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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권력이 쓰여진 기록 일러스트

사랑과 권력이 쓰여진 기록

나는 열여덟 살이었고, 세상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알고 싶었다.

1958년.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경계 어딘가.

황량한 구릉 지대에 핵발전소 건설 계획이 발표되었고, 부모님이 5년 전 중상을 입었던 바로 그 종류의 시설이 다시 이 땅에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런던의 대학 기숙사를 박차고 올라와 반대 집회의 현수막을 들고 서 있었다.

바람이 거셌다. 짙은 회색 구름이 구릉 위를 낮게 흘러가고 있었고, 집회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그 구름 아래에서 흩어지고 또 모여들었다.

부모님은 오지 못했다. 어머니의 오른쪽 다리는 1953년 집회 진압 때 부러진 이후로 회복되지 않았고, 아버지의 왼쪽 귀는 최루탄 폭발음에 영구적으로 닫혀 버렸다.

그들의 몸에 새겨진 균열은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았다. 정치가 새로운 상처를 막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망가진 몸을 복구하지는 못한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여기에 서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수학. 그리고 생명의 구조.

런던 대학에서 나는 수학과 생물학을 동시에 공부하고 있었다. 교수들은 두 분야를 동시에 전공하려는 내 고집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택해야 해요, 엘리스."

지도교수의 말이었다.

하지만 내게 이 두 가지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줄기였다. 접붙이기를 하려면 대목(臺木)과 접수(接穗)가 모두 필요하다. 수학이 대목이고 생물학이 접수라면,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해야만 비로소 하나의 나무를 만들 수 있다.

나는 부서진 것을 다시 붙이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부모님의 부서진 몸을. 이 부서진 세상을.

정치로는 예방만 할 수 있고, 복구는 과학의 몫이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다리를 끌며 부엌에서 차를 끓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이 세상 어딘가에 부러진 줄기를 다시 이어 붙이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것을 찾아야 했다.

집회가 끝난 뒤, 근처 마을의 작은 펍에서 참가자들이 맥주를 마시며 흩어졌다.

나는 구석 테이블에 앉아 노트를 펼치고 있었다. 집회와 무관한 계산이었다. 암호학 과목에서 다루고 있던 대칭 키 알고리즘의 변형.

맥주잔 옆에서 연필로 수식을 끄적이고 있는 모습이 꽤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집회의 열기가 식은 뒤에 남는 것은 언제나 고요한 계산이었다. 구호는 공기 중에 흩어지지만, 수식은 종이 위에 남는다.

그때 누군가가 내 노트를 들여다보았다.

"그 변환 행렬의 역원(逆元)을 시간의 함수로 만들면 어떻게 되겠소?"

러시아어 억양이 짙게 밴 영어. 고개를 들자,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남자가 내 테이블 맞은편에 서 있었다.

서른 후반쯤 되어 보이는 얼굴에, 날카로운 턱선과 깊이 파인 눈. 그리고 그 눈 안에는, 내가 방금 적고 있던 수식의 구조를 한눈에 읽어낸 사람의 빛이 서려 있었다.

"시간의 함수라면요?"

"역원 계산에 시간 파라미터를 삽입하는 거요. 키가 생성된 시점으로부터 t시간이 경과해야만 역변환이 가능하도록. 일종의 시간 잠금."

나는 연필을 멈추고 그 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회전시켰다. 시간 잠금. 암호화 시점에서 특정 기간이 지나야만 해독이 가능하도록 수학적으로 보장하는 구조.

흥미로웠다. 단순히 흥미로운 수준이 아니라, 뿌리에서부터 뒤집히는 종류의 자극이었다.

"얀 폴로이프스키."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러시아 이름. 냉전의 한복판에서 소련 출신의 과학자가 영국 북부의 반핵 집회 뒤풀이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 읽히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엘리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바닥은 크고 건조했다. 실험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손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펍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이야기했다.

폴로이프스키는 모스크바의 과학 아카데미에서 이론물리학을 연구하고 있었다. 반핵 집회에 온 것은 개인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핵물리학의 현실적 위험성에 대한 과학자적 관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그 조심스러움 자체가 철의 장막 뒤에서 온 사람의 몸에 밴 생존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우리는 수학을 이야기했다. 물리학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야기 사이사이에,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자라났다. 묘목을 심듯 조심스럽게. 아직 뿌리가 내리기 전의, 흙 속에서 방향을 찾고 있는 단계.

컨퍼런스가 끝나고 폴로이프스키가 대륙으로 돌아간 뒤, 우리는 서신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물론 직접 편지를 보낼 수는 없었다. 냉전 시대에 영국의 대학원생과 소련의 물리학자가 서신을 주고받는 것은 양쪽 정보기관 모두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학술지의 투고 원고에 암호를 심는 방식을 사용했다. 논문의 각주와 참고문헌 번호의 배열이 메시지가 되는 구조. 겉으로는 평범한 학술 교류이고, 읽을 줄 아는 눈에게만 말을 거는 편지.

나는 그의 편지를 해독할 때마다 묘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씨앗의 껍질을 벗기는 것 같았다.

겉면의 학술적 언어를 벗겨내면, 그 안에 사적인 문장들이 발아하듯 드러났다. 모스크바의 겨울에 대해. 실험실 창밖으로 보이는 자작나무에 대해. 소련의 감시 체계 아래에서 순수한 과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그의 문장은 늘 절제되어 있었지만, 절제 자체가 하나의 언어였다. 가지를 치면 칠수록 나무의 형태가 선명해지듯, 그가 삭제한 단어들의 윤곽이 오히려 그의 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편지의 빈도가 늘어날수록, 나는 기숙사 책상 앞에 앉아 해독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 집중된 시간이 되어가고 있음을 자각했다.

이것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이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았다. 뿌리가 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흙이 뿌리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발아가 시작된다. 나는 아직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편지에서인가,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광물에 대한 간접적 언급이 스쳐 지나갔다.

"극지에서 발견된 특정 시료에 대한 열역학 데이터를 검토 중이오. 기존 모델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이상치가 존재하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배어 나오는 긴장의 밀도가 평소와 달랐다. 무언가 위험한 것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의 언어였다.

한편, 나는 런던의 기숙사에서 혼자 다른 씨앗을 키우고 있었다.

펍에서 폴로이프스키가 던진 한 마디 — 시간 잠금 — 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내 노트북의 절반을 잠식하고 있었다. 역원 계산에 시간 파라미터를 삽입하는 암호화 구조. 특정 기간이 경과하기 전에는 수학적으로 해독이 불가능한 봉인.

나는 그것을 나무의 나이테에 비유했다. 나이테는 시간이 나무의 몸에 새긴 기록이다. 잘라 보기 전에는 읽을 수 없다.

내 알고리즘은 데이터의 나이테를 만드는 것이었다. 정보를 심고, 시간이라는 흙 속에 묻어두면, 정해진 해가 지나야만 비로소 발아하는 기록. 1년 뒤에 열리는 봉인, 10년 뒤에 열리는 봉인, 100년 뒤에 열리는 봉인.

수학적으로는 소인수 분해의 계산 복잡도를 이용한 것이었다. 현재의 계산 능력으로는 풀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 기술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해독 가능해지는 구조.

하지만 나는 그것을 수식이 아니라 생명의 리듬으로 이해했다. 씨앗에는 발아 시기가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봄이 아닌 겨울에는 아무리 물을 주어도 싹이 트지 않는다. 내 알고리즘도 같았다. 시간이 되기 전에는 아무리 강한 힘으로 깨뜨리려 해도 열리지 않는 껍질.

아직 이 기술이 어디에 쓰일지 몰랐다. 순수한 수학적 유희라고 생각했다. 흙 속의 씨앗이 자기가 어떤 나무가 될지 모르는 것처럼.

그 무렵, 낯선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대학 캠퍼스의 도서관 앞.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벤치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과학 연구 지원 재단의 관계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명함에는 재단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지만, 그 이름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내 암호학 연구에 관심이 있으며, 연구비를 지원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어떤 조건으로요?"

"특별한 조건은 없소. 다만 연구 결과물의 일부를 재단과 공유해 주시면 됩니다."

그의 말은 매끄러웠다. 너무 매끄러웠다.

나는 본능적으로 흙의 냄새를 맡는 식물처럼, 이 사람의 언어 아래에 깔린 것을 감지했다. 학술 지원은 껍데기였다. 이 재단이 원하는 것은 내 알고리즘, 정확히는 시간 잠금 기술이었다.

아직 논문으로 발표하지도 않은, 내 노트북 안에만 존재하는 아이디어를. 그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의 뉘앙스를 담아 자리를 떴다.

돌아서 걸으면서 등 뒤의 시선을 느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캠퍼스의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가 빗방울을 맞으며 잎사귀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 나무를 올려다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나무는 비를 피하지 않는다. 뿌리가 박힌 곳에서 견딘다. 나도 그래야 했다.

그날 밤,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서랍에서 새 공책을 꺼냈다. 가죽 표지에 아무런 표기도 없는, 빈 공책. 나는 첫 페이지를 펼치고 연필을 집어 들었다.

어떤 것들은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시간이 그것을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씨앗은 흙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심었다는 기록이 없으면 아무도 그 나무의 기원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기록은 증거가 된다.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옭아매는 뿌리가 된다.

나는 연필 끝을 종이에 대고 잠시 망설였다. 비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이윽고 적기 시작했다.

"오늘 만난 사람의 이름을 기록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록하면 증거가 되고,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나는 연필을 멈추고 방금 쓴 문장을 읽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이 얇은 공책이, 28년 후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아 누군가의 손에 닿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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