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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S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일러스트

COSMOS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그 답을 향한 지독한 추적의 기원은 36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아직 에코스의 존재도, BSI의 끔찍한 위험성도 알지 못했던 2098년의 어느 새벽.

텍사스 COSMOS 연구단지 지하 4층, 데이터 분석실.

서버 랙 사이로 대형 냉각팬이 토해내는 균일한 백색소음만이 삭막한 공간의 유일한 생동감이었다. 창문조차 허락되지 않은 이 밀폐된 벙커의 시간은 오직 내 모니터 우측 하단에 점멸하는 디지털시계의 숫자로만 증명되었다.

[ AM 03:14 ]

세상 대부분의 유기체들이 깊은 수면에 빠져 있을 시간.

하지만 내게는 그저 연산이 지속되는 또 다른 1초에 불과했다.

나는 산화되어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옆으로 밀어내며 건조한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눈앞의 메인 모니터에는 수억 개의 데이터 패킷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단순한 코드가 아니었다. 한 명의 인간이 태어나 평생을 바쳐 보고, 듣고, 느끼고, 사고했던 뇌의 전기적 신호들을 무자비하게 디지털로 강제 변환시켜 놓은 잔해물이었다.

데이터의 원소유자는 '로버트'라는 이름의 사내였다.

그는 2년 전인 2096년, 이곳 COSMOS의 실권자 케이트의 통제 아래 진행된 인간 기억의 데이터화 실험체로 쓰이다가 수술대 위에서 사망했다.

살아 숨 쉬던 신경망 전체를 억지로 스캔하고 추출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발생한 끔찍한 과부하를, 그의 연약한 생물학적 육체는 끝내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의 사인과 죽음의 과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모니터를 응시하는 내 안에서 윤리적 분노나 슬픔 따위의 감정은 단 한 방울도 일지 않았다.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이토록 무감각하게 코드를 읽어 내릴 수 있는 스스로가 이따금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파괴된 뇌는 오직 서버의 용량만을 갉아먹는 거대한 더미(Dummy) 데이터로 남을 뿐이다.

수석 분석원으로서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임무는 명확했다.

이 지저분하고 파편화된 한 인간의 기억 잔해 속에서 연구소가 필요로 하는 '유의미한 정보'만을 분류해 내고, 나머지는 폐기하는 것. 지극히 단조롭고 기계적인 작업이었다.

마우스 휠을 굴리며 로버트의 시각 피질에서 추출된 이미지 데이터를 넘겼다.

흐릿하게 일그러진 도시의 풍경.

누군가의 낯선 뒷모습.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조각들.

감정과 호르몬, 무의식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인간의 기억 데이터는 알고리즘으로 분류하기 까다로울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쓰레기 데이터가 8할이군."

건조한 혼잣말을 뱉어내며 일괄 삭제 매크로를 실행하려던 그때였다.

수만 줄의 코드가 규칙적으로 흘러가던 로그 화면 중앙에, 붉은색 경고등이 날카롭게 점멸했다.

[ 이상 감지: 기억 패턴과 불일치하는 이질적 데이터 패킷 발견. ]

나는 타이핑하던 손가락을 멈추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 이상 반응이 발생한 섹터를 분리하여 최고 수준의 디코딩 알고리즘을 물리도록 명령어를 입력했다.

검은 터미널 창 위로 해독된 코드가 쏟아졌다.

그것은 기억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감정이나 감각의 잔재도 아니었다.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기계적인,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해 놓은 완벽한 '색인 구조(Index)'였다.

파일의 숨겨진 경로, 복잡하게 이중 삼중으로 암호화된 키워드,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단편적인 메타데이터들이 모니터를 가득 메웠다.

이건 로버트가 살면서 직접 경험한 기억이 아니다.

그의 뇌가 살아생전 어느 시점에, 극비로 분류된 특정 데이터베이스에 깊숙이 접근했던 '로그 기록'이다. 그 기록이 뇌의 무의식 영역에 화석처럼 각인되어 남아버린 것이다.

나는 건조해진 눈동자를 굴리며 헥사(Hexa) 코드로 얽혀 있는 키워드 배열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타건음만이 지하 벙커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이윽고 화면 중앙.

이 파편화된 모든 색인을 하나로 묶고 있는 단일한 상위 디렉터리 명칭이 떠올랐다.

[ ByM ]

ByM. 단순한 알파벳 세 글자의 조합.

하지만 디코딩이 완료되며 그 아래로 줄줄이 딸려 나온 미완의 색인 목록들은 결코 가벼운 것들이 아니었다.

[ 연관 색인 : 극지방 연구소 좌표 / 국방성 비상전력 시스템 / 엘리스 인체 관련 봉인 알고리즘 ]

분석가로서의 서늘한 직감이 경추를 타고 뇌리로 치솟았다.

이것은 평범한 프로젝트명이 아니다. 단순한 부서의 이름도 아니다.

철저하게 지워지고, 은폐되고, 역사의 그늘 속에 파묻혀 온 거대한 무언가의 흔적이다.

그저 평범한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에 불과했던 로버트가 대체 무슨 수로 이런 압도적인 규모의 정보에 접근했던 것일까. 그는 살아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숨기려다 죽음을 맞이했는가.

키보드 위에 올려둔 내 손끝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나는 타건을 멈추고, 새까만 모니터 화면에 희미하게 반사된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감정이 거세된 듯 창백하고 무표정한 여자의 얼굴.

로버트는 죽었다.

한때 따뜻한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었던 인간은 이제 내 모니터 속의 파편화된 데이터 쪼가리로 전락했다.

나는 로버트의 불운한 죽음보다, 저 복잡하게 얽힌 차가운 데이터의 배열에 더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동족의 죽음보다 0과 1로 이루어진 시스템의 언어가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 기묘한 감각.

내 기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과거의 기억이, 왜 내게는 수십 년 치 통째로 비어 있는 것일까.

"……쓸데없는 감상이군."

나는 낮게 중얼거리며 흉곽 안쪽에서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기묘한 상념을 강제로 종료시켰다.

나는 분석가다. 데이터를 감정으로 대하는 순간 판단은 흐려진다. 무의미한 감정의 균열을 냉혹하게 억누르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고정했다.

로버트의 뇌가 집요하게 가리키고 있는 'ByM' 색인의 목적지를 향해 역추적 스크립트를 가동했다.

수많은 가상 IP와 방화벽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지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데이터의 종착지는 외부의 다른 기관이 아니었다.

텍사스 연구단지의 심장부.

COSMOS 내부 시스템에서 가장 철저하게 격리된 '격리 스토리지'였다.

나는 관리자 권한을 우회하여 스토리지의 가장 바깥쪽 외곽 표면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굳게 암호화된 채 숨죽이고 있는 47개의 미완 파일이 웅크리고 있었다.

[ 대상 파일 : 47 EA ]

[ 접근 권한 : 거부됨 (Access Denied) ]

[ 파일 최초 생성일 : 2028년 ]

[ 마지막 이동 기록 : 2086년 (접근자: Robert) ]

모니터의 시퍼런 불빛이 내 건조한 눈동자에 반사되었다.

2028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70년 전이다.

COSMOS 프로젝트가 지금처럼 민간에 사유화된 거대한 권력으로 군림하기 한참 전. 인류가 기후 위기와 전염병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대에 만들어진 데이터가, 왜 이 최첨단 연구소의 심장부에 썩어가듯 잠들어 있는 것인가.

그리고 로버트는 12년 전인 2086년에 대체 무슨 이유로 이 파일들을 이곳으로 은밀히 이관해 두었을까.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데이터 분석 총괄인 내게는, 지금 당장 시스템의 보안 로그를 세탁하고 저 47개 파일의 낡은 암호를 강제로 뜯어낼 수 있는 권한과 해킹 기술이 있었다.

마우스 클릭 한 번.

백도어 명령어 몇 줄만 입력하면, 70년 동안 완벽하게 은폐되어 온 과거의 파편들을 내 눈앞에 낱낱이 끌어다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엔터 키 위에서 허공을 맴돌다 멈췄다.

서늘한 생존 본능이었다.

진실은 때로 알지 못하는 편이 목숨을 연장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로버트는 이 47개의 데이터에 접근했고, 결국 케이트의 통제 아래 뇌가 스캔당하며 처참하게 타버리는 죽음을 맞이했다.

내가 지금 섣불리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순간.

나 역시 케이트의 눈 밖에 나 어떤 명목으로든 폐기될지 모를 일이었다.

이건 한 번에 열면 안 된다.

내 뒤를 받쳐줄 철저한 준비와 생명줄 같은 안전장치가 확보될 때까지, 본능이 이 파일들을 덮어두라고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오늘은, 멈춘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열어두었던 모든 터미널 창과 해독 알고리즘을 종료했다.

ByM이라는 이름. 그리고 47개의 미완 파일 경로.

오직 그것만을 내 인지 영역 가장 깊숙한 은닉 섹터에 저장한 뒤, 시스템에 남은 나의 접근 로그를 완벽하게 삭제했다.

메인 모니터의 전원을 끄자, 분석실은 다시 완벽한 어둠과 대형 냉각팬의 백색소음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뻐근하게 굳은 목을 돌리며 복도로 나섰다.

보안등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희미하게 켜져 있는 삭막하고 긴 지하 복도는, 마치 거대한 강철 무덤처럼 기괴하게 고요했다.

발소리를 죽인 채 복도를 걸어가던 나는, 중앙 코너를 돌기 전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멀리, 복도 끝에 자리한 연구소 총괄 책임자 유리모프의 사무실.

그곳의 굳게 닫힌 블라인드 틈새로, 환한 형광등 불빛이 칼날처럼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멈춰 섰다.

새벽 4시를 향해 가는 이 시간. 철저하게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던 그가 왜 아직까지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불을 켜두고 있는 것인가.

단순히 오늘따라 처리할 업무가 많아서일까?

아니면, 저 사무실 너머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 은밀한 결정이 내려지고 있는 걸까.

나는 섣부른 의심을 밀어내며 서늘해진 시선을 조용히 거두었다.

섣불리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저 타이밍이 묘하게 맞물렸을 뿐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 남은 찜찜한 잔상마저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다.

안전해 마지않는 세계 최고의 기후 연구소. 이 거대한 온실의 바닥에는, 어쩌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깊고 어두운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해소되지 않은 반신반의의 의문들이 내 기계적인 사고 회로 속을 어지럽게 맴돌기 시작했다. 돌이킬 수 없는 톱니바퀴가 아주 미세한 소리를 내며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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