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107화. 계산대 뒤의 어린 점원과 카드 속 남자
제목: 106화. 계산대 뒤의 어린 점원
눈을 찌르는 듯한 백색광이 망막을 긁었다.
방금까지 곰팡이 냄새와 냉동고의 비릿한 성에 입자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코끝을 스치는 공기가 지나치게 인공적이다. 락스 냄새와 강렬한 인공 향료, 그리고 갓 뽑아낸 복사용지에서 날 법한 건조한 온기.
게이트를 넘어선 내 발치에는 낡은 타일 대신 눈이 시릴 정도로 매끈한 대리석 바닥이 깔려 있었다.
“……여긴.”
뒤를 돌아보았지만, 우리가 들어온 냉동고 문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통유리 너머로 칠흑 같은 어둠만이 일렁이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편의점이 그곳에 있었다.
지하 장례식장 매점과 똑같은 구조였으나, 모든 것이 소름 끼칠 정도로 새것이었다. 매대 위에는 먼지 하나 앉지 않았고, 형광등은 일정하게 지이잉, 하는 기계음을 내며 하얀 빛을 쏟아냈다.
그리고 계산대 뒤, 너무 작아서 까치발을 들어야 할 것 같은 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커다란 조끼형 유니폼을 걸친 아이. 10년 전의 나, 혹은 ‘이진하’라고 불렸을 존재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늦었어.”
아이의 목소리는 보정된 기계음처럼 매끄러웠다.
“보호자 0번은 이미 우리 이름으로 퇴근했어.”
“퇴근? 누구 마음대로.”
나는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손바닥에 박힌 검은 결정이 뜨겁게 박동했다. 방금 전 게이트를 열기 위해 ‘이진하’라는 이름을 입 밖으로 냈던 감각이 혀끝에 쓴맛으로 남아 있었다.
내 뒤로 윤서하와 반가온, 이현우가 차례로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도윤 씨, 이거……!”
윤서하가 자신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헌터 관리국 수사협조관 직인이 찍힌 그녀의 이름표가 노이즈가 낀 것처럼 지직거리며 흐려지고 있었다. 마치 존재 자체가 이 공간의 해상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반가온이 들고 있던 감정용 나침반은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더니, 틱 소리와 함께 멈춰 섰다. 나침반의 다이얼에 적힌 숫자들이 변했다.
[가격: 4,500원]
[할인율: 유통기한 임박에 따른 90% 감면]
“내 장비가 왜 가격표가 돼?”
반가온이 당황하며 외쳤지만, 이현우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그가 들고 있던 최신형 전술 태블릿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하단부에서 종이 쪼가리를 뱉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영수증이었다.
[로그 분석: 외부 데이터 유입 차단]
[경고: 미등록 사본 진입]
[처리 지침: 폐기 혹은 교대 근무자로 전환]
“이거 태블릿 아닙니다. 영수증 프린터로 강제 변환됐어요. 형님, 이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록 보관소이자…… 결제 시스템입니다.”
이현우의 말대로였다. 나는 가까운 매대로 걸음을 옮겼다. 가지런히 놓인 삼각김밥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제품명: 10년 전의 허기]
[유통기한: 퇴근 전까지]
옆에 놓인, 반쯤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은 듯 모양이 일그러진 아이스크림의 라벨은 더 가관이었다.
[제품명: 잊힌 약속]
[상태: 퇴근 후 폐기 완료]
“내 인생이 편의점 1+1 행사 상품인 줄은 몰랐는데.”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아이스크림을 내려놓았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서늘했다. 단순한 냉기가 아니라, 시간이 멈춘 자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지된 데이터의 냉기였다.
[잔향청취가 활성화됩니다.]
환청처럼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시야가 겹쳤다.
아저씨, 이거 먹어도 돼요?
……먹어라. 어차피 장부에는 ‘소모품’으로 적힐 테니까.
검은 우산을 든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계산대 위에 젖은 지폐 몇 장을 던져놓고는, 구석에서 떨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의 손에는 지금 내가 만진 것과 똑같은 삼각김밥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식사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남긴 마지막 기록이자, 존재를 연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데이터 조각이었다.
“강도윤.”
계산대 뒤의 아이가 나를 불렀다. 아니, ‘우리’를 불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이진하?”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계산대 위에 손을 올렸다. 아이의 눈동자는 맑았지만, 그 안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고여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야? 여기 널려 있는 상품들처럼 이름표만 갈아 끼우면 다 되는 건가?”
“둘 다 진짜고, 둘 다 가짜야.”
아이는 무심하게 바코드 스캐너를 들어 내 가슴팍을 조준했다. 붉은 레이저 선이 내 심장 부근을 훑고 지나갔다.
삐빅-!
[미인증 단말기: 강도윤]
[잔액 부족: 남은 수명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바코드가 찍히면 물건이고, 안 찍히면 쓰레기야. 넌 아직 결제가 안 끝났어. 하지만 ‘보호자 0번’은 자기 값을 다 치렀어. 우리 이름을 담보로 잡고서.”
아이는 계산대 아래에서 낡은 카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은 이 병원의 사원증 같기도 했고, 아주 오래된 공장의 출퇴근 카드 같기도 했다. 카드 앞면에는 ‘이진하’라는 이름 위에 ‘강도윤’이라는 글자가 조잡하게 덧씌워져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뒷면에는 붉은색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보호자 0번 대리 퇴근 완료]
“이게 누구야? 보호자 0번이 누구냐고. 윤희 누나야? 아니면 임 선배?”
내 질문에 아이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시스템 관리자의 무미건조한 표정 뒤로, 10년 전 장례식장 구석에서 떨고 있던 아이의 공포가 비쳤다.
“말해줄 수 없어. 그분은 이제 여기 없으니까. 대신…….”
아이가 입을 떼려는 순간, 매점의 유리문이 요란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유리창을 타고 검은 성에가 번졌다. 단순한 성에가 아니었다. 방금 전 냉동고에서 보았던 그 기괴한 검은 우산 무늬였다. 제갈후의 시스템이 이곳까지 촉수를 뻗치고 있었다.
[시스템 공지: 교대 근무자 도착]
[강제 폐기 절차를 중단하고, 신규 인력으로 재배치합니다.]
[배정된 역할: 폐기 담당자]
천장의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이 터져 나왔다. 매장 내의 밝은 빛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도윤 씨, 저 아이 말 믿지 마요!”
윤서하가 흐려지는 팔을 뻗어 내 어깨를 잡았다. 그녀의 눈에 서린 경계심은 아이가 아닌, 아이가 들고 있는 카드에 향해 있었다.
“저건 기록이에요. 누군가가 도윤 씨를 유인하기 위해 조작해둔……!”
“아니, 이건 진짜야.”
나는 아이의 손에서 출퇴근 카드를 낚아챘다. 손바닥의 화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카드의 앞면, 흐릿하게 뭉개져 있던 사진 부분이 서서히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데이터의 노이즈가 걷히고, 그 안에 박제된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숨을 멈췄다.
그곳에 있는 것은 10년 전의 나도, 내가 기억하는 윤희 선배의 얼굴도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옆에서 카드를 훔쳐보던 윤서하의 안색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믿기지 않는 이름을 뱉어내려 했다.
“이 얼굴…… 임 선배가 아니야. 도윤 씨, 이 사람은…….”
윤서하의 목소리가 끊겼다.
카드 하단, ‘보호자 0번’이라고 적힌 칸 옆으로 숨겨져 있던 작은 글자가 뒤늦게 떠올랐다.
그것은 이름이 아니었다. 일종의 자격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남자는, 내가 평생 적으로 생각했거나 혹은 결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이제 알겠어? 너를 이곳에 버린 게 누군지.”
매점의 형광등이 일제히 깨져 나갔다. 어둠 속에서, 출퇴근 카드 속의 남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눈을 치켜떴다.
제목: 107화. 카드 속 남자
지직, 소리와 함께 천장의 형광등이 마지막 비명을 지르며 터져 나갔다.
파편이 비처럼 쏟아지는 찰나의 암전. 그 짧은 어둠 속에서 오직 내 손바닥에 붙은 출퇴근 카드만이 기괴한 인광을 내뿜고 있었다.
평면이어야 할 증명사진 속 남자의 눈동자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위를 향해 치켜떠졌다. 잉크로 인쇄된 눈동자가 아니라, 유리창 너머에서 나를 관찰하는 생명체의 눈이었다.
“……!”
숨이 턱 막혔다. 이 얼굴, 분명 처음 보는데도 낯설지가 않다.
누구지? 내 기억 속 어디에도 이런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남자가 풍기는 서늘하고 무미건조한 공기만큼은 뼛속까지 익숙했다.
어린 시절, 장례식장 구석에서 보았던 차가운 영수증의 감촉. 구급차 뒤편에 붙어 있던 무심한 병원 안내문. 보호자 서명란에 적힌,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갈겨쓴 필적들의 잔상이 한 사람의 얼굴로 응축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행정 절차와 폐기 규정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형상.
윤서하가 아는 ‘임 선배’는 아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리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카드 속 남자의 입술이 달싹였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계산대 위에 놓인 영수증 프린터가 미친 듯이 종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르륵!
[나는 임○○가 아니다.]
[보호자는 이름이 아니라 권한이다.]
[윤희는 결재하지 않았다.]
조각난 문장들이 자막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도윤 씨, 그거 당장 놓으라고요!”
윤서하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하지만 카드는 마치 내 살점과 하나가 된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손바닥의 화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카드의 모서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안 떨어져! 이거, 내 수명을 빨아먹고 있다고!”
내 시야 우측 하단에 뜬 ‘남은 수명’ 수치가 주유기 계기판처럼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보는 공포란 이런 거다. 내 생명이 데이터로 변해 바코드로 찍혀 나가는 꼴을 실시간으로 직관하는 기분.
“가온아! 이거 감정해!”
내 비명에 반가온이 나침반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방향을 가리키는 바늘은 없었다. 나침반의 다이얼은 어느새 편의점 가격표처럼 숫자를 띄우고 있었다.
“이거…… 신분증이 아니에요. 이건 ‘권한 증명서’예요. 아니, 정확히는 ‘대리 퇴근용 마스터 키’에 가까워요. 도윤 씨, 지금 그 손이 이 카드를 ‘결제’하고 있는 거라고요!”
“환불해! 당장 환불하라고!”
“이건 ‘반품 불가’ 상품이라니까요! 영수증에 그렇게 찍혀 있어요!”
반가온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다. 가온의 눈에는 내 수명이 이 매점의 매출액으로 치환되어 보이고 있을 터였다.
그때, 이현우의 태블릿이 기괴한 기계음을 내며 로그를 뱉어냈다. 제갈후의 시스템이 이 매점 안의 우리를 새로운 ‘부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스템 역할 재배정 완료]
[폐기 담당자: 강도윤]
[교대 근무자: 윤서하]
[가격 검수자: 반가온]
[로그 정리자: 이현우]
“도윤 씨, 큰일 났어요. 시스템이 우리를 이 매점 업무에 강제로 묶으려 해요. 로그가 고정되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우리, 여기서 영원히 ‘퇴근’ 못 한다고요!”
이현우의 외침과 함께 매점 유리문 밖에서 검은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제갈후의 우산이 내뿜는 서늘한 기운이다. 그 검은 성에는 가격표와 냉동고 유리에 ‘폐기 완료’라는 붉은 도장을 찍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꼬맹아. 설명 좀 해봐.”
나는 계산대 뒤의 어린 ‘나’를 쳐다봤다. 아이는 카드 속 남자를 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겁에 질린 아이의 눈망울과, 시스템 관리자 같은 무심한 눈동자가 기묘하게 공존했다.
“그 사람은…….”
아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를 버렸지만, 동시에 우리를 여기까지 살려둔 영수증이야. 버려진 영수증이 있어야 우리가 존재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니까.”
무슨 개소리야. 하지만 이해가 갔다. 증명되지 않은 존재는 폐기된다. 이 남자는 나를 살리기 위해 나를 기록물로 만든 건가?
나는 카드를 움켜쥔 채, ‘잔향청취’를 강제로 끌어올렸다. 뇌가 타버릴 것 같은 과부하가 걸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10년 전, 이 매점에서 벌어진 ‘대리 퇴근’의 순간을 봐야만 했다.
―안 돼. 이 아이는 내가 맡은 보호 대상이야. 당신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귀를 찢는 비명이 들렸다. 윤희 선배였다.
환영 속의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서류를 붙들고 있었다. 매점 밖에는 수십 개의 검은 우산들이 장례식장 복도를 가득 메운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장을 거부했다. 아니, 빼앗기지 않으려 저항했다. 하지만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한 남자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짓눌렀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카드 속의 그 남자였다.
―보호자 0번의 권한을 위임받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윤희의 손에서 떨어진 도장을 낚아채, 아이의 이름이 적힌 출퇴근 카드에 사정없이 찍어 내렸다.
[대리 퇴근 완료]
그건 구원이 아니라 강제 종료였다. 윤희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무너졌고, 아이는 감정이 거세된 채 매점 계산대 뒤로 옮겨졌다.
나는 카드 속 남자에게 직접 물었다. 아니, 포효했다.
“나를 버린 거냐, 아니면 살린 거냐! 대답해!”
내 손바닥의 화인이 카드를 뚫어버릴 듯이 타올랐다.
영수증 프린터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마지막 문장을 뱉어냈다.
[둘 다 아니다.]
[너는 반품된 상품이 아니라, 회수 실패 기록이다.]
회수 실패 기록? 내가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분실물 혹은 실패한 데이터라는 뜻인가?
그 순간, 매점의 자동문이 덜컥거리며 잠겼다. 제갈후의 검은 성에가 이미 천장까지 뒤덮었다. 붉은색 ‘폐기 완료’ 도장들이 공중에 떠다니며 우리를 겨누었다.
“으윽!”
강한 반발력에 카드가 내 손바닥에서 튕겨 나갔다.
자유낙하 하던 카드는 하필이면 계산대 위에 놓인 바코드 스캐너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
삐익―!
날카로운 비프음이 매점 안에 울려 퍼졌다. 포스기 화면에 붉은색 알림창이 거대하게 떠올랐다.
[경고: 보호자 0번 임시 권한 이전 대상 감지]
[대상자: 윤서하]
“뭐……?”
윤서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가슴에 달린, 희미해져 가던 이름표가 갑자기 발광하기 시작했다.
나는 보았다.
‘윤서하’라는 글자 아래에서, 마치 낡은 벽지가 뜯겨 나가듯 전혀 다른 이름의 첫 글자가 떠오르는 것을.
[윤희]
10년 전, 이곳에서 아이를 지키려다 쓰러졌던 여자의 이름이, 지금 내 곁에 선 여자의 이름표 위로 겹쳐지고 있었다.
“서하 씨, 당신 이름표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매점의 모든 전등이 일제히 폭발했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서늘한 손이 내 목덜미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