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패와 눈
서아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할 말이 있다는 뜻을 강렬한 눈빛에 담아 말했다.
“두 가지는 별개의 임무가 아니에요. 폭탄은 폭주체의 불안정한 마나를 동력원으로 삼아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구조일 가능성이 높아요. 제가 폭주체의 마나를 안정시키는 순간, 폭탄은 동력을 잃고 자연스럽게 무력화될 겁니다. 마치 전원이 꺼진 시한폭탄처럼요. 핵심은, 그 과정에서 폭탄이 제 정신을 직접 공격하는 것을 막아내는 거죠.”
그녀는 프로파일러의 직관으로, 보이지 않는 적의 무기 시스템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그럼 내 역할은?”
권이헌이 물었다.
“절대적인 시간.”
서아린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가 폭주체에게 완전히 집중하는 그 3분 동안, 당신은 저를 위한 ‘계계(結界)’를 만들어 주세요. 당신의 염동력으로,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어떤 외부의 공격도 닿을 수 없는 완벽한 구(球)를 만드는 거예요. 라비린토스의 저격수, 추가적인 함정, 심지어는 관리국의 섣부른 개입까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저를 완벽하게 지켜주세요. 당신이 나의 막강한 방패가 되는 것이 필요해요.”
권이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의 힘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하고, 가장 정확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었다. 도시를 파괴할 수도 있는 그의 힘을, 오직 그녀 한 사람만을 지키는 가장 섬세하고 단단한 성벽으로 사용하라는 것. 그는 기꺼이 그녀만의 수호자가 될 터였다.
“나는 뭘 하면 되지, 나의 뮤즈?”
줄리안이 화면 속에서 손을 들며 물었다.
“당신은 눈이 되어주세요.”
서아린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당신의 예지 능력으로, 작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3분 동안 벌어질 가장 위협적인 변수들을 실시간으로 권이헌 씨에게 전달해 주세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올 총알의 궤도, 숨겨진 폭탄의 위치, 적들의 다음 움직임까지. 당신의 예지가 권이헌 씨의 방패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
“오, 마이 갓. 내 예지력을 네비게이션으로 쓰시겠다? 아주 마음에 들어. 스릴 넘치잖아!”
줄리안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이 위험한 도박에 완벽하게 매료된 듯 보였다.
마지막으로 서아린은 통신 라인을 통해 모든 것을 듣고 있던 강지훈에게 말했다.
“팀장님. 저희가 현장에 진입한 후, 반경 2km 이내의 모든 통신망을 차단하고, 관리국의 그 어떤 병력도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주세요. 저희를 믿고, 오롯이 저희에게 맡겨주셔야 합니다. 이건 상부의 명령보다 더 중요한, 저희와의 약속입니다.”
[……알겠다.]
강지훈의 짧은 대답 속에는, 자신의 직위와 신념 모든 것을 건 무거운 결의가 담겨 있었다.
모든 역할 분담이 끝났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완벽한 팀. 그 중심에는 서아린이라는 지휘관이 있었다.
“그럼, 각자 위치에서 준비하죠.”
서아린이 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작전 개시 2시간 전.
펜트하우스는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한정훈 실장은 수십 개의 통신 채널을 오가며 JK그룹의 모든 가용 자원을 움직여 현장 주변의 안전을 확보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비상 탈출로와 의료팀을 준비시켰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는 비장함이 가득했다.
이하나는 주방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친구가 마지막으로 먹을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정성을 쏟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붉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권이헌은 드레스룸에서, 작전을 위한 가장 실용적인 검은색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수많은 실전으로 다져진 완벽한 병기였지만, 지금 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그때, 드레스룸 문이 조용히 열리고 서아린이 들어왔다. 그녀 역시 활동하기 편한 단정한 검은색 의상을 입고 있었다.
“…….”
“…….”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말들이 두 사람의 눈빛 속에서 오고 갔지만, 그 어떤 단어도 지금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었다.
“이리 와봐.”
권이헌이 먼저 침묵을 깨고 그녀를 불렀다. 서아린이 다가가자, 그는 그녀의 앞에 서서 목에 걸고 있던 작은 목걸이를 풀어, 그녀의 목에 직접 걸어주었다. 아주 작은 백금으로 만들어진, 새의 날개 모양 펜던트였다.
“이건…?”
“어머니 유품이야.”
그가 나직이 말했다.
“아버지가 어머니께 처음 선물한 거래. 늘 몸에 지니고 계셨지. 사고 현장에서도, 이것만큼은 기적적으로 흠집 하나 없이 발견됐다고 하더군. 아마… 당신을 지켜줄 거야.”
그는 서아린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부적을,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것을 내어주고 있었다. 서아린은 차가운 금속의 감촉과, 그 안에 담긴 그의 뜨거운 진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고마워요. 반드시… 돌려줄게요.”
“아니.”
권이헌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돌려주지 마. 그냥… 평생 네가 가져. 그리고 그 목걸이의 진짜 주인이 되어줘.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말은 청혼이나 다름없었다. 이 지옥 같은 전쟁이 끝나면,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자는,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서툴고도 절실한 약속이었다.
서아린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포갰다. 지난번의 격정적인 키스와는 다른,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영혼을 나누는 듯한, 부드럽고 경건한 입맞춤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두 사람이 입술을 떼었을 때, 권이헌의 스마트폰에서 작전 개시 30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로를 깊고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권이헌과 서아린은 굳게 손을 맞잡고, 드레스룸을 나섰다. 그들의 앞에는 죽음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함께라면, 그 어떤 지옥이라도 건널 수 있으리라.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들의 전쟁터로 향하는 문이.
특수 제작된 방탄 세단의 내부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는 심해와도 같았다.
차창 밖으로, 그들을 향해 광적으로 터져 나오던 카메라 플래시와 저주에 가까운 고함 소리는 마치 다른 차원의 일처럼 아득하게 멀어졌다. 오직 부드러운 엔진의 저음과, 두 사람이 내쉬는 숨소리, 그리고 맞잡은 손에서 전해져 오는 서로의 심장 박동만이 이 작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권이헌은 운전대를 잡은 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칠흑 같은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그의 옆모습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처럼 냉정하고 완벽해 보였지만, 운전대를 감싸 쥔 손등 위로 솟아난 힘줄만이 그의 내면에 휘몰아치는 폭풍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힐끗, 옆자리의 서아린을 보았다.
그녀는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불빛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저 수많은 불빛들 아래,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들이 ‘마녀’와 ‘악마의 비호자’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표정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하지만 권이헌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고요함이 평온이 아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내하기로 결정한 자의 단단한 결의라는 것을.
그녀의 가슴팍에서, 그가 걸어준 날개 모양 펜던트가 희미한 빛을 받아 작게 반짝였다.
“무섭지 않아?”
마침내, 그가 침묵을 깨고 나직이 물었다. 목소리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잠겨 있었다.
서아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은 칠흑 같은 밤하늘처럼 깊고 투명했다.
“무서워요.”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당신을 혼자 남겨두고 가게 될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워요.”
그녀의 솔직한 대답에, 권이헌의 심장이 쿵, 하고 아프게 내려앉았다. 그는 차마 그녀의 눈을 계속 마주 보지 못하고,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서아린이 말을 이었다. 그녀는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들어,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그의 거칠고 단단한 손등 위로, 그녀의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당신이 옆에 있잖아요. 이 세상에서, 그것보다 더 확실한 건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미사여구나 꾸밈도 없는, 순수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진심은 S급 에스퍼의 그 어떤 방어막보다도 견고하게, 그의 모든 불안과 공포를 막아내는 방패가 되어주었다.
권이헌은 대답 대신, 운전대를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 위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더 이상의 말은 사치였다.
✦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