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251화. 원소유주의 발소리와 읽지 말라는 이름
250화. 원소유주의 발소리
탁. 탁. 탁.
닫힌 404호 소아병동 문 너머에서 규칙적인 박동이 들려왔다. 단순한 발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잘 닦인 병원 복도의 리놀륨 바닥을 울리는 구두 소리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던전 심층부의 녹슨 금속 계단을 하나씩 밟고 내려오는 육중한 진동으로 변했다.
재심사.
그 단어가 주는 안도감은 찰나였다. 나는 입안에 고인 쓴 침을 삼켰다. 사형 집행 직전에 ‘서류 미비’로 번호표를 새로 받은 기분이다. 교수형 밧줄의 매듭을 다시 묶는 동안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을 얻었을 뿐, 목에 걸린 올가미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뜻이다.
“심사 대기라니. 이럴 거면 차라리 대기 번호표라도 뽑아주지 그랬냐. 병원 하면 역시 3시간 대기에 3분 진료 아니겠어?”
농담을 던졌지만 내 눈은 결재판 위의 글자를 놓치지 않았다. [상태: 재심사 대기]라는 붉은 글자가 점멸할 때마다, 내 손목의 환자 팔찌와 운동화 끈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석에 끌려가는 철가루처럼, 그것들은 모두 문 너머에서 다가오는 존재를 향해 방향을 틀고 있었다.
404-원장, 아니 내 미래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보호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만년필을 거두었다. 그의 왼쪽 눈, 짓눌린 흉터 위로 기괴한 만족감이 스쳤다.
“재심사 절차를 시작합니다. 원소유주 소환.”
그의 목소리가 떨어짐과 동시에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에어컨 바람이 아니라, 시신 안치실의 냉동고를 통째로 열어젖힌 듯한 냉기였다.
옆에 서 있던 윤서하의 어깨가 눈에 띄게 떨렸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윤서하]라는 명찰을 부서질 듯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문틈 사이의 어둠에 고정되어 있었다. 공포라기보다는, 아주 오래전 잃어버렸던 끔찍한 부채를 마주한 채무자의 얼굴이었다.
“강도윤 씨…… 저 발소리, 알아요.”
서하가 쉰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기억이 안 난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어요. 저건…… 저를 사람이 아니라 ‘기록’으로 보던 사람의 발소리예요.”
백연이 들고 있던 하얀 우산에서 ‘드득’ 하는 불길한 소리가 났다. 튼튼해 보이던 우산살 하나에 금이 가며 꺾였다. 아이는 우산을 접지 못한 채,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려는 듯 내 앞을 막아섰다.
“도윤 형, 조심해. 저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아니야.”
백연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며 떨렸다.
“이름을 빼앗는 사람이야.”
가온이 내 옷자락을 붙잡으며 코를 찡긋거렸다. 녀석의 예민한 후각은 이미 문 너머의 존재를 해체하고 있었다.
“형, 냄새가 이상해. 아까 그 병원장 냄새도 아니고, 저 검은 우산 냄새도 아니야. 음…… 산부인과에서 갓 태어난 아기 팔찌를 가위로 뜯어낼 때 나는 냄새? 아니면, 헌터 등급표에 지우개질을 박박 해서 종이가 일어난 고무가루 냄새 같아. 그리고…….”
가온이 침을 꿀꺽 삼키며 덧붙였다.
“남의 이름표 위에 젖은 우산을 세워둬서, 글자가 다 번져버린 냄새가 나.”
지독하게 구체적이고 기괴한 묘사였다. 소유권을 지우고 다시 쓰는 자의 악취.
그때,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검은 우산의 껍데기가 움찔거렸다. 녀석은 문 너머의 발소리를 들으며 기괴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것은 명백한 두려움이었다. 거래를 제안하며 오만하게 굴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검은 우산 역시 저 원소유주라는 존재에게 이용당했거나, 혹은 한때 그의 ‘분실물’ 중 하나였음을 암시하는 반응이었다.
[오류: 절차 ㅈ-ㅓㅂ속 중……]
[M-17: 관리자님, 이 재ㅅ-ㅣㅁ사는 위험합니다. 외부 증언자 ‘문태식’의 데이터는 실존 인물의 인격이 아니라 소지품에 남은 ‘잔향’입니다. 법적 효력이……]
M-17의 팝업창이 노이즈와 함께 깨지며 명멸했다. 시스템조차 이 상황이 정상적인 프로세스가 아님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주머니 속 문태식 팀장의 식권 잔향이 다시 한번 내 귓가를 긁었다. 걸걸하고 짜증 섞인, 하지만 든든한 그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야, 강도윤. 저 새끼 봐라. 저게 무슨 주인이냐? 딱 보니까 장물아비 냄새가 풀풀 나는데.
장물아비. 문 팀장님다운 비유였다.
주인이 잃어버린 물건을 보관했다가 정당하게 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물건을 가로채서 제 것인 양 행세하는 자.
마침내 404호의 문이 완전히 열렸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것은 명확한 형태가 없는 실루엣의 덩어리였다. 아니, 여러 개의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빳빳하게 풀을 먹인 흰 가운의 소매,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검은 우비의 자락, 그리고 손에는 보호자 서명용으로 쓰이는 낡은 만년필이 들려 있었다.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그의 팔목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들이었다. 그것은 수십, 수백 개의 신생아 팔찌였다. 각기 다른 이름들이 적힌 그 팔찌들이 그가 움직일 때마다 쇳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재심사를 청구했나.”
목소리는 성별도, 나이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중립적이고 건조했다. 그가 결재판을 든 404-원장 옆으로 다가왔다.
“윤서하. 15년 전, 병원 기록지 32페이지. 당신은 백연의 이름을 먼저 적어 달라고 요청했지. 본인의 치료권보다 아이의 등록을 우선시했다. 그 순간, 양도는 이미 완료됐다.”
그가 만년필을 들어 허공에 선을 그었다. 그러자 서하의 명찰에서 가느다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그에게로 연결되었다.
“백연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 없는 기증체로서 이 병원에 들어온 순간, 소유권은 보호자가 아닌 관리자에게 귀속되었다. 강도윤, 너 역시 이 ‘자기 완결적 분실물’의 논리 안에 갇혀 있지. 네가 가진 모든 것은 결국 이곳의 재고일 뿐이다.”
그의 논리는 정교했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법전의 조항을 읊는 것 같았다. 서하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려던 찰나, 나는 팀장님의 식권 조각을 손바닥 안에서 으스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이봐요, ‘원소유주’ 씨.”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 어깨를 으쓱했다.
“논리가 아주 탄탄하시네. 거의 우리 집 야근 수당 계산할 때 사장님이 내미는 계약서만큼이나 촘촘해.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원소유주의 실루엣이 멈칫했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내 발밑에 고여 있던 빗물이 구두 소리를 내며 튀었다.
“분실물의 정의가 뭡니까? 주인이 실수로 잃어버린 물건이죠? 그리고 분실물 보관소의 규칙은 단순해요. 찾는 놈이 주인이라는 거. 당신이 진짜 주인이라면, 왜 15년 동안 안 나타나다가 이제야 기어 나온 거지?”
“나는 항상 이곳에 있었다.”
“아니, 당신은 여기 있었던 게 아니라 ‘방치’한 거야. 문 팀장님이 그러더라고. 잃어버린 놈보다 찾는 놈이 임자라고. 당신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정작 ‘회수’의 의무는 다하지 않았어. 이건 관리 소홀이지. 유기라고도 부르고.”
나는 그의 팔목에 걸린 수많은 신생아 팔찌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결정적인 의문 하나 더. 당신, 아까부터 남의 이름만 줄줄 꿰고 있는데 말이야. 정작 본인 이름은 어디 갔어?”
내 질문에 원소유주의 그림자가 파르르 떨렸다. 만년필을 쥔 손이 허공에서 갈 길을 잃고 머뭇거렸다.
“진짜 주인이라면 자기 이름표부터 챙겨야 하는 거 아냐? 당신이 잃어버린 건 윤서하나 백연이 아니야. 당신, 당신 이름을 잃어버린 거 아냐? 아니면…….”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의 발치에 일렁이는 그림자 아래로 시선을 던졌다. 시스템의 보정이 내 눈을 자극했다.
“그 이름을 누가 강제로 지워버렸거나.”
그 순간, 원소유주의 발밑에서 검은 균열이 일어났다. 평범한 그림자인 줄 알았던 어둠이 들끓으며 시스템 메시지가 비명처럼 튀어 올랐다.
[재심사 대상: 원소유주의 자격 검증]
[조회 중……]
[결과: 원소유주 명(Name): 삭제됨]
[소유권 기록: ‘검은 우산’에 의해 강제 말소된 흔적 발견]
공간이 진동했다. 404-원장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고, 옆에 서 있던 검은 우산의 껍데기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내 소매를 잡아챘다.
“읽지 마!”
검은 우산의 목소리였다. 그건 명령이 아니라, 처절한 비명에 가까운 경고였다.
“강도윤, 그 이름을 읽지 마! 그건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망 플래그’가 아니야!”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워진 글자들 사이로, 오직 나에게만 보이는 붉은 잉크의 잔상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원소유주의 발소리가 멈췄다. 대신, 내 귓가에는 수만 개의 우산이 동시에 펼쳐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251화. 읽지 말라는 이름
푸와악!
수만 개의 우산이 동시에 펼쳐지는 소리는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거대한 짐승이 젖은 날개뼈를 강제로 꺾어 펴는 파열음에 가까웠다. 404호 분실물 보관소의 희뿌연 공기가 그 소음만으로도 압축되어 고막을 짓눌렀다.
단순히 소리가 큰 게 아니었다. ‘소리’라는 형식을 빌려 뇌에 직접 내리꽂히는 정보의 파도였다. 그 파도 속에서 내 고유 스킬, ‘잔향청취’가 비명을 지르며 강제로 개방됐다. 제어할 틈도 없었다. 평소라면 은은한 커피 향이나 낡은 종이 냄새처럼 다가왔을 잔향들이 지금은 용광로에서 쏟아지는 쇳물처럼 내 감각을 태워 먹으려 들었다.
[경고! 규격 외의 정보가 유입됩니다!]
[잔향청취(S)가 강제 과부하 상태에 진입합니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지워진 글자들 사이로 붉은 잉크의 잔상이 꿈틀거리며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름이었다.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짧은 문장. 하지만 그 문장은 완성되어서는 안 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강도윤, 그 이름을 읽지 마!”
검은 우산 껍데기가 내 시야를 가로막았다. 놈의 목소리는 평소의 기계적인 조롱이 아니었다. 처절함, 혹은 공포. 놈은 차가운 우산살로 내 눈과 귀를 거칠게 덮어 누르며 밀어냈다. 평소엔 내 등 뒤에서 사망 플래그나 던져주던 녀석이 이번만큼은 내 목숨줄을 붙잡고 늘어지는 꼴이라니.
“이건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망 플래그’가 아니야! 읽는 순간, 당신이라는 기록 자체가 저 장물아비의 서랍 속으로 처박힐 거라고!”
나는 놈의 우산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붉은 잔상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보통 읽지 말라고 하면 더 읽고 싶어지는 게 인간 심리거든. 약관 동의 같은 거면 대충 넘기겠는데, 이건 ‘읽으면 죽음’이라니 좀 고민되네. 야근 수당도 안 나오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나?”
농담은 내 마지막 방어기제였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와중에도 입술은 멋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눈은 멈추지 않았다. 붉은 잉크는 뱀처럼 기어와 내 망막에 조각난 획들을 새겼다.
‘ㅂ’인가? 아니면 ‘ㅁ’의 윗부분인가.
우산 모양의 글자 그림자가 일렁였다. 병원 식권 뒷면에 묻은 잉크 번짐처럼, 지저분하고 축축한 역사가 내 의식 속으로 침투했다.
[심층 잔향 동조율 급상승— 15년 전의 기록으로 강제 접속합니다.]
순간, 404호의 풍경이 무너졌다.
서늘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밑은 먼지 쌓인 보관소 바닥이 아니라 미끄러운 병원 복도 타일로 변해 있었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카트 끄는 소리.
그리고 복도 한가운데, 젖은 검은 우산들이 꽂혀 있는 우산꽂이 옆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어린 윤서하였다.
그녀의 손에는 파란 운동화 끈이 묶여 있었고, 반대편 손목에는 너무 커서 헐렁거리는 신생아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 팔찌에는 이름이 없었다. 아니, 있었으나 지워져 있었다.
얘야, 이 아이를 살리고 싶니?
비릿한 목소리가 들렸다. 흰 가운을 입었으나 얼굴은 검은 우산의 그림자에 가려진 존재. 원소유주였다. 그는 보호자 서명란이 텅 비어 있는 결재판을 내밀고 있었다.
네 기록의 일부를 여기에 적으렴. 그럼 이 아이의 ‘부재’를 네가 채워줄 수 있단다.
어린 윤서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백연을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허용된 삶의 여백을 기꺼이 넘겨주려 했다. 아이의 순수한 이타심. 하지만 시스템은 그 선의를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서명이 이뤄지는 순간, 윤서하의 ‘기록’은 양도가 아니라 ‘찬탈’당했다. 원소유주는 그녀의 기록을 징검다리 삼아, 자신의 말소된 이름을 가릴 새로운 껍데기를 수집하고 있었다. 검은 우산이 원소유주를 말소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말소된 공백을 채우기 위해 원소유주는 타인의 이름을 끝없이 삼켜야 하는 괴물이 된 것이다.
‘이건 거래가 아니라 사기잖아.’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손을 뻗으려 했지만, 내 몸은 유령처럼 허공을 갈랐다. 그때였다.
“강도윤 씨!”
현실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찢고 들어왔다.
윤서하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거칠게 뜯어내고 있었다. 플라스틱 명찰이 부서지며 날카로운 파편이 그녀의 손가락을 긁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손목에 명찰의 끈을 단단히 감았다.
“제 기록은 제가 책임집니다. 당신 기록까지 그자에게 넘기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정중했지만, 그 안에는 서리 같은 결단력이 서려 있었다.
“저는 더 이상 기록 속의 인형이 아닙니다. 강도윤 씨, 돌아오세요!”
동시에 내 머리 위로 하얀 그늘이 졌다. 백연이었다. 그녀가 금이 간 하얀 우산을 펼쳐 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빠득, 하고 우산살 하나가 더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였다. 그녀의 환자복 소매 너머로 보이는 손등이 얼음처럼 차갑게 변해갔지만, 그녀는 우산을 거두지 않았다.
“...이름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니에요. 빼앗은 건... 진짜가 될 수 없어요.”
백연의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명확했다. 그녀가 펼친 하얀 우산은 붉은 잉크의 잔상이 내 의식을 완전히 잠식하기 전에 방벽을 쳐주었다. 덕분에 나는 그 불길한 이름의 전체를 읽지 않고, 그 획의 끝자락에서 발을 뺄 수 있었다.
“형! 정신 차려! 형 냄새가 지금 이상해!”
가온의 외침이 들렸다.
“병원 식권이랑 신생아 팔찌 사이에 형 냄새가 끼어들었어! 섞이면 안 돼, 형은 형 냄새가 나야 한다고!”
가온의 외침과 함께 M-17의 팝업창이 내 망막 위에서 격렬하게 점멸했다.
[오류! 오류! 권한 충돌 발생!]
[원소유주의 자격 검증 실패: 소유권 기록에 ‘타인의 의지’가 개입됨.]
[임시 보관자(강도윤)에게 이의신청권이 발생합니다.]
[※ 주의: 이의신청을 위해서는 ‘잃어버린 이름’이 아니라, 이 장소에 실재하는 ‘찾아낸 이름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의신청권.
지옥 같은 절차 속에서 찾아낸 유일한 허점이었다.
나는 15년 전의 잔향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기 직전, 어린 윤서하가 서 있던 그 젖은 우산꽂이 밑바닥을 보았다.
원소유주가 들고 있던 결재판에서도, 윤서하의 손목에 있던 팔찌에서도 보이지 않던 것.
누군가가 고의로 숨겼거나, 혹은 너무도 하찮게 여겨져 버려진 조각 하나가 우산꽂이의 녹슨 틈새에 끼어 있었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 조각을 낚아챘다.
“후우... 후우...”
폐부가 타들어 가는 감각과 함께 현실로 튕겨 나왔다. 404호의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고, 원소유주의 형체는 분노한 듯 검은 안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수만 개의 우산이 다시 한번 기괴한 소리를 내며 접혔다.
“찾았어.”
내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나는 손목에 감긴 윤서하의 명찰 끈을 풀며, 방금 잔향 속에서 낚아챈 ‘그것’을 바닥으로 던졌다.
그것은 백연의 것도, 윤서하의 것도 아니었다.
15년 전, 그 병원 복도에 있었던 또 다른 존재. 원소유주가 자신의 이름을 지우기 위해 제물로 삼았던, 혹은 그 과정에서 철저히 짓밟혔던 제3자의 흔적.
[이의신청 물품: ‘실습생’의 훼손된 명찰]
찰랑,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404호의 먼지 쌓인 바닥에 떨어졌다.
거기에는 붉은 잉크가 아닌, 빛바랜 검은색 글자로 이름의 일부가 적혀 있었다.
[...희]
원소유주의 발소리가 우뚝 멈췄다.
바닥에 떨어진 그 작은 이름표 위로, 404호의 전등이 지지직거리며 위태로운 빛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