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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247화. 바뀐 명찰과 진짜 관리자의 발소리 일러스트

246-247화. 바뀐 명찰과 진짜 관리자의 발소리

246화. 바뀐 명찰

코끝을 찌르는 건 지독한 소독약 냄새였다. 낡은 복도 끝에서 풍겨오는 비린내 섞인 빗물 냄새와 섞여, 폐부를 눅눅하게 짓눌렀다.

눈앞의 소녀, 백연의 환자복 가슴팍에 붙은 플라스틱 명찰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위에 박힌 글자는 분명했다.

[강도윤]

내 이름이었다. 15년 전, 헌터 협회 전산망에 등록되기도 전의 어린 내가 가졌어야 할 이름. 그게 왜 내가 아닌, 이 창백한 아이의 가슴에 훈장처럼 달려 있는 걸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내 손목에는 낡은 플라스틱 밴드가 채워져 있었다. 색이 바랜 분홍색 팔찌. 거기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힌 다른 이름이 있었다.

[백연]

“……바뀌었어.”

내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잔향청취의 감각이 징그러울 정도로 선명하게 머릿속을 긁어댔다. 누군가 내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누나 대신 내가 기록될게. 오늘은… 오늘은 내가 대신 죽을게.’

어린아이의 목소리. 나였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시스템이 억지로 쑤셔 넣은 데이터거나, 아니면 내가 너무 무서워서 스스로 도려내 버린 기억의 파편이었다.

[시스템 판독 중……]

[대상: 환자 백연]

[보호자: Administrator-K]

[환자와의 관계: 사망 원인(Cause of Death)]

붉은색 글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사망 원인’. 내가 백연의 사망 원인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백연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의 죽음을 증명하는 근거라는 뜻인가. 행정적으로 이보다 더 지독한 오기(誤記)는 본 적이 없다.

“강도윤 씨! 정신 차려요!”

어깨를 잡아채는 강한 악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가운 금속성 향수 냄새가 소독약 냄새를 가르고 들어왔다. 윤서하였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흔들리는 병실의 풍경과, 그 속에서 멍하니 서 있는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건 가짜예요. 시스템이 당신의 죄책감을 데이터화해서 투영하고 있는 거라고요.”

윤서하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예리했다. 하지만 내 어깨를 쥐고 있는 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S급 수사협조관인 그녀조차, 이 공간이 뿜어내는 기괴한 ‘과거의 인력’에는 저항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킁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온이었다.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백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저 언니 냄새,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가짜 냄새야?”

“아니요. 하얀 우산 냄새랑 소독약 냄새도 나는데…… 아주 깊은 곳에서 아저씨 냄새가 나요. 아저씨가 예전에 잃어버렸다고 했던, 그 낡은 운동화 끈 냄새요.”

운동화 끈.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버지가 묶어줬던, 파란색 매듭이 지어진 그 끈을 말하는 건가. 그건 데이터가 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건 냄새가 아니라 기억의 체취다.

“M-17, 이거 멈춰. 당장 검수 보류 라벨 붙여!”

내 외침에 M-17이 허둥지둥 품 안에서 라벨을 꺼냈다. 녀석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 안 돼요! ‘기록되지 않은 자’를 건드리면 담당자도 지워진다고 했잖아요! 저, 저 죽기 싫단 말입니다!”

“안 죽어, 임마! 내가 책임질 테니까……!”

M-17이 마지못해 백연의 팔에 라벨을 붙이려던 순간이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M-17의 어깨에 붙어 있던 회수 라벨 하나가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어……?”

M-17의 팔이 순식간에 반투명하게 변했다. 녀석의 존재 자체가 모니터의 노이즈처럼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담당자’의 자격을 박탈하고 있었다. 기록되지 않은 금기를 건드린 대가는 실시간으로 집행됐다.

“도윤아, 선택해라.”

검은 우산을 쓴 껍데기, 아버지의 얼굴을 한 그것이 한 걸음 다가왔다. 빗방울이 우산 끝을 타고 떨어져 병실 바닥을 적셨다. 하지만 바닥에 고이는 건 물이 아니라 시커먼 먹물 같은 액체였다.

“저 아이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네가 ‘사망 원인’이 되어 기록에서 지워질 것인가. 아니면 저 아이를 ‘오류’로 규정하고 다시 영원한 무(無)의 공간으로 폐기할 것인가.”

잔인한 이지선다였다.

가족 승인을 완료하면 나는 이 서명실의 관리자로서 스스로를 소거해야 한다. 하지만 부정하면 백연은, 내 이름표를 대신 달고 죽어갔던 저 아이는 다시 한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도 이번에는 존재 자체가 없었던 일로 치부되는 완전한 말소다.

“행정 절차가 참 더럽게 꼬였네.”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헌터협회 감식반 시절, 서류 하나 잘못 처리해서 징계위원회에 불려갔던 때보다 상황이 나빴다. 그때는 최소한 시말서라도 쓸 수 있었지, 이건 뭐 퇴직금도 못 받고 존재 자체가 퇴근당할 판이다.

“강도윤 씨, 안 돼요. 대답하지 마세요.”

윤서하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결연함이 아프게 박혔다.

“당신은 살아야 해요. 저 아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지금의 당신을 죽이면서까지 지켜야 할 기록은 없어요.”

“글쎄요, 윤 조사관님. 제가 원래 좀 미련한 구석이 있어서요. 분실물을 보면 주인을 찾아줘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나는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등에는 여전히 [퇴근시켜 줘서 고마워, 도윤 오빠.]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이건 단순한 사망 플래그가 아니다. 이건 저 아이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민원 서류다.

나는 검은 우산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M-17이 반쯤 사라진 손으로 내 옷자락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그 손을 부드럽게 쳐냈다.

“야, M-17. 너 아까 그랬지? 담당자도 지워진다고.”

“히, 히익…… 도윤 씨, 제발요……!”

“걱정 마. 내가 담당자 안 하면 되니까.”

나는 백연의 가슴에 붙은 명찰을 빤히 바라보았다. 강도윤. 그 세 글자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품 안에서 서류용 칼을 꺼냈다. 그리고 백연의 명찰이 아니라, 내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겨냥했다.

“검은 우산, 네가 틀렸어. 이건 가족 인정이냐 부정이냐의 문제가 아니야.”

“……뭐라고?”

“이건 ‘명의 도용 정정 심사’ 건이다. 행정 착오로 뒤바뀐 기록을 바로잡는 것뿐이지.”

나는 내 손목의 팔찌를 단칼에 끊어버렸다.

[알림: 보호자 Administrator-K가 대상의 식별 코드를 거부했습니다.]

[경고: 시스템 기록 간 충돌 발생!]

“이 아이는 백연이 아니야. 내 이름표를 달고 있는 동안만큼은 이 아이가 ‘강도윤’이지. 그리고 내 손목에 저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니, 지금 관리자인 내가 사실은 ‘백연’인 셈이고.”

궤변이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적 비약이었다. 하지만 K-서명실은 오직 기록된 텍스트로만 판단한다. 내가 나를 부정하고, 저 아이를 나라고 주장하는 순간 시스템의 연산 회로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봐라. 내가 나를 사망 원인으로 기록하면, 나는 나를 죽인 게 되나? 아니면 내가 나를 대신해서 죽은 게 되나? 이건 자기참조적 모순이야. 행정법상 ‘판단 유보’ 사유라고.”

병실의 벽면이 비명을 지르듯 뒤틀렸다. 하얀 벽지가 찢어지며 그 뒤의 회색 콘크리트가 드러났다. 검은 우산의 안색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미친 짓을……!”

“미친 건 내가 아니라 이 시스템이지. 야근 수당도 안 주면서 사람을 죽이네 살리네 하고 있잖아.”

나는 백연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분명히 그곳에 실재했다.

“잠시만 기다려 봐. 내가 이 거지 같은 병원에서 퇴원 수속 밟아줄 테니까.”

그 순간, 머리 위에서 거대한 경보음이 울렸다. K-서명실의 전산망이 완전히 뒤집히는 소리였다. 병실의 문이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그 위의 표지판이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K-서명실]이라는 글자가 지워지고, 낡은 아크릴판이 덧씌워졌다.

[소아병동 404호: 퇴원 불가자 명단]

그리고 그 아래, 붉은색 잉크로 휘갈겨 쓴 명단이 한 줄씩 떠올랐다.

강도윤 (환자 번호: 00-1503)

백연 (환자 번호: 00-1503)

번호가 같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로 묶인 기록이었다. 그런데 내 심장이 내려앉은 건 세 번째 이름 때문이었다.

윤서하 (환자 번호: 00-1503)

“……조사관님?”

내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윤서하는 자신의 가슴팍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정장 상의 위로, 어느새 하얀색 환자 명찰이 돋아나 있었다.

[윤서하 / 상태: 관찰 요망]

우리 세 사람의 이름이 같은 환자 번호로 묶여 있었다. 그리고 명단 맨 아래에는 굵은 글씨로 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사유: 공동 운명체(Shared Fate) - 기록 말소 시 일괄 폐기]

병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적막 속에서, 누군가 복도를 걸어오는 육중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검은 우산도, 아버지도 아니었다.

기록의 ‘진짜’ 관리자가 오고 있었다.

247화. 진짜 관리자의 발소리

빗소리가 끊겼다.

세계를 가득 채우던 축축한 소음이 한순간에 증발하자, 고막을 찌르는 건 지독한 정적이었다. 천장의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점멸했다. 하얀 병동의 복도는 명도를 잃고 명멸하며, 바닥에 놓인 젖은 하얀 우산과 검은 우산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 정적을 깨고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일정한 박자, 거부할 수 없는 무게감. 그것은 단순한 누군가의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거대한 서류 뭉치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했고, 단두대의 칼날이 고정대를 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발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복도 벽면에 붙어 있던 병원 차트들이 미친 듯이 뒤집히며 파닥거렸다. 허공에는 말소된 주민등록등본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며 코를 찌르는 소독용 알코올 냄새를 뿜어냈다.

지지직, 복도 스피커에서 노이즈 섞인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보호자께서는…… 심사 대기실로…… 00-1503번 환자…… 강도윤…… 백연…… 윤서하…….]

“도윤 씨.”

윤서하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정장 소매 위로 돋아난 [윤서하 / 상태: 관찰 요망]이라는 명찰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차분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눈앞의 초현실적인 행정 폭격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거 좀 보세요. 이 기록…….”

그녀가 가리킨 문 옆의 [퇴원 불가자 명단] 차트 아래쪽, 흐릿하게 인쇄된 행정 정보들이 보였다. 15년 전의 기록일 텐데, 그곳에는 윤서하의 생년월일과 혈액형, 그리고 ‘S급 각성 적합도’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미래의 정보가 과거의 기록 속에 태연하게 박혀 있는 꼴이라니. 누군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가서 위조 서류를 끼워 넣은 것 같은 찝찝함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오빠.”

내 옷자락을 쥔 백연의 손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이는 복도 끝,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형체를 응시하며 작게 속삭였다.

“저 사람은 퇴원시켜 주는 사람이 아니야. 저 사람한테 이름표 보여주면 안 돼.”

아이의 경고는 본능적이었다. 그리고 그 본능은 대개 이 망할 시스템의 가이드라인보다 정확하다.

드디어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의 형상이었지만,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는 얼굴이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수천 장의 병원 차트와 결재판, 환자 명단이 쉴 새 없이 책장 넘기듯 뒤섞이며 타인의 얼굴들을 투영하고 있었다. 시스템은 그를 향해 임시 라벨을 띄웠다.

[병동 관리자: 404-원장]

[상태: 퇴원 심사 진행 중]

“……쳇.”

지금껏 여유를 부리던 검은 우산의 껍데기가 혀를 차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내 아버지를 사칭하던 그 오만한 존재조차 저 ‘원장’이라는 행정 괴물 앞에서는 서열이 밀리는 모양이었다.

“대기표 냄새예요.”

내 어깨 위에 매달린 가온이 코를 킁킁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살아 있는 사람 냄새도 아니고, 죽은 사람 냄새도 아니에요. 은행 대기실이나 동사무소 번호표, 아니면 오래된 프린터 잉크에서 나는 그런 눅눅하고 지루한 냄새.”

“그거 참 반가운 소리네.”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은 불바다가 아니라 무한히 대기해야 하는 민원실이라더니, 딱 그 짝이구만. 야근 수당도 안 주는 곳에서 퇴원 심사라니, 블랙기업도 이런 블랙기업이 없어.”

발소리가 멈췄다. ‘원장’이 우리 앞에 섰다. 그가 손을 뻗자 허공에서 거대한 철제 결재판이 나타났다. 종이들이 스르륵 넘어가며 우리 세 사람의 이름을 찾아내려 했다. 저 결재판에 내 이름이 찍히는 순간, ‘퇴원’이라는 명목하의 삭제가 시작될 것이다.

그때, 옆에서 비틀거리던 M-17이 내밀었다.

그의 팔은 이미 절반 이상 반투명해져 사라지고 있었다. 기록되지 않은 자인 백연을 건드린 대가로 시스템에서 소거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 손바닥에 라벨지 한 장을 툭 떨어뜨렸다.

[분실물 보관 중]

라벨지에 적힌 문구는 조잡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엄격한 병동 시스템 내에서 유일하게 ‘처분’을 유예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였다.

‘원장’의 결재판이 우리를 향해 겨눠졌다.

윤서하에게 붙일까? 아니면 백연에게? 그것도 아니면 나 자신에게?

아니, 누구 하나에게 붙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공동 운명체’로 묶여 있다. 한 명이라도 폐기되면 나머지도 세트로 날아간다. 1+1 행사도 아니고 이런 식의 덤은 필요 없는데.

나는 라벨지를 들고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았다.

그리고 우리를 가두고 있는 이 방, [소아병동 404호]의 문 표지판 위에 그 라벨을 거칠게 덧붙였다.

착.

[소아병동 404호] -> [분실물 보관소]

시스템의 메시지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경고: 구역 속성 변경 시도!>

<분류 코드 재판독 중……>

<대상 ‘00-1503’ 외 2인이 점유 중인 공간이 ‘분실물 보관소’로 재분류되었습니다.>

<퇴원 심사 대상에서 일시 제외. 보관 기한 내 소유주 확인 필요.>

다다다닥!

결재판을 넘기던 ‘원장’의 동작이 멈췄다. 논리 회로에 과부하가 걸린 듯, 그의 얼굴을 대신하던 종이들이 거칠게 펄럭였다. ‘퇴원’시켜야 할 환자가 순식간에 ‘찾아가야 할 물건’으로 바뀌었으니, 그의 행정 절차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후우, 일단 1절만 하자고.”

나는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임시방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존재가 말소되는 시점은 늦췄다.

그런데 방의 속성이 ‘분실물 보관소’로 바뀌자, 병실 안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얀 침대 위로, 선반 위로, 먼지 쌓인 그림자 속에서 낡은 물건들이 하나둘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누군가 잃어버리고 찾아가지 않은, 시간이 멈춘 유품들이었다.

딸랑.

녹슨 수액 거치대 옆에서 낡은 물건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본 가온이 숨을 들이켰다.

“……냄새.”

내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것은 오래되어 색이 바랜, 하지만 분명히 기억나는 파란색 운동화 끈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잃어버렸던, 백연이 냄새로 기억하고 가온이 찾아냈던 바로 그 물건.

나는 홀린 듯 허리를 숙여 그 운동화 끈을 집어 들었다.

끈의 끝부분, 플라스틱 캡 근처에 아주 작은 글씨로 누군가의 필적이 남겨져 있었다.

[윤서하 보호자 서명 대기]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윤서하의 보호자? 15년 전의 기록에 왜 그녀의 보호자 서명이 필요하다는 거지? 윤서하는 지금 내 옆에 있는데.

그때였다.

얼굴 없는 관리자, ‘원장’의 결재판이 천천히 내려갔다. 수천 장의 종이가 겹쳐지며 단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관리자의 목소리가 병실 전체를 울렸다.

“보호자가 도착했군.”

복도 너머,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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