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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궁의 초대장 일러스트

# 가면궁의 초대장

가면궁의 초대장

황궁에서 사람 둘을 떼어 놓는 방법은

언제나 직접적이지 않았다.

발령을 바꾸고,

동선을 갈라 두고,

함께 있을 이유를

조금씩 지워 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도 둘이 왜 같이 있었는지

묻지 않게 만든다.

아델린은 다음 날 아침

그 익숙한 방식을

종이 위에서 다시 확인했다.

친위 쪽 협조 요청,

해석실 야간 열람선 재검토,

인사팀장과 직원번호 0001의

업무 동행 제한 검토안.

공문은 각각 다른 부서에서 왔지만,

문장의 결은 비슷했다.

표면엔 신중함.

실제론 분리.

도로시는 서류를 다 읽자마자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건 너무 대놓고인데요.”

“대놓고 할수록

누가 써 줬는지는 안 보이죠.”

아델린은 답하면서도

시선을 종이에서 떼지 않았다.

카시안은 창가 쪽에 서서

아무 말 없이 그 문서들을 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둘을 본 눈 하나가 문제였다.

하룻밤 지나자

그 목격은 곧장 제도로 번져 있었다.

황궁은 늘 이렇게 빨랐다.

사람 마음을 읽는 데는 느리면서,

사람을 갈라 놓는 데는

이상할 만큼 유능했다.

“연결선이 필요합니다.”

도로시가 탁자 위에

짧은 쪽지 하나를 밀어 놓았다.

“친위, 의전, 해석실.

셋 중 어디서 누가 먼저 물었는지

찾아야 해요.”

“찾습니다.”

아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선도 물어야죠.”

카시안이 시선을 들었다.

“제0서고 열쇠를 쥔 귀족 라인.”

“네.”

아델린은 책상 옆 문서함에서

봉인된 초대장 하나를 꺼냈다.

검은 바탕에

금실이 얇게 둘러진 카드.

황실 사교국 인장이

왁스 위에 찍혀 있었다.

가면궁 연회 초대장.

도로시가 짧게 탄식했다.

“타이밍 하나는

정말 기막히네요.”

가면궁 연회는

계절마다 한 번 열리는

황실 사교 행사였다.

정식 명칭은

`궁정 친교 및 문화 후원 야회`.

실제 기능은

귀족들이 서로의 약점을 살피고,

혼담과 거래와 은밀한 동맹을

가면 뒤에서 주고받는 시장에 가까웠다.

무도회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보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제0서고 바깥 열람선을 쥔

오래된 귀족 라인이 있다는 건

시즌2 브리프에 이미 잡혀 있었다.

아델린은 초대장을 펼쳤다.

후원 명단 상단,

은은하게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에버딘 후작가.

왕조 초기 기록 보존 후원 명목으로

수백 년째 서고 예산에 손을 댄 집안.

겉으론 고문헌 수집가,

실제론 열람선과 봉인 예산을

중개해 온 라인.

“에버딘.”

카시안이 낮게 말했다.

“압니까.”

“이름은 압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좋은 쪽으로는 아닙니다.”

아델린은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좋지 않은 이름이라는 건

황궁에선 보통

두 가지 뜻을 가진다.

오래 살아남았거나,

오래 가려 왔거나.

도로시는 초대장 안쪽을 뒤적이더니

작게 혀를 찼다.

“동행 표기도 있어요.”

아델린이 손을 뻗었다.

초청 대상:

아델린 케스트.

동반 입장 허용:

1인.

그 문장을 본 순간,

사무실 안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도로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건 너무 노린 건데.”

카시안은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선명했다.

아델린은 초대장을 닫았다.

“가야 합니다.”

도로시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요.

문제는 누구랑 들어가느냐죠.”

“실무만 따지면

감시관이 맞습니다.”

아델린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제0서고 열람선,

왕조 초기 기록,

창건기 귀족 라인.

이 셋이 얽힌 자리라면

카시안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황궁 전체가

지금 둘을 떼어 놓으려는 명분을 만들고 있다.

같이 들어가면

그 자체가 소문이 된다.

따로 들어가면

연회 안에서 둘의 동선이 갈리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시선을 분산시키게 된다.

도로시가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같이 들어가면

불편한 티를 내는 사람만

세 무더기 나올걸요.”

“알고 있습니다.”

아델린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불편해하는 사람을 위해

수사를 포기하진 않죠.”

카시안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연회장은 전장보다

시야가 좁습니다.”

아델린이 그를 봤다.

“무슨 뜻이죠.”

“칼은 안 보여도

누가 누구를 고립시키려는지는

오히려 더 잘 보입니다.”

그 말은 경고였다.

그러면서도

같이 가겠다는 뜻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도로시는 의자를 끌어당기며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봤다.

“좋아요.

같이 들어간다고 치죠.

그럼 연회장 안에서

서로를 어떻게 찾을 건데요.”

아델린은 잠깐 생각했다.

가면 연회에서는

이름보다 위치가,

위치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누군가 일부러 둘을 갈라 세운다면

신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뻔한 신호는

곧장 읽힌다.

카시안이 먼저 말했다.

“소리 없는 신호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찻잔을

손끝으로 한 번 돌렸다.

맑은 울림이

짧게 퍼졌다.

“세 번은 경고.

두 번은 이동.

한 번은 지금 보라는 뜻.”

도로시가 눈을 깜빡였다.

“그걸 연회장 소음 속에서

구분할 수 있어요?”

“저는 합니다.”

카시안의 대답은

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설명이 끝난 느낌이었다.

아델린은 한 박자 늦게 물었다.

“전요.”

카시안은 그녀를 봤다.

“팀장님도 할 수 있습니다.”

“근거는.”

“원하시면

지금부터 익히면 되니까요.”

도로시가 손뼉을 한 번 쳤다.

“좋네.

연회장 잠입 전에

신호 훈련.

아주 낭만적인데요.”

아델린이 냉정하게 잘랐다.

“낭만은 아닙니다.”

“네.

그 말 할 때가

제일 낭만적이에요.”

도로시는 더 맞받아치기 전에

탁자 위에 작은 은 스푼과

얇은 유리잔 세 개를 늘어놓았다.

즉석 훈련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진행됐다.

짧은 울림 한 번.

아델린은 오른쪽 창가를 봤다.

“아니요.”

카시안이 말했다.

“지금 보는 게 아니라,

지금 듣고 멈추는 쪽입니다.”

다시 한 번.

이번엔 두 번.

아델린은 문 쪽으로 움직였다.

“이동.”

“맞습니다.”

세 번째는

짧게 세 번.

도로시가 끼어들었다.

“경고.”

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회장 안에서

직접 이름을 부르면

오히려 늦습니다.”

아델린은 가만히

그 울림을 다시 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신기하게도

익히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시안은 설명할 때도

불필요한 말을 섞지 않았다.

정확히 언제 멈추고,

어느 쪽을 먼저 보고,

누군가 말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어떻게 시선을 흔들지 않는지까지

짧고 분명하게 알려 주었다.

전장에서 익힌 방식이

연회장용으로 바뀐 셈이었다.

아델린은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칼이 아니라

사교의 언어로 포장됐을 뿐,

그에게 이런 기술은

늘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을 테니까.

“익숙하군요.”

그녀가 말했다.

카시안은 잠시 스푼을 내려다봤다.

“안 익숙한 쪽이

더 위험했습니다.”

그 대답은 짧았지만,

충분했다.

오후가 되자

도로시는 연회 참석 명단을

추가로 훑어 왔다.

에버딘 후작가 장남.

헤일 가문 방계의 부인 둘.

사교국 차석.

그리고 최근 혼담 시장에서

유난히 이름이 자주 오르는

젊은 미망인 후작부인 하나.

도로시는 명단 끝을 톡 두드렸다.

“이 사람들,

다 우연치곤 너무 예뻐요.”

“예쁘다기보다

지저분하죠.”

아델린이 대꾸했다.

“제0서고 열쇠 라인을 쥔 집안,

헤일 쪽,

사교국.

거기다 혼담으로 움직이기 좋은 이름까지.”

카시안은 명단을 읽다가

맨 마지막 이름에서 멈췄다.

레이나 벨루아 후작부인.

아델린은 그 시선이

멈춘 걸 봤다.

“압니까.”

“직접은 아닙니다.”

카시안은 짧게 말했다.

“하지만 저 이름은

대체로 사람보단 카드로 쓰입니다.”

“혼담 카드.”

“네.”

도로시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진짜로.”

아델린은 말을 잇지 않았다.

아직은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황궁에서

유용한 남녀 둘을

가장 손쉽게 갈라 놓는 방법은

언제나 혼담이었다.

특히 한쪽이

정치 자산처럼 취급될수록.

카시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이 아니라 직위처럼

다뤄져 왔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를 사람처럼 포장한 뒤

정치적 결혼 카드로 묶으려 들 수도 있다.

아델린은 그 생각에

기분이 나빠지는 걸 느꼈다.

논리적으로는 예상 가능한 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쾌함은 계산보다 먼저 왔다.

도로시가 그 표정을 읽었는지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팀장님.”

“왜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얼굴은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닙니다.”

“그래도 지금 말하면

혼날 것 같아서요.”

카시안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럼 나중에 하는 편이 낫겠군.”

도로시는 그 말을 듣고

더 노골적으로 웃었다.

“와.

이건 진짜 심하네.”

아델린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연회 준비 목록으로 시선을 옮겼다.

의상은 지나치게 화려하면 안 된다.

가면은 얼굴보다 시선을 감춰야 한다.

무기는 숨기되,

전혀 없는 척해선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시안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같은 목적을 숨길 수 있어야 한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의상실에서 연회용 복식이 도착했다.

아델린 것은

회백색 실크 위에

검은 자수가 얇게 눌린 드레스였다.

차갑고 정돈된 색감인데,

허리선과 손목만은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었다.

가면은 은빛에 가까운 회색.

눈가를 길게 감싸면서도

표정 변화는 완전히 가리지 않는 형태였다.

카시안 쪽은

정식 예복이라기보다

황실 친위의 변형 정장에 가까웠다.

검은 바탕,

금장 최소화,

어깨선만 날렵하게 떨어지는 재단.

가면은 무광 흑색이었다.

너무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시선을 끄는 종류.

도로시는 둘을 번갈아 보고

잠깐 말을 잃었다.

“와.”

아델린이 눈썹을 올렸다.

“문제 있습니까.”

“아뇨.

문제가 너무 명확해서요.”

“설명하세요.”

“같이 들어가면

아무리 부정해도

눈에 띌 거예요.”

그건 칭찬이 아니라

정확한 경고였다.

아델린은 거울 앞에서

장갑 끝을 한 번 정리했다.

카시안도 맞은편 거울 쪽에 서 있었다.

둘의 시선이

거울 속에서 잠깐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실제보다 더 가까워 보였다.

아델린은 먼저 시선을 거뒀다.

“연회장에 들어가면

처음 삼십 분은 서로 다른 선을 탑니다.”

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버딘 쪽은 제가 보죠.”

“아뇨.

당신은 처음엔 사교국 차석 쪽으로 갑니다.”

그가 눈을 들었다.

“이유를 물어도 됩니까.”

“에버딘은

제가 인사팀장 자격으로 접근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반면 사교국 차석은

오늘 들어온 초청 동반자의 신분을

가장 빨리 파악하려 할 겁니다.

당신이 먼저 보세요.”

카시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도로시가 두 사람 사이를 보더니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둘만의 신호도 있고,

배치도 있고,

표정은 없고.

진짜 큰일 났네.”

“도로시.”

“네, 조용히 하겠습니다.”

마차가 도착했을 때,

황궁 외곽은 이미 연회용 등불로

금빛으로 젖어 있었다.

가면궁은 본궁과 떨어진 별궁이었다.

원래는 왕실 소장 미술품과

외국 사절 선물을 보관하던 건물인데,

사교 행사 때만

궁 전체를 열어

밤의 미로처럼 쓰곤 했다.

복도마다 다른 향이 피워지고,

홀마다 다른 음악이 흐르고,

누군가를 찾으려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와 마주쳐야 하는 구조.

의도된 우연으로

가득 찬 장소였다.

마차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밖에선 바퀴 소리와

말굽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지만,

안쪽의 정적은

그보다 훨씬 또렷했다.

아델린은 초대장을 다시 읽었다.

카시안은 맞은편에서

장갑 매듭을 한 번 고쳐 매었다.

“신호.”

아델린이 먼저 말했다.

“기억합니다.”

“한 번은 멈춤.

두 번은 이동.

세 번은 경고.”

카시안이 정정했다.

“한 번은 지금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아델린은 시선을 들었다.

“맞군요.”

“팀장님이 바꾸셨습니다.”

“제가요.”

“조금 전.”

그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긴장하신 것 같군요.”

아델린은 그 말에

즉시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 어둠을 보며 말했다.

“당신과 떨어져 움직이는 쪽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말이 떨어진 뒤,

마차 안 공기가

아주 조용하게 멈췄다.

아델린은 스스로도

조금 늦게 그 문장의 무게를 알았다.

업무적 판단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그 이상이었다.

카시안은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 정적이 길어질수록

아델린은 괜히 손끝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먼저 입을 연 건

그쪽이었다.

“저도입니다.”

아델린이 고개를 들었다.

카시안은 창밖이 아니라

정면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연회장은

칼보다 말이 먼저 들어오는 자리라서.”

그는 그렇게 덧붙였다.

변명처럼,

그러나 전혀 가볍지 않게.

아델린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짧게 말했다.

“그럼 늦지 말고 찾으세요.”

카시안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명령입니까.”

아델린도 이번엔

조금 늦게 답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죠.”

마차가 멈췄다.

가면궁 정문이 열리자

등불과 음악과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황금색 샹들리에 아래,

가면을 쓴 귀족들이

꽃잎처럼 흩어져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도 얼굴을 다 드러내지 않았고,

그래서 누구도

완전히 숨지 못했다.

아델린은 마차에서 먼저 내렸다.

카시안이 뒤를 이었다.

정문 계단 위,

의전관 하나가 초대장을 확인하며

짧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팀장 아델린 케스트님.

그리고 동반 입장 한 분.”

그의 시선은 정중했지만,

머무는 시간이 조금 길었다.

역시 소문은

이미 입구까지 닿아 있었다.

아델린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면 끝을 가볍게 눌렀다.

“안내는 필요 없습니다.”

“예, 팀장님.”

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미리 정한 대로였다.

너무 가깝지도,

완전히 남처럼 보이지도 않는 거리.

그러나 바로 그 첫 순간,

홀 반대편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카시안 쪽으로 정확히 꽂혔다.

연분홍빛 가면,

진주 장식 부채,

그리고 지나치게 계산된 미소.

레이나 벨루아 후작부인.

그녀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이미 카드를 꺼내 든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델린은 그걸 한 번에 읽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순간,

카시안도

그 시선을 알아차린 듯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돌렸다.

둘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둘 다

무슨 일이 시작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카시안을 노린

혼담 카드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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