 다만 정제 과정 소명 자료와 계약 생물 관련 자료는 7일 이내 제출하십시오. 자료가 미비할 경우 추가 지급과 예치금 처분은 보류됩니다. 허위 제출 또는 중대한 안전 규정 위반이 확인될 경우, 우선 지급액 환수와 해당 생물의 임시 격리 조치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습니다.”
유찬은 결정서를 내려다보았다.
숫자는 분명히 찍혀 있었다.
9,520,000원 우선 지급.
4,080,000원 협회 예치.
방금 전까지는 생존의 숫자였던 그것들이, 이제는 포포를 증명해야만 지킬 수 있는 숫자가 되었다.
민도혁이 조정실 문을 열며 낮게 말했다.
“기대하고 있겠다, 강유찬. 네가 그 괴상한 걸 어떻게 설명할지.”
문이 닫혔다.
조정실에는 김 과장과 유찬, 그리고 가방 속에서 작게 떠는 포포만 남았다.
유찬은 천천히 가방 지퍼를 아주 조금 열었다. 포포의 투명한 몸체가 희미하게 빛났다. 기운이 빠진 몸으로도 녀석은 유찬의 손가락을 감싸듯 기대왔다.
“미안하다.”
작은 목소리였다.
포포는 뽀글, 하고 대답했다.
괜찮다는 듯이.
하지만 괜찮을 리 없었다.
돈을 지키는 싸움은 겨우 한고비를 넘겼을 뿐이었다. 민도혁은 법으로 물고 늘어질 것이고, 협회는 규정을 앞세워 포포를 격리하려 할 것이다. 유찬에게는 번듯한 사무실도, 변호사도, 등록 서류도 없었다.
있는 건 피 묻은 붕대와 낡은 단말기.
그리고 버려진 것들을 끝까지 기록해 온 손뿐이었다.
유찬은 결정서와 제출 요구서를 접어 서류철에 넣었다. 옆구리의 상처가 다시 욱신거렸지만, 이번에는 주저앉지 않았다.
“가자, 포포.”
가방 안에서 작은 몸이 그의 손등을 톡 건드렸다.
유찬은 조정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협회 건물의 하얀 조명이 눈부셨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게 지나갔고, 누구도 피 묻은 작업복 차림의 F급 짐꾼에게 오래 시선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유찬은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숨을 곳이 없다.
포포를 등록해야 한다.
격리당하지 않게 지켜야 한다.
그리고 민도혁이 다시는 ‘네 돈 아니야’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더 철저하게 기록해야 한다.
단말기가 진동했다.
[협회 지급 알림]
[정제 결정 대금 70% 우선 지급: 9,520,000원]
[잔여 30% 예치: 4,080,000원]
[추가 제출: 계약 생물 등록 및 정제 과정 소명 자료]
[제출 기한: 6일 23시간 59분]
[기한 내 미제출 시 해당 개체는 협회 보호소 임시 격리 대상이 됩니다.]
유찬은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었을지도 모른다. 952만 원이라는 숫자는 그만큼 컸다.
하지만 지금 그의 손은 돈보다 가방끈을 더 세게 쥐고 있었다.
“영양제부터 사자.”
그가 작게 말했다.
“그리고 네 이름, 제대로 등록하자.”
포포가 지퍼 안쪽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협회 자동문이 열리자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왔다. 유찬은 피 묻은 붕대를 감싼 채, 낡은 백팩을 품에 끌어안고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돈 일부를 지켜냈을 뿐.
이제 7일 안에 증명해야 했다.
포포가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