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p Banner Ad(reader-top)
초보자 마을의 첫 끼 일러스트

초보자 마을의 첫 끼

지옥 특유의 유황 냄새와 잿빛 풍경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맑고 서늘한 공기, 그리고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흙과 풀의 향기였다.

“이야, 공기 좋고! 차원 이동 성공입니다, 조나단 본부장님!”

페니가 손에 든 서류철로 허공을 가르며 명랑하게 외쳤다. 방금 전까지 ‘지옥 구내식당 최종 결산 보고서’였던 그 서류철만 아니었다면, 영락없는 관광 가이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나단의 눈은 감상에 젖어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눈앞에 펼쳐진 이세계의 첫 풍경을 사업 분석 보고서처럼 훑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수레바퀴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대장간의 망치질 소리, 그리고 모험가들의 활기찬(혹은 고단한) 발걸음으로 가득한 흙길.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의 초입, ‘세라핌 관문’이라 불리는 초보자 마을이었다. 관문을 통과한 모험가들은 흙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마을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의 낡은 게시판에 그날의 일거리, 즉 퀘스트가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게시판 바로 옆에, 오늘의 목표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페니가 서류철 첫 장을 넘기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제7사업부 첫 가맹 예정지, 인간계 에이든 대륙, 초보자 마을 ‘세라핌 관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저희가 실사할 곳은 바로 저기!”

페니의 손가락 끝이 허름한 2층짜리 목조 건물을 가리켰다. 나무판자를 덧대 만든 간판에는 페인트가 벗겨진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한쪽이 떨어져 위태롭게 흔들리는 방패 그림 아래로 글자가 보였다.

[부서진 방패 여관 및 주점]

“가맹 등급 ‘부실 가맹 후보’고요. 현장 실사를 통해 개선 가치를 산정할 예정입니다. 예상 개선 가치는 약 8,700골드!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예상치고, 본부장님의 진단에 따라 최종 금액은…”

조나단은 페니의 설명을 배경음처럼 들으며 코를 킁킁거렸다. 위치는 완벽했다. 퀘스트를 받고 떠나기 전, 혹은 퀘스트를 마치고 돌아온 모험가들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 들를 수밖에 없는 독점적인 위치. 특히 저녁 시간이 되자 그 효과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여관이라면 응당 풍겨야 할 빵 굽는 냄새나 고기 스튜의 구수한 향은 전혀 나지 않았다. 대신 시큼하게 묵은 술과 덜 마른 장작이 내뿜는 퀴퀴한 냄새, 그리고 먼지 쌓인 나무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입구부터가 낙제점이었다.

마침 퀘스트를 마친 모험가들이 삼삼오오 여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 어디에서도 맛있는 식사에 대한 기대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고된 노동을 마친 일꾼이 허기를 채우러 식당에 들어가는 듯한, 의무적인 발걸음일 뿐이었다.

“첫 가맹점으로는 충분히 망했어.”

조나단이 나직이 읊조렸다. 지옥에서 출발하기 직전, 서류상으로 내렸던 평가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서진 방패’의 삐걱거리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네! 망해 있어야 저희 일이 있죠!”

페니가 신나게 외치며 그의 뒤를 따랐다.

***

여관 내부는 예상보다 더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기름때 낀 나무 바닥, 칼자국이 선명한 테이블, 그리고 손님들의 고함과 웃음소리가 뒤섞여 정신을 쏙 빼놓았다. 한쪽 벽에 걸린 퀘스트 게시판 앞에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으려는 모험가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여기, 오늘의 스튜랑 빵 두 개. 에일도 두 잔.”

조나단은 카운터에 동전 몇 닢을 던지듯 올려놓으며 주문했다. 여관주인으로 보이는, 인상 험악한 중년 남자가 돈을 홱 낚아채고는 주방 쪽을 향해 무뚝뚝하게 소리쳤다.

“여기 스튜 둘!”

곧이어 나온 음식은 조나단의 기대를 단 1밀리미터도 벗어나지 않는 최악의 형태였다. 표면이 바싹 말라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빵 한 조각과, 멀건 국물에 정체 모를 건더기 몇 개가 외롭게 떠 있는 스튜 한 그릇. 그리고 김빠진 에일 두 잔이 담긴 머그잔에는 응당 맺혀 있어야 할 물방울 하나 없었다.

조나단은 먼저 빵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자, ‘파삭’ 하는 건조한 소리와 함께 빵이 부서졌다. 탄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수분이 완전히 증발한 단면은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잘 구운 빵의 부드러운 기공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말라비틀어진 흔적이었다.

“빵부터 죽었어.”

그는 부서진 빵 조각을 멀건 스튜에 담가 보았다. 빵은 국물을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했다. 겉만 젖고 속은 그대로 바스러졌다. 스튜 국물 위에는 정체불명의 희끄무레한 기름이 얇게 떠 있었다. 고기를 오래 우려낸 기름이 아니라, 싼 기름을 나중에 붓고 대충 저은 흔적이었다.

“스튜가 묽은 게 아니야. 그냥 간을 맞춘 더운 물이지.”

한 숟갈 떠 맛을 본 조나단의 평가에는 한 치의 자비도 없었다. 혀를 찌르는 강한 짠맛이 먼저 덮쳤다. 그 뒤에는 아무런 맛도 없었다. 채소나 고기에서 우러나온 감칠맛은 전무했다. 건더기는 감자인지 순무인지 모를 정도로 푹 퍼져 씹을 것도 없이 혀 위에서 뭉개졌다. 상하기 직전의 재료를 짠맛으로 덮어버린,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마지막으로 에일 잔을 들어 코에 가져갔다.

“온도도 죽었고, 향도 빠졌어.”

시원해야 할 에일은 미지근했고, 홉의 상쾌한 향 대신 시큼털털한 잡내가 먼저 올라왔다. 거품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발효 관리에 실패했거나, 오래된 술통을 제때 세척하거나 교체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와, 진짜 맛없네요!”

페니가 해맑은 목소리로 조나단의 진단을 거들었다. 그녀 역시 한 숟갈 맛보더니 예쁜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이걸 돈 받고 팔다니, 완전 양심 불량 아니에요? 본부장님, 이거 가맹 계약서 13조 4항, ‘최소한의 품질 유지 의무’ 위반으로 걸 수 있나요?”

“아직 가맹 전이야.”

조나단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한 끼 식사만으로도 가게의 냄새는 잡혔다. 문제는 솥 하나에서 끝나지 않았다. 메뉴, 손님 동선, 남는 음식, 다시 데우는 바구니가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닌, 여관 안을 채운 다른 손님들을 향했다.

***

놀랍게도, 대부분의 모험가는 불평 한마디 없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아니, ‘먹는다’기보다는 ‘밀어 넣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그들은 딱딱한 빵을 억지로 씹어 삼키고, 멀건 스튜를 물처럼 후루룩 마셔버렸다. 대화도, 맛에 대한 감상도 없었다.

“이거라도 빨리 먹고 가자. 고블린 토벌 퀘스트, 다른 파티가 먼저 받으면 끝장이라고.”

“알았어. 근데 이 빵은 도저히 못 넘기겠다. 또 체하겠네.”

한 젊은 모험가가 딱딱한 빵을 접시 한쪽에 밀어놓으며 말했다. 동료는 말없이 스튜만 들이켰다. 마치 퀘스트를 수행하기 전 거쳐야 하는 귀찮은 의식처럼, 허기를 채우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 배가 많이 고팠나 봐요. 저렇게 맛없는 걸 불평 한마디 없이 먹는 걸 보면.”

페니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조나단의 생각은 달랐다.

“배고픈 게 아니야. 선택지가 없으니 참는 거지.”

그의 눈이 한쪽 테이블을 주시했다. 검술사 차림의 사내 하나가 스튜 그릇을 기울여 국물을 마시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그릇을 밀어냈다. 접시에는 딱딱한 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퀘스트 게시판으로 걸어가 다음 일거리를 확인했다. 저녁 식사는 끝났다는 듯이.

다른 테이블도 사정은 비슷했다. 손님 대부분이 빵이나 스튜 건더기를 남겼다. 하지만 누구도 여관주인에게 항의하거나 환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 종업원이 묵묵히 남은 음식 그릇을 치우면, 잠시 후 다른 손님이 그 자리에 앉아 똑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손님이 참는 걸 수요로 착각하고 있어.”

조나단이 작게 읊조렸다. 종업원은 손님들이 남긴 빵 조각들을 따로 모아 주방 구석의 커다란 바구니에 담았다. 아마 내일 아침, 스튜에 넣어 끓이거나 다시 데워서 나갈 터였다. 원가 절감이라는 이름 아래, 음식물 쓰레기와 상품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주방이었다.

이건 비단 이 여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나단은 창밖을 보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다른 여관에서도 비슷한 차림의 모험가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 마을의 모든 여관이, 모든 식당이 ‘부서진 방패’와 똑같은 수준의 음식을 내놓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페니.”

“네, 본부장님!”

“이 마을, 다른 식당들 메뉴 정보는?”

페니가 서류철을 재빨리 넘기며 해당 항목을 찾아 읽었다.

“잠시만요. 아, 여기 있다! 세라핌 관문 내 여관 및 주점 5곳 모두 ‘오늘의 스튜와 빵’을 기본 메뉴로 제공. 가격은 30~35코퍼로 거의 동일. 모험가 길드에서 지정한 표준 식단이라는 소문도….”

조나단의 생각이 거기에 미쳤을 때, 딸랑, 하고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초보 모험가 티가 나는 청년 세 명이 들어섰다. 무장은 제각각이고, 부츠에는 마른 진흙이 묻어 있었다.

그들은 여관 안을 한번 훑더니 곧장 카운터로 갔다. 그중 하나가 메뉴판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도 오늘의 스튜와 빵뿐이냐? 어딜 가나 똑같아."

"야, 길드 소집 시간 늦겠어. 빨리 아무거나 시켜."

불평하던 청년은 한숨을 쉬며 동화 몇 닢을 꺼냈다.

"여기요, 세 개 주세요."

여관주인은 기다렸다는 듯 돈을 받아 들고, 잠시 후 스튜 그릇 세 개를 카운터 위로 밀어냈다. 묻지도 않고, 설명하지도 않았다. 손님이 만족하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줄은 줄어들었고, 동전은 서랍에 들어갔다.

조나단은 그 짧은 흐름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모험가들은 길드 시간에 쫓겨 선택의 여지 없이 식사를 샀다. 여관은 그 조급함을 메뉴 하나로 받아먹고 있었다. 가격 문제가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먹어야 하는 초보 모험가들의 수요를, 이 마을 누구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나. 맛없는 음식이 잘 팔리는 시장이 아니었다. 선택지가 없고 시간이 없으니, 손님들이 가장 싸고 빨리 나오는 그릇 앞에 앉을 뿐이었다. 조나단은 남은 빵 바구니와 퀘스트 게시판 앞의 줄을 번갈아 보았다. 이 여관은 손님의 허기를 돈으로 바꾸고 있었지만, 다시 찾아오고 싶은 이유는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조나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주인장.”

조나단이 카운터로 다가가자, 그릇을 닦던 여관주인이 인상을 구기며 그를 돌아봤다. 손님들의 접시를 닦는 손길이 유난히 거칠었다.

“뭐요. 음식 다 먹었으면 접시는 테이블에 그냥 두쇼.”

“음식 이야기가 아니야.”

조나단의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에 여관주인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외지인이 시비를 거는 건가 싶어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다.

“당신 가게, 하루에 손님을 몇이나 받지? 자료를 보니 아침과 저녁, 식사 시간에 손님이 폭주 수준으로 몰릴 텐데. 주방은 저 아이 하나랑 당신 둘이서 돌리고.”

“그게 뭐 어쨌다고!”

핵심을 찔리자 여관주인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보다시피 이 동네는 푼돈 아끼려고 안달인 초보자 놈들만 바글거리는 곳이야! 35코퍼 이상은 절대 안 낸다고! 비싸고 맛있는 걸 정성껏 차려줘 봐야 사 먹지도 않는단 말이다! 싸고, 배부르고, 빨리 나오는 거! 모험가 놈들은 그거면 장땡이야!”

그의 항변은 틀리지 않았다. 이 여관의 운영 방식은 ‘초보자 마을’이라는 시장 환경에 완벽하게 최적화된 결과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나단의 관점은 달랐다.

“싸고 빠른 걸 찾는다고 해서, 맛없는 걸 먹고 싶어 한다는 뜻은 아니지.”

조나단은 카운터 너머로 보이는 비좁은 주방을 훑었다. 낡은 벽돌로 쌓은 화구는 단 하나. 그 위에는 성인 남성 허리만 한 거대한 솥이 올려져 있고, 그 안에서 멀건 스튜가 온종일 끓고 있을 터였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저 국자로 퍼서 내주기만 하면 끝. 극도로 효율적이지만, 음식의 질과 맛을 완전히 포기한 시스템이었다.

“당신, 요리할 생각이 전혀 없잖아.”

조나단의 직설적인 지적에 여관주인의 얼굴이 시뻘게 달아올랐다.

“뭐, 뭐라고?”

“매일 똑같은 국물을 데워서 퍼주는 게 당신 일의 전부 아닌가? 당신은 요리사가 아니야. 그냥 배급원이지.”

“이,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여관주인이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이 카운터 너머로 몸을 기울이는 순간, 페니가 조나단의 앞을 막아서며 생긋 웃었다.

“사장님, 진정하세요! 저희는 시비 걸러 온 게 아니라, 사장님 가게를 도와드리러 왔답니다. 지옥의 대악마 벨제부브 님께서 직접 발급하신 공식 사업권, 보이시죠?”

페니가 서류철에서 꺼내 든 양피지에는 섬뜩하고 기괴한 문양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도는 인장을 본 순간,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님을 직감한 여관주인은 저도 모르게 주춤했다.

조나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요리 비법 같은 건 관심 없어. 어차피 처음부터 없었을 테니.”

“…….”

“이 가게, 최근 3개월 치 장부랑 납품 명세서 전부 가져와.”

***

여관주인은 순순히 장부를 내놓지 않았다. 세라핌 관문에서 장사하면서 다짜고짜 장부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손님은 처음이었다. 그는 이 수상한 외지인들을 경비대에 신고해서 쫓아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장님, 협조 안 하시면 곤란해요. 저희는 제7사업부의 정식 가맹 실사팀이고, 정당한 자료 요구에 불응하시면 ‘사업 기회 손실에 따른 위약금’이 청구될 수 있거든요. 기본 500골드부터 시작인데, 괜찮으시겠어요?”

페니가 계약서의 가장 날카로운 조항을 낭랑하게 읊자, 여관주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500골드면 이 가게의 몇 달 치 순수익을 몽땅 털어 넣어도 모자랄 돈이었다. 그는 벌벌 떠는 손으로 카운터 아래 선반에서 먼지 쌓인 낡은 장부 몇 권과 양피지 뭉치를 꺼내 놓았다.

조나단은 장부를 펼쳐보는 대신,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관주인이 다급하게 막아섰지만, 조나단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목적지는 솥이 걸린 화구가 아니었다.

주방 뒤편, 후미지고 어두운 창고 공간.

그곳에는 사람 허리 높이만 한 나무통 대여섯 개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조나단은 통에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코를 킁킁거렸다.

“…….”

아까 스튜 그릇에서 맡았던 것과 똑같은 냄새였다. 아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진했다. 온갖 향신료가 부자연스럽게 뒤섞이고, 강력한 소금기에 절어 시큼하게 변질된 농축액의 역한 냄새. 이것이 바로 이 여관 음식의 정체였다.

그는 양피지 뭉치 맨 위를 장식한 납품 명세서를 훑어보았다. ‘만능 스튜 베이스 #7’이라는 품목명. 그 옆에는 희미한 인장이 찍혀 있었다. 불에 달군 인두로 똑같은 위치에 새긴 듯한 마크.

한쪽 접시는 하늘로, 다른 쪽 접시는 바닥으로 기울어진 불균형한 저울 문양이었다.

조나단은 코앞의 원액통을 훑어보았다. 통마다 같은 냄새가 났고, 같은 품목명이 붙었고, 같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주방에서 만든 맛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같은 방식으로 찍어낸 맛이었다.

그는 뚜껑을 닫고 손끝에 묻은 끈적한 농축액을 천천히 털었다.

“이건 여관 음식이 아니라 납품업자 매출표야.”

기울어진 저울 문양이 창고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번들거렸다. 첫 출장지의 냄새가 더 선명해졌다.

Advertisement
Bottom Banner Ad(reader-bottom)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