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105화. 장례식장 매점 냉동고 뒤와 이진하라는 이름
제목: 104화. 장례식장 매점 냉동고 뒤
109분.
손바닥에 박힌 검은 결정이 맥동할 때마다 시야가 붉게 일렁였다. 옥상 격리 병동을 빠져나와 계단실로 들어서자마자 비상등이 비명처럼 점멸했다.
“미쳤어요? 제정신이야?”
윤서하가 내 팔을 낚아채듯 붙들었다. 나를 부축하는 그녀의 손길은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숨기지 못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가슴팍에 매달린 ‘윤서하’라는 이름표가 노이즈 낀 TV 화면처럼 지직거렸다.
“그걸 왜 직접 만져요? 데이터 오염되면 당신 존재 자체가 지워질 수도 있었다고!”
“그럼 보고서가 타버리는 걸 구경만 해? 내 이름표가 거기 적혀 있는데.”
나는 욱신거리는 손바닥을 말아 쥐며 대답했다. 농담조로 던진 말이었지만 입안에는 쓴 피 맛이 감돌았다. 윤서하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깨물더니, 대답 대신 내 어깨를 더 단단히 부축하며 길을 텄다.
[경고: 허가되지 않은 데이터 수정 시도가 감지되었습니다.]
[보안 등급: 0층 ‘검은 우산’ 결재 라인 우회 확인.]
벽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기계적인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평범한 병원 안내 방송이 아니었다. 사무적이고 건조하며, 마치 해고 통보를 내리는 인사팀장의 목소리 같은 압박감이 복도에 내리깔렸다.
“도윤 씨, 이거 봐요.”
앞서가던 이현우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병원 도면 위로 붉은 점들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병원 전체가 ‘행정 격리’ 상태로 전환됐어요. 단순한 물리적 폐쇄가 아니에요. 기록망 자체가 우리를 ‘폐기 대상’으로 분류하고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우리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층수 표시판에 숫자가 아닌 문자가 떠올랐다.
[운행 모드: 사망자 전용]
[알림: 산 자는 퇴근 절차를 밟으십시오. 미처리자는 기록에서 삭제됩니다.]
“퇴근하고 싶어 죽겠는데 보내주질 않네, 이 회사는.”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비상계단 문을 걷어찼다. 쾅, 소리와 함께 열린 계단 너머로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2024년의 현대식 병원 계단 위로, 10년 전의 낡은 시멘트 바닥이 겹쳐 보였다.
축축하게 젖은 아이의 발자국이 계단을 따라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오래된 비 내린 뒤의 흙냄새와, 눅눅한 코트에서 나는 특유의 양모 냄새가 섞여 들었다.
도윤아, 여기 있으면 안 돼.
잔향청취가 멋대로 기어 올라왔다. 내 목소리지만 내 것이 아닌, 어린 시절의 기억이 환청처럼 고막을 긁었다.
“윽.”
왼손바닥의 결정이 살을 뚫고 자라나는 감각에 무릎이 꺾였다. 시간이 깎여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단순히 110분이라는 물리적 시간뿐만 아니라, ‘강도윤’이라는 인간의 유통기한이 줄어드는 감각.
“도윤 씨!”
반가온이 재빨리 다가와 내 손바닥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투명한 약봉투를 꺼내 내 손에서 떨어진 작은 결정 조각 하나를 담았다.
“이거, 병원에서 쓰던 안정제 성분이랑 도윤 씨 생존 데이터가 응고된 거예요. 말하자면 강제로 생명을 연장하는 ‘독이 든 열쇠’ 같은 거죠. 이걸 쓸 때마다 도윤 씨의 ‘원본’ 기록은 조금씩 갉아먹힐 거예요.”
“열쇠면 문만 열면 되지. 복제 키 하나 더 판다고 생각할게.”
“농담할 상황 아니에요. 이거 잘못하면 도윤 씨, 나중에 본인이 누군지도 기억 못 하게 될 수도 있다고요.”
가온의 경고를 뒤로하고 우리는 지하로 향했다. 80분, 75분…. 시간은 야속하게 줄어들었다.
지하 1층 장례식장 구역에 들어서자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정전된 복도는 붉은 비상등만이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지만, 복도 끝 매점만큼은 이상하리만치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서울 기록망 0층 - 구역 외 보관소.’
이현우가 말했던 좌표가 바로 저곳이다. 내가 헌터가 되기 전, 먹고 살기 위해 삼각김밥을 채우고 바코드를 찍던 그 지질한 삶의 현장.
“장례식장 매점이 0층으로 가는 포트였다니. 역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호러라니까.”
매점 문을 열자 익숙한 종소리가 들렸다. 딩동.
안은 지나치게 평온했다. 정전 중임에도 냉장고의 컴프레서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거렸고, 매대에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삼각김밥들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위로 덧씌워진 ‘진실’은 달랐다.
잔향청취의 눈으로 본 매점은 거대한 기록의 쓰레기통이었다. 삼각김밥의 라벨지에는 가격 대신 [데이터 용량: 500MB], [유형: 휘발성 기억]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구석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로 향했다. 낡은 ‘브라보콘’ 스티커가 붙은, 하얀 성에가 잔뜩 낀 구식 냉동고였다.
“여기예요. 주소에 적힌 곳.”
냉동고 뒤편으로 손을 뻗으려 할 때, 계산대에 놓인 바코드 스캐너가 제멋대로 붉은 레이저를 쏘아 올렸다.
삐익-
[경고: 해당 상품은 환불이 불가능합니다.]
[알림: 원본명은 결제 완료된 항목입니다. 소유권 변경 불가.]
영수증 프린터가 미친 듯이 종이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소리를 내며 쏟아진 종이들에는 내 이름이 수천 번 반복해서 찍혀 있었다.
[강도윤(원본) - 재고 부족]
[강도윤(사본) - 폐기 예정]
[강도윤(보호자 0번) - 퇴근 미처리]
“이게 다 뭐야….”
이현우가 영수증 조각을 집어 들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윤 씨, 여기 냉동고 뒤가 그냥 공간이 아니에요. 서울 기록망 전체의 백업 데이터가 통과하는 ‘유지보수 통로’예요. 누군가 당신의 기록을 여기에 숨겨놓은 겁니다. 아무도 찾지 않을 가장 흔한 장소에.”
윤서하가 냉동고 옆면을 짚으며 낮게 읊조렸다.
“임 선배… 임○○ 그분이 그랬을 거예요. 윤희 선배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유일한 외부 결재자였으니까.”
“그 임○○이 누군데? 성 말고 풀네임은 몰라?”
내가 묻자 윤서하가 입을 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이름표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이름이… 이름이 안 나와…!”
그녀의 존재가 흐릿해지려 하자 나는 급히 그녀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이름 한 자를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된 존재. 그 ‘임’이라는 자가 이 뒤틀린 시스템의 설계자인지, 혹은 유일한 조력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빨을 악물고 냉동고를 옆으로 밀어냈다. 끼이익, 하는 불쾌한 금속음과 함께 바닥에 고정되어 있던 냉동고가 옮겨졌다.
벽면이 드러났다. 하지만 거기엔 벽지나 시멘트 대신, 낡은 지하철 개찰구와 흡사한 금속 게이트가 박혀 있었다. 게이트 위쪽의 낡은 액정 화면에는 먼지 쌓인 글자들이 깜빡였다.
[접속 경로: 서울 기록망 0층 - 보관소 7구역]
[입장 조건: 보호 대상자 ‘강도윤’의 원본명 입력]
[현재 상태: 퇴근 미처리 (보호자 0번의 승인 필요)]
“내 원본명?”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강도윤이 강도윤이지, 원본명은 또 뭐란 말인가. 내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이 가짜라는 소리인가? 10년 전 기록 속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이 단순히 부모님뿐만이 아니었단 사실이 가슴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도윤 씨, 시간이 없어요! 30분 남았어!”
이현우의 외침이 들렸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진짜 이름. 내가 태어날 때 불렸을 그 이름을 나는 모른다.
그때였다.
정적이 내려앉은 매점 안, 아무도 없는 냉동고 안쪽 깊은 곳에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진아.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10년 전, 젖은 코트를 뒤집어쓴 채 병원 복도를 헤매던 바로 그 아이의 목소리.
이진하. 우리 이름은 그거야.
동시에 게이트의 액정 화면이 미친 듯이 점멸하며 붉은 경고등을 내뿜었다.
[입력 감지: 외부 데이터 간섭]
[경고: 원본 데이터의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냉동고 문이 천천히, 안쪽에서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하얀 냉기 속에서 누군가의 손이 툭, 하고 밖으로 삐져나왔다.
제목: 105화. 이진하라는 이름
“……하진아. 이진하. 우리 이름은 그거야.”
냉동고의 좁은 틈새를 비집고 새어 나온 목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결정(結晶)이었다. 고막에 닿자마자 얼음 파편처럼 부서지며 뇌수를 차갑게 긁어내렸다.
동시에 냉동고의 육중한 문이 끼이익, 비명을 지르며 반쯤 열렸다. 하얀 냉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발목을 적셨다. 그 안개 속에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손 하나가 툭, 밖으로 떨어졌다.
살아 있는 사람의 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정교했고, 시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깨끗했다. 그것은 육체라기보다 잘 빚어진 얼음 조각, 혹은 누군가의 기억을 압착해 만든 ‘기록의 껍질’에 가까웠다.
“이진…….”
무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입술 위에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화끈!
오른쪽 손바닥에 새겨진 ‘강도윤’이라는 화인이 불에 달군 인두처럼 타올랐다. 심장이 두 갈래로 찢기는 통증이 전신을 강타했다. 시야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한쪽 눈에는 2024년의 어두운 매점이, 다른 쪽 눈에는 10년 전 습기로 눅눅한 병원 복도가 겹쳐 보였다.
“강도윤, 멈춰! 대답하지 마!”
윤서하가 내 손목을 으스러질 듯 잡아챘다.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지금 저 이름을 받아들이면 안 돼. 시스템이 너를 ‘원본’으로 인식하는 순간, 지난 10년 동안 쌓아온 ‘강도윤’이라는 데이터는 전부 오류값으로 처리돼서 폐기될 거야.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지금의 네가 지워지는 거라고!”
“하지만 게이트가…… 원본명을 원하잖아.”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갔다.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폐부를 찔렀다.
옆에서 냉동고 안을 살피던 반가온이 장갑 낀 손으로 시체, 아니 기록 인형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이건 시신이 아니에요. 일종의 ‘중단된 프로세스’네요. 10년 전, 이 아이가 죽어야 했던 순간에 누군가 퇴근 처리를 강제로 멈춰버렸어요. 시간을 얼려서 저장해둔 거예요. 이름을 보관함에 가둬두듯이.”
“열쇠는 맞는데, 함정이 너무 대놓고 있네.”
이현우가 게이트 하단의 로그를 넘기며 혀를 찼다. 그의 안경 너머로 붉은 경고등이 어른거렸다.
“형, 여기 봐. ‘이진하’를 입력값으로 넣는 순간 보안 프로토콜이 해제되는데, 그 틈을 타서 외부 시스템이 덮어쓰기를 시도하도록 설정돼 있어. 제갈후 그 양반, 우리가 여기 올 줄 알고 길목에 바이러스를 깔아놨구먼.”
찌지직, 징그러운 소음과 함께 매점의 영수증 프린터가 미친 듯이 종이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특가 세일: 원본명 입력 시 100% 할인 행사]
[사본 ‘강도윤’ 무료 폐기 서비스 포함]
[오늘 자정 마감 임박! 지금 바로 결제하세요!]
악의가 뚝뚝 떨어지는 문구들 사이로, 냉동고 유리면에 서린 성에가 기괴한 기하학적 무늬를 그리며 번져갔다. 검은 우산의 살대처럼 날카롭게 뻗어 나가는 무늬. 제갈후의 흔적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냉동고 밖으로 나온 그 차가운 ‘껍질’의 손을 잡았다.
“도윤아, 위험해!”
윤서하의 외침이 멀어졌다. 손끝이 닿는 순간, 세상의 소음이 소멸했다.
[잔향청취(殘響聽取)가 강제로 활성화됩니다.]
[데이터 동기화율 88%…… 92%……]
코끝을 찌르는 눅눅한 냄새. 젖은 코트에서 나는 특유의 비린내와 오래된 병원 소독약 냄새가 섞여 들었다.
나는 어느새 10년 전의 이 매점에 서 있었다.
지금처럼 정전된 상태도, 폐허도 아니었다. 형광등은 지지직거리며 위태롭게 빛을 내고 있었고, 매대에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삼각김밥과 반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 계산대 앞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비에 젖은 채, 자기 몸보다 큰 검은 우산을 꼭 쥐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이.
아저씨는 언제 와요?
아이가 묻자, 매점 구석에서 서류 뭉치를 뒤지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윤희 선배였다. 그녀의 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초췌했고, 눈가는 붉게 짓물러 있었다.
곧 오실 거야. 그분이 오셔야 네 ‘퇴근’이 취소돼.
윤희 선배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칫하며 손을 거뒀다. 대신 그녀는 붉은 도장이 찍힌 낡은 영수증 한 장을 아이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슬쩍 보인 영수증 뒷면에는 거친 필체로 적힌 문구들이 보였다.
[임시 보관 승인 - 관리번호 00]
[주의: 보호자 0번은 대상자의 퇴근 전까지 로그아웃 불가]
하진아, 잘 들어.
윤희 선배가 아이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강도윤이야. 누가 물어도, 시스템이 물어도 넌 강도윤이어야 해. 이건 이름이 아니라 방패야. 네가 진짜 이름을 다시 불러도 안전해질 때까지, 이 이름 속에 숨어 있어야 해. 알겠지?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보호라기보다 차라리 처절한 응급처치에 가까웠다. 이름을 버림으로써 존재를 숨기는 방식.
장면이 일렁이며 깨져나갔다.
현실의 냉기가 다시 피부를 파고들었다. 나는 여전히 냉동고 앞이었고, 내 손은 기록 인형의 손을 잡고 있었다.
“……도윤 씨! 정신 차려!”
반가온이 내 어깨를 흔들었다.
게이트의 홀로그램 메시지가 붉게 점멸하며 최후통첩을 보내고 있었다.
[원본명을 입력하십시오.]
[미입력 시 30초 후 ‘퇴근 미처리자’ 강제 삭제 절차가 시작됩니다.]
“형, 어떡할 거야? 이대로면 시스템이 우리를 통째로 쓰레기 파일로 인식할 텐데!”
이현우의 다급한 목소리.
나는 두 개의 이름을 동시에 머릿속에 떠올렸다.
윤희 선배가 준 방패, ‘강도윤’.
그리고 이 차가운 냉동고 속에 박제된 진짜 이름, ‘이진하’.
제갈후는 내가 하나를 선택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원본을 선택해 사본인 현재의 나를 파괴하거나, 사본을 고집하다가 시스템에 의해 삭제되거나.
“할인 행사는 질색이라서 말이야.”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손바닥의 화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나는 게이트의 입력창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이름을 타이핑하는 대신, 내 손바닥의 ‘강도윤’이라는 화인을 게이트의 인식 패드에 그대로 눌러버렸다.
동시에 입으로는 다른 이름을 뱉었다.
“이진하.”
[경고: 입력 데이터와 인증 매체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오류: 다중 신원 감지.]
[시스템 충돌 발생—!]
“뭐 하는 거야? 그러다 형까지 튕겨 나간다고!”
이현우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방패를 버리지 않으면서 알맹이를 되찾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스템 자체를 버그 상태로 몰아넣는 것.
화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와 게이트의 푸른 레이저가 뒤엉키며 불꽃을 튀겼다. 매점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냉동고 유리가 박살 나고, 영수증 프린터가 과열되어 폭발했다.
콰앙—!
눈을 뜰 수 없는 섬광이 지나간 후, 사방에 정적이 찾아왔다.
게이트는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자동문처럼,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만 기괴하게 뒤틀린 채 멈춰 있었다.
[서울 기록망 0층 - 보관소 7구역]
[입장 허용: 임시 유예 상태 (ID: 강도윤/이진하)]
“……성공, 한 건가?”
반가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비틀거리며 게이트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그런데 이상했다. 게이트 너머에 있어야 할 거대한 데이터 보관소나 서버실 같은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우리가 방금 빠져나온 매점과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매점이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모든 물건이 정돈되어 있으며, 형광등이 눈부시게 밝은 10년 전의 매점.
그리고 그곳, 계산대 뒤에 한 아이가 앉아 있었다.
조금 전 잔향 속에서 보았던, 검은 우산을 든 어린 나.
아이는 무심한 눈으로 우리를, 아니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려온 점원처럼, 아이가 입술을 뗐다.
“늦었어.”
아이의 목소리가 텅 빈 매점에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보호자 0번은 이미 우리 이름으로 퇴근했어.”
아이가 가리킨 계산대 위에는, 붉은 도장이 찍힌 영수증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결제 완료라는 글자 위에 찍힌 이름은, ‘강도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