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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서류에 찍힌 마지막 패치 노트

네뷸라 랩스 사무실은 사람보다 박스가 더 많았다.

정면 유리문에 붙은 회사 로고는 반쯤 뜯겨 있었고, 왼쪽 복도 끝 회의실 문은 열려 있는데 안엔 의자가 세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오른쪽 개발실은 모니터 불빛만 군데군데 살아 있었고, 뒤쪽 창고 문 앞에는 반출 대기 스티커가 붙은 장비 박스가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한 번 훑고 인수 계약서를 다시 내려다봤다.

부도 직전 모바일 게임회사.

직원 열둘.

남은 현금은 이번 달 급여를 다 주면 끝.

프로젝트는 하나.

오픈 예정작 하나.

정확히 말하면, 오픈 예정이었던 잔해 하나.

“진짜로 하시는 겁니까?”

회의실 안쪽에서 후드 집업 차림의 남자가 물었다. 밤샘을 세 번쯤 버틴 것 같은 얼굴. 한도겸. 서버와 클라이언트 총괄.

“계약서에 사인하러 왔는데, 안 할 수도 있습니까?”

그는 웃지 못했다.

“여기 들어오면 대표님도 같이 가라앉습니다.”

왼쪽 벽 쪽에서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단정한 단발머리의 여자가 팔짱을 푼 채 이쪽을 봤다. 윤해원. 아트디렉터.

“도장 찍고 사람부터 자르실 거면 빨리 말씀하세요.”

정면 탁자, 왼쪽 퇴사 예정자 서류 더미, 오른쪽 서버 비용 청구서, 그리고 맨 아래 깔린 테스트 빌드 일정표까지. 이 회의실 위에 올라온 건 전부 회사의 마지막 숨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계약서 위로 투명한 문서창 하나가 겹쳐 떴다.

[Project Orbit / 긴급 장애 보고서 초안]

[발생 시각: 정식 오픈 후 03:07]

[장애 등급: 치명]

[원인: 결제 패킷 중복 처리 → 인벤토리 롤백 실패 → 동시 접속 급감]

[결과: 오픈 6시간 내 평점 붕괴 / 결제 전환율 0.8% / 긴급 점검 진입]

나는 손끝을 멈췄다.

“대표님?”

도겸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 줄이 더 내려왔다.

[사후 패치 노트 1.0.1]

- 상점 결제 큐 중복 체크 임시 적용

- 지급 재화 회수 불가 유저 개별 보상

- 긴급 점검 사과문 게시

아래 메모는 짧았다.

[너무 늦다]

오픈도 하지 않은 게임의 사후 패치 노트.

아직 발생하지 않은 장애 보고서.

그리고, 너무 늦다는 한마디.

해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어디 안 좋으세요?”

나는 눈앞 문서의 마지막 줄을 다시 읽었다.

결제 패킷 중복 처리.

인벤토리 롤백 실패.

오픈 3시간 후 치명 장애.

머릿속에서는 이미 개발실이 펼쳐졌다. 정면 빌드 서버 자리, 왼쪽 QA 테스트폰 선반, 오른쪽 결제 모듈 작업석, 뒤편 운영 대시보드 벽면. 저 네 줄 중 하나라도 놓치면 회사는 진짜 끝이었다.

나는 계약서 마지막 장에 서명했다.

사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질문 하나만 하죠.”

내가 고개를 들고 도겸을 봤다.

“결제 큐 중복 처리 체크, 지금 빌드에 아직 안 들어가 있죠?”

회의실 공기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도겸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해원이 천천히 팔짱을 풀었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눈앞 문서를 봤다.

[오픈 3시간 후 동시 접속 붕괴 - 서비스 신뢰 회복 실패]

이번엔 마지막 줄이 더 선명했다.

나는 서류를 접어 탁자 한쪽으로 밀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픈 일정 전부 잠깐 멈춥니다. 개발실부터 봅시다.”

도겸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오픈 이틀 남았습니다.”

“알아요.”

나는 회의실 문턱을 넘으며 개발실 쪽을 가리켰다.

“그래서 지금 안 보면, 이 회사는 이틀도 못 버팁니다.”

작가의 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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