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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된 식탁 일러스트

청소된 식탁

경기도 파주의 한울식품 제3공장.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새벽 6시.

나는 회사에서 지급받은 검은색 세단(사실 렌터카지만) 보닛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서 과장님. 지금 뭐하십니까?"

윤채린 대리가 차창을 내리고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공기 맛 좀 보고 있습니다. 아, 스멜. 역시 공장 지대라 그런지 매캐하네요."

나는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 코는 지금 개처럼 킁킁거리며 공기 중의 분자를 분석하고 있었다.

락스 냄새.

아니, 일반적인 락스가 아니다. 이건 크레졸 비누액과 포르말린을 섞은 냄새다.

보통 이 정도 농도의 소독약은 병리실, 그것도 전염병이 발생한 격리 병동에서나 쓴다.

단순히 돌연변이 마수 떼가 출몰해서 정리했다는 현장 보고서와는 맞지 않는 냄새였다.

"들어가시죠. 한승우 팀장님이 신신당부하셨잖아요."

윤채린 대리가 차창 너머로 핀잔을 줬다.

"현장팀이 돌연변이 마수 퇴치하고 난 뒤에 원인 조사하는 게 우리 본업이라고요. 왜 마수가 이 장소에 나타나는지 혹은 또 다시 발생 할 우려가 없는지 확인하는게 우리 업무에요. 서 박사님께 제대로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드디어 밥값 하러 왔는데 공기 맛 그만 보시죠."

윤채린 대리가 태블릿을 챙겨 내렸다.

그녀는 오늘도 완벽했다. 칼같이 다려진 정장 바지에,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는 포니테일.

신입인 나보다 직급은 높지만 나이는 어린, 바이오솔루션팀의 에이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른다. 우리가 오늘 확인하러 온 게 식품 공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정문 초소에 다가가자,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길을 막았다.

파브르 연구소 소속이 아닌, 사설 보안 업체 직원들이었다.

"바이오솔루션팀입니다. 현장 검증 나왔습니다."

윤채린 대리는 ID 카드를 제시했다.

보안팀장인 김 실장이 껌을 씹으며 삐딱하게 경례했다.

"아, 본사에서 오신 분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근데 볼 게 없을 텐데. 원인이야 뻔하지. 마수들이 고기 훔쳐 먹으러 쳐들어오는 게 한두 번인가? 우리가 워낙 깔끔하게 치워놔서. 주변엔 다시는 안나타날거요."

그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겠지. 자신들은 밤새 총질하고 칼질해서 상황 종료시켰는데, 아침에 펜대 굴리는 연구원들이 와서 지적질을 하러 왔으니.

"절차니까요. 보고서에 현장 검증 완료 도장만 찍으면 저희도 갑니다."

내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서준혁 과장입니다."

"아, 네. 뭐 맘대로 하십쇼. 대신 통제 구역 밖으로는 나가지 마시고."

김 실장이 손짓하자 철문이 열렸다.

나는 문을 통과하며 그의 워커를 곁눈질로 훑었다.

진흙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진흙치고는 색깔이 너무 붉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걸린 소총. 총구 끝이 그을려 있었다.

밤새 꽤나 격렬한 파티를 벌인 모양이다.

공장 내부는 마치 반도체 생산 라인처럼 깨끗했다.

모든 기계가 멈춰 있었고, 바닥은 물광이 날 정도로 닦여 있었다.

"이상하네요."

윤채린 대리가 태블릿에 체크리스트를 띄우며 중얼거렸다.

"뭐가요?"

"보고서에는 야생 돌연변이 마수 20마리가 공장에 난입해 설비를 파손했다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파손 흔적이 전혀 없어요. 심지어 유리창 하나 깨진 게 없네."

"보수팀 불러서 고쳤나 보죠."

"하룻밤 만에요? 불가능해요."

그녀의 날카로운 지적. 역시 에이스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비상식적인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여기가 사고 발생 지점 A구역입니다."

김 실장이 우리를 냉동 창고 앞으로 안내했다.

거대한 철문이 열리자, 하얀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까 맡았던 그 락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윽."

윤채린 대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소독을 좀 과하게 했습니다. 돌연변이 마수들이 워낙 더러워서 세균 감염 우려가 있거든요."

김 실장이 능청스럽게 설명했다.

나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창고. 고기 한 덩이 없었다.

바닥에는 미세한 스크래치 자국들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왁스칠로 덮여 있었다.

이건 청소가 아니라, 인멸이야. 증거 인멸.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다가 떨어뜨린 척하며 벽면의 배수구를 살폈다.

배수구 트렌치.

청소부들이 가장 놓치기 쉬운 곳.

역시나.

철망 틈새에 아주 작은, 검붉은 젤리 같은 조각이 끼어 있었다.

찾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어섰다. 그 조각을 손수건 안에 숨긴 채.

이건 핏덩이가 아니다. 응고된 무언가의 찌꺼기다.

"어떻습니까? 깨끗하죠?"

김 실장이 재촉했다.

"네, 아주 훌륭하네요. 헌터가 아니라 청소업체 차리셔도 되겠어요."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 실장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그럼 서명하시죠."

그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이대로 서명하면 끝이다. 단순 돌연변이 마수 난입 사건으로 종결된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있는데.

"잠깐만요. 서명하기 전에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제가 장이 좀 예민해서."

"......저쪽 복도 끝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채린 대리님, 먼저 서류 검토하고 계세요."

나는 윙크를 한번 날리고 복도로 뛰어갔다.

윤채린 대리가 저 한심한 인간이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칸막이 안에 숨어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소연 과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과장님 과장님, 지금 바로 한울식품 지난달 전기 사용량 조회 좀 부탁해요. 긴급.]

1분 뒤 답장이 왔다. 역시 정보통.

[서박사.갑자기 급하게 요청하기 있기 없기. 한울식품 제3공장 3월 사용량: 45,000kW. 특이사항: 심야 전력 사용량이 주간의 3배임.]

빙고.

식품 공장은 보통 낮에 기계를 돌린다. 밤에 3배나 전기를 쓴다?

두 가지 경우뿐이다.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있거나, 아니면 밤에만 돌아가는 비밀 설비가 있거나.

이 공장의 공식 설립 목적은 육가공품 생산이다.

이 정도 설비로 저 정도 전기를 쓴다는 건 말이 안 돼. 육가공 기계를 아무리 풀가동한다고 해도 저 수치가 나올 순 없거든.

그런데 지상에는 그런 설비가 없다.

나는 화장실을 나와 복도를 어슬렁거렸다.

김 실장의 부하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지만, 길치인 척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아이고, 복도가 왜 이렇게 복잡해?"

"서 과장님! 거긴 관계자 외 출입 금집니다!"

직원 하나가 달려와 나를 막아섰다.

그가 막아선 곳.

비품 창고라는 팻말이 붙은 철문이었다.

"아, 죄송. 화장실 찾는다는 게 그만."

나는 멋쩍게 웃으며 물러났다.

하지만 내 눈은 문 아래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밀폐된 비품 창고에서 바람이 나온다?

저건 단순한 창고가 아니다. 공조 시설이 연결된 통로다.

다시 냉동 창고 앞으로 돌아오니,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윤채린 대리는 태블릿에 띄워진 도면과 실제 공장 구조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 실장은 그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발을 구르고 있었다.

"윤 대리님, 아직 멀었습니까?"

"잠시만요. 도면이랑 실제 배치가 좀 달라서요."

윤채린 대리는 김 실장의 재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정도 문서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넘겨보았다.

"이 공장의 가공육 생산 라인 동선이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원료 투 입구에서 전처리실까지 거리가 왜 이렇게 멀죠? 중간에 이 빈 공간은 뭐고요? 도면상으로는 기계실이라는데, 배관 연결이 전혀 안 되어 있잖아요."

오, 역시 윤채린 대리.

내가 전력량을 의심할 때, 그녀는 공간의 모순을 보고 있었다.

"아니, 옛날 공장이라 증축하고 개조하다 보니 그렇죠. 다 허가받고 지은 겁니다. 빨리빨리 좀 합시다. 우리도 퇴근 좀 하게."

김 실장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검증 리스트 항목이 150개라서요. 규정상 하나라도 누락되면 재검증해야 합니다. 팀장님도 귀찮게 두 번 일하기 싫으시잖아요?"

윤채린 대리는 차분하게 대꾸하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녀는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었다. 아주 꼼꼼하게, 질릴 정도로 천천히.

"아, 진짜 이 양반들이..."

김 실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지만 규정을 들먹이는 대기업 직원에게 대놓고 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무전기를 쥔 손에 핏줄을 세우며 애꿎은 바닥만 군화발로 찼다.

"저기, 김 팀장님. 저희 윤 대리님이 워낙 원리원칙주의자라서요. 꼼꼼하게 안 보면 잠을 못 자는 성격입니다. 이해 좀 부탁드립니다."

내가 너스레를 떨며 음료수(자판기에서 뽑은 거다)를 건넸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 봤으면 빨리 갑시다. 더 볼 것도 없잖소."

"네, 네. 거의 다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수 시설 확인만 하고요."

윤채린 대리는 기어이 30분을 더 끌었다.

김 실장이 폭발하기 직전, 그녀는 태블릿을 덮었다.

"특이사항 기재했습니다. 서명하시죠."

김 실장은 태블릿을 낚아채듯 가져가 전자 서명을 갈겨썼다.

"이제 됐죠? 나가시죠. 두 번 다시 볼 일 없었으면 좋겠네."

우리는 김 실장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공장을 빠져나왔다.

차에 타자마자 윤채린 대리가 내 멱살을 잡으려 했다. (실제로는 안전벨트를 잡았다.)

"서 과장님. 아까 그 사람들, 뭔가 숨기고 있어요."

윤채린 대리가 안전벨트를 매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가요?"

"네. 공장 구조가 엉망이에요. 도면이랑 실제 벽 두께가 안 맞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그리고 사고 경위서도 앞뒤가 안 맞아요. 마수가 외부에서 침입했다는데, 파손된 건 내부 설비뿐이고 외부 울타리는 멀쩡하잖아요."

나는 아까 이소연 과장에게 받은 문자를 보여주었다.

"이것 좀 보세요. 지난달 전기 사용량입니다. 일반 식품 공장의 3배예요. 주간보다 야간 전력 사용량이 압도적으로 많고요."

윤채린 대리의 눈이 커졌다.

"이 정도면... 공장 하나가 더 돌아가고 있다는 소리네요."

"맞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

나는 아까 손수건에 묻혀온 젤리 조각을 윤채린 대리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피? 아니, 배양액?"

윤채린 대리는 단번에 알아봤다.

"뭔가 이상해 보였어요. 피가 이렇게 젤리 조각처럼 뭉쳐질 수 있나요?"

나는 차 시동을 끄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숨겨진 시설이 있겠네요."

윤채린 대리가 꿀꺽 침을 삼켰다.

"서 과장님. 그럼 이제 어쩔 셈이죠? 위에 보고하실 건가요?"

"경찰이 오면 저들은 증거를 인멸하고 도망갈 겁니다. 이미 청소까지 마친 놈들이에요. 그리고..."

"그리고 뭐요?"

나는 기억한다. 지난 사막에서의 전쟁터에서 이런 무장집단을 낀 세력이 증거를 인멸하는 방식을...

자리를 떠나면 이곳은 함정 투성이로 바뀌겠지. 불필요한 인명피해를 동반한 무차별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이 남겨질 것이다.

나는 마음이 서늘해졌다.

"잠입 수사합시다. 오늘 밤에."

나는 트렁크에서 입고 있던 양복과 서류 뭉치를 뒷좌석에 던졌다.

"윤 대리님은 차에서 대기하셔도 됩니다. 위험하니까."

"웃기지 마세요."

윤채린 대리가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나비 모양의 브로치. 그녀의 전용 장비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다시 가방 깊숙이 넣었다.

"팀장님이 이번에는 장비쓰지 말라 하셨는데... 장비 썼다가 파동 감지되면 곤란해져요."

"그게 뭡니까? 설마 마법 소녀 변신 도구 같은 건 아니죠?"

내가 시치미를 뚝 떼고 묻자, 윤채린 대리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서 과장님, 오리엔테이션 때 안 듣고 뭐 하셨어요? 이건 바이오테크놀로지 기반으로 만든 특수 장비예요. 우리 연구소의 핵심 기술이죠."

"아, 그 1년 근속하면 준다는 그거요?"

"네. 입사 1년 차부터 적성 검사를 통해 개인 전용 아이템을 하나씩 지급받을 수 있어요. 제 건 '호랑나비'라는 모델이고요. 파동 에너지를 증폭시켜주는... 아, 됐어요. 어차피 지금은 못 쓰니까."

오, 역시 프로. 그녀도 눈치챘다. 이번 일이 단순한 조치로만 끝나지는 않을거라는 걸.

"좋아요. 그럼 오늘 밤, 우리 팀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시죠."

우리는 공장 뒤편의 야산으로 향했다.

아까 봐둔 비품 창고의 환기구가 산비탈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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