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109화. 윤희라는 이름표와 원본 영수증의 구매자
제목: 108화. 윤희라는 이름표
목덜미에 닿은 것은 얼음보다 차가웠다.
단순한 온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유무를 확인하려는 듯이, 혹은 이미 내 영혼의 규격을 알고 있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내 뒷덜미의 신경다발을 눌러 왔다.
“움직이지 마요.”
윤서하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내 목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팍, 그 이름표 위에 얹혀 있었다.
어둠 속에서 포스기의 액정광이 기괴하게 번졌다. 윤서하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 분명 ‘윤서하’라고 박혀 있어야 할 그 플라스틱 조각 위로 잉크가 번지듯 다른 글자가 겹쳐 있었다.
[윤희]
오래된 한지 위에 덧쓴 글씨처럼, 혹은 흉터 위에 다시 돋아난 살점처럼 두 이름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기괴하게 명멸했다.
“서하 씨, 그 이름표…….”
“알아요. 안 떨어진대도요.”
그녀가 거칠게 이름표를 낚아채려 했다. 손등에 핏줄이 돋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하지만 이름표는 옷감이 아니라 그녀의 살갗에 직접 박힌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잡아당길 때마다 그녀의 쇄골 부근 피부가 종이처럼 팽팽하게 당겨지며 ‘지익, 직’ 하는, 영수증이 출력되는 듯한 불길한 소리를 냈다.
“이거 이름표 아니에요. 결제 대기표지.”
윤서하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평소의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떨리는 눈동자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그녀는 윤희일까? 아니면 윤희의 기록이 오염되어 덮어씌워진 희생양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공간이 우리를 낚기 위해 던진 정교한 미끼일까.
내 머릿속은 퇴근 직전의 사무실처럼 복잡하게 꼬여 갔다.
그때, 매점의 진열대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달그락, 달그락.
냉동고 유리가 떨리고, 선반 위 삼각김밥과 컵라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부품들처럼 요동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윤서하의 앞을 가로막으며 손에 쥐었던 출퇴근 카드를 꽉 쥐었다.
카드는 내 손바닥의 화인(火印)과 반응하며 내 수명 데이터를 마치 빨대로 빨아올리듯 흡입하고 있었다.
[잔여 수명 : 42년 11개월 20일… 19일… 18일…]
“야, 이 도둑놈아! 이거 내가 야근 수당 대신 챙긴 목숨이야!”
나는 비명을 지르듯 농담을 내뱉었지만, 등 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카드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을 매개로 포스기와 연결되어, 매점 안의 모든 사물을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스윽, 스으윽.
삼각김밥의 라벨이 바뀌었다. [참치마요]가 있어야 할 자리에 [보호자 : 미지정]이라는 글자가 돋아났다.
아이스크림 냉동고의 가격표는 [대리인 권한 : 만료]로 바뀌었고, 우산 꽂이에 꽂힌 비닐들은 [회수 실패 기록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흐느끼듯 흔들렸다.
“이거 매점 아니에요.”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 점원이 텅 빈 눈으로 윤서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긴 반품 창고예요. 나가야 할 게 못 나가서, 버려야 할 게 안 버려져서 쌓여 있는 곳.”
“꼬맹아, 말은 바로 해야지. 여긴 그냥 지옥이잖아.”
“누나…… 아니, 누나가 아니야. 그런데 누나가 입던 이름을 입고 있어. 저 이름표는 누나의 마지막 퇴근 기록이야.”
점원의 말이 가시처럼 박혔다. 윤서하가 윤희가 아니라는 확신과, 그럼에도 그녀가 윤희의 ‘업보’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도윤 씨, 여기 좀 봐요!”
반가온이 외쳤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 나침반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나침반의 바늘은 이제 방향이 아니라, 상품에 붙은 바코드를 향해 붉은 레이저를 쏘고 있었다.
삑-!
나침반이 바코드를 읽을 때마다 허공에 노이즈 섞인 잔상이 튀어 올랐다.
10년 전의 매점. 피투성이 손으로 카운터를 붙잡고 있는 한 여자. 그녀는 울고 있지 않았다. 다만 결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에서 이름표를 떼어 포스기에 찍고 있었다.
내 이름으로 묶어.
그것은 환청이 아니었다. 내 ‘잔향청취’ 스킬이 10년의 시간을 뚫고 비린내 섞인 목소리를 길어 올린 것이었다.
그 애 이름으로 퇴근시키지 마. 영수증은 버리지 마. 마지막 결제는 내가 할 테니까…….
“제갈후 이 미친 새끼…….”
이현우의 욕설이 들렸다. 그는 태블릿 PC의 전원 선을 매점의 메인 서버에 강제로 연결한 채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도윤 형, 이거 엉망진창이에요. 제갈후의 시스템이 외부에서 ‘폐기 담당자’ 명령을 강제로 주입하고 있어요. 매점 안에 있는 모든 걸 ‘폐기물’로 처리해서 지우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데?”
“더 깊은 곳에 락(Lock)이 걸려 있어요. 10년도 넘은 구형 코드가 ‘보호자 보류’ 명령을 내리면서 제갈후의 명령이랑 충돌 중이에요. 이 구형 코드가…… 윤희라는 이름의 관리자 권한이에요.”
자동문 밖,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검은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제갈후의 우산에서 흘러나온 듯한 그 검은 냉기는 문밖에서 거대한 사람의 형상을 이루며 매점 유리창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릴 때마다 매점 안의 형광등이 파열음을 내며 꺼져 갔다. 이제 남은 것은 계산대의 미약한 불빛뿐이었다.
“윤서하 씨, 이리 와요!”
나는 내 수명을 빨아먹고 있는 카드를 쥔 채 윤서하의 손목을 잡았다. 카드의 권한이 그녀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데이터 전송로’로 삼았다.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도윤 씨, 위험해요! 손 놓으세요!”
“안 돼요. 나 원래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는데…… 이번엔 서하 씨가 밥 한 번 사는 걸로 퉁칩시다. 아, 비싼 걸로요.”
나는 억지로 웃으며 카드를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카드 속 남자의 눈동자가 나를 비웃는 듯했다. 그는 제갈후의 수하도, 그렇다고 우리의 편도 아니었다. 그저 이 거대한 시스템의 오작동을 관망하며, 누가 먼저 ‘폐기’될지 기다리는 냉정한 관리자에 불과했다.
“찾았어!”
그때, 반가온이 폐기 바구니 밑바닥을 헤집다가 낡고 누런 종이 한 장을 치켜들었다.
“10년 전 원본 영수증이에요! 여기 결제 내역이……!”
반가온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가 비춰주는 나침반의 불빛 아래, 영수증의 구매 품목이 드러났다.
거기엔 ‘강도윤’도, ‘이진하’도 없었다.
[구매 품목 : 식별번호 07-서-9208 (윤서하)]
[수량 : 1]
[결제 상태 : 보호자 대리 결제 승인 대기]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윤서하의 이름이 왜 10년 전 영수증에 찍혀 있는 거지? 그녀는 그때 고작 어린아이였을 텐데.
“서하 씨, 이게 어떻게 된…….”
나는 반사적으로 옆에 선 윤서하를 불렀다.
하지만 내 부름에 대답하며 고개를 돌린 것은, 내가 알던 윤서하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이 풀린 채 깊은 어둠을 머금고 있었고, 입술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결제…… 완료해 주세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윤서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방금 전 잔향청취로 들었던, 10년 전 매점에서 죽어갔던 여자.
윤희의 목소리였다.
제목: 109화. 원본 영수증의 구매자
윤서하의 입술이 경련하듯 미세하게 떨렸다. 평소의 차분하고 단호하던 자취는 온데간데없었다. 그 벌어진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것은 사람의 목청을 타고 나오는 소리라기보다, 오래된 기계 장치가 마찰하며 내는 파열음에 가까웠다.
“결제…… 완료해 주세요.”
지지직, 지직. 낡은 라디오의 주파수가 어긋날 때 나는 노이즈가 그녀의 목소리에 섞여 들었다. 동시에 그것은 텅 빈 복도 끝에서 누군가 벽을 긁으며 내뱉는 메아리처럼 공허했다. 10년 전, 이 매점의 주인 혹은 최초의 희생자였을 ‘윤희’의 목소리가 윤서하의 몸을 스피커 삼아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윤 팀장님! 서하 씨, 정신 차려요!”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에 소름이 돋았다. 차갑다. 단순히 체온이 낮은 수준이 아니라, 얼음장 같은 냉기가 옷감을 뚫고 내 신경계를 얼려버릴 듯 파고들었다. 이건 단순한 빙의나 심령 현상이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팍에 박힌 은색 이름표, 그리고 포스기(POS)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퍼런 광원이 ‘윤서하’라는 인간의 데이터 위에 ‘윤희’라는 출력값을 강제로 덧씌우고 있는 시스템 오류였다.
“……으, 윽.”
윤서하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위아래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 투명한 눈동자 너머로, 수면 아래 가라앉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그녀 본연의 의지가 보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소매를 꽉 움켜쥐었다가, 힘없이 풀리기를 반복했다. 내부에서의 저항과 외부에서의 압박이 그녀의 육신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었다.
[지익, 지지직-! 키익!]
매점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맞춰 영수증 프린터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종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륵거리는 기계음이 기괴한 리듬을 형성했다.
나는 결제자가 아니야.
구매자는…… 나를 빌렸다.
서하의 이름은 나중에 끼워 넣은 봉투야.
종이 위에 찍힌 조각난 문장들이 눈송이처럼 바닥으로 흩날렸다. 윤서하의 입이 다시 열렸지만, 목소리는 그녀의 목이 아닌 포스기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내 이름은…… 그냥 껍데기…… 진짜는…… 봉투 안에…….”
“도윤 형! 이거 보세요! 찾았어요!”
반가온이 비명을 지르듯 나를 불렀다. 녀석이 폐기 상품 바구니 밑바닥, 눌어붙은 장판 틈새에서 찾아낸 것은 10년 전의 원본 영수증이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서 검은 잉크들이 마치 살아 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잉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구매자’ 칸 위로 몰려들어, 원래 적혀 있어야 할 이름을 까맣게 지워버리고 있었다.
“잉크가…… 글자를 가리고 있어요. 바코드를 찍어서 강제로 읽어야 할 것 같은데, 리더기가 반응을 안 해요!”
“반응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대가를 원하는 거야. 이 시스템은 공짜가 없으니까.”
이현우가 태블릿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차갑게 덧붙였다. 녀석의 안경 렌즈 너머로 붉은 로그 기록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제갈후 이 미친놈,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었어. 로그를 분석해 보니 이 영수증의 원래 소유자가 아니야. 상태창에 ‘재발행자’라고 떠. 남이 결제한 영수증을 훔쳐서 그 위에 자기 폐기 명령을 덧씌운 거야. 그래서 시스템이 충돌하고 있는 거고. 이대로 두면 시스템이 매점 전체를 ‘손실 처리’해서 소멸시킬 거야!”
[쿵-!]
그때, 매점 자동문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밖을 뒤덮고 있던 검은 성에들이 순식간에 응축되더니, 기괴한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검은 우산을 쓴 그림자 하나가 문틈 사이로 가느다란 팔을 밀어 넣었다.
그것은 사람의 팔이 아니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젖은 우산살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뼈대를 이루고, 그 사이사이를 ‘유통기한 만료’, ‘할인 불가’, ‘반품 요망’ 같은 빛바랜 가격표 스티커들이 근육처럼 겹겹이 이어 붙인 끔찍한 형상이었다.
우산살 팔이 매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공간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의 압박감이 밀려왔다.
“히익! 오지 마! 오지 마세요!”
카운터 밑으로 기어 들어간 어린 점원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아이는 나를 보며 절박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거 찍지 마요! 아저씨! 원본 영수증을 스캐너에 찍으면 안 돼! 찍는 순간 누군가의 이름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단 말이야! 진짜로 영영 없어진다고!”
우산살 팔이 선반을 거칠게 훑었다. 과자 봉지들이 터져 나가고 캔 음료들이 바닥을 뒹굴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놈이 노리는 건 명확했다. 윤서하, 혹은 그녀의 몸을 빌려 권한을 행사하려는 윤희의 데이터였다.
“형, 어떡해요? 제 수명을 더 넣을까요? 아니면 마력이라도!”
반가온이 내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나는 영수증과 포스기를 번갈아 보았다. 수명? 기억? 이미 내 수명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기억은 태생부터가 넝마 조각이다. 하지만 내게는 지금 이 시스템이 ‘오류’ 혹은 ‘쓰레기’라고 판정할 만한 데이터가 하나 더 있었다.
“아니, 내 이름 일부를 던져준다.”
“네? 그게 무슨…….”
“이진하든 강도윤이든, 어차피 하나는 남는 거잖아. 협회 놈들이 나보고 ‘회수 실패 기록물’이라며? 그럼 그 실패한 기록이나 가져가라고 해.”
나는 반가온의 손에서 영수증을 낚아채 포스기 스캐너 앞으로 거칠게 가져갔다. 붉은 레이저가 허공을 가르며 내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대상 식별 중…….]
[강도윤 / 이진하 / 미등록 데이터]
[데이터 충돌 발생. 폐기 기록물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이 빌어먹을 시스템아. 1+1 행사 상품도 아니고 이름이 두 개라 미안하게 됐다. 포인트 적립은 필요 없으니까 빨리 결제나 해.”
스캐너의 붉은 레이저가 내 손등과 영수증의 바코드를 동시에 훑었다.
순간, 세상의 해상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듯한 감각이 몰려왔다. 마치 내 존재 자체가 거친 지우개로 문지른 것처럼 뿌옇게 휘발되는 기분이었다. ‘강도윤’이라는 이름의 획 하나가 생살이 뜯겨 나가듯 떨어져 나가고, ‘이진하’라는 이름의 받침 하나가 연삭기에 갈려 나가는 통증이 전신을 훑었다.
“커흑……!”
나는 신음하며 윤서하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이 미친 미스터리 속에서 유일하게 실존하는 온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눈앞이 번쩍이며 하얀 노이즈가 시야를 가렸다.
[띠링-! 결제가 승인되었습니다.]
[구매자 정보의 마스킹이 일부 해제됩니다.]
포스기 화면에 까맣게 뭉쳐 있던 잉크들이 비명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가려져 있던 글자들이 드디어 그 형체를 드러냈다.
[구매자 : 보호자 0번 (점장 권한 위임 계정)]
“보호자…… 0번?”
이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단일 인물이 아니야. 이건 권한을 여러 명이 돌려쓰는 공유 계정인데? 그리고 최초 생성지가 협회 데이터베이스가 아니야. 여기, 이 장례식장 매점의 ‘점장’ 권한으로 처음 만들어졌어.”
협회가 만든 사냥터 시스템이 아니라, 이 매점의 주인이 협회보다 먼저 시스템의 근간을 만지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때였다. 내 주머니 속, 낡은 카드 안의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평소의 빈정거림은 한 톨도 섞이지 않은, 얼음처럼 차갑고 묵직한 경고였다.
강도윤, 거기서 멈춰라. 점장을 찾지 마.
“뭐? 이제 와서?”
그놈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10년째 이 공간 안에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다.
카드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 발밑에서 기괴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고오오오-]
매점 바닥의 타일 하나가 육중한 기계음을 내며 옆으로 밀려났다. 편의점 도시락 진열대 바로 밑, 평범한 시멘트 바닥이어야 할 공간에 아래로 내려가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입을 벌렸다.
습하고 곰팡이 냄새 섞인 지하의 공기가 확 끼쳐 왔다. 먼지 쌓인 계단 입구에는 낡은 플라스틱 명패 하나가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점장실]
하지만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는 누군가 칼로 파낸 듯 거칠게 움푹 패어 비어 있었다.
그때, 내 손을 잡고 있던 윤서하가 스르륵 손을 놓았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계단 아래의 심연 같은 어둠을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윤희의 목소리가 그녀의 입술을 빌려 서늘하게 흘러나왔다.
“점장님.”
그녀가 홀린 듯 어둠 속으로 한 발짝을 내디뎠다.
“교대하러 왔습니다.”
윤서하의 신형이 지하의 어둠 속으로 집어삼켜지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