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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의 첫 응답

새벽의 북방 전초는 얼어붙은 물통처럼 겉은 잠잠했지만, 안쪽에는 아직도 어제의 울림이 남아 있었다.

감시탑 아래 숙영칸 뒤 작업탁엔 밀랍천 사본, 북쪽 판석 통로에서 건진 지도 조각, 내가 밤새 덧쓴 메모 세 장이 돌에 눌린 채 놓여 있었다. 서리 낀 나무판 위로 새벽빛이 비스듬히 번졌고, 먹이 덜 마른 줄 끝마다 물기가 맺혀 있었다. 바깥 마당에서는 병사들이 교대 장화를 털며 쇠 버클을 부딪쳤지만, 이쪽 공기는 그 소리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어제 그 문 앞에서 세라의 검집이 두 번 울린 뒤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질문은 하나였다. 문을 더 열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세라에게 먼저 닿았느냐.

나는 메모 맨 위에 적어 둔 네 줄을 다시 읽었다.

`바깥 후퇴선은 시선 유도.`

`실제 질문은 북쪽 안쪽 판석문.`

`세라 무구, 구조 공명 확인.`

`다음 진입은 적 속도 금지. 우리 박자로 재설계.`

문을 여는 건 오늘 일이 아니다.

오늘 해야 할 건 더 단순하고, 그래서 더 위험했다.

무엇이 세라에게 반응했는지 분리해서 확인하는 일.

그 사실을 누구 손에도 먼저 넘기지 않는 일.

세라는 작업탁 건너편에 서 있었다. 아직 갑옷을 다 갖춰 입지 않은 상태였지만, 병사들이 보는 자리로 나가기 직전의 사람답게 모든 끈이 단정했다. 다만 왼손만은 검집 고리를 쥔 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손목을 천천히 폈다가 다시 감았다.

미리엘은 내 메모 옆에 새 종이를 깔고 잔향 기록 칸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들더니 세라 쪽을 한 번 보고 입을 열었다.

“다시 확인해야 해요.”

“축복인지 구조 반응인지?” 브론이 묻자 미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미 끝났어요. 축복이면 사람 쪽에서 먼저 올라와야 해요. 어제는 사람보다 금속에 먼저 닿았어요.”

그녀는 일부러 말끝을 짧게 잘랐다.

“오늘은 그 반응이 세라 개인인지, 세라가 든 계열 금속인지 더 가려야 해요.”

브론이 코끝으로 웃었다.

“내 쪽도 같은 생각이야. 검집 안쪽 결하고 판석문 주변 금속을 같이 봐야 해. 어제는 너무 급해서 대충 눈으로만 넘겼거든.”

세라는 그제야 손을 떼고 물었다.

“분해까지 해야 해?”

“칼 뽑자는 얘긴 아니야.” 브론이 곧장 답했다. “겉 결, 고정구, 울림 박자만 보면 돼. 그런데 그걸 하려면 들키면 안 되지.”

그 말이 떨어질 때 바깥 마당에서 파견 지휘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집결!”

짧고, 익숙하고, 명령보다 연출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병사들이 곧장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세라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온다.”

나는 메모를 접어 소매 안쪽에 넣었다.

“오늘은 네 얼굴값을 저쪽이 먼저 쓰려 할 거야.”

세라가 검집을 허리에 걸며 말했다.

“알아.”

그녀는 잠깐 숨을 골랐다.

“이번엔 내가 먼저 쓸 거야.”

***

감시탑 아래 마당은 밤새 내린 얇은 눈을 밟아 다진 자국 때문에 중앙만 희고 가장자리는 회색 흙이 드러나 있었다. 임시 보고 탁자 위엔 바깥 확인조 스케치, 서사면 보강 장부, 봉함 상자 하나가 차례로 놓였고, 병사들은 그 앞 반원을 넓게 비워 두고 섰다. 파견 지휘관은 그 빈자리를 무대처럼 썼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세라를 세워 두었다.

“어제 전초가 버틴 건 전열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가 병사들을 향해 손을 펼쳤다.

“그리고 그 전열의 얼굴이 누군지는 다들 봤을 거요.”

병사 몇이 세라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름이 먼저 올라가면, 그 이름에 달린 물건과 판단까지 뒤따라 묶인다.

현장 사제는 한 걸음 늦게 앞으로 나왔다. 그의 소매 끝엔 봉함 밀랍 찌꺼기가 아직 붙어 있었다.

“그러므로 더더욱,” 그가 또렷하게 말했다. “어제 확인된 비공식 통로, 반응 금속, 봉인 표식은 상위 확인 전 임시 봉함 대상으로 돌려야 합니다.”

지휘관이 고개를 돌렸다.

“전초는 아직 전장 위에 있소. 봉함보다 먼저 병사들 눈앞에 남길 질서가 있어야지. 저 장비가 오늘 버틴 상징이라면, 그 상징은 왕국 보고선 아래 있어야 하오.”

“질서는 누가 뜻을 붙이느냐까지 묶어야 남습니다.” 사제가 물러서지 않았다. “누가 무엇에 반응했는지 확인되면, 그건 현장 사기 문장으로 넘길 일이 아니라 윗선에 올릴 사안입니다. 봉인 구조 해석은 성도 쪽 확인 밖에서 돌리면 안 됩니다.”

결국 같은 말이었다.

세라를 앞에 세우고, 세라의 반응은 다른 손으로 가져가겠다는 말.

세라는 한 번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누구 편도 들어 주지 않고 병사들이 있는 방향만 바라봤다. 그 태도 자체가 오늘의 답이었다. 병사들 앞에서 흔들리면 끝이다. 그런데 그 얼굴은 내가 어제까지 알던 세라의 얼굴과도 조금 달랐다. 과시가 아니라 버티기 위해 단단해진 얼굴이었다.

지휘관이 세라에게 물었다.

“벨로네 양. 그대 장비는 오늘부터 공식 보고선 아래 두겠소. 바깥 사기와 안쪽 통제, 둘 다 위해서 필요하오.”

세라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감시탑 벽, 보고 탁자, 서사면 병사 배치, 바깥 확인조로 빠질 길. 그녀는 늘 그렇듯 먼저 공간을 훑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을 쓰시겠다면,”

그녀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마당이 조용해서 더 잘 들렸다.

“제 판단도 같이 남기셔야 합니다.”

지휘관이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오.”

“바깥 살피는 줄은 넓게 벌리면 안 됩니다. 어제 남은 흔적은 쫓는 사람 발을 흩어 놓으려고 정리한 겁니다.”

사제가 바로 끼어들었다.

“그 판단은 현장 봉쇄 후—”

세라가 이번엔 그쪽을 보지도 않고 잘랐다.

“봉쇄부터 하면 안쪽 길도 같이 죽습니다.”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검집 끝으로 마당 오른편 눈더미와 감시탑 기둥 사이를 짧게 가리켰다.

“정면 보는 줄은 둘씩 끊어 세우세요. 첫 줄은 말뚝선 바깥, 둘째 줄은 감시탑 그림자 아래. 서로 등을 보지 말고 옆을 보게 하세요. 안쪽 계단 쪽은 비우지 말고, 물건 옮기는 손부터 따로 빼야 합니다.”

병사 셋이 거의 동시에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설명보다 배치를 먼저 알아들었다. 어제도 살아남게 만든 건 긴 연설이 아니라 누가 어디를 먼저 붙잡아야 하는지였으니까. 짧은 정적 끝에 뒤편 군수병 하나가 봉함 상자 손잡이를 마당 중앙에서 벽 쪽으로 슬쩍 밀었다. 사람보다 물건 동선을 먼저 떼라는 뜻을 알아들은 움직임이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병사 둘이 무심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에겐 긴 해석보다 어제 살아남은 방식이 더 분명한 근거였다.

나는 그 틈을 잡아 말을 보탰다.

“바깥 살피는 병사들은 내보내도 됩니다. 다만 정면만 봐야 합니다. 능선 넘어서까지 뛰면 저쪽이 남긴 박자를 그대로 밟게 됩니다.”

지휘관이 나를 못마땅하게 보았다.

“또 박자 이야기군.”

“어제 살았던 이유가 그 박자를 안 밟았기 때문입니다.”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선 한 줄이면 충분했다.

사제는 다른 줄을 잡았다.

“그러면 반응 금속은 더더욱 분리해야 합니다. 왕국 보고든 현장 판단이든, 지금 같은 혼선 속에 둘 순 없습니다.”

브론이 뒤에서 툭 던졌다.

“둘 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서랍에만 넣고 싶은 거겠지.”

사제 눈길이 곧장 날아갔지만 브론은 어깨만 으쓱했다. 미리엘이 그 사이 아주 낮게 내게 속삭였다.

“이미 말이 퍼졌어요. `검이 울렸다`는 식으론 아직 안 퍼졌지만, 세라 장비에 뭔가 있다는 감은 돈 것 같아요.”

그건 빨라서 다행이면서도, 빨라서 더 위험했다.

세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병사들 배치는 제가 맡겠습니다. 바깥엔 제 이름으로 살피는 줄을 세우죠. 대신 안쪽 계단과 장비 적치칸 정리는 우리 쪽이 먼저 봅니다.”

지휘관이 즉답하지 못한 건, 그 제안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보기엔 앞줄 얼굴인 세라가 바깥도 붙잡고 안쪽도 책임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실제론 바깥 시선만 붙잡아 두고 안쪽 판단 시간을 벌어 주는 배치였다.

나는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굳이 설명하면 오히려 들킨다.

결국 지휘관이 못마땅한 숨을 내쉬었다.

“좋소. 바깥 줄은 정면만 보시오. 안쪽은 해 질 때까지 정리. 다만 무슨 반응이 더 나오면 바로 보고하시오.”

사제는 끝까지 고집했다.

“봉함 대상은 즉시 기록해 두겠습니다.”

세라가 아주 차갑게 대꾸했다.

“기록은 하세요. 판단은 나중에 하죠.”

병사들 앞에서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라는 이미 조금 이동해 있었다. 기사단이 부여한 얼굴이 아니라 스스로 쓰는 얼굴 쪽으로.

***

감시탑 아래 무너진 중계 계단 옆 장비 적치칸은 겉으로 보면 버려진 철물 더미 같았지만, 브론 손에 걸리면 언제나 말이 나오는 자리였다.

낡은 창못, 휘어진 고정환, 부러진 쇠고리, 오래된 운반틀의 옆판, 습기를 먹고 검게 죽은 금속띠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적치칸 뒤쪽 벽은 반쯤 무너져 북쪽 통로 입구와 이어졌고, 햇빛은 거기까지 닿지 못해 금속마다 다른 회색만 남겨 두고 있었다. 브론은 그 더미를 한참 뒤적이더니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낡은 고정구 하나를 꺼냈다. 양끝은 평평했고 중앙엔 얕은 홈이 두 줄 나 있었다.

“이거 봐.”

그는 고정구를 세라 검집 옆에 가져다 댔다. 완전히 같은 모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이 닮아 있었다. 자르는 날을 세우기보다, 어딘가에 끼워 박자를 맞추도록 만든 금속의 버릇.

브론이 손톱으로 양쪽을 번갈아 쳤다.

챙.

팅.

두 소리는 다르면서도 끝이 닮았다. 짧게 끊기지 않고 안쪽에서 한 번 더 맴도는 끝이었다.

“이건 찌르거나 찍는 쪽이 아니라,” 브론이 말했다. “맞물릴 때 흔들림을 버티는 계열이야.”

미리엘이 가까이 와 귀를 기울였다.

“판석문 앞에서 올라오던 잔향이랑 비슷해요.”

브론은 대답 대신 고정구 뒷면을 손바닥 위에 눕혔다. 오래 닳은 금속 아래로 아주 얕은 결 세 줄이 비스듬히 지나갔고, 그중 가운데 결만 유독 마모가 심했다. 세라도 자기 검집 안쪽 장식쇠를 엄지로 더듬다가 같은 자리에 손을 멈췄다. 둘 다 베는 날을 세우는 마감이 아니라, 어느 순간 정확히 걸어 잠기도록 압력을 고르게 나누는 결이었다.

“여길 봐.” 브론이 손톱 끝으로 홈 가장자리를 짚었다. “잡아당길 때 버티는 흔적이 아니라, 맞물린 상태로 떨림을 넘긴 흔적이야. 한쪽이 앞서 나가면 부러지고, 같은 박자로 물리면 버티는 구조지.”

“비슷한 정도가 아니지.” 브론이 눈을 가늘게 뜨며 고정구 홈을 살폈다. “둘 다 금속이 스스로 목소리 크게 내는 구조가 아니야. 위치가 맞아야 울리고, 어긋나면 죽어.”

나는 세라를 봤다. 그녀는 고정구와 자기 검집 사이를 번갈아 보다가 짧게 물었다.

“내 검이 이런 데 쓰였다는 거야?”

브론은 선뜻 답하지 않았다. 장인다운 망설임이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아는 건 얕게 던지지 않는 망설임.

“네 검 자체가 여기서 만들어졌단 뜻은 아니야.”

그가 천천히 말을 골랐다.

“근데 계열은 같을 수 있어. 왕가 장식으로 다듬기 전 원래 줄기 말이야.”

미리엘이 낮게 덧붙였다.

“축복 반응이면 사람의 기도문이나 성호 쪽에서 먼저 살아나야 해요. 그런데 어제도 오늘도 금속과 구조가 먼저 맞아요.”

나는 지도 조각 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럼 이 전초 아래 길은 단순 보관 통로가 아니야. 성검 계열 응답자를 안쪽 구조와 맞물리게 하던 확인 통로일 수도 있어.”

세라가 곧장 나를 봤다.

“응답자.”

그 단어를 그녀는 좋아하지 않았다. 선택받은 사람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 표정엔 싫다는 감정보다, 그 말이 자기 손에서 무엇을 빼앗아 갈지 계산하는 경계가 먼저 떠올랐다.

“그 말도 결국 다른 사람들이 붙이는 이름이지.”

세라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름보다 먼저 확인해야 해. 이 반응이 널 어디로 묶으려는 건지.”

그 순간 통로 안쪽에서 또 울림이 왔다.

팅.

팅.

전날보다 가까웠고, 이번엔 더 망설임이 없었다. 세라는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먼저 통로 쪽으로 움직였다.

“가자.”

브론이 고정구를 쥔 채 따라섰고, 미리엘은 기록지를 품 안에 넣었다. 리에트는 늘 하던 대로 맨 뒤에서 바깥 공기 흐름을 한 번 살피고 통로로 몸을 틀었다.

세라가 먼저 가겠다고 말한 건,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어제까진 문이 울렸고 세라가 반응했다. 지금은 세라가 문 쪽으로 먼저 걸어간다.

***

북쪽 깊은 선 끝 빈방은 낮에도 밤처럼 서늘했다.

천장 낮은 석실 한가운데 장방형 판석 하나가 다른 자리보다 조금 더 반질거렸고, 그 앞 벽엔 먼지 속에 묻힌 문틀 선이 얇게 드러나 있었다. 오른벽 아래 검푸른 물얼룩이 오래된 상처처럼 번져 있었고, 바닥 왼쪽엔 누가 수없이 발끝으로 위치를 맞췄던 듯 반 걸음 간격의 얕은 눌림칸이 남아 있었다. 미리엘이 숨을 낮췄고, 브론은 입구 옆 돌틈에 고정구를 끼운 채 홈 깊이를 쟀다. 리에트는 석실 입구 바깥쪽 시야를 맡았다.

나는 세라를 세울 자리를 먼저 골랐다. 판석 앞 중앙이 아니었다. 중앙은 문이 보는 자리처럼 보였고, 왼쪽 반 걸음 뒤가 오히려 눌림칸과 더 잘 맞았다.

“여기.”

세라가 묻지 않고 그 자리에 섰다.

“왜 중앙이 아니지?”

“문이 원하는 자리랑 우리가 먼저 보는 자리가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녀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음이라기엔 짧고, 납득이라기엔 날카로운 반응이었다.

나는 바닥 눌림칸을 한 번 더 살핀 뒤 말했다.

“검집만.”

세라가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칼은 뽑지 않았다. 검집 끝만 판석문 쪽으로 향하게 들었다. 석실 안 공기가 먼저 가늘게 긴장했다. 미리엘은 손끝을 판석 아래에 대고 숨을 멈췄고, 브론은 고정구를 쥔 손을 더 꽉 말아 쥐었다.

팅.

첫 울림은 전날보다 분명했다.

세라 어깨가 아주 조금 굳었다. 그녀는 검집을 쥔 손에 힘이 실리는 걸 숨기려는 듯 엄지로 가죽 끝을 한번 문질렀다. 목울대가 작게 올라갔다 내려왔고, 숨은 가슴에서 잠깐 막혔다가 천천히 풀렸다. 그래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지도, 감지도 않았다. 반 박자 뒤, 두 번째 울림이 따라왔다.

팅.

이번엔 판석문 틈 먼지가 가늘게 아래로 흘렀다. 바닥과 벽이 접히는 선 한복판에서 오래 잠겼던 찬 금속 냄새가 아주 조금 새어 나왔다. 세라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 떨림은 겁에 질린 사람의 흔들림이 아니라 무게를 먼저 받아 든 사람의 반응처럼 짧고 단단했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대답이 왔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미리엘이 속삭이듯 말했다.

“사람을 축복하는 반응이 아니에요.”

세라가 문을 본 채 물었다.

“그럼 뭐지.”

내가 먼저 답하기 전에 브론이 낮게 내뱉었다.

“위치 확인.”

그는 판석 아래 눌림칸과 세라 발 위치를 번갈아 가리켰다.

“아무 금속에 아무렇게나 울리는 구조면 어제도 더 요란했겠지. 근데 이건 네가 선 자리, 각도, 금속 결까지 맞으니까 올라오는 거야.”

미리엘이 말을 이었다.

“기도문도, 혈통 호명도 없어요. 구조가 먼저 사람한테 질문하는 식이에요.”

세라는 그제야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선택받았다는 소리가 아니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해야 한다는 쪽에 더 가깝지.”

세라 시선이 내게 옮겨왔다. 그녀 얼굴엔 잠깐 복잡한 것이 지나갔다. 기사단의 차녀, 벨로네의 이름, 병사들 앞에서의 얼굴, 그리고 지금 이 문 앞에 선 한 사람. 그 층이 잠깐 겹쳤다가, 그녀는 다시 문을 봤다.

석실 안에 선 사람들도 저마다 자리를 굳혔다. 브론은 문이 더 벌어지면 고정편이 어디서 한 번 더 밀려 나오는지 보려고 오른쪽 돌틈 옆에 몸을 붙였고, 미리엘은 바닥 잔향이 사라지지 않도록 손끝을 판석 가장자리에서 떼지 않았다. 리에트는 입구 바깥의 공기 흐름과 발소리 없는 틈을 듣고 있었다. 누구도 세라 쪽으로 성급히 다가가지 않았다. 이 반응을 대신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대신 서 줄 수도 없다는 걸 다들 알았기 때문이다.

“왕국은 내가 상징이길 원하고, 성도는 내가 봉함 대상이길 원하지.”

그녀가 아주 낮게 말했다.

“근데 이 문은 내가 뭘 지킬 건지 먼저 보네.”

그 문장은 누구에게 설명하는 말이 아니었다. 자기한테 내리는 결론 같았다.

나는 바닥을 봤다. 왼쪽 반 걸음 뒤. 사람을 앞세우는 구조가 아니라, 서는 위치와 버티는 결정을 묻는 구조. 성검이라는 이름이 있다면, 그건 왕좌 앞 장식보다 이런 자리에서 먼저 시작됐을 가능성이 컸다.

그때 판석문 틈이 머리카락 한 올만큼 벌어졌다. 정말 조금이었다. 하지만 석실 안 모두가 그 차이를 느꼈다. 틈 아래에서 납작한 금속편 하나가 미끄러져 나와 바닥을 긁었다.

먼지가 갈라진 선을 따라 아주 얇게 흘러내렸고, 문틀 안쪽 어디선가 오래 닫힌 금속이 식어 가는 냄새가 한 번 더 새어 나왔다. 세라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발뒤꿈치를 눌림칸에 더 단단히 고정했다. 그 한 동작만으로도 이 반응을 겁에 밀려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받아 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브론이 제일 먼저 몸을 숙여 그걸 집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 보니 손가락 길이만 한 오래된 고정편이었다. 한쪽엔 닳아 지워진 문양이 있었고, 반대쪽엔 홈 둘이 눌려 있었다. 브론 얼굴이 그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왜 그래?” 세라가 물었다.

브론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정편 가장자리를 엄지로 몇 번 문질렀다. 마치 믿기 싫은 이름을 촉감으로 다시 확인하는 사람 같았다.

“이 계열.”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우리 공방 설계판에서 본 적 있어.”

나는 곧장 물었다.

“카르트 가문 설계야?”

“정확히는….”

브론이 말을 멈췄다. 그 잠깐이 길었다. 그에겐 이 금속 이름이 단순 지식이 아니라 수치와 연결돼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몰락하기 전 쪽이지.”

미리엘이 고정편을 보며 중얼거렸다.

“성검 계열 응답, 북방 판석문, 중계선 고정편, 드워프 설계판.”

리에트가 입구 쪽에서 바깥을 살피며 낮게 말했다.

“라그나드가 이걸 모르고 남겼을 리는 없겠네.”

문은 더 열리지 않았다. 우리도 더 밀지 않았다. 다만 방 안 질문만은 더 또렷해졌다. 세라가 왜 반응했는가. 브론 가문이 무엇을 만들었거나 거부했는가. 왕국과 성도가 왜 이 줄기를 서로 다른 보고서와 봉함표 아래 눌러 두었는가.

세라가 먼저 손을 내렸다. 어제와 달리 이번엔 망설임이 적었다.

“오늘은 여기서 멈추자.”

브론이 고개를 들었다.

“더 안 열어 봐도 돼?”

“안 돼.” 이번엔 세라가 먼저 잘랐다. “지금 열면 저쪽이 남긴 속도로 들어가.”

나는 그 말을 듣고 세라를 봤다. 전날 내가 말했던 문장을 그녀가 자기 판단으로 다시 쓰고 있었다.

“그리고,” 세라가 덧붙였다. “이건 내 검이 뭘 할 수 있는지보다, 내가 어디에 설 건지 먼저 묻는 문 같아.”

그녀는 검집 끝을 한 번 내려다봤다.

“그 답을 저쪽이 정하게 둘 생각은 없어.”

그 말로 충분했다. 응답의 의미가 열쇠나 축복 같은 쉬운 언어로 내려앉지 않고, 선택과 책임 쪽으로 넘어갔다는 뜻이었으니까.

***

해질 무렵 다시 모인 작업탁 위엔 오늘 새로 늘어난 네 가지가 놓였다.

판석문 아래서 나온 고정편.

브론이 급히 긁어 적은 금속 결 메모.

미리엘의 공명 기록.

그리고 내가 정리한 보고 비등재 메모.

감시탑 창문 틈으로 들어온 저녁빛이 탁자 끝을 얇게 자르고 있었다. 바깥에선 병사들이 정면 확인조 복귀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넓은 후퇴선은 역시 끝까지 별걸 내주지 않았다고 했다. 파견 지휘관은 언짢을 것이고, 현장 사제는 안쪽 봉쇄를 더 세게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이 모르는 것이 우리 탁자 위에 있었다.

브론은 고정편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집어 보더니 숨을 길게 뱉었다.

“여기서 이름까지 다 꺼내면 너무 빨라.”

작업탁 위에는 어느새 물건 놓이는 순서까지 정해져 있었다. 고정편은 가운데, 미리엘의 공명 기록은 그 왼쪽, 내가 정리한 비등재 메모는 오른쪽, 브론의 금속 결 스케치는 맨 아래. 세라는 병사들이 바깥에서 볼 수 있는 보고 장부 더미를 일부러 탁자 끝 바깥쪽에 밀어 두었다. 겉에서 보면 오늘 정리한 건 전초 배치와 바깥 줄 보강뿐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자리였다. 안쪽 사실과 바깥 문서를 한 탁자 위에서 갈라 놓는 배치였다.

“그래도 아는 거지?” 내가 물었다.

“알아.”

브론은 그 한마디 뒤에 긴 말을 붙이지 않았다. 대신 고정편 홈을 손톱으로 짚었다.

“성검 쪽이든 장비 쪽이든, 같은 전쟁 계열 줄기야. 누가 뭘 막고 누가 뭘 열게 하려고 만들었는지까지는 더 봐야 하지만.”

세라가 묻지 않고 기다리자 브론이 마침내 아주 낮게 덧붙였다.

“우리 집이 몰락하기 전, 끝내 완성 못 하게 막으려 했던 줄기일 수도 있어.”

그 말은 이름보다 무거웠다.

미리엘은 기록지 한 귀퉁이에 오늘 결론을 적었다.

`공명은 사람보다 금속 계열에 선행.`

`세라 위치/각도/결정선 일치 시 반응 상승.`

나는 그 아래 네 줄을 더했다.

`세라 공명 재확인.`

`판석문 구조 반응 2회.`

`고정편 회수.`

`공식 보고 비등재 유지.`

세라는 한동안 그 문장을 내려다보다가, 내 펜을 받아 마지막 줄 하나를 직접 덧붙였다.

`다음엔 내가 먼저 고른다.`

그 아래 그녀는 아주 짧게 선 하나를 더 그어 네 줄 메모와 자기 문장을 같은 묶음으로 붙여 놓았다. 공식 보고와 파티 정본을 처음부터 다른 줄로 가르겠다는 표시처럼 보였다.

그녀가 펜을 내려놓는 손엔 오전의 미세한 떨림이 없었다. 완전히 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다만 그 두려움이 이제 남의 호칭에 끌려가는 모양이 아니라, 자기 선택 앞에서 버텨야 하는 무게로 바뀌었다.

브론이 고정편을 쥔 채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이 이름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질문 순서가 바뀌었다. 세라가 왜 반응했는가에서 멈추지 않는다. 브론 가문이 무엇을 거부했고, 그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가로 이어진다.

감시탑 아래 바람이 더 차게 불었다. 바깥에선 여전히 왕국과 성도의 문장이 서로 다른 척하면서도 같은 손길로 회수 고리를 죄고 있었다. 하지만 안쪽 작업탁 위에선 처음으로 질문 순서가 우리 쪽으로 넘어와 있었다.

세라의 검은 문 앞에서 먼저 울었다.

브론의 손은 그 장비선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그 둘을 공식 보고보다 먼저 하나의 줄로 묶어 냈다.

이제 다음 문턱에선 누가 선택받았는지가 아니라, 누가 어떤 이름을 끝까지 거부했는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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