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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아니라 증언

이름 회랑 맨 안쪽은 더 내려갈 곳이 없어 보였는데도 바닥이 한 층 더 꺼져 있었다. 마지막 거울면 아래로 반원형 봉함대가 젖은 돌을 밀어 올리듯 드러나 있었고, 그 위에는 좁은 받침 네 칸이 가늘게 벌어져 있었다. 첫 칸은 젖은 명단 조각이 걸치기 좋게 길었고, 둘째 칸은 장례 끈 자국이 남은 홈과 딱 맞았다. 셋째 칸은 작은 금속 표식을 눕히기 좋게 얕았으며, 마지막 칸은 손끝 두세 개만 닿을 정도로 좁은 물홈이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고 네 칸 밑에서 서로 다른 높이로 맴돌았다. 얕은 수면마다 빛의 떨림이 달랐고, 칸 아래에 남은 검은 침전도 제각기 다른 선을 그리고 있었다. 아무거나 하나 떼어 읽으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었다. 같은 수위에 올려놓아야만 원래 줄이 살아나는 장치였다.

봉함대 둘레는 보는 것보다 더 복잡했다. 왼쪽엔 낡은 돌턱이 한 칸 높게 남아 있어 조각을 잠시 올려둘 수 있었고, 오른쪽엔 무너진 받침 밑으로 얕은 배수홈이 사선으로 빠져 있었다. 네 칸 아래를 한 바퀴 감싸는 좁은 물막이 홈은 바깥에서 손을 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만큼 낮고 깊었다.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손이 닿지 않았고, 손을 집어넣으면 반대로 시야가 막혔다. 기록을 오래 지키려 한 자가 만든 자리였다. 한 줄만 낚아채는 사람보다는, 몸 전체를 낮추고 끝까지 읽으려는 사람에게 유리한 자리.

세라는 뒤 갈림칸을 그대로 잠그고 있었다. 검집 끝은 낮은 틈에 박혀 있었고, 오른발은 젖은 돌턱 위에 반쯤 걸친 채였다. 위쪽에서 내려오려는 손이 있으면 먼저 그녀 어깨와 검집부터 밀어야 했다. 칼을 빼지 않고도 길을 막는 자세였다. 젖은 돌 위에서 발목에 힘을 주고, 어깨를 반쯤 열어 뒤쪽과 아래쪽을 동시에 살폈다. 길을 지키는 기사라기보다, 한 조각이라도 아래로 떨어지는 걸 끝까지 허락하지 않겠다는 경비병에 가까운 자세였다.

브론은 봉함대 오른편을 무릎과 팔꿈치로 떠받쳤다. 물먹은 돌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는데, 그 기울기를 한 사람 힘으로 붙들고 있는 자세였다. 왼손은 받침턱 밑의 갈라진 틈을 짚고, 오른쪽 어깨는 더 무거운 돌기둥 쪽으로 바짝 붙어 있었다. 지금 힘을 빼면 봉함대 오른편이 먼저 꺼질 것이고, 그러면 네 칸이 한꺼번에 젖은 물속으로 비틀려 들어갈 터였다. 브론은 처음부터 그 순서를 계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너지는 걸 겁내는 얼굴이 아니라, 어느 쪽이 먼저 내려앉는지만 계속 재는 얼굴.

미리엘은 젖은 명단 조각 끝에 묻은 작은 왕가 표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톱 끝으로 표식 가장자리의 눌림을 따라가며, 어디까지가 원래 선이고 어디부터가 나중에 눌린 자국인지 가늠하는 중이었다. 물을 많이 먹은 종이였는데도 그녀 손은 성급하게 들추지 않았다. 젖은 조각은 한 번만 잘못 들어도 결이 다 뜯겨 나간다는 걸 아는 손이었다. 리에트는 그 곁 물홈 앞에서 얕은 숨을 길게 고르고 있었다. 몸은 여기에 와 있는데, 시선은 아직 뒤집힌 사당 안쪽 어느 갈림목에 걸린 사람의 얼굴에 반쯤 머물러 있었다. 얼굴을 다 보지 못했다는 기억이 그녀 어깨를 자꾸 안으로 말아 넣으려 했다.

이솔데는 네 칸 너머 검은 뿌리와 물빛이 겹친 자리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사라지지 못한 혼령보다, 오래 젖어 버린 장례문 한 줄이 아직 버티는 모습처럼 보였다. 칼을 겨눌 때보다, 누가 무엇을 먼저 읽는지 살필 때 더 분명해지는 형상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우리를 덮치지 않았다. 대신 한 사람이 손을 잘못 얹을 때마다 봉함대 아래 검은 물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 자리에서는 누굴 베어 넘기느냐보다, 어떤 순서를 다시 세우느냐가 더 중요해 보였다.

나는 네 칸을 한눈에 넣으려고 몸을 더 낮췄다. 왼쪽 어깨는 명단 조각 쪽에, 오른손은 물막이 홈 바깥에 두었다. 세라가 뒤를 막고, 브론이 오른편 하중을 버티고, 미리엘이 표식을 읽고, 리에트가 마지막 칸 앞에서 숨을 붙잡고 있었다. 단서 몇 개를 손에 넣는 일이 아니었다. 각자 서 있는 자리 자체가 증언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비교판 아래쪽을 손등으로 쓸어 물을 걷었다. 그러자 잘린 이름 홈 아래에 남아 있던 가는 끈 결 하나가 드러났다. 장례 끈이었다. 그 끈은 위패를 묶을 때 쓰는 평범한 매듭선보다 더 얇고 더 길었다. 보관용이 아니라 이송용에 가까운 선. 그리고 그 끈 끝에, 어제는 번호 자국처럼만 보였던 작은 왕가 표식이 다시 떠올랐다. 넓고 무거운 왕실 인장이 아니라 보호 대상을 옮길 때 쓰는 가볍고 긴 이동표였다. 누군가를 높이 세우는 표식이 아니라 어디로 빼냈는지를 감추기 위해 붙이는 쪽에 가까운 표식.

나는 그 표식을 오래 들여다봤다. 수련원 기록실에서 며칠씩 장부를 나르며 봤던 자잘한 분류표가 머릿속에서 하나씩 겹쳐 올랐다. 큰 왕실 인장은 문장 한가운데가 무겁고, 보호 이송 확인표는 옆으로 길게 눌린다. 인장을 찍는 손은 보통 자랑하듯 크게 누르지만, 이동표를 찍는 손은 오히려 숨기듯 짧고 가볍다. 이 표식은 후자였다. 이름을 널리 남기려 한 흔적이 아니었다. 이름 대신 다른 대상을 빠르게 옮겼다는 사실만 최소한으로 남기려 한 흔적.

“그대로 두고 맞춰 보자.”

내 말에 미리엘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

“떼지 않고요?”

“응. 하나만 들면 또 편한 이야기만 남아.”

브론이 짧게 웃지도 못하고 코로 숨을 뱉었다.

“맞는 말이네. 이건 빼는 순간 다시 잘린다.”

세라도 뒤를 막은 채 낮게 덧붙였다.

“올라가자마자 왕국은 표식만 달라 할 거고, 숲 안쪽은 이름 줄부터 감출 거야. 아래에서 묶어 읽지 않으면 또 흩어진다.”

나는 젖은 명단 조각 가장자리를 첫 칸에 맞춰 눕히고, 장례 끈 자국이 남은 홈을 둘째 칸 위로 끌어왔다. 셋째 칸에는 작은 이동표가 오도록 물을 손등으로 밀어 놓았다. 마지막 물홈은 비워 두었다가 리에트를 봤다. 네 칸은 그 자체로 빈 약속 같았다. 종이, 끈, 표식, 증언. 셋만 있으면 다시 잘릴 것이고 넷째가 들어와야 비로소 줄이 하나로 돌아오는 자리.

내가 챙길 순서는 그때 이미 정해졌다. 조각은 미리엘이 읽고 감싼다. 하중은 브론이 버틴다. 길목은 세라가 좁힌다. 리에트는 빈칸에 자기 실패를 그대로 올린다. 나는 넷이 어긋나지 않게 수위와 동선을 맞춘다. 누구 하나가 물품 하나만 붙드는 순간, 이 자리는 다시 조각난다.

“네가 본 건 여기다.”

리에트는 바로 손을 얹지 못했다. 손끝이 물 위에서 잠깐 떨렸다. 그녀 눈에는 아직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수치가 남아 있었다. 얼굴이 없으면 말할 자격도 없다고 누군가 오래 속삭인 흔적 같은 것. 그러나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손바닥 옆면을 마지막 칸 물홈에 붙였다. 네 칸 아래 얕은 물이 한 번 흔들리더니 서로 따로 놀던 수위선이 조금씩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의 보이지 않는 차이였다. 첫 칸 밑 물결이 둘째 칸 쪽으로 아주 얇게 기울고, 셋째 칸 아래 눌린 침전이 느리게 풀려 나오는 정도. 그런데 리에트 손이 계속 남아 있자 변화가 뚜렷해졌다. 각 칸 밑에서 따로 떨던 검은 선이 하나의 낮은 호처럼 이어졌고, 잘린 이름 홈 아래에 묻혀 있던 잔결 두 개가 같은 높이에서 떠올랐다. 이 자리는 기억을 알아맞히는 자리가 아니라 압력을 맞추는 자리였다. 누가 먼저 눌렀고, 누가 나중에 덧댔는지. 사람 손이 남긴 차이를 수위로 되읽는 자리.

미리엘이 작은 표식을 들여다보며 낮게 말했다.

“왕실 인장 아니에요. 보호 대상 이송 확인표예요. 아이나 병약한 왕족을 옮길 때, 바깥 명단에는 이름 대신 이걸 남겨요.”

세라가 그 말에 반 박자 늦게 돌아봤다.

“어린 왕자 쪽이란 거지.”

“네. 그리고 이건 나중에 붙었어요.”

미리엘 손끝이 젖은 조각 위를 더듬었다. 그녀는 표식 위를 바로 읽지 않고, 그 아래 눌린 결부터 더 깊이 살폈다. 끝번호처럼 보이던 얕은 눌림 아래에 더 오래된 물먹은 섬유가 숨어 있었고, 표식 좌우의 눌림 방향이 다르게 틀어져 있었다. 한 손으로 한 번에 찍은 자국이 아니었다. 다른 시간의 다른 손이 같은 줄 위를 나눠 누른 흔적.

“먼저 이름 줄이 눌리고, 그다음 장례 끈 자리가 잘리고, 마지막에 이 표식이 올라왔어요. 죄인 낙인처럼 끝에 박은 게 아니에요. 이동선을 가리려고 덮은 거예요.”

브론은 봉함대 밑을 두드렸다. 네 칸 아래에서 나는 소리가 모두 달랐다. 그는 한 번 더 두드린 뒤 눈썹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왼쪽 칸만이 아니라 봉함대 바깥 돌턱, 수로 쪽 받침, 리에트 손 아래 물홈까지 차례로 가볍게 두드렸다. 소리는 돌이 아니라 눌린 결이 받는 힘 차이에서 갈렸다.

“작은 손이다.”

“뭐?”

“눌림 깊이가 달라. 큰 손이 눌러 죽인 줄 위에, 더 가벼운 손이 순서를 바꿔 놨어. 끝번호를 얹은 놈이 처음 손은 아니야.”

그는 검은 물이 고인 홈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긁어 미세한 가루를 떼었다. 젖은 돌가루가 아니라 납작하게 밀린 얇은 섬유 부스러기였다. 종이나 천이 눌린 뒤 오래 물을 먹고 남기는 부스러기.

“그리고 첫 손은 서두르지 않았어. 눌러 죽이기 전에 줄을 잡아당겨 평평하게 만든 흔적이 남았다. 죄인을 찍는 손이면 이렇게 곱게 안 눌러. 다시 덮어씌우려는 손이다.”

나는 물 위를 내려다봤다. 잘린 이름 홈과 이동표, 장례 끈 결이 같은 높이로 맞아 들어가자 거울면 뒤쪽이 천천히 밝아졌다. 검은 물빛이 먼저 살아났고, 그 위로 손들이 보였다. 어제처럼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는 아이를 안아 낮은 수로 쪽으로 넘겼다. 작은 몸이 젖은 천에 싸여 있었고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남은 장례 줄 위를 손바닥으로 눌러 이름 결을 죽였다. 세 번째 손은 그 위에 가벼운 금속 끝을 대고 짧은 표식을 눌렀다. 세 손은 서로 싸우지 않았다. 마치 오래 합을 맞춘 사람들처럼 순서를 나눠 움직였다. 먼저 옮기고, 그다음 묻고, 마지막에 바깥 검증용 표시를 덧대는 순서.

그 장면은 배신자를 가리키지 않았다. 누가 먼저 살아 나가야 했는지, 누가 남아서 그 길을 감추었는지, 누가 나중에 그 감춤을 자기 서류 위에 다시 정리했는지를 보여 줬다. 영웅 이름을 세우는 손이 아니었다. 먼저 살아 나간 아이의 길을 숨기기 위해 남은 줄을 접는 손이었다.

리에트 숨이 거칠어졌다.

“저기 있었어.”

그녀 시선은 얼굴을 쫓지 않았다. 젖은 수로 끝, 아이를 넘기는 팔, 갈림목에 남아 선 사람의 등, 그리고 그 뒤에서 이름 줄을 눌러 죽이는 손놀림만 따라갔다. 얼굴이 빠진 자리를 손의 일로 메우는 눈길이었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구의 얼굴이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순서로 일이 벌어졌는지를, 그녀도 이제는 알아보고 있었다.

이솔데가 검은 뿌리 사이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오래 젖은 옷자락이 물 위를 스쳤다. 젖은 천 끝에서 검은 물방울이 떨어졌고, 그것이 네 칸 아래 수위선을 한 번 더 흔들었다. 그녀는 다섯 번째 이름 홈을 곧장 가리키지 않았다. 대신 그 옆 빈 끈자리와 이동표가 만나는 지점을 먼저 내려다봤다.

“이제야 줄이 맞네.”

그녀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 사람의 복수를 붙든 게 아니다. 먼저 살아 나가야 했던 아이와, 그 아이를 보내려 자기 이름을 밑으로 눕힌 자들의 순서를 붙들었다.”

그 말은 장면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다섯 번째 이름이 영웅으로 세워지지 못한 이유가 비겁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 하나를 먼저 빼내기 위해 자기 줄을 아래로 눕힌 데 있었다면. 숲이 오래 붙잡아 온 분노는 사람 하나를 겨눈 칼보다, 애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게 만든 절차 전체를 향해야 했다.

위쪽에서 엘프 반대파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만 닫아라! 그 줄까지 바깥에 닿으면 숲 안쪽은 끝이다!”

거의 겹쳐서 왕국 봉함 담당도 외쳤다.

“그 표식은 왕실 검증물이다! 지금 당장 넘겨!”

두 목소리는 다른 말을 했지만 요구는 같았다. 아래에서 한 줄로 묶여 읽히는 걸 싫어한다는 것. 숲은 수치라 부르고, 왕국은 검증이라 불렀다. 그러나 둘 다 이 자리에 남아 있는 배열을 다시 찢어 각자 유리한 조각만 들고 올라가려 했다.

세라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검집을 더 비틀어 길목을 좁혔다. 쇠가 돌에 박히며 낮은 마찰음을 냈다. 그녀는 위쪽 손을 보지 않은 채, 아래 물홈과 네 칸 받침이 무너지지 않는 각도부터 잡았다. 칼을 뽑아 다 베어 넘기는 것보다, 이 좁은 틈 하나를 끝까지 내주지 않는 쪽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숲은 수치라서 접고, 왕국은 책임이라서 떼어 가고.”

그녀 목소리는 차가웠다.

“방식만 다르지 하는 짓은 같네.”

위에서 젖은 장갑 손이 아래로 내려오자 세라의 검집이 먼저 그 손목 앞을 가로막았다. 같은 순간 브론이 봉함대 받침 하나를 안쪽으로 살짝 비틀었다. 네 칸이 같이 기울며 물길이 한쪽으로 쏠렸다. 이제 조각 하나만 억지로 잡아당기면 봉함대 전체가 무너질 판이었다.

브론은 그걸 더 확실하게 만들었다. 오른팔꿈치로 받침을 더 눌러, 왼쪽 칸을 빼내면 둘째 칸 물막이 홈까지 같이 틀어지게 걸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야 위쪽을 올려다봤다.

“하나만 빼면 전부 젖어 죽는다.”

그가 말했다.

“가져갈 거면 사람째로 들고 가.”

잠깐 정적이 흘렀다. 위쪽도 뒤쪽도 손을 더 내밀지 못했다. 그 사이 거울면은 더 또렷해졌다. 갈림목 앞에 남은 등이 보였다. 리에트의 옛 대장이었다. 그는 달아나는 쪽을 보지 않았다. 낮은 수로를 가로질러 아이가 넘어간 방향을 한 번 확인한 뒤 좁은 길목에 몸을 틀어 세우고 있었다. 뒤에서 따라붙는 손이 있으면 자기 쪽으로 먼저 오게 만들 자세였다. 도주를 감추는 등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죄다 자기 등으로 받아 내는 모습.

리에트가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활시위를 당길 때와는 전혀 다른 호흡이었다. 손가락 힘이 손등으로 새고, 어깨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던 그 옛 습관이 다시 올라오려 했다. 그녀에겐 아직도 얼굴을 다 보지 못했다는 실패가 있었다. 활을 쏘는 사람은 표적을 분명히 봐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늘 ‘다 보지 못했으면 말할 자격도 없다’는 쪽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왔다.

기억 오염이 그 장면 위로 다른 얼굴들을 덧씌우기 시작했다. 패주, 비명, 뒤늦게 찍힌 죄인 번호, 끊어진 활시위, 흙탕물, 얼룩진 피, 갈라진 사당 계단. 거울면은 의도적으로 순서를 섞었다. 리에트가 다시 얼굴만 찾다가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들려는 식이었다. 전부 보지 못하면 입을 다물라는 압박. 얼굴을 놓쳤으면 증언도 접어야 한다는 오래된 규칙.

나는 리에트 쪽으로 몸을 조금 돌렸다. 완전히 돌아서면 네 칸 정렬이 무너질 수 있어서, 한쪽 어깨만 기울여 그녀 시야 안으로 들어갔다.

“전부 보려고 하지 마.”

그녀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내가 못 본 게—”

“못 본 건 못 본 대로 둬. 지금 남은 줄만 말해.”

세라가 뒤에서 짧게 끊었다.

“우린 그거 지키고 있어.”

브론도 받침을 붙든 채 낮게 거들었다.

“얼굴은 놓쳐도 결은 남는다. 지금 네 손 밑 물홈이 그걸 보여 주고 있잖아.”

미리엘은 곧바로 물을 손끝으로 눌렀다. 높이 오른 반사 수면이 내려가며 끝번호 자리가 흐려지고, 그 아래 숨은 장례 끈 결이 더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리에트 시야가 자꾸 표식과 번호 쪽으로 올라가면 손끝으로 물을 눌러 아래 줄을 다시 드러냈다. 눈이 흔들려도 손이 가리키는 곳만 따라가면 남은 순서를 놓치지 않게 하려는 보조였다.

브론은 무너지는 받침 다리를 다시 받쳐 봉함대가 버틸 틈을 만들었다. 그의 손등 힘줄이 돌색보다 짙어졌고, 손톱 밑엔 젖은 돌가루가 눌어붙었다. 버티는 일은 멋이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누군가 하나가 오래 버티고 있어야 다른 사람이 기억 대신 순서를 읽을 수 있었다.

리에트는 한참 말이 없었다. 대신 물 위에 떠오른 등 하나를 끝까지 봤다. 달아나는 등이 아니었다. 갈림목을 막고, 뒤를 끊고, 시간을 벌기 위해 남은 등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아이를 넘긴 뒤 이름 줄을 죽이는 손이 따라왔다. 그녀 시선이 처음으로 얼굴을 찾지 않고 역할을 찾기 시작했다.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누가 무엇을 포기하고 남았는지.

“나는…”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부 기억하지 못해.”

위쪽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다. 리에트는 이번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말이 실패처럼 들리게 두지 않으려는 얼굴이었다.

“얼굴도 다 못 봤어. 그래도 이건 말하겠다.”

그녀 손끝이 마지막 물홈을 눌렀다. 그 순간 네 칸 밑 수위가 한 번 더 맞물렸다. 젖은 명단 조각 아래 가라앉아 있던 선 하나가 장례 끈 자리와 이어졌다가, 다시 작은 이동표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여기서 먼저 있었던 건 배신이 아니야. 아이를 빼내는 일, 그걸 감추려고 이름 하나를 밑으로 눕히는 일, 그리고 나중에 죄인 번호를 덧대는 일이었어.”

말이 끝나는 순간 거울면이 크게 흔들렸다. 패주처럼 겹쳐 붙던 장면이 한 겹씩 벗겨졌다. 남은 건 수로를 막는 등, 아이를 넘기는 팔, 젖은 장례 끈, 그리고 다섯 번째 이름 줄 아래로 밀린 결이었다. 얼굴 없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선명했다. 이건 누구의 변명이 아니라 절차의 순서였다.

리에트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난 끝까지 다 못 봐도, 누가 먼저 지워졌는지는 말할 거야. 누가 달아났는지가 아니라, 누가 남아서 다른 사람을 보내고 자기 이름을 잃었는지.”

그 말 뒤엔 설명이 필요 없었다. 미리엘도, 브론도, 세라도 바로 말을 잇지 않았다. 짧은 침묵이 리에트 말을 제자리에 눕혀 고정했다. 그 침묵은 비어 있지 않았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돌 갈리는 소리, 위쪽에서 손을 더 못 내미는 숨소리까지 같이 묶였다. 누군가 드디어 정답이 아니라 증언을 택했다는 사실이 그 침묵으로 자리 잡았다.

이솔데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분노보다 오래 붙든 애도 쪽이 먼저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걸 기다렸다.”

그녀가 말했다.

“기억은 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누가 무엇을 위해 눕혀졌는지 말해 줄 증언 하나면 된다.”

그 순간 거울면 위에 덧붙어 있던 죄인 번호가 금 간 얼음처럼 먼저 깨졌다. 봉함대 아래 물길이 깊어지며 원본 장례 줄 두세 획이 더 살아났다. 검은 뿌리가 봉함대 다리 밑에서 한꺼번에 비틀렸고 이름 회랑 전체가 낮게 울렸다. 이솔데를 붙들고 있던 물빛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구체적인 데서 시작됐다. 위쪽에서 나중에 덧댄 번호 조각이 먼저 깨져 떨어지자, 그 아래 눌려 있던 장례 끈 자리가 공기를 먹고 조금 부풀었다. 장례 줄은 종이보다 질겨서 젖어도 결을 오래 버틴다. 반대로 나중 번호는 얇게 얹힌 쪽이라 먼저 떨어진다. 이 자리 전체는 무엇이 먼저 덧대졌는지를 따라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라가 뒤를 확인하며 외쳤다.

“이제 온다!”

위쪽 갈림칸에서 엘프 반대파와 왕국 봉함 담당 쪽이 동시에 움직였다. 세라는 몸을 틀어 첫 손을 막았고, 브론은 받침을 더 비틀어 봉함대 일부를 안쪽으로 무너뜨렸다. 미리엘은 젖은 조각 두 개를 순서대로 집어 들었다. 먼저 원본 장례 줄, 그다음 어린 왕자 이동표. 그녀는 아무거나 되는 대로 쥔 게 아니었다. 물에 닿으면 더 빨리 풀릴 것, 사람 손 안에서 더 늦게 망가질 것, 나중에 대조할 때 반드시 붙어 있어야 할 것을 가려 순서대로 들었다.

나는 셋째로 드러난 짧은 좌표 조각을 쥐었다. 검은 물 밑에 남아 있던 제작 번호 한 토막까지 함께 따라 나왔다. 리에트는 마지막 물홈에서 손을 떼기 전에, 자기가 눌러 맞춰 놓은 수위가 어느 선이었는지 한 번 더 눈으로 확인했다. 브론은 그 찰나를 위해 받침을 버티고 있었다.

“사람 먼저!”

내가 짧게 말했다.

“세라 뒤로. 브론 오른쪽 받침 버리고 빠져. 미리엘, 조각 놓치지 마. 리에트, 수로 쪽!”

세라는 뒤 갈림칸에서 물러설 때도 검집을 한꺼번에 빼지 않았다. 먼저 몸으로 통로를 열고, 마지막에 쇳등을 비틀어 손 하나 더 못 들어오게 만들었다. 브론은 오른쪽 받침을 완전히 놓기 직전, 무너지는 방향을 안쪽으로 한 번 더 틀었다. 덕분에 봉함대 잔해는 우리 쪽이 아니라 위쪽 손이 내밀리던 방향으로 먼저 쏠렸다. 미리엘은 품 안쪽 마른 천을 미리 풀어 젖은 조각을 감쌌다. 리에트는 마지막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물홈 아래 선이 완전히 흐려지지 않는지 끝까지 봤다. 증언을 택했다는 건, 그 증언이 다시 뒤집히지 않을 정도까진 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뒤에서 돌이 갈라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위쪽 손들이 더 이상 기록만 낚아채지 못하게 되자, 이번엔 통째로 무너뜨릴 생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엘프 반대파는 줄을 다시 감추고 싶어 했고, 왕국 봉함 담당 쪽은 남은 조각이라도 빼앗아 바깥 서류로 눌러 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둘 다 늦었다. 배열은 이미 한 번 읽혔고, 그걸 본 사람이 넷이 아니라 다섯이었다. 이솔데까지 포함해 여섯이라고 해도 됐다.

이솔데 형상은 이미 반쯤 물에 풀려 있었다. 그런데 사라지기 직전, 그녀가 브론 쪽을 봤다. 그 눈길은 다음에 칼을 겨누겠다는 적의 눈빛이 아니었다. 오래 붙잡고 있던 문장을 이제 넘긴다는 사람의 눈빛.

“이름을 죽인 손 아래엔 번호를 찍는 쇠가 있었다.”

그녀 말이 물결처럼 갈라졌다.

“그 쇠는 북방 드워프 성채에서 왔다.”

브론 얼굴이 굳었다. 나는 손안 젖은 조각을 더 꽉 쥐었다. 그 안에 새겨진 짧은 제작 번호의 각이 브론이 북방 전초에서 본 보정표의 각도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드워프가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었다. 누가 어떤 규격으로, 어떤 강도를 맞춰 눌렀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는 번호 조각. 북방이 다음 길이라는 말이 이제 감이 아니라 물증이 되었다.

브론은 순간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왼손으로 조각 모서리를 짚어 각을 더듬었다. 숫자 하나, 획 길이 하나, 눌림 깊이 하나에 익숙한 기술자의 손이었다. 자기 가문 계열 보정표가 맞다면, 이건 우연이 아니다. 강제 동원과 제작 책임이 실무 번호까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의 엄지 밑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까지 브론은 장비를 고칠 때도 자기 이름을 먼저 숨기는 사람이었다. 물건 값, 부품값, 술값 같은 말로 상처를 덮었다. 그런데 젖은 조각 위 제작 번호는 그가 숨어 있던 농담을 한 번에 밀어냈다. 북방의 쇠가 이름을 누른 자리까지 따라왔다면, 다음엔 브론이 장비 뒤에 숨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이 각…”

브론이 이를 악물었다.

“예전 북방 보정표랑 닮았어. 장식용이 아니라 현장 눌림쇠 규격이다.”

이솔데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검은 용광 심연으로 가라. 아이를 숨긴 줄도, 죽은 이름 위에 찍힌 번호도, 결국 그 불 아래서 눌렸다.”

그 문장은 다음 목적지를 알려 주는 말이면서, 동시에 유리숲 비극을 어디로 넘겨야 하는지도 정해 주었다. 숲은 이름이 지워진 자리까지는 지켜 봤다. 그러나 번호를 찍는 쇠가 어디서 왔는지, 그 규격이 왜 이런 식으로 사람 이름을 눌렀는지까지는 북방으로 가야 한다. 애도가 병기 규격과 만나는 지점. 그게 이제 우리의 다음 갈림목이 된다.

검은 물빛이 무너지며 그녀 형상도 함께 흩어졌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저주의 얼굴이 아니라 젖은 장례 줄 몇 획과 수로 너머로 길을 열어 주는 어두운 틈이었다. 이솔데는 끝내 칼에 쓰러져 사라지지 않았다. 늦게나마 이름을 제 줄에 돌려놓았다는 안도와, 아직 다 말하지 못한 애도를 남긴 채 풀려났다.

우리는 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세라가 뒤를 막고, 브론이 어깨로 무너지는 돌을 밀고, 미리엘이 젖은 조각을 품 안으로 감쌌다. 나는 좌표 조각과 제작 번호가 서로 섞이지 않게 손안에서 따로 눌러 쥐었다. 리에트는 맨 뒤에서 한 번만 돌아봤다. 무너지는 이름 회랑 너머로 죄인 번호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물 위에 잠깐 떠오른 건 좁은 갈림목을 끝까지 막고 선 등의 검은 선 하나였다. 얼굴은 끝내 없었지만, 어떤 선택이 남았는지는 그 한 줄이면 충분했다.

수로는 들어올 때보다 더 좁게 느껴졌다. 위에서는 돌이 떨어지고 옆에서는 물이 불어났다. 세라는 먼저 몸을 비틀어 앞으로 빠지며 뒤에서 손이 더 따라오지 못하게 검집으로 한 번 더 틈을 찍어 막았다. 브론은 가장 무거운 장비를 찬 몸으로도 뒤에서 두 번째 자리를 지켰다. 누가 미끄러지면 바로 받아 세울 수 있는 자리였다. 미리엘은 젖은 조각들이 더 달라붙지 않게 품 안에서 천 사이를 다시 벌렸다. 리에트는 마지막으로 남아 수로 굽이마다 뒤를 보고, 누가 따라붙는지보다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얼마나 흐려지는지부터 살폈다.

굽이 하나를 지날 때마다 역할이 바뀌었다. 세라가 앞을 베어 여는 대신 어깨로 물살을 받으면, 브론이 그녀 뒤쪽 발판을 망치 자루로 고정했다. 미리엘이 젖은 천을 다시 접는 동안 나는 입김이 닿지 않게 손안의 좌표 조각을 장갑 안쪽으로 옮겼다. 리에트는 뒤쪽 물소리가 커질 때마다 화살을 꺼내지 않고, 젖은 벽의 손자국과 무너지는 돌가루 방향을 먼저 읽었다. 방금 증언한 사람의 눈으로, 아직 지워지지 않은 흔적을 확인하는 움직임이었다.

그 틈에서도 나는 머릿속으로 회수 순서를 다시 되새겼다. 사람, 원본 장례 줄, 이동표, 좌표 조각, 제작 번호. 하나만 잊어도 이번 증언은 다시 편한 서류에 잘릴 터였다. 지금 우리 손 안에 있는 건 영웅담이 아니라 절차의 흔적이다. 아이를 옮긴 표, 이름을 눕힌 줄, 나중에 덧댄 번호, 그리고 그 번호를 찍은 쇠의 출처. 누가 먼저 살려 보내졌고, 누가 남아서 지워졌는지. 그 네 가지가 붙어 있어야 북방의 불 앞에서도 같은 진실이 버틴다.

뒤쪽에서 왕국 봉함 담당이 마지막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왕실 물증이다! 바깥 장부에 먼저—”

세라가 뒤도 안 돌아본 채 잘랐다.

“바깥 장부가 이미 죽인 줄이잖아.”

그 말 뒤엔 더 대꾸가 붙지 않았다. 수로 천장이 한 번 크게 흔들리고 젖은 돌가루가 우리 어깨 위로 쏟아졌다. 말로 겨루는 단계는 끝났고, 이제 누가 무엇을 들고 빠져나가느냐만 남았다.

리에트가 낮게 숨을 토했다. 오래 붙들고 있던 수치가 한꺼번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얼굴을 다 못 봤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그 실패에 눌려 입을 다무는 쪽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도 순서를 말하는 쪽에 서 있었다. 그 차이는 컸다. 활을 놓지 않은 궁수지만, 이제는 화살보다 증언을 더 먼 데까지 보내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다 못 봤어도.”

리에트가 낮게 말했다.

“누가 지워졌는지는 말할 거야.”

이번에는 아무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앞서 걷던 미리엘이 품 안 조각을 한 번 더 감싸 쥐었고, 브론은 손안 번호 조각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이를 세게 물었다. 세라는 앞쪽 어둠을 향해 길을 더 넓게 열었다. 그 침묵 전체가 리에트 말의 뒤를 받쳤다. 누군가가 자기 기억의 빈틈을 인정한 채로도 앞으로 가겠다고 말하면, 나머지는 그 말이 다시 꺾이지 않게 몸으로 받쳐야 한다.

발밑 수로가 더 깊게 꺼졌다. 어둠 아래로 짧은 제작 번호와 좌표 흔적이 한 번 번쩍였다. 브론 손아귀 안 젖은 조각이 유난히 무겁게 남았다. 유리숲에서 끝난 줄 알았던 이름의 문제가, 이제는 북방의 불과 쇠 쪽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숲에서 지워진 이름을 되살리려면, 다음엔 그 이름 위에 번호를 찍은 손의 규격까지 따라가야 한다.

수로 끝에서 바람이 달라졌다. 물냄새 뒤에 금속 탄내 비슷한 것이 아주 옅게 섞여 있었다. 아직 북방에 닿은 건 아니지만,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는 분명했다. 나는 손안 조각을 놓치지 않으려 손가락을 더 오므렸다. 지금 쥔 건 단순한 단서가 아니다. 유리숲이 끝까지 붙들고도 다 못 밝힌 몫, 브론이 자기 고향의 불 아래에서 마주해야 할 책임, 그리고 아이를 먼저 살려 보낸 뒤 이름을 잃은 사람들의 줄을 다시 이어 줄 다음 증거다.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는 사당이 더 무너지고 있었고, 앞에서는 아직 읽지 못한 불의 기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을 제 줄에 돌려놓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적어도 하나가 분명해졌다. 유리숲이 오래 붙들던 비극의 중심에는 배신자 한 명이 아니라 아이를 살리고 이름을 밑으로 눕힌 뒤, 그 위에 번호를 덧대어 다른 이야기로 만든 절차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절차를 끝까지 말하겠다고 택한 증언자가 우리 곁에 남았다는 것.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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