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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의 첫 응답

감시탑 아래 마당은 전날보다 좁아 보였다. 북쪽 빈방으로 이어지는 판석 통로는 내 등 뒤 왼편에 입을 벌리고 있었고, 오른쪽 장비 적치칸에는 젖은 밧줄과 찌그러진 고정구가 낮은 선반마다 나뉘어 놓였다. 마당 중앙에는 파견 지휘관의 접이식 장부대가 세워져 있었고, 그 맞은편 천막 그늘에는 현장 사제가 봉함천과 양피를 펼친 채 서 있었다.

세라는 장부대 앞 세 걸음 거리에 세워졌다.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그녀 뒤로 반원을 만들었다. 나는 그 반원의 가장자리, 장비 적치칸과 통로 입구가 동시에 보이는 자리로 물러나 있었다. 바람은 북쪽 통로에서 내려와 횃불을 안쪽으로 눕혔고, 기울어진 불빛 때문에 판석문 안쪽 홈이 잠깐씩 드러났다 사라졌다.

위험은 칼끝이 아니었다. 칼집에 닿는 시선이었다. 왕국 사람들은 세라의 검집이 울었다는 사실을 승전의 첫 줄에 올리고 싶어 했고, 성도 사람들은 같은 울림을 봉함해야 할 반응으로 묶고 싶어 했다. 둘 다 세라를 향해 서 있었지만, 실제로는 북쪽 빈방과 장비 적치칸 사이의 짧은 길을 보고 있었다.

파견 지휘관은 장갑 낀 손으로 장부대 모서리를 두드렸다. 어젯밤 눈사면에서 회수한 말뚝 조각과 피 묻은 끈은 벌써 작은 천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그 물건들을 보지 않았다. 세라의 이름이 적힐 빈 줄을 보았다.

“벨로네 경의 반응 무구가 전초 방어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문장을 먼저 올려야 합니다.”

대답보다 먼저 병사들의 어깨가 움직였다. 반응 무구, 전초 방어, 결정적 역할. 세 단어가 마당을 한 바퀴 돌자, 병사들은 지친 얼굴로도 고개를 조금 들었다. 어젯밤 무너질 뻔한 전초를 누군가의 이름 아래 묶어 주는 문장은 사람을 잠깐 세워 놓았다.

현장 사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봉함천 위에 작은 납추 세 개를 얹고, 세라의 검집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상위 확인 전에는 무구 반응 기록을 공개 보고에 넣으면 안 됩니다. 반응 위치, 목격자, 관련 물품을 임시 봉함하고 성도 확인을 기다려야 합니다.”

마당의 반원이 다시 흔들렸다. 같은 사건이 한쪽에서는 승전이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봉함 대상이었다. 세라는 두 문장 사이에 서 있었다. 그녀의 검집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소리 없는 금속을 두 기관이 먼저 차지하려 했다.

나는 장비 적치칸 쪽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브론은 이미 선반 맨 아래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어젯밤 판석 통로에서 나온 짧은 쇠고리와 장비 고정구를 나란히 놓고, 손톱 끝으로 홈의 방향을 더듬었다. 미리엘은 봉함천 반대편에서 사제가 쓰는 납추의 모서리를 보고 있었다. 리에트는 감시탑 기둥 뒤, 병사와 사제 보조원 사이의 좁은 틈을 지켰다.

“에이드리언.” 세라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낮게 불렀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먼저 나오면 장면이 저들의 문장으로 굳었다. 나는 장부대, 봉함천, 적치칸, 북쪽 통로를 차례로 보았다. 저들은 사람을 앞에 세우고, 물건을 옆에 빼고, 기록을 따로 접어 올리려 했다. 어젯밤 라그나드의 손이 전초를 무너뜨리려 한 게 아니라 어디를 지키는지 재었다면, 오늘 왕국과 성도는 무엇을 먼저 적고 무엇을 먼저 싸 갈지 재고 있었다.

“아직 첫 줄을 쓰지 마.” 내가 말했다. “본 사실과 붙인 이름을 갈라 적어야 해.”

파견 지휘관의 눈썹이 바로 좁아졌다. “현장 판단 보조 인원이 보고서 형식까지 지시합니까?”

세라가 그 말에 먼저 반응했다. 칼자루를 잡지 않았다. 대신 장부대와 나 사이를 가르는 위치로 반 걸음 옮겼다. 병사들 눈에는 그녀가 나를 가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리에서는 통로 입구가 더 잘 보였다. 세라는 자기 몸으로 나를 숨긴 게 아니라, 내게 북쪽이 더 잘 보이게 길을 열었다.

“내 이름을 쓸 거라면, 내가 어디에 섰는지도 같이 적으세요.”

세라의 목소리는 낮았다. 병사들이 들을 만큼은 컸지만, 자기 공을 내세우는 높이는 아니었다. 장부대 앞 펜촉이 멈췄다.

현장 사제가 바로 끼어들었다. “그래서 봉함이 필요합니다. 위치와 반응은 상위 판정자가—”

“상위 판정자가 여기 바닥을 밟았습니까?” 세라가 물었다.

그 한마디 뒤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세라가 질문을 던진 곳은 사제의 얼굴이 아니라 바닥이었다. 판석 통로에서 새어 나온 찬바람이 장부대 밑 흙먼지를 북쪽으로 밀었다. 사제는 본능적으로 발끝을 보았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바닥을 읽지 않았다. 그는 문장을 읽으러 왔다.

나는 그 틈에 브론 쪽으로 몸을 낮췄다. “고정구 홈, 어젯밤 쇠고리랑 같은가?”

브론은 대답 대신 고정구를 뒤집었다. 녹이 낀 금속 안쪽에 아주 얕은 파임이 있었다. 칼로 자른 자국처럼 곧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눌렀다가 비껴 나온 손버릇이었다. 그는 판석 통로에서 나온 쇠고리를 그 파임 위에 얹었다. 두 물건은 완전히 맞지 않았다. 그런데 맞지 않는 부분이 더 위험했다. 하나는 물건을 붙들기 위한 홈이었고, 다른 하나는 문을 울리기 위한 간격이었다. 서로 다른 용도인데, 박자는 같았다.

“절단용이 아니야.” 브론이 이를 악문 채 말했다. “뭘 자르는 칼날이 아니라, 먼저 자리 맞춰 놓고 여는 계열이다.”

“왕국 군수 고정구인가?”

“겉은 그렇게 적어도 되겠지.” 브론은 눈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안쪽 손버릇은 우리 쪽 공방이 싫어하던 방식이다.”

우리 쪽. 브론이 자기 가문을 곧장 부르지 않을 때 쓰는 말이었다. 나는 그 단어를 장부에 적지 않았다. 내 손바닥 안 작은 메모지에는 고정구 / 쇠고리 / 박자 같음 / 이름 보류만 적었다.

미리엘이 봉함천 옆에서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사제 보조원이 납추를 옮기는 순간, 납추 아래 찍힌 작은 배열이 보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바로 말하지 않았다. 성도 말투로 그 배열을 부르면, 사제 쪽이 먼저 반응할 터였다. 미리엘은 내 눈을 보고 손가락 두 개를 접었다 폈다. 두 번. 세라 검집이 울었던 횟수와 같았다.

리에트가 감시탑 기둥 뒤에서 짧게 고개를 기울였다. 바깥 병사 둘이 북쪽 통로 쪽으로 시선을 자꾸 보내고 있었다. 왕국 병사라기보다 사제 보조원에게 배운 눈이었다. 통로 입구가 봉함 대상인지, 보고 대상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먼저 훑어 두려는 움직임이었다.

나는 세라에게 손을 작게 펼쳤다. 지금은 앞줄을 더 붙들라는 신호였다.

세라는 바로 알아들었다. 파견 지휘관의 장부 위에 손을 얹지 않고, 장부대 앞 빈 줄에 자기 그림자만 걸치게 섰다.

“내 검이 울렸다는 문장은 나중에 쓰세요.”

“벨로네 경.” 지휘관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이런 반응은 병사들의 사기에 중요합니다.”

“사기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틀리게 쓰면 안 됩니다.” 세라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제가 적을 베어 문을 연 게 아닙니다. 문이 울렸습니다. 그것도 제가 정문 앞에 섰을 때가 아니라, 안쪽 판석문 앞에서요.”

말이 끝나자 마당 한쪽 병사들이 서로를 보았다. 정문 앞 승전 상징과 안쪽 판석문 반응은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앞의 것은 밝고 쓰기 쉬웠다. 뒤의 것은 누가 왜 안쪽으로 들어갔는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장부에 넣기 불편한 사실일수록, 우리에게는 더 중요했다.

현장 사제는 봉함양피를 접었다 폈다. “그렇다면 더욱 성도 확인이 먼저입니다. 무구 보유자와 반응 목격자는 별도 진술—”

“별도 진술은 안 됩니다.” 이번엔 미리엘이 말했다.

사제의 눈이 바로 그녀에게 꽂혔다. 미리엘은 겁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다만 두 손을 너무 얌전히 모으고 있었다. 그 손등의 흰 힘줄이 조금 도드라졌다.

“왜죠?” 사제가 물었다.

“반응은 검집 하나에서 난 게 아니라 바닥, 고정구, 문, 서 있던 위치가 함께 맞물린 결과입니다. 사람만 따로 부르면 판정이 틀어집니다.”

“하급 사제가 성도 판정 절차를—”

“하급 사제라서 더 잘 압니다.” 미리엘은 작게 고개를 들었다. “위로 올라가는 양피는 늘 먼저 깔끔해집니다. 너무 깔끔하면, 나중엔 무엇이 빠졌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사제의 입가가 굳었다. 미리엘이 처음으로 성도 절차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큰 반역의 문장도 아니고, 신앙을 부정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더 위험했다. 깔끔해진다는 말은 현장 사제에게도 익숙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북쪽 통로로 시선을 돌렸다. 판석문 앞까지 우리 다섯이 함께 내려가야 했다. 지금 장부대와 봉함천 앞에서 오래 버티면, 저들은 더 많은 사람을 붙일 것이다. 반대로 너무 빨리 움직이면, 우리가 증거를 빼돌린 것처럼 보인다. 세라의 이름값은 여기서 벗어나는 열쇠가 아니라, 몇 걸음의 시간을 사는 방패였다.

“장비 적치칸 확인을 먼저 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왕국 보고에는 현장 물품 대조 중, 성도 봉함에는 반응 원인 분리 전이라고 적으면 됩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죠.”

파견 지휘관과 현장 사제가 동시에 나를 보았다. 같은 표정이 아니었다. 지휘관은 보고가 늦어진다는 불쾌감이었고, 사제는 봉함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경계였다. 둘이 같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안쪽으로 내려가는 걸 막고 싶어 하는 방향은 같았다.

세라가 장부대 앞에서 몸을 틀었다.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제 검집 반응이니, 제가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그 말은 왕국 쪽 명분을 끌어왔다. 지휘관은 세라를 붙잡고 싶어도 세라의 이름을 앞세웠던 자기 말을 바로 뒤집기 어려웠다.

미리엘이 봉함천을 보며 덧붙였다. “봉함 전에 반응 원인을 분리하지 않으면 상위 확인도 틀어집니다. 저도 현장 사제 입회 보조로 내려가겠습니다.”

그 말은 성도 쪽 명분을 끌어왔다. 현장 사제는 미리엘을 못마땅하게 보면서도, 하급 사제가 반응 원인 분리를 하겠다는 말을 공개석상에서 자르기 어려웠다.

브론은 이미 고정구와 쇠고리를 천에 싸고 있었다. 리에트는 병사 반원 뒤에 선 보조원 둘의 발끝을 보며 통로 쪽으로 빠질 길을 재고 있었다. 나는 빈 메모지를 접어 세라에게 건넸다. 세라는 그걸 장갑 안쪽에 끼웠다. 메모 안에는 세 단어뿐이었다. 사람, 자리, 물건.

북쪽 통로 안은 마당보다 훨씬 추웠다. 감시탑 아래 좁은 계단을 내려가자 바깥 말소리와 장부대 쪽 소리가 등 뒤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왼쪽 벽에는 오래된 문서통이 긁고 간 자국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낮은 바퀴가 지나간 홈이 얕게 파여 있었다. 사람보다 상자가 먼저 다녔던 길이었다.

세라가 앞장섰다. 검을 뽑지 않았다. 검집을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은 벽에서 손 한 뼘 떨어진 곳에 둔 채 걸었다. 어젯밤과 달리 그녀의 발은 급하지 않았다. 앞줄에 내세워진 사람이 아니라, 문 앞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러 내려가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무서운가?” 내가 물었다.

세라는 웃지 않았다.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이 울렸다는 말을 들으면, 기사라면 기뻐해야 하잖아.” 그녀가 낮게 말했다. “그런데 마당에 서 보니, 그 소리를 누가 먼저 가져갈지부터 정해져 있더라. 내가 뭘 느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고.”

“문은 물었어.”

세라가 나를 돌아봤다.

“어디 섰는지. 검집을 어떤 각도로 받쳤는지. 물러설지 아닌지.” 나는 판석 바닥을 보며 말했다. “적어도 문은 그걸 먼저 봤어.”

세라의 손이 검집 위에서 조금 멈췄다. 그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다시 앞으로 걸었다.

빈방 앞은 어젯밤 우리가 떠난 뒤에도 거의 그대로였다. 낮은 천장, 북쪽 벽의 판석문, 왼쪽 바닥의 눌림칸, 오른쪽 벽 아래 오래된 고정구 홈. 횃불을 들자 바닥의 먼지가 세 가지 높이로 갈라져 있었다. 병사 발자국은 문 앞 중앙에 몰렸고, 상자 바퀴 자국은 오른쪽 벽을 따라 비껴 갔으며, 아주 얕은 금속 끌림 자국은 왼쪽 눌림칸에서 멈췄다.

“여긴 사람 길이 아니군.” 리에트가 말했다.

“사람도 지나갔겠지.” 브론이 고정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사람한테 맞춘 길은 아니야. 상자, 문서통, 부품. 그런 걸 먼저 자리 맞춰 놓고 문을 울리는 길이다.”

미리엘은 판석문 앞에 무릎을 굽혔다. 손바닥을 대지 않고, 손등을 아주 가까이 가져갔다. “성도식 축복 증폭이면 사람 몸 주변이 먼저 따뜻해야 해요. 그런데 여긴 바닥이 먼저 차갑게 반응합니다.”

“차갑게?” 세라가 물었다.

“따뜻한 빛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잘못 놓인 걸 밀어내는 느낌이에요. 맞는 자리만 남기려는 쪽에 가깝습니다.”

축복이 아니라 구조. 선택받은 사람을 높이는 장치가 아니라, 잘못 선 사람과 물건을 통과시키지 않는 장치. 그 말을 듣자 세라의 어깨가 천천히 내려갔다. 기대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오히려 감당해야 할 무게가 정확해진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어젯밤 세라가 섰던 자리를 다시 짚었다. 중앙이 아니었다. 판석문 바로 앞도 아니었다. 왼쪽 반 걸음 뒤, 눌림칸의 끝과 검집 금속이 비스듬히 마주 보는 자리. 그 자리에 세라를 세우면, 나는 오른쪽 고정구와 브론이 놓은 쇠고리 사이에 설 수 있었다. 미리엘은 문양을 보되 양피를 펼치지 않는 거리, 리에트는 문 뒤 틈과 통로 입구를 동시에 보는 자리였다.

“세라, 왼발을 눌림칸 끝에 맞춰.”

세라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움직이면, 밖에서는 반응을 숨긴다고 할 거야.”

“그래서 혼자 움직이지 않는 거야.” 나는 브론을 보았다. “고정구를 오른쪽 홈에 대. 맞추지는 말고, 홈이 어느 방향으로 비껴 나는지만 보여 줘.”

브론이 말없이 움직였다. 그의 손놀림은 거칠지 않았다. 낡은 금속을 다루는 손가락은 조심스러웠고, 그 조심스러움 때문에 더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리엘, 양피는 꺼내지 마. 말로만 확인해.”

“네.”

“리에트, 통로 쪽.”

“이미 보고 있어.”

우리는 각자 자리를 잡았다. 그제야 세라가 눌림칸 위로 왼발을 올렸다. 돌이 아주 작게 내려앉았다. 소리가 아니라 무게의 변화가 먼저 왔다. 횃불 불빛이 판석문 위쪽에서 얇게 끊겼고, 세라의 검집 금속 안쪽으로 가는 떨림이 번졌다.

첫 번째 울림은 짧았다. 쇠 잔이 서로 닿은 소리처럼 맑지 않았다. 두꺼운 문 안쪽에서 누군가 손가락으로 금속을 두드린 것 같은, 낮고 단단한 소리였다.

세라의 숨이 멎었다. 검집을 쥔 손등에 힘줄이 섰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다만 턱을 조금 당겼다. 문이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게 아니었다. 문은 그녀가 그대로 설 수 있는지 먼저 눌러 보고 있었다.

두 번째 울림은 브론이 고정구를 오른쪽 홈 가까이에 가져간 순간 났다. 이번에는 검집이 아니라 바닥이 먼저 울었다. 세라의 검집, 바닥 눌림칸, 오른쪽 고정구 홈이 짧은 박자로 맞물렸다. 가운데 판석문 문양 하나가 얕게 밀려 나오더니,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틈을 열었다.

그 틈에서 찬 공기와 함께 아주 작은 금속편이 굴러 나왔다.

브론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내가 먼저 손수건을 꺼내 금속편 앞에 놓았다. 금속편은 온전한 부품이 아니었다. 손톱보다 조금 큰 고정편, 가장자리가 일부러 부러진 조각이었다. 표면에는 낯선 글자가 없었다. 대신 안쪽에 세 번 눌렀다 비껴 낸 홈이 있었다. 브론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알아보나?” 내가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릎을 굽힌 채 금속편을 보았다. 손은 움직이지 않았고, 입술만 아주 작게 열렸다 닫혔다.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이름이 바깥 장부와 봉함양피에 동시에 올라갈 것을 아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미리엘은 숨을 낮췄다. “성도 봉인구 표준은 아니에요. 하지만 봉인문을 자르는 계열도 아니고요. 맞춰 여는 장치에 더 가깝습니다.”

“성검 반응은?” 세라가 물었다.

미리엘은 세라를 보았다. “성검이라는 이름을 먼저 붙이면 틀릴지도 몰라요. 지금 확인한 건 이름이 아니라 반응 방식이에요. 검집은 문을 베려 하지 않았어요. 문이 요구한 자리에 버텼어요.”

세라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 말이 그녀를 낮추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들은 듯했다. 왕국은 그녀를 승전의 칼로 쓰려 했다. 성도는 반응 무구로 봉하려 했다. 그러나 이 방에서 세라가 한 일은 베는 것도, 봉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맞는 자리에 서서 물러나지 않는 일이었다.

통로 쪽에서 리에트가 손을 들었다. 발소리 둘. 계단 위였다. 아직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의 인내가 끝나 가고 있었다.

“시간 없어.” 리에트가 말했다.

나는 금속편을 손수건으로 감싸지 않았다. 바로 감싸면 숨기는 모양이 된다. 대신 바닥에 둔 채 세 가지를 적었다. 왼쪽 눌림칸, 오른쪽 고정구 홈, 세라 검집 두 번 울림. 그리고 그 아래에 굵게 한 줄을 더 그었다. 이름 보류.

브론이 그 줄을 봤다. 그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밖에 나가면 물을 거야.” 그가 말했다.

“그래서 이름은 안 말한다.”

“이름만 안 말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브론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거칠게 긁혔다. “저 고정편 홈을 본 놈이 있으면, 우리 가문이 뭘 만들었는지도 묻겠지. 만들었느냐, 넘겼느냐, 숨겼느냐. 그 질문이 같이 온다.”

“그럼 우리가 먼저 질문을 정해야 해.”

브론이 나를 봤다.

“네 가문이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넘기지 않으려 했는지.”

브론의 얼굴이 더 굳었다. 그러나 이번엔 도망치는 굳음이 아니었다. 오래 닫아 둔 문 앞에서 손잡이를 잡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세라가 금속편 앞에 무릎을 굽혔다. 그녀의 갑옷 무릎이 돌바닥에 닿으며 낮은 소리를 냈다. “내 이름도 그렇게 적어 줘.”

“어떻게?”

“울린 사람이 아니라, 물러서지 않은 사람.”

그 말은 승전 보고서에 쓰기 어려운 문장이었다. 그래서 우리 메모에는 남길 수 있었다. 나는 작은 글씨로 적었다. 세라 — 위치 유지 / 반응 소유 아님.

계단 위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리에트가 화살을 걸지는 않았지만, 오른손이 활등에 닿았다. 미리엘은 양피 대신 빈 손을 앞으로 두었다. 성도 사제가 내려오면, 그녀는 판정문이 아니라 본 위치부터 말할 것이다. 브론은 금속편을 아직 집지 않았다. 집는 순간 소유가 된다. 우리는 먼저 본 사실을 고정해야 했다.

나는 세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는 일어섰다. 검집은 더 울지 않았다. 대신 판석문 틈이 천천히 닫히며 마지막으로 짧은 금속음을 냈다. 이번엔 세라의 검집이 아니라 브론이 내려놓은 고정구 쪽에서 소리가 돌아왔다. 브론이 숨을 삼켰다.

파견 지휘관과 현장 사제가 거의 동시에 빈방 입구에 나타났다. 둘 다 숨이 조금 가빴다. 지휘관은 세라를 먼저 보았고, 사제는 바닥 금속편을 먼저 보았다. 누구를 먼저 보고 무엇을 먼저 보느냐가 둘의 목적을 그대로 드러냈다.

“무엇을 확인했습니까?” 지휘관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기 전에 방의 위치를 손으로 짚었다. 왼쪽 눌림칸, 오른쪽 고정구 홈, 중앙 판석문, 세라가 섰던 자리. 말보다 순서가 먼저였다.

“검집 단독 반응이 아닙니다. 위치와 고정구, 바닥 눌림칸이 함께 맞을 때 두 번 울렸습니다.”

현장 사제가 바로 금속편 쪽으로 다가오려 했다. 미리엘이 한 걸음 막았다. 손을 들지 않았고, 몸으로 부딪치지도 않았다. 다만 사제가 밟으려던 눌림칸 앞에 서서, 그가 그 칸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

“반응 지점 훼손 금지입니다.” 미리엘이 말했다. “상위 확인을 하려면, 먼저 현장 위치를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사제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말은 성도 절차와 정면으로 어긋나지 않았다. 오히려 절차를 이용해 절차를 늦춘 말이었다.

파견 지휘관은 메모지를 보려 했다. 세라가 그 앞을 막았다.

“제 이름은 아직 쓰지 마세요.”

“벨로네 경, 이건 왕국 기록입니다.”

“그래서 틀리게 쓰지 말라는 겁니다.” 세라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제가 문을 연 게 아닙니다. 문 앞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에이드리언이 자리를 읽었고, 브론이 고정구를 맞췄고, 미리엘이 반응을 구분했고, 리에트가 통로를 지켰습니다. 이 중 하나만 빼면 방금 반응은 없습니다.”

지휘관은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세라의 이름을 앞세우고 싶었지, 세라가 다른 네 이름을 같은 문장 안으로 끌고 들어오길 바라지 않았다.

현장 사제도 불편해졌다. 세라의 말은 성도 봉함에도 방해가 됐다. 무구 보유자만 떼어 부르면 되던 일이, 위치와 물건과 목격자 전체를 함께 보전해야 하는 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틈에 메모지를 접어 두 장으로 나눴다. 하나는 공식 확인용이었다. 본 위치, 울림 횟수, 금속편 존재, 훼손 금지. 다른 하나는 파티 정본이었다. 고정구 홈의 박자, 브론 반응, 이름 보류, 가문 질문. 같은 사실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손에 넘어가느냐에 따라 다른 문장이 될 터였다.

리에트가 통로 입구에서 짧게 말했다. “위쪽 보조원 하나가 방금 뛰어갔어.”

“어느 쪽?”

“성도 쪽 발걸음. 하지만 왕국 병사에게도 신호를 줬다.”

둘이 같은 편은 아닌데, 같은 불안을 공유한다. 나는 그 사실을 두 번째 메모 아래에 적었다. 둘 다 먼저 움직임.

브론이 마침내 금속편을 집었다. 손수건 너머로만 만졌고,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세라의 검집과 고정구 사이, 모두가 볼 수 있는 돌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이건 여기 둔다.” 브론이 말했다.

지휘관이 입을 열려 하자 브론이 먼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름은 지금 안 붙인다. 아무 이름이나 붙이면 저 홈이 죽어. 죽은 이름으로 적힌 장비는 다시 못 읽는다.”

브론이 이렇게 조용히 말할 때가 더 위험했다. 그의 분노는 술집식 고함이 아니라, 공방 깊은 곳의 닫힌 화로처럼 안쪽에서 타고 있었다.

세라는 장갑 안쪽에 끼워 둔 내 메모를 꺼냈다. 사람, 자리, 물건. 그녀는 그 아래에 자기 글씨를 보탰다. 같이 확인 전까지 이름 보류.

그리고 그 메모를 내게 돌려주지 않았다. 장부대 쪽으로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검집 안쪽, 금속과 가죽 사이에 끼웠다.

“이건 제 쪽에도 남깁니다.”

그 말에 파견 지휘관의 얼굴이 굳었다. 세라가 왕국 장부를 거부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왕국 장부만 정본으로 두지도 않겠다고 말한 셈이었다.

우리는 빈방을 나오며 물건 위치를 다시 맞췄다. 금속편은 손수건 위, 고정구는 오른쪽 홈 앞, 쇠고리는 그 옆, 메모 한 장은 미리엘이 보는 자리. 훔친 것도 숨긴 것도 아니지만, 누구도 혼자 가져가기 어렵게 놓았다. 리에트는 통로 위쪽에 서서 내려오는 발소리를 세었고, 브론은 마지막까지 고정구 홈을 눈으로 따라갔다.

마당으로 돌아왔을 때, 병사 반원은 더 촘촘해져 있었다. 누군가는 승전 문장을 기다렸고, 누군가는 봉함 명령을 기다렸다. 세라는 그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검을 뽑지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기 이름이 적힐 빈 줄 앞에 섰다.

“확인 결과를 먼저 적겠습니다.”

이번에는 지휘관도, 사제도 바로 끼어들지 못했다. 세라가 자기 이름을 내세우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빈 줄 맨 위에 자기 이름을 적지 않았다. 북쪽 판석문 앞 반응 확인이라고 먼저 썼다.

그 아래에 다섯 줄을 만들었다.

위치: 왼쪽 눌림칸.

물건: 오른쪽 고정구와 판석문 틈의 금속편.

반응: 두 번. 검집 단독 아님.

목격: 전원.

이름: 보류.

마지막 줄을 본 순간, 파견 지휘관이 숨을 들이켰다. 현장 사제도 봉함천을 접던 손을 멈췄다. 이름이 없으면 보고서도 봉함도 완성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름을 먼저 붙이면 반응을 망칠 위험이 있다. 우리가 이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저들이 원하는 첫 문장을 당장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브론은 그 줄을 오래 보았다. 세라가 자기 이름을 빼고 이름 보류를 먼저 적은 걸 알아본 듯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앞선 침묵과 달랐다. 도망이 아니라 동의처럼 보였다.

미리엘은 봉함천 옆에 자기 손글씨로 작은 주석을 붙였다. 반응 지점 훼손 시 판정 무효. 성도식 말투였지만, 우리에게 시간을 주는 문장이었다. 리에트는 병사 반원 뒤에서 누가 그 문장을 싫어하는지 얼굴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장부대 아래 그림자를 보았다. 바람에 흔들린 양피 모서리가 들릴 때마다, 지휘관이 미처 덮지 못한 예비 보고 초안이 보였다. 첫 줄엔 이미 세라의 이름이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현장 배치 협조라는 낮은 표현도 있었다. 내 이름을 낮춰 적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 표현은 브론의 판독과 미리엘의 구분, 리에트의 감시까지 한꺼번에 뒤칸으로 밀어 넣는 말이었다.

나는 초안을 가리키지 않았다. 지금 지적하면 지휘관은 초안을 접어 숨길 것이다. 대신 파티 메모에 예비 초안 확인 / 역할 낮춤 칸 존재라고 적었다. 싸움은 칼로만 시작되지 않았다. 어떤 줄에 누구를 넣는지로도 시작됐다.

해가 완전히 내려가자 전초 마당의 흙은 회색으로 식었다. 병사들은 승전 낭독을 듣지 못한 채 각자 초소로 돌아갔고, 성도 보조원들은 봉함천을 완성하지 못한 채 납추를 다시 상자에 넣었다. 왕국 장부대와 성도 천막 사이에는 우리가 만든 다섯 줄이 남았다. 밝은 승전 문장도, 매끈한 봉함 문장도 아니었다. 불편하고 덜 닫힌 사실 목록이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덜 닫힌 문장만이 다음 문을 열었다.

세라는 감시탑 아래 계단에 앉아 검집을 무릎 위에 올렸다. 그녀의 옆에는 브론이 있었다. 평소라면 브론은 세라 장비를 두고 농담부터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한참을 말없이 보다가, 검집 안쪽 가죽과 금속의 맞물림을 아주 조심스럽게 짚었다.

“이거, 장식으로 만든 물건은 아니야.”

세라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렇다고 네가 물건이라는 뜻도 아니고.”

세라가 브론을 바라봤다. 브론은 시선을 피했다.

“그 말은 밖에서 하면 싸움 난다.” 그가 덧붙였다.

“여기서 먼저 들어서 다행이네.” 세라가 말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지 않았다. 브론이 세라에게 처음으로 무구보다 사람을 먼저 놓고 말한 순간이었다. 그 말은 어색했고, 그래서 더 진짜였다.

미리엘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성도 봉함양피 사본을 보며 작은 글씨를 대조하고 있었다. 리에트는 감시탑 사다리 중간에 앉아 바깥 길을 내려다봤다. 우리는 흩어져 있었지만 같은 마당 안에 있었다. 누군가가 한 사람을 앞줄에 세우려 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분명해졌다.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각자가 맡은 자리였다.

나는 파티 정본 메모를 다시 펼쳤다. 세라 공명, 판석문 반응, 고정편 회수, 공식 보고 비등재. 네 줄을 적은 뒤 잠깐 멈췄다. 그리고 다섯 번째 줄을 더했다.

브론 가문 질문 시작.

브론이 그 줄을 보고 낮게 욕을 삼켰다. “좀 더 부드럽게 못 쓰냐?”

“부드럽게 쓰면 누가 가져가.”

“그건 맞다.”

세라가 검집을 다시 허리에 걸었다. 움직임은 조심스러웠지만 피하지 않았다. 검집은 울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안다. 조금 전 그 물건은 세라를 높여 주지 않았다. 세라가 어느 자리에 설지 묻고, 거기서 물러나지 않는지 확인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칭호는 사람이 감당하지 못해도 남들이 대신 써 준다. 그러나 자리는 대신 서 줄 수 없다.

마당 건너편에서 파견 지휘관이 장부대를 접었다. 현장 사제는 봉함천을 완전히 묶지 못한 채 납추만 다시 상자에 담았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하지 않았다. 그런데 둘 다 떠나기 전 같은 곳을 보았다. 북쪽 통로 입구. 그 안쪽의 판석문. 그리고 브론이 천 위에 올려 둔 작은 금속편.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봤다. 그들도 우리가 본 걸 알았다. 이제 이 반응은 숨겨진 사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빼앗긴 사건도 아니었다.

“다음엔 저 이름을 물으러 올 거야.” 세라가 말했다.

브론은 금속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름만 묻지 않을걸. 누가 그 이름을 싫어했는지도 묻겠지.”

나는 메모를 접었다. “그럼 우리가 먼저 알아내자. 네 가문이 뭘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뭘 넘기지 않으려 했는지.”

브론은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다 천 위의 금속편을 손수건으로 감쌌다. 이번에는 모두가 보는 앞이었다. 숨기는 동작이 아니라, 같이 보전하겠다는 동작이었다.

“좋아.”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내 입으로 이름을 부르는 건 아직 아니다.”

“아직은.” 내가 답했다.

그 짧은 말에 브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는 장부대가 접힌 빈 자리를 바라봤고, 미리엘은 봉함양피 사본을 조용히 접었고, 리에트는 감시탑 위에서 북쪽 어둠을 향해 활등을 세웠다.

북쪽 통로 안쪽에서 아주 작은 금속음이 다시 한 번 울렸다. 이번에는 세라의 검집도, 브론의 고정편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는 더 깊은 곳에서 왔다. 문이 닫힌 뒤에도 남아 있는 박자였다.

나는 그 박자를 들으며 마지막 줄을 적었다.

저쪽도 우리가 이름을 보류한 걸 안다.

펜끝을 떼자 바람이 메모 모서리를 흔들었다. 마당은 어두워졌고, 전초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조용한 건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왕국은 첫 줄을 차지하지 못해 불편해졌고, 성도는 봉함을 끝내지 못해 더 서두를 것이다. 라그나드가 남긴 길은 우리를 안쪽으로 밀고 있었고, 인간 쪽 손들은 우리가 그 길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부터 가두려 했다.

나는 메모를 접어 세라, 브론, 미리엘, 리에트가 모두 볼 수 있는 작업탁 중앙에 놓았다. “이건 누구 주머니에도 안 넣는다. 여기서 같이 읽고, 같이 옮긴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성검이라는 이름은 아직 우리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름부터 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응답은 분명했다. 문은 영웅 하나를 부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앞줄에 세우려는 손과 그 사람을 같이 지키려는 손을 갈라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으로, 앞줄에 선 사람을 혼자 두지 않는 방식으로 대답했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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