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249화. 보호자가 도착했다와 자기 완결적 분실물
248화. 보호자가 도착했다
“보호자가 도착했군.”
병동 관리자, 404-원장의 목소리는 잘 관리된 복사기가 평면적인 종이를 뱉어낼 때 나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그가 결재판을 내리는 순간, 복도 끝에서부터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병실 문턱을 넘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빗소리가 멈춘 자리를 채운 건 기분 나쁜 습기였다. 방금 전까지 [소아병동 404호]였던 이곳은 내가 붙인 라벨 한 장 덕분에 [분실물 보관소]로 업종 변경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선반 위에는 주인 잃은 유품들이 먼지를 털고 일어나 제각각의 사연을 웅성거리고 있었다.
철벅, 철벅.
복도 너머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젖어 있었다. 비에 젖은 게 아니라, 아주 오래된 수조 바닥을 걷는 듯한 축축함이다.
“……오고 있어요.”
가온이 내 코트 자락을 꽉 쥐었다. 녀석의 콧날이 가늘게 떨렸다.
“형, 이상한 냄새가 나. 피 냄새가 아냐. 이건…… 아주 오래된 병원 식권 냄새야. 다 젖어서 글자가 번진 동전이랑, 낡은 우비 냄새도 나. 그리고…….”
가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 막 펜을 들어서, 서명하기 직전의 손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 있어.”
서명하기 직전의 손이라니. 가온의 후각은 가끔 시적이다 못해 하드보일드해질 때가 있다. 나는 손에 쥔 파란 운동화 끈을 고쳐 잡았다. 끈 끝부분에 매달린 [윤서하 보호자 서명 대기]라는 글자가 마치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제 보호자가 여기 있을 리 없습니다.”
윤서하가 차갑게 뱉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단호했지만,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병원 팔찌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환자 번호 00-1503]. 나와 백연, 그리고 그녀를 하나로 묶어버린 그 저주받은 번호가 붉게 점멸했다.
“제 가족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서하 씨, 여기선 ‘상식’이라는 놈이 유급 휴가를 떠난 지 오래됐다는 걸 잊지 마세요.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당신의 인생에 도장을 찍으러 올 놈은 널렸으니까.”
나는 농담조로 대꾸하며 입술을 축였다. 하지만 농담은 방패일 뿐, 내 안의 경보음은 이미 최대 출력으로 울리고 있었다.
백연은 하얀 우산을 꼭 쥔 채 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의 하얀 환자복이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에 잠겨 회색으로 변해갔다.
“보호자는…… 이름을 불러서 데려가요.”
백연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름을 불리면 안 돼. 대답해도 안 돼. 그러면 정말로 그 사람의 ‘것’이 되어버리니까.”
아이다운 경고였지만, 이 병원의 시스템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정답은 없었다.
그때였다. 404-원장의 곁을 지키던 검은 우산의 껍데기가 움찔거렸다. 그는 마치 불청객을 마주한 집주인처럼, 혹은 자기 구역을 침범당한 맹수처럼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직 네 차례가 아니다.”
검은 우산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펼쳐졌다. 그가 보호자를 반기지 않는다? 이건 예상 밖의 전개였다. 검은 우산과 저 보호자가 한패가 아니라면, 이 병동의 권력 구조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꼬여 있다는 뜻이다.
복도의 그림자가 드디어 병실 문앞에 멈춰 섰다.
형체는 흐릿했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이목구비는 안개에 가려진 듯 번져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내 귀에 묘한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윤서하 보호자분, 서명해 주세요.
그것은 내 기억 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고.
환자분, 퇴원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
윤서하의 어린 시절, 차가운 병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안내음과도 닮아 있었다.
얘야, 이제 가야지.
백연이 가장 두려워하던, 누군가를 데려가던 그 서늘한 음색까지도.
“인수…… 인수가 시작됩니다.”
M-17의 형체가 거의 투명해진 채 내 어깨 위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녀석의 몸 표면에 [데이터 손실 위험: 보호자 동의 필요]라는 팝업창이 수십 개나 떠올랐다.
“저 보호자 서명란이 채워지면, 세 분의 신분은 ‘공동 운명체’에서 ‘처분 대기 물품’으로 전환됩니다! 제발, 저놈한테 펜을 주지 마세요! 차라리 야근 수당을 포기하겠다고 하세요!”
“난 이미 야근 중이라 포기할 수당도 없어, 이 깡통아.”
나는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시선을 내 손등에 고정했다.
찌릿, 하는 통증과 함께 파란 운동화 끈이 뜨거워졌다. 끈 위에 적혀 있던 [윤서하 보호자 서명 대기]라는 글자 옆으로 새로운 문구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잉크가 번지듯, 아니, 핏줄이 돋아나듯 기괴한 서체였다.
[보호 대상: 윤서하]
[보관자: 강도윤]
[원소유주: 미기록]
“내가 보관자라고?”
분실물 보관소로 지정된 병실 안에 있어서 그런가. 시스템은 나를 이 병실의 책임자이자, 윤서하라는 ‘분실물’의 임시 관리자로 정의하고 있었다.
그때, 그림자가 한 발자국 더 안으로 들어왔다.
철벅.
그의 발 아래에서 검은 물이 배어 나왔다. 소독약 냄새와 눅눅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그림자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끝에는 낡은 만년필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그가 서명하려는 곳은 종이가 아니었다.
내가 들고 있는, 그 파란 운동화 끈이었다.
“안 돼.”
나는 본능적으로 운동화 끈을 낚아채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끈은 내 손가락을 파고들며 팽팽하게 당겨졌다. 마치 누군가 반대편에서 이 끈을 쥐고 끌어당기는 것처럼.
그 순간, [잔향청취]가 내 고막을 찢고 들어왔다.
……저기요.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작고 여린, 하지만 지독하게 차분한 윤서하의 목소리.
제 이름 말고, 저 애 이름을 먼저 적어 주세요. 걔는 보호자가 없거든요. 제 서명란은 비워두셔도 돼요.
그건 15년 전의 기록일까, 아니면 이 병원이 만들어낸 정교한 가짜일까.
잔향 속에서 어린 서하는 자신의 권리를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이름이 들리려는 찰나, 404-원장이 결재판을 가볍게 두드렸다.
탁, 탁.
“지연된 심사를 재개한다. 보호자의 확인이 끝나는 대로, 분실물은 원소유주에게 귀속된다.”
“잠깐, 누가 원소유주라는 거야?”
내 물음에 답한 건 원장이 아니었다.
내 손목의 팔찌가 비정상적으로 조여들었다. 살점이 파고들고 뼈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원장의 결재판을 노려보았다. 그곳에 새로운 줄이 생성되고 있었다.
[보호자 명: 강도윤]
내 이름이었다.
하지만 기뻐할 틈은 없었다. 그 이름 뒤에 붙은 괄호 속의 글자가 내 사고를 마비시켰다.
[보호자 명: 강도윤 (미래)]
“……뭐?”
그림자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안개 같던 얼굴이 서서히 걷히며 드러난 것은,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늙고, 조금 더 지친, 그리고 결정적으로 왼쪽 눈이 짓눌려 사라진 ‘나’의 얼굴이었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호하러 왔다고?
아니, 이건 보호가 아니다.
그림자가 들고 있던 만년필이 파란 운동화 끈에 닿았다. 서명란에 잉크가 닿는 순간, 내 몸의 감각이 빠르게 휘발되기 시작했다.
“이봐, 미래의 나 씨. 당신 서명란에 내 이름 적는 거, 본인 동의는 얻고 하는 거야?”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보호 대상: 강도윤]
[보호자: 강도윤]
결재판의 문구가 바뀌었다.
그것은 완벽한 폐쇄 회로였다. 내가 나를 보호하고, 내가 나를 인수한다. 이 병원 시스템 안에서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보관하고 처리하는, 영원히 퇴원할 수 없는 ‘자기 완결적 분실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윤 씨?”
윤서하의 떨리는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림자가, 아니 ‘미래의 나’라고 불리는 괴물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수만 장의 서류가 동시에 바스라지는 소리와 같았다.
“서명 완료했다. 이제 우리는…… 집에 갈 수 없어.”
그가 내민 결재판의 마지막 줄에는, 내 이름 옆에 ‘폐기 예정’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된 순간, 나는 내 죽음의 보증인이 되었다.
전신을 조여오는 병원 팔찌의 서늘한 감각과 함께, 404호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제 이곳은 분실물 보관소가 아니라, 나라는 이름의 무덤이었다.
249화. 자기 완결적 분실물
문이 닫혔다.
그것은 단순히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관 뚜껑이 덮이는 소리였고, 세상의 나머지 절반이 우리를 포기했다는 선고였다. 404호 병실 안은 순식간에 분실물 보관소의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차가운 무덤으로 변해갔다.
“윽…….”
손목을 조여오는 감각에 신음이 터졌다. 병원 팔찌였다. 평범한 플라스틱 띠여야 할 그것이 강철 올가미처럼 내 살을 파고들었다. 피부가 짓눌리고 혈관이 박동을 멈추려 아우성쳤다.
눈앞에는 ‘그것’이 서 있었다.
나와 닮았으나 내가 아닌 것. 혹은, 내가 될지도 모르는 것.
왼쪽 눈이 짓눌려 형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된 채, 주름진 얼굴에는 지독한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 지금의 나보다 최소한 이십 년은 더 굴러먹은 듯한 몰골. 미래의 나라고? 아니, 시스템이 내 절망을 긁어모아 만든 껍데기일 가능성이 컸다.
“와, 진짜…….”
나는 짓눌린 팔목을 감싸 쥐며 헛웃음을 뱉었다.
“내가 저렇게 늙으면 적어도 머리숱은 사수하고 싶었는데. 미래의 나 치고는 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
농담은 입술 밖으로 나가자마자 얼어붙었다. 공포를 가리기 위한 방어기제였지만, 눈앞의 ‘보호자’가 풍기는 냄새가 너무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가온이 코를 킁킁거리며 내 뒤로 바짝 붙었다.
“강도윤, 조심해. 저 사람한테서…… 네 냄새가 나. 근데 그 위에 다른 게 섞여 있어.”
“뭐가?”
“돌려받지 못한 분실물 보관증 냄새. 그리고…….”
가온이 몸을 떨며 말을 이었다.
“아무도 찾아가지 않은 장례식장 우산꽂이 냄새가 나.”
비에 젖은 채 방치된 우산들이 썩어가는 퀴퀴하고 차가운 냄새. 그건 죽음보다 더 지독한 ‘잊힘’의 냄새였다.
미래의 강도윤, 혹은 보호자라고 불리는 그 껍데기가 파란 운동화 끈이 놓인 결재판 위로 펜을 멈췄다. 서명란에는 이미 ‘강도윤’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서명은 네가 한 거다.”
그가 입을 열었다. 쇳가루가 섞인 듯한, 고장 난 확성기 같은 목소리였다.
“무슨 소리야. 펜은 네가 잡았잖아.”
“너는 파란 운동화 끈을 쥐고 있었다. 이 보관소에서 물리적 실체를 점유한 자가 서명 절차의 보관자로 간주된다. 나는 그저…… 네 의지의 잔상일 뿐이지.”
미친 소리. 시스템이 나를 함정에 빠뜨린 방식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내 손에 들린 물건이 곧 내 권한이자 책임이 된다. 내가 윤서하의 운동화 끈을 꽉 붙잡고 있었기에, 시스템은 내가 이 인수를 승인한 것으로 처리해버린 것이다.
[보호 대상: 강도윤]
[보호자: 강도윤]
결재판의 글자가 붉게 점멸했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 자신을 인수한다. 논리적으로 완벽한 순환 같지만, 이건 결국 아무도 책임질 외부인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나의 보증인이 되는 순간, 내가 쓰러지면 나를 일으켜 세울 사람도 없어진다.
“아니요.”
그때, 서늘한 목소리가 공간을 갈랐다. 윤서하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환자 명찰을 꽉 쥐고 있었다. 명찰 끝부분이 휘어질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제 기록은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제가 누군가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문제라면, 당사자인 제 동의가 우선입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결재판으로 손을 뻗었다. [윤서하 보호자 서명 대기]라고 적힌 줄을 자신의 명찰로 가로막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강도윤 씨, 정신 차리세요. 당신이 제 보호자가 되겠다고 한 건, 저를 살리겠다는 뜻이었지 같이 죽자는 뜻이 아니었을 텐데요.”
존댓말 속에는 단단한 심지가 박혀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보호받는 대상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때 백연이 움직였다. 아이는 하얀 우산을 펼쳐 내 손목 위로 씌워주었다. 우산의 그림자가 내 팔찌를 덮자, 거짓말처럼 살을 파고들던 통증이 잦아들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가려줄게요.”
백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검은 우산이 모든 것을 ‘말소’하고 지워버리는 힘이라면, 이 하얀 우산은 잠시 현실의 법칙으로부터 ‘보류’시키는 힘을 가진 듯했다.
“아직은 아니야.”
검은 우산의 껍데기가 불쾌한 듯 그림자를 일렁였다.
“이름표를 내게 넘겨라, 꼬마야. 그럼 내가 외부 증언자가 되어주지. 내가 ‘이 물건들은 분실물이 아니다’라고 한마디만 하면 이 지옥 같은 절차는 멈출 거다.”
M-17의 형체가 지직거리며 부서져 내렸다. 글자 조각들이 허공에 흩뿌려지는 와중에도 녀석은 매뉴얼을 읊어댔다.
[경고…… 자기 완결적 분실물은…… 시스템 오류의 정점입니다. 외부 확인자가…… ‘분실물이 아니다’라고 증언하면…… 재심사 단계로 넘어갑니다. 단…… 공동 운명체에 포함되지 않은…… 외부인이어야 합니다…….]
조건은 명확했다. 하지만 우리 중 외부인은 없었다. 나, 윤서하, 백연은 이미 00-1503이라는 번호로 묶여 있었고, 가온과 M-17은 시스템상 ‘사람’으로 판정받지 못했다. 검은 우산은 믿을 수 없는 독사였다. 녀석에게 백연의 이름표를 넘겨주는 건 아이의 존재 자체를 팔아넘기는 짓이다.
시간이 없었다. 팔찌가 다시금 조여들기 시작했다. 하얀 우산의 힘도 한계가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실물 보관소로 변한 병실 곳곳에는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었다. 낡은 휠체어, 임자 없는 목발,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종이 쪼가리들.
그중 하나에 시선이 멈췄다. 흙먼지가 묻고 모서리가 탄, 오래된 병원 식권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구겨진 번호표와 낡은 우산꽂이용 번호판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식권을 쥐었다. [잔향청취]가 발작하듯 고막을 때렸다.
야, 강도윤. 정신 안 차려?
익숙한 목소리였다. 담배 냄새와 귀찮음이 섞인, 하지만 언제나 내 뒤를 지켜주던 그 투덜거림.
분실물은 말이야, 찾는 놈이 주인이지 잃어버린 놈이 주인이냐? 원래 세상사가 다 그래. 먼저 집는 놈이 임자라고.
문태식 팀장이었다.
그는 여기 없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식권은,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병원 매점에서 사 왔던, 혹은 그와 함께했던 시간의 파편이었다.
그는 공동 운명체가 아니다. 그는 이 시스템의 외부에 있는 사람이다. 비록 죽었을지라도, 그의 ‘물건’에 남은 잔향은 여전히 이 세계의 규칙을 뒤흔들 수 있는 외부자의 목소리를 품고 있었다.
“찾았다. 외부인.”
나는 피가 터진 손으로 결재판을 움켜쥐었다. 미래의 내 껍데기가 경악하며 내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나는 식권을 서명란 위에 짓눌렀다.
“내가 안 잃어버렸다고 하면 그만이야. 안 그래, 팀장님?”
식권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결재판의 붉은 점멸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기계적인 음성이 병실 전체를 울렸다.
[외부 증언자 등록을 시도합니다…….]
[식별 코드: 사망자 유품 - 관리 번호 M-T-S]
[증언 대상: 문태식 (전 가이아 지부 팀장)]
[확인 중…….]
404-원장의 결재판이 비명을 지르듯 진동했다. 미래의 강도윤이 형체를 잃고 무너져 내렸다. 그가 들고 있던 펜이 바닥에 떨어지며 잉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외부 증언 접수: “이것들은 분실물이 아니다. 내 부하 직원들이니까.”]
결재판 위에 새로운 문구가 새겨졌다.
[외부 증언자 등록 완료: 문태식]
[상태: 재심사 대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팔목을 조이던 팔찌의 압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안도할 틈은 없었다. 결재판의 다음 문구가 내 눈앞을 가득 메웠으니까.
[재심사를 위해 ‘원소유주’의 소환을 시작합니다.]
404호의 닫힌 문 너머에서, 누군가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규칙적이고, 아주 무거운 발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