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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거리 일러스트

만든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거리

복제인간의 뇌파는 아름다웠다.

이 표현이 과학자에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뇌파에는 미학적 가치가 없다. 전극이 측정한 전위차의 시계열 데이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BSI 프로토타입의 모니터에 출력되는 파형을 처음 본 순간, 나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꼈고, 느꼈다는 사실 자체를 경멸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추방당한 이후 처음으로, 데이터 앞에서 심장이 빨라졌다.

2103년. COSMOS 연구단지 지하 5층.

1년 전 먼지를 뒤집어쓴 상태로 이 실험실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반세기 동안 폐쇄된 공간에서 풍기는 죽은 공기의 냄새가 폐를 찔렀다.

지금은 다르다. 낡은 장비를 철거하고, 내가 파리에서 가져온 BSI 원형 설계를 기반으로 새 콘솔을 배치했다. 에스프레소 머신도 들여놓았다. 하루 다섯 잔의 카페인 없이는 전두엽이 기동하지 않는 체질이다. 파리 시절의 유산.

BSI 기초 연구의 첫 단계는 뇌파 매핑이다.

시뮬레이터에 인간의 의식을 접속시키려면, 먼저 인간의 뇌가 외부 감각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을 정밀하게 이해해야 한다. 시각, 청각, 체성감각. 각 양상(modality)의 신경 응답 패턴을 측정하고, BSI 프로토콜이 그 패턴을 시뮬레이터의 데이터 스트림으로 변환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한다.

피험자가 필요했다.

케이트는 첫 회의에서 정확히 세 단어로 답했다.

"복제인간을 써."

나는 반문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추방당한 이유가 인체 실험 윤리 위반이었다. 이곳에서는 그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 정확히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된다.

복제인간은 COSMOS의 내부 규정상 '연구 자원'으로 분류된다. 동의서가 필요 없다. IRB 승인이 필요 없다. 파리의 윤리위원회가 내 앞에 세웠던 모든 벽이 여기에는 없다.

벽이 없다는 것은 자유인가, 아니면 낭떠러지인가.

이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 지금은.

첫 번째 피험자가 실험실에 들어온 것은 화요일이었다.

코드명 CL-004. 남성. 추정 연령 20대 중반. 케이트의 인사부서가 배치한 인원이었다. 그는 BSI 헤드셋을 장착한 채 의자에 앉았고, 나는 모니터 뒤에서 그의 뇌파를 측정했다.

데이터는 깨끗했다. 비정상적으로 깨끗했다.

자연인간의 뇌파에는 항상 잡음이 있다. 환경 노이즈, 근전도 간섭, 안구 운동 아티팩트. 이 잡음을 필터링하는 것이 뇌파 분석의 절반이다.

하지만 CL-004의 뇌파에는 잡음이 거의 없었다. 신호 대 잡음비가 자연인간 평균의 세 배. 마치 누군가가 설계 단계에서 신경 회로의 노이즈를 최소화해놓은 것처럼.

두 번째 피험자. CL-009. 여성. 같은 패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패턴은 반복되었다. 개인차는 있었지만, 자연인간 대비 BSI 신호 적합도가 평균 23% 높다는 결론은 다섯 번째 피험자의 데이터가 입력되는 순간 통계적으로 유의해졌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23%.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 복제인간의 뇌는 BSI에 더 적합하다. 더 깨끗한 신호. 더 높은 변환 효율. 더 안정적인 접속.

자연인간으로 BSI를 구동하면 잡음 속에서 신호를 걸러내는 데 연산의 절반을 낭비해야 하지만, 복제인간의 뇌는 처음부터 잡음이 적다. BSI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우연인가. 아니면 설계인가.

진유미. COSMOS의 창립자. 복제인간 기술의 설계자. 그녀가 합성 유전자 배열에 신경 회로의 노이즈 특성까지 프로그래밍했을 가능성은 — 배제할 수 없었다.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23%의 차이가 우연이 아니라 의도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의도든 우연이든, 데이터는 데이터다. 나는 결과를 기록했다.

1400. COSMOS 내부 윤리 검토 회의실.

이 연구단지에도 윤리위원회가 존재한다. 케이트의 통제 하에 운영되는 형식적 기구. 하지만 형식에도 힘은 있다. 회의록이 남고, 서명이 쌓이고, 서명 위에 책임이 축적된다.

오늘의 안건: BSI 기초 실험 확대 및 피험자 범위 승인.

발표자: 나.

"현 단계에서 BSI 프로토타입은 뇌파 매핑 전용입니다. 시뮬레이터와의 실제 접속은 아직 수년의 개발이 남아 있습니다. 기초 실험의 피험자 범위를 현재 5명에서 20명으로 확대하여, 충분한 표본 크기의 신경 매핑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것을 요청합니다."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회의실에는 다섯 명의 위원이 앉아 있었다. 네 명은 케이트가 배치한 인원. 한 명만이 — COSMOS 설립 초기부터 남아 있는 노년의 생명윤리학자 — 독립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투르에르 박사. 피험자 20명은 전원 복제인간입니까?"

노인이 물었다.

"현 단계에서는 그렇습니다."

"자연인간 피험자와의 비교 실험은 계획에 없습니까?"

나는 0.5초 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 0.5초 안에 파리의 기억이 스쳤다. 다른 회의실, 다른 노인, 같은 구조의 질문.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터에 강제로 연결하는 행위는 비가역적인 뇌 손상의 위험을 동반합니다."

4년 전에는 그 질문이 나를 파괴했다. 지금은 — 방어할 수 있다. 이곳은 파리가 아니다.

"기초 매핑 단계에서는 비침습적 뇌파 측정만 수행하므로, 피험자에 대한 물리적 위험은 없습니다. 자연인간 비교 실험은 매핑 데이터베이스 구축 이후 단계에서 검토할 예정입니다."

정확한 답변이었다.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복제인간의 BSI 적합도가 23% 높다는 데이터. 이것을 이 자리에서 발표하면, 위원회의 질문은 "왜 복제인간만 쓰는가"에서 "복제인간을 우선적으로 써야 하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전환은 — 복제인간을 BSI의 최적 피험자로 공식 지정하는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직은 그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노인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회의는 승인으로 마무리되었다.

회의실을 나서며 복도를 걸었다.

에스프레소가 당겼다. 자동판매기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동전을 넣는 사이, 복도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지나갔다. COSMOS의 일상적 풍경.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 시설 관리 직원들, 그리고 —

복제인간들.

연구 보조 인력으로 분류된 존재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의료동에서 식당으로 향하는 동선.

그들의 걸음은 일정하고, 자세는 바르고, 표정은 — 없지 않았다. 한 여성이 옆의 동료에게 무언가를 말하며 웃었다. 웃음이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상체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분명한 웃음.

나는 자판기에서 떨어진 에스프레소 컵을 집어 들며 그 장면을 관찰했다.

오늘 아침 CL-004의 뇌파를 측정할 때, 나는 그를 '피험자'로 보았다. 코드명과 데이터 포인트. 모니터 뒤에서 관찰하는 대상. 프로토콜이 규정하는 거리를 유지한 채.

하지만 지금 복도에서 웃고 있는 저 여성은 — 코드명이 아니라 얼굴이다. 뇌파 패턴이 아니라 웃음이다.

이 거리의 차이를 나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복도를 걸었다.

카페인이 전두엽에 도달하기까지 12분. 그 사이에 불필요한 사고를 차단해야 했다. 복도에서 본 것은 복제인간의 사회적 행동 양식이다. 행동학적 관찰에 불과하다. 감정을 투사하지 않는다. 과학자는 대상에 감정을 투사하는 순간 관찰자의 자격을 잃는다.

파리에서 나를 추방한 것은 윤리위원회가 아니었다. 그들은 명분이었을 뿐이다.

진짜 원인은 내가 BSI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겠다는 목표를, 목적이 아니라 집착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었다. 경계를 넘은 것이다. 기술의 경계가 아니라 관찰자의 경계를.

여기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다. 이곳은 다르다. 파리에서는 벽이 나를 막았다. 여기서는 벽이 없다. 벽이 없으면 넘을 것도 없다. 넘을 것이 없으면 추방당할 이유도 없다.

이 논리가 합리화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채택했다.

2247. 연구실.

스키막스에게서 받은 데이터를 다시 열었다. 몇 달 전 그가 비공식으로 전달한 시뮬레이터 No.ES 207-341의 외부 출력 분석 결과. 자기조직화 수준의 복잡도. 기후 모델로 설명 불가능한 패턴.

스키막스와 직접 만나 데이터를 확인한 뒤, 나는 하나의 확신에 도달해 있었다. 이 시뮬레이터 안에는 기후가 아닌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면, BSI를 완성해야 한다.

원격 스캔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의식이 직접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BSI의 접속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 가장 효율적인 피험자 데이터가 필요하다.

나는 오늘의 실험 결과 파일을 열었다. 복제인간 신경 호환성 데이터. 23%의 적합도 차이.

이 데이터를 케이트에게 보고하면 무엇이 일어나는가.

시나리오를 연산했다.

케이트는 효율을 추구한다. 23%의 차이는 BSI 개발 일정을 유의미하게 단축시킨다. 그녀는 복제인간을 BSI의 공식 피험자 풀로 지정할 것이다. 기초 매핑뿐 아니라, 향후 접속 실험에서도. 더 많은 복제인간이 실험실 의자에 앉게 될 것이다.

그들의 뇌파가 내 모니터에 숫자로 변환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하는가.

질문을 다시 해체했다. '원한다'는 주관적 표현이다. 과학적으로 재구성하면: 이 데이터를 보고하는 것이 BSI 연구의 진전에 기여하는가? 예. 보고하지 않는 것이 연구를 지연시키는가? 예.

보고함으로써 발생하는 윤리적 비용은? — 이 항목에서 연산이 멈추었다.

윤리적 비용. 복제인간을 최적 피험자로 지정하는 것의 윤리적 비용.

파리의 윤리위원회라면 이 질문에 3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쓸 것이다. 여기에는 그런 위원회가 없다. 있어도 케이트의 통제 하에 있다. 비용을 산정할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가 없으면 비용도 없는가.

나는 에스프레소의 마지막 한 모금을 삼켰다. 쓴맛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보고서를 작성했다.

[ BSI 기초 실험 중간 보고 ]

[ 복제인간 피험자의 BSI 신호 적합도가 자연인간 대비 평균 23% 높음 ]

[ 신호 대 잡음비: 자연인간 평균 12.4dB / 복제인간 평균 15.3dB ]

[ 제안: BSI 개발 효율화를 위해 1차 피험자 풀을 복제인간 중심으로 재구성 ]

네 줄. 건조한 숫자와 건조한 제안.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데이터 보고서.

전송 버튼 위에 커서가 올라갔다.

복도에서 본 여성의 웃음이 떠올랐다. 코드명이 아닌 얼굴. 데이터가 아닌 웃음. 그녀도 언젠가 이 실험실 의자에 앉게 되는 것인가. 내 보고서가 그녀를 이 의자로 데려오는 것인가.

만약 — 내가 이 보고서를 제출하고, 케이트가 복제인간 피험자 풀을 확대하고, 그 풀에서 선발된 누군가가 BSI 실험 중에 뇌 손상을 입는다면.

파리 윤리위원회가 경고했던 "비가역적 뇌 손상"이 이곳에서 현실이 된다면. 그 책임은 BSI를 설계한 나에게 있는가, 복제인간을 '연구 자원'으로 분류한 시스템에 있는가, 아니면 이 보고서를 전송한 내 손가락에 있는가.

질문을 중단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라 윤리학이다. 윤리학은 파리에 두고 왔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 보고서 전송 완료 ]

모니터의 푸른 빛이 내 얼굴 위에 차갑게 내려앉았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냉각 팬의 백색소음이 고막을 채웠다.

방금 내가 한 것은 — 보고서의 전송이다. 과학자의 의무를 이행한 것이다. 데이터를 발견하고, 기록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프로토콜을 따랐다. 어떤 규칙도 위반하지 않았다. 어떤 경계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왜 — 이 방의 공기가 파리의 윤리위원회 앞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인가.

나는 모니터를 끄지 않았다. 어둠 속에 앉을 용기가 없었다.

형광등의 차가운 빛 아래에서, 방금 전송한 보고서의 네 줄이 모니터 구석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23%라는 숫자. 건조하고 정확한 숫자.

그 숫자가 앞으로 이 연구소 안에서 어떤 운명을 불러올지, 누구를 이 의자 위에 앉히게 될지, 나는 알지 못했다.

만든 것과 만들어진 것 사이의 거리. BSI와 뇌 사이의 거리. 과학자와 피험자 사이의 거리.

이 모든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하지만 거리를 측정한다는 것은 — 그 거리를 좁히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측정하지 않으면 좁힐 수도 없고, 좁히지 않으면 접속할 수도 없다.

접속. 그것이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뇌와 기계 사이의 접속. 만든 자와 만들어진 세계 사이의 접속.

그 접속의 대가가 무엇인지는 — 아직 청구서가 도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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