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벨로리아 왕궁의 문이 열렸을 때,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백 년 동안 왕들이 살던 궁전이었다.
귀족들이 권력을 나누던 곳이었고, 기사들이 충성을 맹세하던 장소였다.
그곳이 이제 비어 있었다.
왕 알드렌은 이미 도망친 뒤였다.
왕좌는 텅 비어 있었다.
왕궁 중앙 광장.
모스수스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도시 사람들도 서 있었다.
농민, 상인, 장인, 창녀, 병사.
수천 명.
아니, 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왕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크가 중얼거렸다.
“이거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마레가 말했다.
“왕국은 이미 썩어 있었어.”
카사르는 조용히 왕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문제가 시작된다.”
도란이 물었다.
“무슨 문제?”
카사르가 말했다.
“왕국은 무너뜨리는 게 어렵지 않다.”
잠시 침묵.
그리고 말했다.
“…세우는 게 어렵다.”
왕궁 대전.
모스수스토의 핵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피크, 마레, 카사르, 도란, 엘리아.
그리고 페이지.
피크가 먼저 말했다.
“좋아.”
“이제 왕을 정하자.”
도란이 눈을 크게 떴다.
“벌써?”
피크가 말했다.
“왕이 없으면 나라가 안 돌아가.”
마레가 말했다.
“귀족들도 아직 살아 있어.”
카사르가 말했다.
“군대도 필요하다.”
피크가 페이지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그는 웃었다.
“…네가 왕이야.”
대전이 조용해졌다.
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마레도 말했다.
“다른 선택지도 없어.”
카사르는 짧게 말했다.
“동의한다.”
모두의 시선이 페이지에게 향했다.
페이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싫다.”
대전이 조용해졌다.
피크가 눈을 깜빡였다.
“뭐?”
페이지가 말했다.
“나는 왕이 되고 싶지 않다.”
도란이 말했다.
“그럼 누가 해?”
페이지가 말했다.
“우리는 왕 때문에 싸운 게 아니다.”
마레가 팔짱을 끼었다.
“맞아.”
피크가 말했다.
“그래도 나라에는 중심이 필요해.”
엘리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왕이 아니라…”
“…이름을 바꾸면 된다.”
피크가 웃었다.
“예를 들면?”
엘리아가 말했다.
“기사단.”
카사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기사단이다.”
마레가 말했다.
“왕국이 아니라…”
도란이 말했다.
“기사단 국가?”
피크가 손뼉을 쳤다.
“좋다.”
페이지는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궁 아래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페이지가 말했다.
“우리는 왕국을 끝냈다.”
“그러면…”
그는 잠시 생각했다.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피크가 물었다.
“뭐가 좋지?”
엘리아가 말했다.
“바람.”
마레가 웃었다.
“바람의 나라?”
피크가 말했다.
“나쁘지 않은데.”
페이지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뷔스프.”
피크가 눈을 깜빡였다.
“그게 뭐야?”
엘리아가 말했다.
“옛말이다.”
“바람.”
카사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날 저녁.
왕궁 발코니.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피크가 말했다.
“이제 네 차례야.”
페이지가 앞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페이지는 도시를 바라봤다.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살았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고개를 들고 있었다.
페이지가 말했다.
“벨로리아 왕국은 끝났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페이지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왕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위해 싸웠다.”
도란이 아래에서 외쳤다.
“맞다!”
사람들이 점점 크게 외쳤다.
페이지가 말했다.
“그래서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
“왕이 없는 나라.”
잠시 침묵.
그리고 페이지가 말했다.
“뷔스프.”
“바람의 나라.”
광장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누군가 외쳤다.
“바람의 기사단!”
다른 사람이 외쳤다.
“모스수스토!”
그리고 곧.
수천 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스수스토!”
“바람의 기사단!”
그날 밤.
왕궁에는 왕이 앉지 않았다.
왕좌는 비워졌다.
대신.
왕궁 중앙 홀에는 검 하나가 놓였다.
모스수스토의 검.
바람의 기사단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