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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일러스트

5화

왕궁의 가장 깊은 곳.

두꺼운 돌벽으로 둘러싸인 왕의 서재에는 촛불 하나만이 희미하게 타고 있었다.

늙은 왕 레오르 4세는 창가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오래된 검이 들려 있었다.

젊은 시절 함께 싸웠던 검이었다.

하지만 그 검도 이제는 녹이 슬어 있었다.

왕은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내려놓았다.

“세월이란…”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때 문이 두드려졌다.

“들어와라.”

문이 열리고 마티온이 들어왔다.

점술가는 조용히 왕 앞에 섰다.

왕이 물었다.

“암살자들이 갔나.”

“예, 폐하.”

마티온이 말했다.

“두 명이었습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렌의 짓이겠지.”

마티온은 잠시 침묵했다.

“높은 확률로 그렇습니다.”

왕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왕궁의 탑들이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는군.”

마티온이 물었다.

“폐하께서는 왜 그 청년을 선택하셨습니까.”

왕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티온.”

“예.”

“내가 처음 왕이 되었을 때를 기억하는가.”

마티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폐하는 대륙 최고의 기사였습니다.”

왕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때 나는 세상이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왕은 천천히 걸어갔다.

책장이 가득한 벽 앞에서 멈췄다.

“적이 나타나면 검을 들고 싸우면 된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왕이 된 뒤 알게 되었지.”

마티온이 조용히 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왕이 말했다.

“왕국을 망치는 것은 적이 아니라 귀족들이라는 것을.”

마티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왕은 책장 위에 놓인 지도를 바라보았다.

아르케시아 왕국의 지도였다.

“내가 죽으면 발렌이 왕위를 차지할 것이다.”

왕이 말했다.

“루드릭은 군대를 장악하고 있다.”

“세르반은 교회를 움직인다.”

마티온이 조용히 말했다.

“왕국은 셋으로 갈라질 것입니다.”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귀족이 아닌 왕이 필요하다.”

마티온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광대 말입니까.”

왕이 말했다.

“광대라서 좋다.”

마티온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왕은 말했다.

“귀족은 귀족을 위해 통치한다.”

“기사는 명예를 위해 싸운다.”

“성직자는 신을 위해 권력을 쥔다.”

왕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하지만 광대는 아무 것도 없다.”

마티온이 물었다.

“그래서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마티온이 기다렸다.

왕은 조용히 말했다.

“그 녹슨 칼.”

마티온이 눈을 좁혔다.

“검 말입니까.”

왕이 말했다.

“그 칼은 버려진 칼이다.”

“그 칼로 싸우는 사람은 두 종류뿐이다.”

마티온이 물었다.

“어떤 사람입니까.”

왕이 말했다.

“바보… 아니면 진짜 검객.”

잠시 침묵이 흘렀다.

왕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평생 검을 들고 살았다.”

“그래서 안다.”

마티온이 조용히 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왕이 말했다.

“그 청년은…”

잠시 멈췄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괴물이다.”

마티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멀리서 갑자기 큰 종소리가 울렸다.

쿵—

왕궁 전체에 울리는 경보였다.

마티온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폐하…”

왕이 말했다.

“무슨 일인가.”

마티온의 얼굴이 굳었다.

“군대입니다.”

“발렌의 군대가 움직였습니다.”

왕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결국 시작됐군.”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티온.”

“예, 폐하.”

왕이 말했다.

“카엘을 불러라.”

마티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은 마지막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왕궁 성벽 너머로 횃불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귀족들의 군대였다.

레오르 4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왕이 태어날 시간이다.”

그리고 그 밤.

아르케시아 왕국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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