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133화. 이미 경과한 사망 시각과 백설의 이름
제목: 132-133화. 이미 경과한 사망 시각과 백설의 이름
제목: 132화. 이미 경과한 사망 시각
눈앞의 모니터가 지지직거리며 붉은색 노이즈를 뿜어냈다. 망막을 찌르는 선명한 글자들. [대상자: 강도윤] 뒤에 붙은 [사망 예정 시각: 15년 전]이라는 문구가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와,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비명이 나오려는 걸 필사적으로 농담으로 틀어막았다.
“보통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처분을 하지, 이렇게 대놓고 ‘넌 이미 죽었어야 할 고기’라고 광고하진 않잖아요. 협회 복지 수준 진짜 실망인데.”
하지만 내 빈정거림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었다. 아니, 이건 뛰는 게 아니라 발작에 가까웠다. 명치 끝에서부터 서늘한 냉기가 올라왔다. 내 몸이 지금 이 공간, 이 시간대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시스템이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헌터협회 지하 감사실의 세련된 인테리어가 비늘처럼 벗겨져 나갔다. 그 너머로 드러난 것은 15년 전의 잔상이었다. 곰팡이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비릿한 공기.
나는 어느새 낡은 철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작고 가느다란 팔. 그 팔목에 채워진 플라스틱 환자 팔찌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잔향청취.’
능력이 제멋대로 폭주하며 귓가에 비명을 질러댔다. 아니, 비명이라기엔 너무나도 사무적이고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야, 야! 너 뭐야? 왜 아직도 숨을 쉬어? 내 바코드에는 이미 ‘반납 완료’라고 찍혔단 말이야! 행정 오류 내지 말고 얼른 눈 감아!]
환자 팔찌가 히스테릭하게 웅얼거렸다. 나는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입가에 씌워진 산소마스크가 헐떡이는 내 숨을 억지로 이어 붙이고 있었다.
[푸우……하아……아저씨, 나 힘들어……이 꼬맹이 폐활량이 너무 딸려요. 기한 지난 산소 공급하는 것도 유상 서비스라고요!]
산소마스크의 투덜거림 너머로, 육중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병실 문이 열렸다. 그곳엔 젊은 시절의 형, 강도원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정체불명의 존재.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 부분만 누군가 검은 잉크로 지워버린 것처럼, 목 위로는 흐릿한 안개만이 자욱했다. 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선명했다. 길고 검은 우산. 물방울 하나 맺히지 않은 그 기괴한 우산 끝이 바닥을 톡, 톡 쳤다.
“약속과는 다르군, 강도원.”
얼굴 없는 존재, ‘최초 점장’의 목소리가 병실 안의 온도를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뜨렸다.
“이 아이는 던전 붕괴 사고의 매몰자 명단에 들어갔어야 했다. 기록은 이미 그렇게 쓰였지. 그런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지?”
형의 뒷모습이 보였다. 평소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고, 잔뜩 짓눌린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형의 손에는 헌터협회 내부 문서로 보이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살려야 했습니다. 제 동생입니다.”
“기록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기록이 틀렸다면,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해.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존재하게 하려면, 그만큼의 ‘공백’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나?”
최초 점장의 검은 우산이 내 침대맡을 향했다. 우산 끝이 내 가슴팍을 겨누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통각이 밀려왔다.
“거래를……하겠습니다.”
형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도윤이의 이름을 지워주십시오. 모든 기록에서, 세상의 모든 기억에서 강도윤이라는 존재를 삭제해 주십시오. 대신 제가……제가 그 ‘공백’을 채우겠습니다.”
“이름 삭제라. 퇴근하지 못하는 자들의 명단에 올리겠다는 뜻인가? 흥미롭군.”
최초 점장이 품 안에서 낡은 도장을 꺼냈다. 잉크도 묻지 않은 그 도장이 형이 내민 서류 위에 찍히는 순간, 15년 전의 병실이 깨진 유리창처럼 박살 났다.
“허억!”
숨이 터져 나왔다.
다시 현재의 지하 감사실. 내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려 할 때, 누군가 내 팔을 강하게 낚아챘다. 차갑지만 단단한 손길. 윤서하였다.
“강도윤 씨! 정신 차려요!”
그녀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하지만 시스템은 멈추지 않았다. 감사실의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경보음을 울려댔다.
[경고: 기한 초과 사망자 발견.]
[시스템 재분류 중: 대상자 ‘강도윤’을 ‘미수 사망 플래그’로 강제 전환합니다.]
[데이터 삭제 시퀀스를 재개합니다.]
발밑의 그림자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내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형체가 없는 어둠이 나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15년 전, 내가 죽었어야 했던 그 순간의 중력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윤 조사관님, 이거……이거 좀 놓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나 지금 되게 위험한 불량품이라서, 옆에 있으면 같이 폐기 처분될지도 몰라요. 내 팔자 소관이라니까, 얼른……”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요.”
윤서하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나를 직시했다. 그녀는 내 팔을 놓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쪽으로 더 세게 잡아당겼다.
“당신은 여기 있어요. 내가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한, 당신은 아무 데도 못 가.”
그녀의 몸 주변으로 푸른 빛의 마력이 휘몰아쳤다. ‘보호자 0번’의 권한. 시스템의 삭제 명령과 윤서하의 고정 명령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주변의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서하의 입술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시스템의 제약을 억지로 버텨내고 있는 증거였다.
“왜……왜 이렇게까지 해요?”
“말했잖아요. 내 일이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가웠지만, 나를 붙잡은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홀로그램 화면 구석, 붉은색 노이즈에 가려져 있던 ‘사망 예정 명단’의 부록 페이지가 강제적으로 펼쳐졌다. 이현우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도윤 씨! 저거 보세요! 명단 다음 줄!”
나는 흐릿해지는 시야를 고정하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강도윤의 이름 바로 밑, 같은 날짜, 같은 시각으로 묶여 있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15년 전 던전 붕괴 사고 당시, 강도윤과 생명력이 동기화되어 ‘대역’으로 설정되었던 대상.
[연결 대상자: 프로젝트 코드 ‘백설(白雪)’]
[현재 등록명: 윤서하]
그 아래에는 붉은색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사망 사유: 강도윤의 사망 플래그 대리 수령.]
내 숨이 멎었다. 윤서하의 창백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내가 살아남은 대가가 형의 거래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내가 15년 동안 훔쳐온 그 숨이, 원래는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그리고 화면 가장 밑바닥, 숨겨져 있던 마지막 문구가 서서히 떠올랐다.
[두 대상자의 생존 시간은 합산 관리됨. 일방의 퇴근(사망) 시, 남은 시간은 자동으로 소멸함.]
윤서하가 나를 붙잡고 있는 건 단순히 나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내 팔을 놓는 순간, 우리 둘 중 누구도 내일 아침을 맞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감사실의 철문 너머로 툭, 툭,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검은 우산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제목: 133화. 같은 시각에 묶인 사람
툭, 툭, 툭.
일정한 박자의 타격음이 고막을 긁었다. 단순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진동은 현재의 내부 감사실 철문을 울림과 동시에, 15년 전 잔상 속 지하 격리 병동의 차가운 철제 침대 다리를 타고 내 손끝까지 전해졌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두드리는 기괴한 노크 소리.
나는 떨리는 눈으로 눈앞의 반투명한 시스템 부록을 응시했다.
[연결 대상자: 프로젝트 코드 ‘백설(白雪)’]
[현재 등록명: 윤서하]
[사망 사유: 강도윤의 사망 플래그 대리 수령.]
[두 대상자의 생존 시간은 합산 관리됨. 일방의 퇴근(사망) 시, 남은 시간은 자동으로 소멸함.]
심장이 바닥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헌터로 살며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고, 내 등 뒤에 붙은 사망 플래그를 떼어내며 구질구질하게 버텨왔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나조차 모르는 사이에 내 죽음의 청구서가 다른 사람의 주머니로 넘어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 어떤 치명상보다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윤서하 씨, 이게…….”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내가 죽으면 그녀도 죽는다. 아니, 그녀가 내 죽음을 대신 ‘수령’하고 있다는 건, 이미 15년 전부터 그녀의 생존 시간은 나를 위해 깎여나가고 있었다는 뜻 아닌가. 죄책감이 목을 조여 왔다.
그런 내 상태를 알아차린 듯, 윤서하가 내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평소처럼 서늘하고, 지극히 사무적인 수사관의 눈빛이었다.
“강도윤 씨, 표정 푸세요. 가해자 같은 표정 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거기 적힌 문구는 명백히…….”
“‘대리 수령’입니다. ‘대리 집행’이 아니라.”
윤서하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녀는 시스템 창의 붉은 문구들을 마치 오기입된 보고서를 검토하듯 차갑게 훑어 내렸다.
“행정적으로 대리 수령은 물건을 대신 보관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 물건의 효력이 발생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즉, 내게 온 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강도윤 씨에게 가야 할 ‘죽음이라는 이름의 청구서’예요. 내가 그걸 들고 있는 한, 발행처인 시스템은 강도윤 씨에게 중복 청구를 할 수 없죠.”
“……말장난처럼 들리는데요.”
“원래 법과 시스템은 말장난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여길 보세요. ‘생존 시간 합산 관리’. 이건 저주가 아니라 일종의 공동 계좌 같은 거예요.”
옆에서 로그를 미친 듯이 분석하던 이현우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거들었다.
“윤 팀장님 말이 맞아요, 도윤 형. 이건 단순한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저주가 아니에요. 회계 장부로 치면 ‘결산 유예’ 상태에 가깝습니다. 둘 중 하나가 퇴근, 그러니까 사망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서로의 생존 시간을 공유하며 시스템의 추적을 따돌리는 구조예요. 물론, 한쪽이 0이 되면 연쇄적으로 파산하겠지만…… 지금 당장 죽는다는 소린 아니라고요.”
이현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분석은 정확했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의 서늘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때, 반가온이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백설…….”
가온의 시선은 윤서하의 어깨너머, 15년 전의 잔상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서하 언니한테서 느껴지는 이 냄새, 이상해요. 차가운 눈 같은데,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는 아니에요. 아주 오랫동안…… 소중하게 보관된 첫눈 같은 느낌? 도윤 아저씨의 기억 속에 언니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아주 옛날부터.”
윤서하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 일부가 결손되어 있다고 했다. 협회 고위직의 자녀로 자라온 그녀에게 이런 ‘격리 병동’의 코드명이 붙어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툭, 툭, 툭.
다시 울리는 노크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잔향청취] 스킬을 끌어올렸다. 소리의 근원, 즉 저 철문과 바깥의 우산이 내뱉는 비명에 집중했다.
—아오, 진짜. 언제까지 두드려야 하는 거야? 나도 퇴근하고 싶다고!
—안에 산 사람 있는 거 다 알아. 규정 위반이야, 규정 위반! 퇴근 도장 안 찍힌 놈들이 왜 아직도 사무실을 점거하고 난리야?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목소리는 의외로 경박하고 짜증 섞인 투덜거림이었다. ‘최초 점장’의 위압적인 기운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밖의 놈, 점장이 아니야.”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나는 철문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점장이 남기고 간 ‘잔업’이거나, 아니면 그놈 대신 보낸 ‘대리 감사관’ 같은 놈이야. 그러니까 저렇게 짜증을 내는 거지. 제때 퇴근 못한 직장인처럼.”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머릿속의 복잡한 퍼즐 조각들이 맞물렸다. 시스템은 나를 ‘기한 초과 사망자’로 분류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고, 윤서하가 내 사망 플래그를 대리 수령함으로써 행정적 공백이 생겼다.
나는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이건 내가 가장 잘 아는 영역이다. 부조리한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
“윤서하 씨, 보호자 0번 권한 아직 유효하죠?”
“네. 이 공간 내에서는 제가 최우선 순위입니다.”
“그럼 이의 제기를 하세요. 시스템은 저를 ‘사망 플래그 미수자’라고 부르지만, 반대로 말하면 아직 죽지 않은 ‘생존자’라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나는 철문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무급으로 15년째 생존 중인 사람한테 퇴근 처리를 강요하는 건, 노동법 위반 아닙니까? 난 내 밀린 수당 다 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퇴근 못 한다고 전해줘요.”
“……강도윤 씨다운 억지군요.”
윤서하는 작게 실소하며 단말기를 조작했다.
[보호자 0번: 피보호자 ‘강도윤’에 대한 상태 재분류 이의 제기.]
[근거: 등록되지 않은 초과 생존 기간에 대한 정산 미비.]
[시스템이 판단을 보류합니다…….]
문밖의 존재가 당황한 듯 노크를 멈췄다. 시스템의 논리 회로에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었다.
그 찰나, 감사실 구석의 공간이 일렁였다. 15년 전의 잔상이 더욱 짙어지며, 어린 내 침대 옆에 놓여 있던 또 다른 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작은 이동식 유아 침대였다. 그 안에는 하얀 시트에 덮인 작은 아이가 누워 있었다. 아이의 머리맡에는 ‘프로젝트 코드: 백설’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어린 나는 손을 뻗어 그 유아 침대의 난간을 잡고 있었다. 15년 전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병동, 같은 시각에 묶여 서로의 체온을 나누던 사이였다.
“기억났어…….”
윤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시선이 잔상 속의 유아 침대에 고정됐다.
“그때 나를 깨웠던 목소리. ‘자면 안 돼, 퇴근 시간 멀었어’라고 말하던 애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부 감사실의 철문이 끼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검은 우산의 끝자락이 문틈 사이로 밀려 들어왔다.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무기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문 너머에서 나타난 것은 거대한 괴물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점장도 아니었다.
바닥을 구르는 것은 낡은 사원증 하나였다.
검은 우산 아래, 형체도 없는 연기 같은 손이 그 사원증을 밀어 넣고는 그대로 밤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사원증을 집어 들었다.
그곳에는 이미 ‘퇴근’ 도장이 찍힌 빳빳한 카드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원증의 주인 칸에 적힌 이름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이름이었다.
[대리 감사관: 강도원]
내 형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사원증 뒷면에는 핏자국 섞인 거친 글씨로 한 문장이 휘갈겨져 있었다.
도윤아, 아직 퇴근하지 마라. 인수인계할 게 남았다.
철문 너머에서 형의 서늘한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나는 사원증을 꽉 쥐었다.
형은 죽은 건가, 아니면 죽음조차 대리하고 있는 건가.
사원증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잔향이 나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어둠이 내려앉은 문밖을 응시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를 찾아가야 할 차례였다.
사원증 속 형의 증명사진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나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은, 15년 전 병실에 누워 있던 어린아이와 똑같이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