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 야간 열람권 일러스트

# 야간 열람권

야간 열람권

제0서고의 돌 없는 문은

분명히 카시안에게 반응했다.

그러나 반응과 개방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문은 열리지 않았고,

황궁은 여전히

그 앞에 설 자격을 요구하고 있었다.

즉,

다음에 필요한 건

힘이 아니라 명분이었다.

그것도 위조한 명분이 아니라,

누가 봐도 적법한데

실제로는 다른 문을 여는 명분.

아델린은 다음 날 아침

그 결론부터 문서로 정리했다.

야간 열람권.

황실 내부에는

낮에는 못 보고 밤에만 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정확히는 밤에만 봤다고

핑계 댈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의전실 보류 문서,

친위 회랑 이동 장부,

즉위전 하부 유지 점검표,

왕좌 직속 열람 대기 목록.

이 중 하나만 정식으로 열람해도

그 동선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그 권한이

보통 인사팀에는 없다는 데 있었다.

아델린은 책상 위에

장부 세 묶음을 나란히 놓았다.

친위 회랑 야간 교대표.

의전실 보조 인장 반출 기록.

왕좌 직속 열람 대기 목록 사본.

그리고 그 옆에는

도움이라기보다 거래용으로 써야 할

문서철 하나를 따로 빼 두었다.

황실 의전실 인사 재배치 검토안.

누군가의 자리를

지켜 줄 수도 있고,

흔들 수도 있는 문서였다.

도로시는 그 표지를 읽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팀장님.

저거 냄새가 너무 안 좋은데요.”

“맞습니다.”

“이건 거의

정치적 뇌물에 가까운 냄새예요.”

“뇌물은 아닙니다.”

아델린이 차분하게 말했다.

“상호 필요 확인이죠.”

도로시는 한숨을 쉬었다.

“팀장님이 그런 말 할 때가

제일 무섭다니까.”

카시안은 창가에서

그 문서철만 한동안 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가볍게 한마디 비틀고 지나갔을 텐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실 생각입니까.”

아델린은 시선을 들었다.

“의전실 제2정리관.

엘리아스 브룬.”

도로시가 바로 반응했다.

“아.

그 사람.”

“압니까?”

“회계국에선 유명해요.

항상 정중하고,

항상 자기 선은 안 넘고,

항상 자기가 꼭 필요한 정보만

한 박자 늦게 주는 사람.”

카시안이 낮게 말했다.

“귀찮은 유형이군.”

“네.

그리고 지금 우리한테

딱 필요한 유형이기도 하죠.”

아델린은 문서철을 닫았다.

“그는 친위 회랑 야간 열람 승인선

하나를 쥐고 있습니다.

직접 문을 여는 사람은 아니지만,

누가 밤에 거길 지나가도

문제가 안 되게 만드는 쪽의 사람입니다.”

카시안은 천천히 물었다.

“무엇을 내줄 겁니까.”

“의전실 인사 정리안의

우선 검토권.”

도로시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꽤 큰 거잖아요.”

“네.

그래서 거래가 됩니다.”

카시안은 책상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한 번 눌렀다.

“무리수군요.”

“필요한 수입니다.”

“필요하다고 해서

다 감수할 필요는 없죠.”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업무 의견서보다

개인적인 걱정에 가까웠다.

아델린은 그 차이를 듣고도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서철을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 없는 문을 본 사람이

지금 둘뿐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럼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야죠.”

카시안이 그녀를 보았다.

“그 문이

저한테 반응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위험합니다.”

“압니다.”

“그런데도.”

“네.

그런데도.”

짧은 침묵.

그는 결국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만 아주 천천히 내려

그녀 손에 든 문서철을 보았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누가 봐도 분명했다.

아델린은 그런 표정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익숙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업무적인 목소리를 골랐다.

“감시관은 오전 동안

즉위전 하부 동선 복기.

도로시는 엘리아스 브룬 관련

회계 약점이나 인사 압박 요소가 있는지

정리하세요.”

도로시가 손을 들었다.

“약점 찾으라는 말이에요?”

“취향 파악이라고 합시다.”

“와.

말만 고상하지 하는 일은 진짜.”

카시안이 작게 웃었다.

“점점 황궁에 맞아 가는군.”

아델린은 그 말엔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문턱을 넘기기 직전

한 번 멈춰 섰다.

“황궁에 맞아 가는 게 아니라,

황궁이 숨기는 방식을

익히는 중입니다.”

카시안이 대꾸했다.

“그 둘은 대개

끝이 다르지 않던데.”

“저는 다르게 끝낼 겁니다.”

짧고 단호한 대답.

도로시는 둘을 번갈아 보더니

작게 혀를 찼다.

“두 분 다

아주 태연하게 말씀하시는데,

듣는 사람은 하나도

안 편하거든요.”

아델린이 문고리를 잡자

도로시가 다시 불렀다.

“아, 잠깐.”

그녀는 책상 위 장부 한 장을

급히 뒤적이다가

작은 표식을 짚었다.

“이거 방금 찾았어요.

친위 회랑 야간 출입 장부에

세 달 전부터 같은 표시가 있어요.”

아델린이 돌아봤다.

“어떤 표시죠.”

“점검 완료 인장 옆에

항상 아주 작은 ‘증’ 자가 붙어요.

정식 양식은 아닌데

열람권이 난 밤마다 찍혀 있어요.”

카시안 눈빛이 달라졌다.

“증.”

“네.

처음엔 증빙 표시인 줄 알았는데,

붙은 위치가 이상해요.

점검 결과나 반출 기록 쪽이 아니라

항상 동행 인원란 바로 옆이에요.”

도로시는 장부를 돌려 보였다.

“누가 뭘 봤는지,

아니면 누가 같이 있었는지

따로 확인하는 사람 손 같아요.”

아델린은 그 글자 위에

시선을 멈췄다.

짧은 표식 하나였지만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기록은 허가를 남기고,

표식은 증인을 남긴다.

황궁은 늘 그랬다.

공식 절차 하나 밑에

비공식 감시 하나를

겹쳐 두는 식으로 움직였다.

“좋아요.”

아델린이 말했다.

“오늘 밤엔

우리가 어디까지 가는지보다

누가 그걸 보려 드는지도

같이 확인합니다.”

도로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은 별로

안심이 안 되는데요.”

“원래 안심시키는 일은

당신 담당이 아니었죠.”

“맞아요.

전 말리는 담당이었죠.”

카시안이 장부를 한 번 더 보더니

낮게 말했다.

“그 표식이 계속 있었다면,

오늘 밤 누군가는

우리 둘을 확인하려 들 겁니다.”

아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더더욱

숨는 척만 할 필요는 없겠군요.”

대신 곧장 의전실로 향했다.

의전실 제2정리관

엘리아스 브룬은

도로시 설명과 거의 비슷한 사람이었다.

정확히 다려진 제복,

흐트러짐 없는 서류 배열,

예의 바른데

반 발자국쯤은 늘 물러서 있는 태도.

그는 아델린이 내민 인장을 확인하고도

곧바로 자리에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먼저 책상 위 문서를 가지런히 정리한 뒤,

그제야 손짓했다.

“인사팀장님께서

직접 의전실까지 오시는 일은 드물군요.”

“필요한 경우엔 옵니다.”

“그 필요가

제 업무와 연결된다는 뜻이겠죠.”

“네.”

아델린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친위 회랑 야간 열람권을

하나 얻고 싶습니다.”

엘리아스는

놀라는 대신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그건 흥미로운 요청이군요.”

“흥미보다 실무가 먼저겠죠.”

“실무라면 더더욱,

왜 인사팀에서

그 권한을 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델린은 준비해 온 문서철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의전실 인력 재배치 검토안.

엘리아스 눈빛이

처음으로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문서는

아직 제쪽 열람선에 없는데요.”

“그러니 지금 보여 드리는 겁니다.”

엘리아스는 문서철을 열지 않은 채

물었다.

“대가가 큰데요.”

“권한도 그렇습니다.”

짧은 정적.

엘리아스는

마침내 문서철을 열었다.

페이지 두 장만 넘겨도

충분했다.

인원 감축 후보,

주요 배치 조정,

내정실 협의 필요 항목.

그는 아주 천천히

문서를 덮었다.

“협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아뇨.”

아델린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당신이 지금 필요한 건

의전실 구조를 완전히 모르는

외부 압박이 아니라,

말이 통하는 상대일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엘리아스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제가

왜 팀장님 편을 들어야 하죠.”

아델린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제 편이 아니라,

당신 자리를 먼저 흔드는 사람 쪽을

아니라고 판단하면 됩니다.”

엘리아스 시선이

아주 조금 가라앉았다.

“헤일 쪽을 의심하시는군요.”

“황궁에서

의심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는 그 말에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그건 맞습니다.”

결론은 생각보다 빨리 났다.

다만 조건이 붙었다.

열람권은 정식 위임이 아니라

의전실 야간 점검 참관 형식.

시간은 오늘 밤 자정 전후

딱 열세 분.

동행 인원은 둘 이하.

기록상 목적은

의전실 하부 인력 동선 재배치 검토.

엘리아스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둘 이하라고 했습니다.”

“압니다.”

“굳이 말하는 이유는,

소문은 보통 숫자보다

거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아델린은 그 문장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기억해 두죠.”

엘리아스는 열람허가서를 쓰다가

한 번 더 덧붙였다.

“그리고 팀장님.”

“말하세요.”

“오늘 밤은 친위 회랑에

예상보다 눈이 많을 겁니다.

누가 뭘 보길 원하는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그 충고는

친절이라기보다

조심스러운 자기 보호에 가까웠다.

아델린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카시안은 이미

즉위전 하부 구조를

한 장의 간이 도면으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계단 수,

감시 수정구 위치,

소리 울림이 큰 구간,

반응 없는 벽면,

돌 없는 문 앞쪽

시야 사각.

도로시는 그 옆에

엘리아스 브룬 인물 메모를 붙여 놓았다.

정중함.

보신적.

헤일 싫어함.

위험하면 바로 손 뗄 타입.

카시안이 아델린 손에 들린

허가서를 보고 물었다.

“받아 오셨군요.”

“네.”

“조건은.”

“열세 분.

동행 둘 이하.

야간 점검 참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깔끔하군요.”

“그 대신

우리를 보려는 눈도 많을 겁니다.”

도로시는 허가서 모서리를

손톱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저 ‘증’ 표식,

방금 회계국 쪽 옛 장부에서도

하나 더 찾았어요.”

아델린이 눈을 들었다.

“언제 겁니까.”

“구십칠 년 전.

야간 열람 사유는

왕좌 하부 누수 점검.”

도로시는 어깨를 움츠렸다.

“근데 동행 인원란이 비어 있는데도

그 표식만 남아 있어요.

누군가 공식 장부에 안 적힌 사람까지

따로 셌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카시안이 그 말에

아주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황궁식이군.”

“황궁식이네요.”

도로시가 중얼거렸다.

“보이는 기록 말고

본 사람 기록을 남기는 방식.”

아델린은 허가서를 접으며 말했다.

“오늘 밤에 우리가 확인할 건 셋입니다.

문,

동선,

그리고 증인을 세는 사람.”

카시안은 그 말에

잠깐 미간을 좁혔다.

“위험합니다.”

아델린은 허가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문 자체보다

사람 쪽이요.”

그 문장은 아침보다

더 명확했다.

도로시가 아예 펜을 멈췄다.

하지만 이번엔

끼어들지 않았다.

카시안은 계속 말했다.

“누가 일부러 보려고 하면,

팀장님이 제 옆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약점이 됩니다.”

아델린은 그를 똑바로 봤다.

“그러니 떨어져서 움직이자는 말은

안 받겠습니다.”

카시안이 짧게 웃었다.

“요즘은 제 결론을

너무 빨리 읽으시네요.”

“당신이 같은 결론만

반복하니까요.”

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괜찮습니까.”

이번엔 업무 얘기가 아니었다.

그 사실이 너무 분명해서

아델린도 피하지 않았다.

“아뇨.”

그녀가 말했다.

“괜찮진 않습니다.

하지만 가야 합니다.”

짧은 침묵.

카시안은 그 한마디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억지 안심도,

괜한 농담도 붙이지 않았다.

대신 아주 느리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밤은

제가 팀장님 뒤를 보는 쪽으로 하죠.”

아델린은 이유 없이

장갑 끝을 한 번 정리했다.

“저는 앞을 봅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도로시가 조용히 서류를 정리해

둘 앞에 밀어 놓았다.

“그럼 전 여기서

뒤처리 맡을게요.

혹시라도 두 분이 시간 넘기면

친위 회랑 점검 연장 요청서,

안 되면 의전실 탓으로 돌릴 말까지

준비해 둘 테니까.”

“능숙하군요.”

카시안이 말하자

도로시가 삐딱하게 웃었다.

“같이 일한 시간이

꽤 되잖아요.”

아델린은 마지막으로

허가서와 인장을 확인했다.

그러자 카시안이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도로시는 눈치를 보고

일부러 한 걸음 물러났다.

아델린이 그를 봤다.

“왜죠.”

카시안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전술 계산과는 달랐다.

더 느리고,

더 불필요해 보여서

오히려 진심에 가까운 종류였다.

“어젯밤 그 문이

저한테만 반응한 걸

후회하십니까.”

아델린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예상했어야 할 질문인데도

실제로 들으니

답은 곧장 나오지 않았다.

그가 묻는 건

임무의 난이도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변수인지에 대한

확인이었다.

아델린은 천천히 말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카시안은 여전히

그녀를 보고 있었다.

“단정적이군요.”

“대신 짜증은 납니다.”

그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무엇이요.”

“당신이 변수인 건 맞는데,

그걸 이유로

당신 자체까지 위험물처럼

취급해 온 구조가요.”

이번엔 카시안이

바로 웃지 못했다.

아델린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문이 당신에게 반응한 걸

후회하는 게 아니라,

그 반응을 이용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벌써 눈에 보여서 짜증나는 겁니다.”

카시안의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 말은.”

“당신 때문이 아니라

황궁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아델린은 허가서를 챙겨 들었다.

“그러니 오늘 밤은

괜한 죄책감 말고

제 옆에서 할 일을 하세요.”

그 말이 떨어진 뒤에도

카시안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그 침묵은

조금 전과는 달랐다.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의 침묵이었다.

자정 조금 전,

둘은 정식 허가서를 들고

친위 회랑으로 들어섰다.

이번엔 완전한 무단 잠입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묘했다.

문제는 안쪽 목적이고,

겉보기엔 적법한 야간 점검.

진실과 거짓이

너무 자연스럽게 겹쳐 있는 밤이었다.

입구의 친위 위병은

허가서와 인장을 확인한 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열람 가능 시간,

열세 분입니다.”

“압니다.”

아델린이 답했다.

둘은 나란히 회랑 안쪽으로 걸었다.

이번엔 일부러 거리까지 계산했다.

너무 멀면 이상하고,

너무 가까워도 문제다.

서류상으론 같은 야간 점검 동행.

실제론 같은 비밀을 공유한 사람 둘.

그 미묘한 차이가

걸음 간격에까지 스며들었다.

회랑 끝,

즉위전 하부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 앞에서

위병 하나가 갑자기 돌아섰다.

젊은 친위 기사였다.

밤색 머리를 짧게 친 얼굴,

견장 아래 달린 표식으로 보아

야간 근무 조정 담당쯤 되는 위치.

그는 둘을 보는 순간

예상보다 오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아델린은 바로 알아차렸다.

봤다.

허가서만 본 게 아니다.

누가 누구와 함께

밤중에 내려가는지를

분명히 봤다.

그 기사가 공손하게 물었다.

“야간 점검이십니까,

팀장님.”

“네.”

“동행 인원 확인했습니다.”

말은 적법했다.

그런데 눈빛은

그보다 조금 더 많은 걸 읽고 있었다.

카시안이 한 걸음 반쯤

옆으로 물러서며 말했다.

“문제 있습니까.”

기사는 아주 짧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굳이 없어도 될 말을 덧붙였다.

“다만 오늘 밤

친위 회랑은 생각보다

기억이 오래 남을 것 같군요.”

그 말은 곧

소문으로 번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델린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럼 더 정확히 기억하도록 하세요.

우리는 정식 허가 아래 움직입니다.”

기사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팀장님.”

그러나 둘이 계단 아래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그의 시선은 끝까지 따라붙고 있었다.

계단 첫 굽이를 돈 뒤에도

아델린은 바로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낮게 말했다.

“들었죠.”

카시안이 답했다.

“네.

기억이 오래 남는 밤이라고 했죠.”

“그건 경고가 아니라

예고에 가깝습니다.”

“동의합니다.”

계단 아래는

지상보다 더 차고 조용했다.

그런데도 방금까지의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누가 보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목격을 곧 써먹을 것이다.

아델린은 난간에 손을 얹은 채

짧게 숨을 골랐다.

“후회합니까.”

이번에는 그녀 쪽에서

물었다.

카시안이 시선을 돌렸다.

“무엇을요.”

“제 옆에 선 걸요.”

그는 아주 짧게

숨을 웃음처럼 흘렸다.

“질문이 늦었습니다.”

“답은.”

카시안은 계단 아래

어둠 쪽을 본 채 말했다.

“이미 너무 많이

같이 봤습니다.

이제 와서

그만두기엔 늦었죠.”

그 대답은

가벼운 농담처럼 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끝의 한 음절이

조금도 가볍지 않았다.

아델린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 먼저 내려섰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 본 건

끝까지 같이 가져갑시다.”

카시안도 뒤따라 내려왔다.

발소리는 작았지만,

이제 둘 사이엔

조금 전보다 더 분명한 합의가 생겨 있었다.

누군가가

둘의 밀착을 보았다.

그 사실이

밤공기보다 더 차갑게 남았다.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