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과 우정이 견디는 무게
1869년 가을. 베를린 대학 중앙 강당.
오래된 참나무 벽면에 석유 램프들이 줄지어 매달린 세미나실은 담배 연기와 오래된 양피지 냄새로 가득했다. 프로이센 학술원이 후원하는 연례 지질학 세미나에,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학자들이 낡은 의자에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스물여덟 살의 젊은 지질학자였고, 발표 순서를 기다리며 연단 가장자리에서 불안한 시선으로 객석을 살피고 있었다.
발표 주제는 '동프로이센 해안 퇴적층의 광물학적 분류'였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인상을 남기지 못하면 다음 탐사 비용을 지원받을 수 없었다.
나는 기침을 가다듬고 연단에 올라 발표를 시작했다. 투박한 독일어로 퇴적층의 단면 도식을 설명하는 동안, 객석 대부분은 예의 바르게 무관심했다.
그런데 한 남자의 시선이 달랐다.
세미나실 맨 뒷줄. 어두운 구석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장신의 남자. 검은 수염 사이로 드러난 날카로운 눈이 내 도식의 세부까지 빠짐없이 훑고 있었다.
발표가 끝난 뒤, 그가 먼저 다가왔다.
"동프로이센 해안의 제4기 빙하 퇴적층을 16개 하위 층서로 분류한 것은 꽤 흥미로운 시도였소. 하지만 내 생각에 당신의 분류는 열전도율을 간과하고 있소. 각 층서의 온도 경사를 계산에 넣었다면, 7번과 11번 층은 같은 기원의 퇴적물이라는 결론이 나올 텐데."
러시아어 억양이 짙게 밴 독일어. 대뜸 내 발표의 결함을 지적하는 무례한 말이었지만, 그 지적의 정확도가 나를 붙잡았다. 열전도율. 나는 그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넣었더라면 실제로 분류가 달라졌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시오?"
"얀 쿨로프스키.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 공과대학에서 열역학을 가르치고 있소. 광물의 열전도 특성을 연구하다 보니 지질학 세미나에까지 발을 들이게 되었소."
그때 그의 나이 서른여덟. 나보다 열 살 위였고, 광물학과 열역학 양쪽에 정통한 드문 유형의 학자였다.
그날 밤, 세미나실 옆 지하 선술집에서 우리는 맥주잔을 사이에 두고 다섯 시간을 이야기했다. 광물의 결정 구조와 열역학 제2법칙의 교차점에 대해, 그리고 북극이라는 미지의 실험실이 품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극지의 빙하 속에는 지구의 기억이 갇혀 있소."
쿨로프스키가 맥주 거품을 닦으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과학자 특유의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나도 같은 열병을 앓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학문적 동지를 얻었다. 그것이 40년 후 나를 어디로 이끌지 알지 못한 채.
이후 16년간 우리는 서신으로 교류했다.
베를린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오가는 편지들은 점점 두꺼워졌고, 그 안에는 광물 표본의 스케치, 열전도 계수의 계산식, 그리고 언젠가 함께 떠날 극지 탐사에 대한 꿈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1885년. 내가 마침내 북극 빙벽의 심장부에서 그것을 꺼내어 들어 올린 날.
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 발견의 무게를 나눌 수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다. 스스로 열을 내고 스스로 빛을 발하는 미지의 광물. 나는 그것을 아직 무엇이라 부를 수 없었지만, 이것이 기존의 과학 질서를 무너뜨릴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만은 돌처럼 단단했다.
편지를 보낸 지 두 달 후, 쿨로프스키가 직접 나를 찾아왔다.
서신이 아니라 본인이 온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학의 모든 강의를 동료에게 넘기고, 기차와 마차와 썰매를 갈아타며 한겨울의 노르웨이 북부까지 달려온 것이다.
내 캠프 텐트의 입구를 찢듯 열어젖히며 들어온 쿨로프스키의 얼굴에는 서리와 여행의 피로가 껍질처럼 붙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16년 전 베를린의 선술집에서와 정확히 같았다.
"어디 있소. 보여 주시오."
나는 품속 깊이 감추고 있던 광물을 꺼냈다. 두꺼운 천을 벗기자, 텐트 안의 어둑한 램프빛 아래에서도 그것은 창백한 푸른 맥동을 뚜렷이 내뿜었다.
쿨로프스키의 두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장갑을 벗어도 되겠소?"
"직접 만져 보시오. 따뜻할 거요."
쿨로프스키가 맨손으로 광물을 집어 들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광물의 표면 패턴이 마치 심박수가 빨라지듯 파동의 주기를 변화시켰다.
16년 전의 열역학 토론이 떠올랐다. 에너지는 보존된다.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열역학 제1법칙. 그런데 이 광물은 외부 에너지 없이도 열과 빛을 생산하고 있었다.
"불가능하오."
쿨로프스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부정이 아니라 경외가 담겨 있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바닥 위의 온기가 그 불가능을 부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꼬박 사흘을 텐트 안에서 보냈다.
광물을 영하 40도의 외부에 노출시켰다가 텐트 안으로 가져오는 실험을 반복했다. 특정 온도 이하 — 영하 25도 근처 — 에서 광물의 발광이 더 강해지고 표면 패턴의 변화 주기가 빨라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추위가 이 물질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열역학의 상식과 정반대.
"이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오."
사흘째 밤, 쿨로프스키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안 돼. 우리가 이것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하기 전에 이 소식이 나가면, 과학이 아니라 정치가 먼저 이것을 집어삼킬 거요. 프로이센, 러시아, 영국, 그 어느 쪽이든. 이 규모의 에너지원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곧 군사적 경쟁의 도화선이 돼."
쿨로프스키는 오래 침묵했다. 램프의 불꽃이 텐트 벽에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렸다.
"당신 말이 맞을 수 있소. 하지만 칼, 비밀은 결국 비극을 낳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나는 그 말을 편지에 적힌 문장처럼 받아들이고 넘겼다. 경구라 여겼다. 예언이라 여기지 못했다.
우리는 합의했다. 이 광물의 존재를 둘만의 비밀로 유지하면서, 극지방에 비밀 연구소를 건설하여 본격적 연구에 착수하기로.
왜 극지여야 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광물이 저온에서 활성화되므로 최적의 연구 환경이다. 둘째, 문명과 격리되어야 비밀을 지킬 수 있다. 이 황량한 얼음의 끝에서라면,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다.
1887년. 극지 연구소가 완성되었다.
노르웨이 최북단 스발바르 군도의 끝자락, 공식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는 작은 만(灣) 안쪽. 통나무와 석재로 지은 소박한 건물 두 채. 한 채는 실험실이고, 한 채는 거처였다.
지붕은 영하 50도의 바람을 견디도록 낮게 눌려 있었고, 창문은 삼중 유리로 막아 두었다. 실험실 벽면에는 쿨로프스키가 직접 설계한 온도 조절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증기 기관으로 구동되는 원시적 장치였지만, 실험실 내부의 온도를 영하 40도에서 영상 20도까지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었다.
첫 겨울은 생존 자체가 실험이었다.
물 긷는 것부터 장작 패는 것까지, 모든 것이 동상과 저체온증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연구소 안은 달랐다. 쿨로프스키의 증기 장치가 실험실을 영상 5도로 유지했고, 그 온기 속에서 우리는 문명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자유를 누렸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학회의 관례도 정부의 검열도 없이, 순수하게 미지의 물질과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야비를 실험했다. 내가 붙인 이름은 '야비(Jav)'였다. 극지(北)의 보석이라는 뜻을 담았지만, 쿨로프스키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명명은 이해한 뒤에 하는 것이오."
그가 말했다. 우리는 아직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실험이 진행될수록 야비는 더 많은 불가능을 보여주었다. 특정 온도 이하에서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었다. 활성화 시 야비의 질량이 미세하게 변동했다. 열역학 제1법칙뿐 아니라 질량 보존의 원칙마저 위반하는 것처럼 보였다.
쿨로프스키의 정밀 천칭은 흔들렸고, 내 광물학 분류 체계는 무용해졌다.
어느 날 저녁, 쿨로프스키가 실험실의 증기 파이프를 닦으며 말했다.
"칼. 이것이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다면, 반드시 무기로도 쓰일 수 있소."
나는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평소의 학자적 침착함과 달랐다. 무언가를 오래 곱씹어 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비밀을 지키는 이유가 아닌가."
"비밀을 지키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다르오. 우리 둘이 이것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소. 이 땅에 영원한 비밀은 없어."
"언젠가 누군가가 이것을 다시 찾아내고, 그때 우리의 연구가 남겨진 채로 있다면 — 통제되지 않은 상태로 — 그것은 순수한 과학의 유산이 아니라 파멸의 설계도가 될 수 있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쿨로프스키의 우려를 반박할 논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발견이 순수한 과학적 성취로 남기를, 빛이 주는 약속으로 남기를 원했다. 하지만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경외감의 그림자는 공포이고, 과학의 그림자는 전쟁이었다.
"좀 더 연구하면 답이 나올 것이오."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그것뿐이었다. 쿨로프스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균열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미세한,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씨앗이 두 사람 사이의 얼음 아래에 심어졌다.
그날 밤, 나는 쿨로프스키를 데리고 연구소 밖으로 나섰다.
극야의 하늘은 칠흑이었고, 그 장막 위로 녹색과 보랏빛의 오로라가 느리게 너울거리고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어 있었다. 우리가 내쉬는 숨만이 하얀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두 사람은 말없이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과학자로서, 그리고 벗으로서 함께 서 있는 마지막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아직은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이 발견이 세상을 바꿀 것이오."
내가 중얼거렸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하얀 입김이 오로라를 향해 천천히 피어올랐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길."
쿨로프스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극지의 침묵이 그의 대답을 대신했다. 오로라의 빛이 두 사람의 얼굴 위로 스러지고, 북극의 밤은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