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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그릇은 장사가 아니라 납품이야 일러스트

서른 그릇은 장사가 아니라 납품이야

길드 직원은 여관 문가에 선 채, 방금 꺼낸 양피지를 카운터 위에 펼쳤다. 점심 피크가 끝난 직후라 바닥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고, 빈 빵 바구니는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는 조나단의 짧은 대답을 재촉하듯 손가락으로 주문 수량을 짚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초보자 훈련 퀘스트용 ‘점심 한 그릇’ 서른 개. 내일 정오까지 길드 광장으로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여관 주인의 눈이 환하게 빛났다. 점심 피크가 끝나자마자 들어온 대량 주문이었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른 그릇! 물론입니다! 물론이고말고요! 스튜야 뭐, 넉넉하게 끓이면 되고, 빵은…….”

거기까지 말하던 주인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머릿속으로 분주하게 계산을 돌리던 그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손님 열댓 명을 상대하는 것과 서른 명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잠깐만요. 저희 여관에 그릇이 서른 개나 없습니다. 나무 그릇을 다 긁어모아 봐야 열댓 개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이 뜨거운 스튜를 어떻게 광장까지 옮기죠? 아무리 조심해도 쟁반에 받쳐 가다간 길바닥에 다 쏟아지고 말 겁니다. 도착할 때쯤이면 스튜도 다 식어 빠졌을 거고요.”

그때, 주판알을 튕기며 장부를 정리하던 페니가 고개를 번쩍 들고 끼어들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새로운 수익 계산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간단해요! 그릇 대여료, 파손 시 보증금, 그리고 운송 전문 인력비를 추가로 청구하면 해결됩니다! 아, 물론 위험수당도 붙여야죠!”

“그게 문제가 아니야.”

정적을 가르며 조나단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페니의 흥분과 주인의 걱정을 단칼에 잘라냈다. 그는 길드 직원이 내민 주문서의 끝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곳에는 돋보기로 봐야 할 만큼 작은 글씨로 된 추가 조건이 붙어 있었다.

`※ 단체 할증 10% 적용. 지정 시간 초과 시 1분당 1%씩 감액.`

“서른 그릇은 많이 파는 게 아니야. 정해진 시간 안에 천천히 망하는 방법이지.”

조나단은 주문서의 숫자를 한 번 더 두드렸다.

“생각해 봐. 미리 그릇에 담아두면 빵은 국물을 다 빨아들여 죽처럼 풀어지고, 스튜는 차갑게 식는다. 그렇다고 광장에 도착해서 한 명씩 그릇에 스튜를 담아주기 시작하면, 줄 맨 끝에 선 서른 번째 사람은 언제쯤 점심을 먹게 될까? 길드 훈련 출발을 알리는 종은 단 한 명도 기다려주지 않아. 배식 줄은 엉망이 되고, 밥을 늦게 받은 놈들은 소리를 지를 테지. 결국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한 길드는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어, 이 조항을 근거로 돈을 깎을 거고.”

조나단의 냉정한 지적에 길드 직원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늘 반복되던 광장의 혼란과 지연, 그리고 그로 인한 불평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주문은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조건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야.”

조나단은 주문서를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손에 쥔 채 여관 밖으로 향했다.

여관 주인은 허둥지둥 장부를 챙겼다. 토미는 나무 그릇을 세다가 열여섯에서 멈췄다. 여관 주인의 아내는 보관함에서 헝겊과 끈을 꺼냈지만, 뜨거운 스튜 통을 감쌀 만큼 많지 않았다.

조나단은 그 꼴을 한 번 보고 혀를 찼다.

“재료만 늘리면 장사가 커지는 줄 알아? 그릇, 손, 길, 시간. 하나라도 모자라면 서른 그릇은 서른 개의 불평이 된다.”

그가 문밖으로 나가며 짧게 덧붙였다.

“빵부터.”

***

마을 빵집은 풍요로운 밀가루와 버터 냄새 대신, 시큼하게 묵은 먼지 냄새가 먼저 일행을 맞았다. 진열대 대부분은 텅 비어 있었고, 빵집 주인은 조나단과 그를 따라온 여관 주인을 보자마자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딱딱하게 굳은 빵을 찾으러 왔다면 저기 쌓여 있소. 여관에서 대량으로 쓴다니, 평소보다 더 싸게 쳐주지. 어차피 오늘 안으로 못 팔면 가축 사료로도 못 쓰고 전부 버려야 할 판이라오.”

그가 손짓한 카운터 옆 구석에는 어른 허리 높이까지 쌓인 딱딱한 빵 더미가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팔리지 않은 어제의 빵, 그제의 빵들이었다. 실패의 무덤이었다.

조나단은 가격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듯 빵 더미로 다가갔다. 그는 맨 위에 놓인 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으로 무게를 가늠하더니, 주저 없이 양손에 힘을 줘 반으로 쪼갰다.

쩍, 하고 마른 비명 같은 소리가 나며 빵의 단면에서 허연 가루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조나단은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더니, 미련 없이 빵 조각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이건 늙은 게 아니라 죽은 거야.”

빵집 주인의 얼굴이 모욕감으로 시뻘게 달아올랐다.

“뭐, 뭐라고? 지금 내 귀한 빵을 모욕하는 거요?”

“모욕이 아니라 분류다.”

조나단은 태연하게 다른 빵을 집어 들었다. 이번엔 겉이 유난히 두껍고 거무죽죽한 빵이었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빵의 속살을 꾹 눌렀다. 스펀지처럼 눌렸다가, 힘을 빼자 아주 느리게, 겨우 원래 모양의 절반쯤으로 돌아왔다.

“스튜를 담을 그릇이 될 빵이 필요해. 늙어서 푸석거리는 건 스튜를 붓자마자 수분을 이기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흩어질 거다. 오늘 구운 부드러운 빵은 순식간에 죽처럼 풀어지겠지.”

조나단은 빵집 주인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이미 다음 빵이 들려 있었다.

“내가 필요한 건 ‘오래된 빵’이 아니야. ‘흡수용 빵’이지.”

그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이상적인 빵의 형태를 그렸다.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둥근 빵. 속은 스튜를 빨아들일 수 있도록 구멍이 살아있게, 하지만 겉은 뜨거운 스튜의 무게와 열기를 온전히 버틸 수 있도록 단단하게. 한 번 구운 뒤에, 남은 열기가 있는 화덕에 넣어 한 번 더 구워내야 해. 빵 속의 수분을 완전히 날려서, 그 빈자리에 스튜가 들어갈 틈을 만드는 거다.”

빵집 주인은 조나단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는 평생 빵을 구웠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실패작에 ‘규격’을 요구하는 손님은 처음이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을 가진 ‘제품’으로서의 규격이었다.

“……그, 그렇게 만들면, 저기 쌓인 빵들을 전부 다 사 줄 거요?”

“아니. 규격에 맞는 새 빵만 산다. 당신이 앞으로 팔아야 할 건 재고떨이가 아니라, ‘북부 여관 스튜 전용 흡수빵’이니까.”

빵집 주인은 바닥에 떨어진 죽은 빵 조각을 내려다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버리기 아까운 재고였다. 이제는 팔면 안 되는 물건이 됐다. 대신 조나단이 손가락으로 그린 작은 둥근 빵은, 아직 화덕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가격표가 붙은 것처럼 보였다.

“밀가루 배합은?”

“부드럽게 만들 생각부터 버려. 씹기 좋은 빵이 아니라, 스튜를 버티는 빵이다.”

“소금은?”

“스튜보다 튀면 쓰레기야. 빵은 주인공이 아니야. 돈 받는 그릇이지.”

***

빵집 화덕 앞에 나무판 세 개가 놓였다.

조나단의 까다로운 요구에 따라, 빵집 주인은 세 종류의 빵을 준비했다. 어제 팔다 남아 딱딱하게 ‘죽은’ 빵, 오늘 아침 갓 구워낸 말랑하고 부드러운 빵,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나단의 지시대로 두 번 구워 속까지 바싹 말린 ‘흡수빵’이었다.

여관에서 가져온 뜨거운 스튜가 작은 냄비 안에서 김을 피우고 있었다. 조나단은 국자로 스튜를 떠서 차례대로 빵 위에 부었다. 여관 주인과 빵집 주인이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스튜를 붓자 차이가 바로 드러났다.

첫 번째, 딱딱하게 죽은 빵은 스튜가 닿자마자 힘없이 부스러지며 진흙처럼 흉하게 변했다. 스튜는 형태를 잃은 빵가루와 엉켜 누구도 먹고 싶지 않을 지저분한 덩어리가 되었다.

두 번째, 갓 구운 부드러운 빵은 처음엔 스튜를 잘 빨아들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빵 전체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며 멀건 죽이 되어버렸다. 그릇으로 쓰는 건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흡수빵 차례였다. 뜨거운 스튜가 부어지자, 빵은 ‘쉬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국물을 빨아들였다. 빵의 속살은 스튜로 젖었지만, 두 번 구워 단단해진 겉껍질은 무너지지 않았다. 조나단이 빵을 손바닥에 올려 살짝 흔들었다. 스튜는 넘치지 않았고, 빵은 접시처럼 버텼다.

“오오……!”

여관 주인과 빵집 주인의 입에서 동시에 낮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거라면 되겠어! 이걸로 서른 개 만들어서 당장 스튜를 채워 갑시다!”

여관 주인이 흥분해서 외쳤다. 바로 그때, 구워진 빵을 바구니에 옮겨 담던 토미가 발을 헛디뎌 휘청했다. 바구니가 크게 기울며 빵들이 와르르 쏟아질 뻔한 것을 조나단이 잡아챘다.

토미의 손목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따끈한 빵만 옮겼는데도 그랬다. 그릇마다 스튜를 채워 광장까지 옮겼다면, 손목이 아니라 장사 전체가 뒤집혔을 것이다.

조나단은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빵을 다시 가지런히 세웠다. 속이 빈 부분이 위로 오도록 방향을 맞췄다. 쌓는 방향 하나만 틀려도 빵이 눌려 깨졌다.

“아니.”

조나단이 토미를 바로 세워주며 나직이 말했다.

“스튜는 채워가지 않아.”

그는 빵을 다시 바구니에 담고, 김이 나는 스튜 냄비를 턱으로 가리켰다.

“스튜는 커다란 보온 통에 담아 최대한 뜨겁게 유지한다. 빵은 따로 바구니에 담아 운반해. 그리고 현장에서, 먹기 직전에 부어주는 거야. 그래야 빵이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스튜도 식지 않는다.”

‘점심 한 그릇’은 여관 주방에서 끝나는 음식이 아니었다. 빵집에서 규격을 맞추고, 여관에서 스튜를 끓이고, 길드 광장에서 마지막 한 국자를 붓는 상품이 됐다.

***

길드 직원은 조나단이 새로 작성해 내민 역제안서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원래 주문서 뒷면에 빽빽하게 적힌 조건들은 하나같이 상식을 벗어난 것들이었다.

“선금 50%? 배식 위치를 길드에서 미리 확보하고 동선을 통제하라고요? 한 줄 서기 유지를 길드에서 책임지라고요? 사용한 빈 통 반환이 늦어지면 보증금을 몰수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조나단을 쳐다봤다. 분명 자신은 10% 할인을 요구하러 왔는데, 오히려 훨씬 더 까다롭고 불리해 보이는 조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길드가 시간을 요구했으니, 우리는 조건을 팔아야지.”

조나단은 팔짱을 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정오까지 서른 명을 먹이는 건 장사가 아니야. 지연을 없애는 일이다. 음식값만 받을 생각이면 손해지. 우리는 길드 시간을 맞춰주는 값을 받아야 해.”

페니가 옆에서 신이 나서 설명을 덧붙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주판알이 파라락 소리를 냈다.

“맞아요! 급한 주문 손봐준 값! 빵집까지 뛰어가서 새 빵 만들게 한 값! 조나단 머릿값까지 붙이면 이 정도는 아주 착하죠! 게다가 선금 냄새는 언제 맡아도 최고잖아요!”

길드 직원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처음엔 일개 여관의 오만한 상술이라고 치부하려 했다. 하지만 조나단의 말을 곱씹어볼수록, 그의 제안이 자신들의 진짜 문제를 정확히 꿰뚫고 해결해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페니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계약서 아래쪽에 작은 칸을 하나 더 만들었다.

`광장 북쪽 우물 옆 배식대 확보.`

`초보자 5명씩 줄 세우기.`

`빈 통과 국자 반환 시 보증금 환급.`

글씨는 작았지만, 길드 직원의 눈에는 이상하게 크게 보였다. 그동안 매번 말로만 맡겼다가 어그러지던 일이었다. 이번에는 종이에 남았다.

초보자 서른 명을 데리고 나가는 날이면 늘 출발 종이 문제였다. 누구는 빵을 씹다 늦고, 누구는 스튜를 받지 못해 투덜거리고, 누구는 배낭을 찾느라 줄을 흩뜨렸다. 몇 분이 밀리면 훈련장은 늦게 도착했고, 늦게 도착하면 해가 기울기 전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 여관은 그 난장을 줄 하나와 뜨거운 국자 하나로 치우겠다고 했다. 10% 할인보다 훨씬 값이 컸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대신, 약속한 시간 안에 배식을 끝내지 못하면 모든 책임은 여관이 지고 계약금 전액을 반환하는 걸로 계약서에 명시해야겠습니다.”

“물론. 단, 길드가 줄을 세우고 통제하는 데 실패해서 지연될 경우엔 우리도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고 1분당 1%씩 추가 요금을 청구하지.”

조나단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 길드 직원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페니는 환호하며 계약서에 깃펜으로 새로운 조항을 꼼꼼하게 추가했다.

“빈 통 회수 지연 페널티에 이어 길드 측 지연 유발 페널티까지! 할인 요구하러 온 손님한테 총액을 더 키워서 돌려드렸습니다! 와, 우리 장부가 아주 통통하게 살찌겠어요!”

***

다음 날 정오, 길드 광장은 초보자들의 활기와 긴장감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북적였다. 저마다 어설프게 무기와 방어구를 챙겨 입고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서른 명의 모험가들이 출발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장 한편에, 조나단의 지휘 아래 작고 효율적인 배식대가 설치되었다. 여관 주인과 토미가 줄을 선 초보자들에게 속이 빈 흡수빵을 하나씩 빠르게 나눠주었다.

“자, 빵 그릇 받으세요! 뜨거우니 조심하시고요!”

초보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딱딱하고 움푹한 빵을 받아 들었다. 이게 점심의 전부인가 싶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순간, 조나단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거대한 스튜 통 앞에서 국자를 들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줄을 따라 움직이며, 초보자들이 들고 있는 빵 그릇 안으로 정확하고 빠르게 뜨거운 스튜를 부어주었다.

“우와, 이게 뭐야?”

“엄청 빠르다! 줄이 순식간에 줄어들어!”

“대박! 빵이 스튜를 다 빨아들였어! 엄청 뜨거운데 손은 전혀 안 데네.”

놀라움은 곧 만족스러운 감탄으로 바뀌었다. 초보자들은 한 손에는 스튜가 가득 담긴 빵 그릇을, 다른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서서 편안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스튜는 방금 끓인 것처럼 뜨거웠고, 빵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씹는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신속했다. 첫 번째 사람이 빵을 받고 마지막 사람이 스튜를 받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광장에 출발을 알리는 우렁찬 종이 울렸을 때, 서른 명의 초보자들은 모두 배를 채운 뒤였다. 먹을 수 있는 빵 그릇은 대부분 손에 들린 채 끝까지 사라졌고, 몇 조각 남은 껍질만 지정된 통에 떨어졌다. 지각자도, 불평도 없었다.

토미는 배식대 옆에서 나간 수량을 다시 셌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빈 보온 통과 큰 국자는 제자리로 돌아왔고, 통 바닥에는 다음 사람에게 내기 애매한 양만 남았다. 페니는 그 남은 양까지 눈으로 재더니 장부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남은 스튜, 직원 식사로 전환 가능! 폐기 없음! 선금은 이미 받았고, 보증금도 멀쩡해요! 좋아요, 오늘도 한 방울까지 돈입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빵집 주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평생 실패작이라고만 생각했던, 버려질 운명이었던 자신의 빵이, 처음으로 사람들의 손에 들려 제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길드 직원이 상기된 얼굴로 조나단에게 다가왔다.

“시간이 맞았습니다. 이 정도면 길드도 편합니다. 다음 주에도 단체 퀘스트가 있는데…… 혹시, 같은 조건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다음 주는 다음 주에 얘기하지.”

조나단이 무심하게 대꾸하며 스튜 통을 정리했다. 여관 주인은 빈 보온 통을 닦았고, 빵집 주인은 남은 흡수빵 바구니를 세었다. 길드 직원은 다음 주문 날짜를 자기 수첩에 적었다. 셋이 같은 숫자를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짐을 정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빵집으로 돌아가려던 주인의 앞을 한 남자가 막아섰다. 골목의 그늘에 얼굴이 가려진 사내는 위협적으로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 여관에 빵 대지 마. 좋은 말로 할 때 그만두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남자의 손에는, 얼마 전 조나단이 박살 냈던 원액 공급 연합의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단검이 섬뜩하게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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