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만죽 한 그릇의 이자
지옥 본사의 마몬 임시 사무실을 나온 직후, 페니는 방금 받은 사업권 문서를 파피루스 두루마리처럼 펼쳐 보였다. 희미한 유황불 조명 아래서도 종이 위에 찍힌 인영(印影)은 선명했다. 마몬의 인장이 아니라, 그의 대리인이자 하청상임을 증명하는 ‘마몬 길드 연대 보증’ 표식이었다.
“이야, 조나단! 먼지랑 악취까지 전부 저희 계약서에 들어왔는데요? 여기 고블린 빈민가 구역 전체 사업권이랑 자산 일체를 인수하는 계약이에요. 물론 자산이라고 해봐야 빚뿐이지만!”
페니의 목소리는 제법 컸지만, 주변의 누구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볼 여유가 없는 자들의 땅에 들어선 것이리라.
도시의 끝자락. 성벽 바깥으로 밀려난 이곳은 공식적인 이름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그냥 ‘고블린 구역’이라 불렀다. 탁한 회색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저지대, 시큼하게 코를 찌르는 배수로의 악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녹색 피부의 주민들.
조나단은 말없이 풍경을 훑었다. 칼 들고 들어가 괴물을 베는 곳이 아니었다. 숟가락 하나, 식권 한 장, 도장 한 칸으로 목숨을 저당 잡는 시장이었다. 저기, 구역 입구 가장 좋은 목에 자리 잡은 허름한 배식소가 그 증거였다.
길게 늘어선 줄. 한결같이 지치고 무표정한 얼굴들. 그들의 시선은 전부 배식소의 커다란 솥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이 구역의 다른 모든 악취를 덮어버릴 만큼 강했다. 역겨운 생활 냄새를 잠시 잊게 만드는, 인공적이고 노골적인 단내였다.
“냄새부터가 수상해요. 음식 냄새가 아니라 미끼 냄새잖아요? 코 썩은 값부터 붙여야겠어요. 코끝이 먼저 손해를 봤어요!”
페니가 코를 킁킁거리며 수첩을 꺼내 들었지만, 조나단은 이미 줄이 빠지는 속도를 보고 있었다. 고블린들은 배식소 앞에서 잠깐 멈춰 식권을 내고, 죽 한 그릇을 받아 든 뒤 금세 흩어졌다. 그릇이 몇 개 비워지는지, 식권이 몇 장 넘어가는지, 도장이 몇 번 찍히는지가 곧 이곳의 장부였다.
그런데 줄에 선 자들의 손에는 동전이 없었다.
조나단의 시선이 빈민가 구석구석을 다시 훑었다. 처음에는 그저 무질서한 가난의 풍경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시 보니, 고블린들은 제 나름의 값표를 들고 움직이고 있었다. 종이와 도장, 꼬리표와 빚줄이 골목마다 얽혀 있었다.
고블린들의 손에 들린 것은 동전이 아니었다.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진 종이쪽지, 땀과 때에 절어 희미한 잉크 자국만 남은 식권, 뼈에 새긴 듯한 표식이 달린 노동 담보용 꼬리표. 그것들이 이 빈민가에서 빵 한 조각과 망치 한 번, 잠깐의 잠자리를 바꿔 주었다. 그리고 갚을 때가 되면 손목에 묶인 밧줄처럼 다시 주인을 끌고 갔다.
한쪽 골목에서는 잿더미에서 주워온 정체불명의 고기를 굽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굶주린 고블린 하나가 홀린 듯 다가서자, 가판 주인인 유난히 목소리 큰 고블린이 손을 내저었다. 돈을 달라는 뜻이 아니었다. 주인은 그의 손에 들린 종이쪽지를 낚아채듯 확인했다. 아직 배식소에서 받을 포만죽 횟수가 남아있는지, 도장이 몇 개나 찍혔는지 꼼꼼히 살피는 눈초리가 예리했다. 짧은 흥정 끝에 주인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종이 한 귀퉁이에 작은 흠집을 냈다. 그것으로 거래는 성립이었다. 현금은 어디에도 오가지 않았다. 고블린은 고기 한 점을 얻는 대가로 미래의 죽 한 그릇을 팔아치운 셈이다.
그런 풍경은 곳곳에서 보였다. 닳아빠진 망치를 잠시 빌려 쓰는 대가로 식권 일부를 떼이고,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할 말린 과일 한 조각을 받으며 노동 꼬리표에 작대기를 하나 더 긋는 식이었다. 더러운 물웅덩이에서 건져낸 반짝이는 유리 조각마저 포만죽 식권 몇 장으로 거래되었다. 내일 받을 죽 한 그릇이 오늘의 망치값이 되고, 모레 끌 수레가 오늘의 과일값이 되었다. 고블린들은 배고픈 배보다 먼저 자기 시간을 팔고 있었다.
잠시 후, 조나단의 눈에 각기 다른 일을 마친 고블린들이 지친 그림자를 끌며 하나둘씩 배식소 방향으로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코를 찌르는 악취를 온몸에 두른 채 배수로 청소를 마친 무리. 뼈대가 드러난 등에 삐걱거리는 수레를 매달고 폐자재를 옮긴 무리. 그리고 거대한 화덕의 재를 긁어내 온몸이 검댕이 된 채 공허한 눈으로 걷는 무리까지. 출발지는 달랐어도 그들의 목적지는 모두 하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거대한 솥이 걸린 배식소였다. 고된 노동의 끝은 언제나 허기진 배를 간신히 채울 단 한 그릇의 멀건 죽이었다. 그들은 죽을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다시 죽을 받아 갔다.
그 흐름을 말없이 지켜보던 조나단은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동전은 나중 문제였다. 이 장사는 먼저 시간을 빼앗았다. 병든 고블린, 늙은 고블린, 하루 일을 못 채운 고블린은 식권 줄에서 밀려났다. 죽지 않을 만큼 먹이고, 다음 날 다시 일터로 돌려보낸다. 솥에서 빠져나가는 죽보다 장부에 쌓이는 노동이 훨씬 많았다. 죽 한 국자 값으로 하루를 사들이는 장사였다.
그때 옆에 선 페니가 반짝이는 눈으로 코를 킁킁거리며 명랑하게 속삭였다.
“와, 조나단! 이상한 냄새가 나요! 온 사방에서 장부 냄새, 청구서 냄새가 풀풀 풍겨요! 숫자가 썩어도 냄새는 돈 냄새네요!”
페니의 눈에는 고블린들의 고통과 착취의 현장 대신, 꼼꼼하게 기록되고 어김없이 마감될 깨끗한 숫자들만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배식소는 ‘포만죽 한 그릇’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널빤지를 대충 이어 붙인 간판 아래, 덩치 큰 오크 한 명이 국자로 솥을 젓고 있었다. 그는 고블린들이 내미는 너덜너덜한 종잇조각을 받아 들고, 그 위에 검고 진득한 도장을 쾅, 하고 찍었다. 그러고는 기계적으로 회색 죽을 한 국자 퍼서 나무 그릇에 담아줬다.
그것이 거래의 전부였다.
종잇조각은 식권이었다. 고블린들은 품속에서 소중하게 식권을 꺼내 오크에게 건넸다. 오크는 식권의 상태나 그림 따위는 보지도 않았다. 그저 도장을 찍을 자리가 남았는지, 종이가 찢어지지 않았는지만 확인할 뿐이었다.
죽은 멀건 회색 액체에 가까웠다. 건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멀리서도 느껴졌던 단내는 가까이 오니 오히려 역했다. 설탕을 태운 듯한 향기 아래, 정체 모를 곡물 찌꺼기의 텁텁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고블린들은 죽을 받자마자 허겁지겁 그릇을 비웠다. 뜨거운 죽을 단숨에 들이켜는 그들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없었다. 그저 다음 끼니까지 버텨야 한다는 의무감, 혹은 더 지독한 허기에서 잠시 벗어났다는 안도감뿐이었다.
죽을 다 비운 그릇에는 옅은 회색 막이 남아 있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이 남기는 흔적이 아니었다. 마치 묽은 풀을 먹은 것처럼, 그릇 바닥에는 미끈거리는 잔여물만 남았다.
저 멀건 죽 한 그릇에 ‘포만죽’이라는 이름을 붙인 손은 뻔뻔했다. 위장은 잠깐 속을지 몰라도, 빈 그릇을 쥔 손가락은 금세 다시 떨렸다.
“줄이 전혀 줄지 않네요.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파지는 죽인가 봐요. 솥 하나로 빚줄을 몇 바퀴나 돌리는 거예요? 만든 놈, 장부 쓰는 손목은 튼튼하겠네요.”
저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줄을 선 게 아니었다. 어제 찍힌 도장을 갚고, 오늘 받을 죽에 새 도장을 찍기 위해 다시 창구 앞에 섰다. 저 식권이 그 증거였다.
그들 앞으로 작은 고블린 아이 하나가 나섰다. 채 허리에도 닿지 않는 키. 아이는 자그마한 손으로 구겨진 식권을 내밀었다. 배식소의 오크는 식권을 받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내뱉었다.
“이봐, 꼬마. 네 식권은 이미 도장 찍을 자리가 없잖아. 다음 주 노동 담보라도 잡든가.”
오크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그는 아이를 손님으로 보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귀찮은 벌레를 대하듯 했다.
아이는 겁을 먹고 주뼛거렸다. 그러자 오크는 카운터 밑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툭 던졌다. ‘주간 노동 담보 계약서’라고 적힌 조잡한 양식이었다.
“거기다 네 이름이랑, 뭘로 갚을지 적어. 수레 끌기, 하수구 청소, 뭐든 좋아. 네놈들 노동력 싸구려인 건 나도 아니까, 이틀 치는 땡겨 와야 죽 한 그릇이야.”
고블린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고, 계약서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를 써 내려갔다. ‘수레 끌기(이틀)’라는 항목 옆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미래의 노동을 팔아 현재의 허기를 겨우 막아내는 순간이었다.
서툰 손으로 제 이름을 적은 아이가 창구에서 물러났다. 아이의 손에는 방금 받은 회색 포만죽 한 그릇이 들려 있었다. 김은 올랐지만, 그릇 안에는 아이의 다음 주가 함께 담겨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다음 차례의 고블린이 책상 앞에 섰다. 그의 뒤로도 수십 명의 고블린들이 희망 없는 표정으로 줄을 서 있었다. 몇몇은 제 품에서 낡아빠진 주간 노동 담보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익숙한 손길로 ‘몸으로 갚을 일’이라고 적힌 칸을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정해진 운명이라는 듯, 그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한 고블린의 계약서에는 이미 여러 개의 도장이 문신처럼 박혀 있었다. ‘1번 하수구 청소’ 도장 옆에는 ‘야간 순찰조 수레 끌기’가, 그 아래에는 ‘소각장 재 긁기’ 도장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도장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그가 손에 쥘 수 있는 식권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그가 손에 쥔 것은 계약서가 아니라, 차라리 노동으로 교환되는 목숨값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 꾸물거리지 말고! 다음!”
창구 너머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크 하청업자가 고함쳤다. 그는 고블린들의 어깨너머로 계약서를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듯 코웃음을 쳤다.
“저놈들은 저 정도면 감지덕지지. 글자나 읽을 줄 알면 다행이라고. 빵 한 조각에 하루 꼬박 부려먹을 수 있는 일꾼이 어디 흔한가?”
오크는 옆에 있던 인간 동료에게 으스대듯 말했다. 조나단은 그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계약서의 빼곡한 조항들과 도장이 찍히는 빈칸, 그리고 담보로 잡히는 노동의 종류를 훑었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 한 명, 또 한 명. 국자는 같은 양으로 움직였고, 도장은 같은 자리에 내려앉았다. 솥은 죽을 퍼냈고, 책상은 시간을 삼켰다.
줄 맨 앞에 선 아이가 받아 든 식권 한 장의 무게. 그 뒤에 선 자들의 체념 어린 눈빛.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오크의 오만함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질서처럼 공고했다.
바로 그때였다.
페니가 조나단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아이의 손에 들린 계약서 맨 아래, 익숙한 검은 표식이 찍혀 있었다.
“찾았다! 조나단, 저기 계약서 밑바닥 좀 보세요! 마몬 길드 연대 보증 표식이 딱 찍혔어요. 식권대출 약관 읽어 준 값, 빈민가 코 썩은 값, 표식 확인비까지 붙어요. 이건 냄새부터가 돈 냄새, 아니 청구서 냄새예요!”
페니는 신이 나서 중얼거렸지만, 조나단은 계약서의 다른 줄에 주목했다. 깨알같이 적힌 단서. ‘담보 노동 불이행 시, 연체 이자는 일할 계산되며 원금의 두 배를 초과할 수 없다.’
원금의 두 배. 고작 죽 한 그릇의 가격이 아니었다. 오늘 숟가락 한 번 뜬 값이 내일 수레 끌기 두 번으로 불어나고, 못 갚으면 그 위에 새 도장이 찍혔다. 저 아이는 오늘 죽 한 그릇을 받는 대가로 다음 주 시간을 먼저 빼앗겼다.
조나단의 차례가 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은화 한 닢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배식소 오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외지인, 그것도 인간이 이곳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데, 식권이 아닌 현금을 내미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죽 한 그릇.”
“……식권 없나?”
“없다.”
오크는 잠시 고민하더니, 은화를 제 주머니에 잽싸게 쑤셔 넣고는 죽을 한 그릇 퍼주었다. 다른 고블린들에게 주던 것보다 아주 약간, 정말 알아채기 힘들 만큼 건더기가 많은 것 같기도 했다. 하청상의 소소한 횡령이리라.
조나단은 그릇을 받아 들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죽을 한 번 휘저어 본 뒤, 천천히 한 입 맛보았다.
혀끝에 가장 먼저 닿는 것은 저급한 감미료의 인공적인 단맛이었다. 뒤이어 짠맛이 느껴졌지만, 소금의 양은 극히 적었다. 갈증을 유발해 다시 무언가를 마시게 하려는 얕은 속셈이다.
건더기라고는 거의 없는 멀건 죽은 목구멍으로 미끄러지듯 넘어갔다. 아주 약간의 곡물 찌꺼기가 혀에 남는 텁텁함을 만들었지만, 씹는다는 행위는 불가능했다. 육수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잡뼈라도 우렸다면 최소한의 지방 풍미라도 남았을 터. 이건 그저 물에 곡물 가루와 감미료, 소금을 푼 폐기물에 가까웠다.
단맛은 혀 위에 얇은 막처럼 남았다. 다른 맛을 밀어내고, 위장에는 잠깐 속았다는 신호만 보냈다. 이런 죽에 길들여지면 제대로 우린 국물도 밋밋하게 느껴질 터였다. 더 달고 더 질척한 것만 찾게 된다. 싸구려 단맛이 혀를 먼저 훔쳐 갔다.
조나단은 그릇을 내려놓았다.
“배는 속였고 혀는 망쳤고 장부는 불렸어. 아주 성실한 쓰레기다.”
그의 혼잣말을 들은 페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방금 감정료 받아도 되겠는데요? 쓰레기 판정 한 줄에 청구서 한 장이면 딱이에요!”
조나단은 페니의 말을 무시하고 배식소 카운터를 노려보았다. 오크의 손에 들린 검은 도장, 그 옆에 산더미처럼 쌓인 식권 뭉치, 그리고 노동 담보 계약서 뭉치. 저것들이 이 사업의 진짜 본체였다.
“싼 음식이 왜 이렇게 비싸지?”
조나단이 나직이 묻자, 페니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비싸니까요! 솥에 들어간 건 물이랑 가루 몇 줌인데, 받아 가는 건 내일 노동, 모레 노동, 밀린 도장값이잖아요. 이건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빚을 파는 장사예요. 손님 발목에 식권을 묶어 두는 거라고요!”
포만죽이 맛있어서 다시 오는 얼굴은 줄 어디에도 없었다. 어제 먹은 죽값을 오늘 노동으로 갚고, 오늘 먹을 죽을 내일의 노동으로 다시 빌릴 뿐이었다.
배식소 뒤편에서 오크는 식권들을 꼼꼼하게 분류하고 있었다. 처음 도장을 찍은 식권, 두 번 찍은 식권, 시커먼 도장이 여러 개 찍혀 너덜너덜해진 재대출 식권. 담보 계약서 뭉치도 날짜별로 묶여 있었다. 솥보다 두꺼운 것은 장부였다. 죽보다 오래 남는 것도 장부였다.
조나단은 먹다 남은 죽 그릇을 들고 다시 카운터로 다가갔다. 오크는 이미 다음 고블린의 식권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그는 조나단을 귀찮다는 듯 쳐다봤다.
“왜 또? 한 그릇 더 달라고? 돈 더 내.”
“필요 없다.”
조나단은 그릇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묽은 죽이 출렁이며 그릇 가장자리를 적셨다.
“이 사업의 장부를 보고 싶다.”
그의 말에 오크의 표정이 굳었다. 주변에서 죽을 먹던 고블린들의 시선까지 일제히 그들에게 쏠렸다. 정적이 흘렀다.
오크가 코웃음을 쳤다. 그는 들고 있던 국자를 솥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었다. 탕,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장부? 네놈이 뭔데 남의 가게 장부를 보겠다는 거야? 여긴 너 같은 놈이 와서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고.”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고블린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꺼져! 오늘 장사 끝났어! 내일 다시 와!”
고블린들은 겁을 먹고 쭈뼛거리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크는 위협적으로 조나단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도 어서 꺼져. 다시 한번 얼쩡거리면 네놈을 하수구 청소 담보로 잡아 버릴 테니까.”
협박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오히려 조나단의 확신을 굳혀주었다. 저 장부에 이 사업의 모든 비밀과 약점이 담겨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차갑게 오크를 응시했다. 은화를 꺼냈던 손으로, 카운터 위에 놓인 식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시커먼 도장이 빼곡히 찍힌, 어느 고블린의 고단한 삶이 담긴 종잇조각이었다.
조나단은 식권을 오크의 눈앞에 내려놓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장부 가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