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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01화. 옥상 격리 병동과 윤희○의 비 일러스트

100-101화. 옥상 격리 병동과 윤희○의 비

제목: 100화. 옥상 격리 병동

계단은 붉었다. 누군가 쏟은 잉크가 아니라, 오래된 혈흔이 결을 따라 굳어 만들어진 것 같은 색이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신발 밑창에 쩍쩍 달라붙는 소리가 났다. 진짜 피라기보다, 이 공간이 아직 못 버린 미련 같은 것.

“도윤 씨, 손…… 놓지 마세요.”

윤서하의 목소리가 한 박자 늦게 들렸다. 돌아보자 그녀의 가슴팍에 달린 단말기 속 이름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윤서하’라는 석 자 중 ‘서’자의 획 하나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수채화처럼 흐려졌다. 내 손목을 쥔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안 놓습니다. 그쪽도 정신줄 놓지 마요. 이름값 비싸다면서요.”

농담을 던졌지만 입안이 썼다. 위로 올라갈수록 공기는 지하실보다 차갑게 식어갔다. 복도 옆 창밖에는 서울 야경 대신 검은 우산들이 층층이 떠 있었다. 수백 개의 우산이 비에 젖은 채 허공에 정박해 있었다. 조문객들이 하늘에 줄 서 있는 꼴이었다. 장례식장 예약 시스템이 너무 미래적이면 사람이 이렇게 불쾌해진다.

계단 끝의 문을 밀치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병원 옥상 위에는 기괴한 구조물이 얹혀 있었다. 유리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 만든 온실 같기도 했고, 임시로 세운 군용 막사 같기도 했다. 깨진 유리 천장 틈으로 차가운 빗물이 들이쳤다. 바닥에는 빗물을 받으려 놓은 플라스틱 양동이들이 불규칙하게 ‘툭, 투툭’ 소리를 냈다.

“여긴…… 병동이 아니라 실험실 같은데요.”

반가온이 노란 격리 테이프가 너덜거리는 입구를 지나며 인상을 찌푸렸다. 낡은 철제 침대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고, 녹슨 링거대에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갈색 약액병들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중앙 침대로 다가갔다. 젖은 시트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던 흔적이 선명했다. 아주 작은 자국이었다. 성인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몸을 웅크리고 떨었던 자리. 침대 모서리에는 작은 손자국이 긁힌 채 남아 있었다. 무서워서, 혹은 버티기 위해 시트를 움켜쥐었던 흔적.

그 침대 바로 옆에 구식 출근 카드 리더기가 서 있었다. 10년 전 최성국이 사용했을 법한 투박한 플라스틱 덩어리.

“이거 보십시오, 도윤 형님.”

이현우가 리더기 뒷면 배선을 살피더니 낮게 말했다.

“일반 근태 관리기가 아닙니다. 기억 좌표 등록기예요. 데이터가 아니라, 이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의 목격자와 시간, 장소를 하나의 증언으로 묶어서 기록하는 아티팩트입니다.”

“증언을 묶는다고?”

“네. 누군가 여기서 ‘나는 있었다’라고 기록하는 순간, 그건 뒤집기 어려운 사실이 됩니다. 반대로 기록되지 못한 자는…… 존재하지 않는 게 되죠.”

이현우의 말에 윤서하의 어깨가 떨렸다. 그녀는 깨진 유리창 너머 검은 우산 행렬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가문에는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요. 태어났지만 호적에도, 가계도에도 이름 한 자 올리지 못한 채 처리되는 존재들. ‘미접수자’라는 건 그런 뜻이에요. 세상에 존재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필요할 때만 소모되는 사람.”

그녀의 시선이 내 손목을 거쳐 흐릿해진 자신의 이름표로 향했다.

“그분도 그랬어요. 윤…… 아니, 제 숙부님이었을지도 모를 그 사람은 집안에서 한 번도 태어난 적 없게 처리됐죠. 그런데 도윤 씨의 과거 기록 속에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최성국 씨가 숨겨둔 그 기록 속에.”

그때 병동 한쪽 냉장고를 뒤지던 반가온이 앰플 하나를 치켜들었다. 라벨은 절반쯤 찢겨 있었지만 남은 글자는 선명했다.

[존재 안정제 - 폐기 등급 S]

“이거예요. 이름 없는 헌터들을 ‘살아 있는 미접수자’ 상태로 유지할 때 쓰는 약물. 최근 날짜로 폐기된 기록이 남아 있어요. 누군가 최근까지도 여기서 헌터들을…… 관리했다는 소리죠.”

챙.

날카로운 소리가 유리 천장을 때렸다.

검은 우산살 하나가 깨진 유리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우산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서늘한 기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제갈후였다. 창구 스피커에서 들리던 비릿한 목소리가 이제는 사방에서 공명했다.

“옥상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장례식장이지. 안 그렇습니까, 강도윤 씨?”

천장 위의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자정까지 이제 10분 남았습니다. 그 리더기에 카드를 찍으세요. 그러면 당신의 원본 출근 기록이 열립니다. 10년 전 당신이 무엇을 대가로 살아남았는지 마주할 기회를 드리죠. 단, 당신이 찍는 순간 내 권한으로 그 기록을 덮어쓸 겁니다. 당신의 과거는 내 것이 되고, 당신은 영원히 나의 미접수자로 남겠지.”

선택의 시간이었다. 리더기를 찍으면 진실을 알 수 있지만 제갈후에게 내 존재를 저당 잡힌다. 찍지 않으면 윤○○와 나의 거래는 영원히 미궁 속으로 사라지고, 윤서하의 이름은 더 흐려질 것이다.

나는 빗물에 젖은 출근 카드 조각을 꺼냈다. 어린 내가 삐뚤빼뚤하게 적은 글씨.

[나는 오늘 출근했다.]

글자 뒤로 잔향이 일렁였다.

비릿한 소독차 냄새와 함께 10년 전 풍경이 겹쳐졌다. 젊은 최성국이 보였다. 그는 영웅이 아니었다. 검은 우산들의 눈치를 보며 덜덜 떠는 손으로 어린 내 손을 이 리더기로 이끌고 있었다.

“도윤아, 미안하다. 이게 널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야. 저 사람 이름을 네 이름 뒤에 숨겨야 해.”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눈앞에서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려 달라고 울고 있었다.

“선택하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제갈후의 압박이 거세졌다. 리더기의 빨간 불빛이 심장 박동처럼 빠르게 점멸했다.

나는 리더기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카드를 긁는 대신, 주머니에서 반가온이 찾아낸 빈 존재 안정제 앰플을 꺼냈다. 그리고 이현우가 복구한 카드 조각과 윤서하의 흐려진 이름표를 한데 모았다.

“제갈후, 넌 행정의 기본이 안 돼 있군.”

나는 세 가지 물건을 리더기의 인식 센서 위에 한꺼번에 올려놓았다.

“원본 기록이 훼손됐다면 참고인 조사를 병행하는 게 원칙이잖아? 이건 내 기록이 아니라, 우리 넷의 공동 증언이다. 덮어쓰기 해보시지. 이 셋의 존재까지 한꺼번에 감당할 자신 있으면.”

“도윤 씨?!”

윤서하의 외침과 함께 리더기가 거칠게 비명을 질렀다. 삐이이이, 고막을 찢는 소리가 옥상 병동 전체를 흔들었다. 기계에서 뿜어져 나온 백색광이 빗물과 유리 조각을 한꺼번에 삼켰다.

[조건 충족: 다수의 교차 증언이 확인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출근 기록을 강제로 복구합니다.]

쿠르릉.

뇌성보다 큰 소리와 함께 옥상 출입문이 거칠게 열렸다. 문 너머는 병원 복도가 아니었다. 10년 전, 지독한 비가 내리던 그날의 옥상이 열리고 있었다.

빗소리 사이로 어린아이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제 이름 말고…… 제 이름 말고 저 사람 이름을 살려 주세요.”

바닥을 뒹구는 낡은 명찰 하나가 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성씨는 ‘윤’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붙은 두 글자 중 첫 글자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냈다.

[윤 희 ○]

“저 이름은……!”

윤서하의 손이 내 손목을 부서질 듯 움켜쥐었다. 이름의 마지막 한 글자가 채 완성되기 전, 옥상의 문 너머에서 거대한 검은 우산의 그림자가 우리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제목: 101화. 윤희○의 비

거대한 어둠이 유리 천장을 뚫고 쏟아졌다. 아니,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제갈후의 검은 우산 그림자가 물리적인 질량을 지닌 채 리더기를 짓눌렀다. 콰득, 하고 플라스틱 외장이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내 망막 위로 붉은 에러 메시지가 터졌다.

[경고: 외부 데이터의 강제 덮어쓰기가 시도됩니다.]

[기록 복구 점유율: 88%... 72%... 45%...]

“이런 씨……!”

나는 윤서하의 어깨를 낚아채며 바닥으로 몸을 날렸다. 머리 위로 우산살처럼 날카로운 그림자 파편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히며 왼쪽 어깨에 둔탁한 통증이 일었지만, 손은 놓지 않았다.

윤서하의 몸이 종잇장처럼 가벼웠다. 아니, 실제로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팍 임시 이름표를 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윤서하’라는 글자 중 가운데 ‘서’자가 잉크가 번지듯 사라지고 있었다.

윤 하.

존재의 중심부가 파먹힌 이름이 비참하게 흔들렸다.

“윤서하! 정신 차려!”

“……비가, 내려요. 도윤 씨.”

그녀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비유가 아니었다. 깨진 유리 천장 사이로 들이치는 것은 밤비가 아니었다. 10년 전, 이 병동이 폐쇄되던 날의 기억이 응축된 과거의 비였다.

빗방울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환상 조각들이 수면 위 파문처럼 번져 나갔다. 나는 잔향청취의 감각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빗소리가 정보로 변해 고막을 때렸다.

― 도윤아, 무서워하지 마.

― 선생님, 제 이름 말고…… 저 사람 이름을 살려 주세요.

물방울 하나에 어린 내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그 옆에 떨어진 물방울 속에는 흰 가운 소매를 걷어붙인 채 주사기를 조절하는 여자의 손이 보였다. 윤희○. 그녀의 명찰은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서도 기어이 두 글자만 남겼다.

윤희.

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나를 ‘이름을 숨기는 그릇’으로 이용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방울 속에 비친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있었다. 헌터 관리국과 가문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기 존재라는 데이터 전체를 삭제해 그 공백 속에 나를 숨기려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버려 타인의 이름을 살리는 짓.

자살보다 절차가 복잡한 자살이었다. 이 동네는 죽는 것도 결재라인을 타야 한다.

“이게…… 약이 아니야.”

냉장고 앞에서 앰플을 살피던 반가온이 낮게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 묻은 미세한 결정 가루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기괴하게 반짝였다.

“존재 안정제? 아뇨, 이건 이름의 응고물이에요. 최근에 실종된 미접수자 헌터들…… 그들의 존재 기록을 갈아서 만든 농축액에 가까워요. 이걸 주사해서 억지로 존재감을 유지시키다니, 치료가 아니라 박제라고요.”

이현우가 리더기의 홀로그램 화면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도윤 형! 제갈후가 쏜 덮어쓰기 코드가 시스템을 장악 중이에요! 그런데 형이 올린 증거물들이랑 충돌하면서 보류 큐에 걸렸습니다. 자정까지 승인 안 나면 원본이랑 덮어쓰기 데이터가 통째로 삭제될 겁니다!”

스피커가 찢어지는 소음을 내더니, 그 사이로 제갈후의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강도윤. 네가 발버둥 칠수록 저 여자의 시계는 빨리 돌아가지. 네가 살수록 윤희○는 더 완벽하게 죽는다. 그것이 이 기록의 정해진 값이야. 포기하고 우산 아래로 들어오지 그러나?]

검은 우산 그림자가 다시 채찍처럼 바닥을 내리쳤다. 리더기에 올려둔 빈 앰플과 카드 조각들이 튕겨 나갔다. 복구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도윤…… 씨…….”

내 품 안에서 윤서하의 손등이 투명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고인 생기가 비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때 빗물 웅덩이 속에 고여 있던 젊은 최성국이 나를 응시했다. 그는 어린 나를 안고 옥상 출입문을 향해 뛰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 미안하다. 나는 비겁해서…… 그녀를 구하는 대신, 네 이름 속에 그녀의 조각을 숨기는 길을 택했다. 나는 이 죄를 평생 이름 없는 그늘에서 갚으마.

최성국은 공범이었다.

그녀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내 기억을 조작하고 그녀의 성씨를 숨기는 것으로 대신했던 인간. 늦게 후회한 사람. 하지만 늦은 후회가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지각 사유서가 장례식에 제출된다고 결석이 출석 처리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제갈후의 논리에 놀아날 생각은 없었다.

“이현우, 보류 큐에 내 권한으로 증언 하나 더 얹으면 어떻게 돼?”

“형? 지금 올릴 수 있는 증거가 없잖아요! 이름표도 다 지워져 가는데!”

나는 대답 대신 왼쪽 손바닥을 펼쳤다.

그곳에는 검게 탄 [00:00] 화인이 낙인처럼 박혀 있었다. 세 번의 호출, 세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쌓인 시스템의 오답 노트.

“내 손바닥에 남은 시각들, 단순한 타이머 아니지? 내가 이 장소, 이 시간에 실존했다는 시스템 인증이잖아.”

나는 망설임 없이 리더기의 박살 난 인식창 위에 손바닥을 찍어 눌렀다.

화인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치익 소리를 내며 시스템과 충돌했다. 내 생명력을 직접 빨아가는 듯한 탈수감이 전신을 덮쳤다. 눈앞이 번쩍이며 메시지가 고막을 찢었다.

[특이 개체 ‘강도윤’의 생존 데이터 확인.]

[증인 추가: 강도윤 본인.]

[교차 검증 시작…… 완료.]

[기록 고정: 윤. 희. ○.]

마지막 글자가 채워지기 직전, 거대한 노이즈가 화면을 가로질렀다. 제갈후의 그림자가 비명을 지르며 리더기를 으스러뜨리려 했다. 하지만 이미 고정된 두 글자는 선명하게 빛났다.

동시에 내 시야 하단에 새 경고가 떴다.

[경고: 증언의 대가로 퇴근 시간이 4시간 앞당겨집니다.]

[남은 시간: 02:14:55]

“미친, 수명으로 결제하는 건 내 전공이긴 한데…… 이번 건 좀 비싸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리더기가 박살 나기 직전 뿜어낸 마지막 홀로그램이 옥상 병동 전체를 10년 전의 잔상으로 뒤덮었다.

그곳에서 어린 강도윤을 품에 안은 최성국이 문을 열고 나가려다 멈칫했다.

옥상 출입문 안쪽, 어둠이 짙게 깔린 복도 끝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윤희도, 최성국도 아닌 제3자의 인영.

죽어가는 사람의 기척이 아니었다. 아주 차갑고, 아주 익숙하며, 지금까지 한 번도 죽은 적 없다는 듯 서 있는 생생한 실존의 무게였다.

윤서하의 흐려졌던 이름표가 잠깐 선명해졌다. 그녀의 눈은 내가 아니라 출입문 너머 그림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사람…….”

그녀가 숨을 삼켰다. 이름을 부르려는 입술이 끝내 닫혔다.

그림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공기 중에 흩어진 잔향이 뇌리에 직접 문장을 새겼다.

― 도윤아, 네 진짜 보호자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리더기가 완전히 폭발하며 옥상의 모든 환상이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갔다.

암흑 속에서 나는 내 손바닥의 줄어든 시계를 보았다.

이제 정말, 퇴근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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