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75화. 수동 심사관과 과거를 대신 기억하는 그릇
제목: 74화. 수동 심사관은 웃지 않는다
딩동.
은행 창구에서나 들릴 법한 맑고 고운 전자음이 지하 벙커의 습한 공기를 갈랐다. 방금 전까지 내 기억을 통째로 뜯어가려던 기괴한 번호표 발급기는 이제 없었다. 대신 B-12호 문 안쪽의 공간은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검은 우산 천들을 덕지덕지 이어 붙여 만든 천막이 천장을 가리고, 그 아래로 낡은 나무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노이즈가 자글자글한 스피커가 달려 있었는데, 거기서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수동 심사 대기 번호 001번. 고객님은 1번 창구로 모시겠습니다.]
“고객님은 얼어 죽을.”
나는 입술을 깨물며 손목을 만졌다. 다행히 내 손등의 낙인은 더 이상 번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전기 너머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도윤 씨! 지율이 손목에…… 이 검은 자국, 점점 진해져요. 마치 살점 안으로 글자가 새겨지는 것처럼!
윤서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치직거리는 무전기 너머로 들려왔다. 한지율의 거친 숨소리도 섞여 있었다. 놈들이 내 기록을 채굴하는 데 실패하자, 나와 연결된 ‘관계자’들에게 화풀이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강도윤, 저거 뭐야?”
이현우가 턱짓으로 창구 쪽을 가리켰다. 검은 우산 천막 너머로 누군가 의자를 드르륵 끌며 앉는 기척이 났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사람의 형상을 흉내 내려는 의지조차 없어 보였다.
놈의 몸체는 수만 장의 서류철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기둥 같았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낡은 황색 서류 봉투 하나가 덩그러니 붙어 있었고, 그 봉투 위에는 이름 대신 아무런 정보도 담기지 않은 빈 바코드가 인쇄되어 있었다.
놈의 손가락은 부러진 검은 우산살 수십 개를 엮어 만든 것처럼 가늘고 길었다. 그 날카로운 ‘손가락’들이 서류 뭉치를 넘길 때마다 서걱, 서걱 하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저게 심사관이야? 무슨 동사무소 귀신도 아니고.”
나는 빈정거리며 한 걸음 다가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여기서 쫄면 끝장이다. 헌터 생활 3년 차에 배운 게 있다면, 귀신보다 무서운 건 밀린 카드값이고, 괴물보다 짜증 나는 건 말이 안 통하는 공무원이다. 그리고 지금 내 앞의 존재는 그 두 가지를 합쳐놓은 것 같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서류철 심사관이 우산살 손가락을 까닥이며 내가 아까 쑤셔 넣었던 오염된 데이터들을 훑었다.
[……신청인 강도윤. 어머니 성함: 엄마. 첫 보호자: 24시간 편의점 ATM 기기. 2004년 6월 3일의 기억: 아, 퇴사하고 싶다. 박철수를 고소하지 않은 사유: 가성비가 안 맞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감정이 없었지만, 서류 봉투 면상이 미세하게 구겨지는 게 보였다. 놈은 한참 동안 내가 입력한 쓰레기 정보들을 읽어 내려갔다.
만약 놈에게 감정이 있었다면 지금쯤 책상을 엎었으리라. 이건 명백한 행정 방해이자 시스템에 대한 모독이니까. 하지만 놈은 ‘수동 심사관’이었다. 규정에 묶인 존재.
[데이터의 일관성이 심각하게 훼손됨. 시스템 로직상 수용 불가. 하지만 신청자의 직접 이의 제기가 접수되었으므로 폐기할 수 없음. ……아, 정말이지 곤란하군.]
“곤란하면 그냥 퇴근해. 나도 집에 가고 싶거든.”
내가 툭 던지자, 심사관의 바코드 얼굴이 나를 향해 천천히 돌아갔다.
[장난은 삼가라, 기록의 오염원. 네가 던진 이 쓰레기 같은 정보들 때문에 ‘후견 기록실’의 인덱스가 꼬여버렸다. 대리 보관 계약서의 조항에 따르면, 기록의 주인이 자의로 정보를 오염시킬 경우…….]
“조항 따지기 전에 내 동료들 손목에 생긴 낙인부터 지워.”
나는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현우가 내 어깨를 짚으며 경고의 눈빛을 보냈지만 멈추지 않았다.
“수동 심사 중이라며? 그럼 심사가 끝날 때까지는 피심사자의 신변을 보존하는 게 원칙 아니야? 밖에서 내 동료들 기록이 깎여나가는 건 명백한 절차 위반이지. 안 그래?”
심사관의 우산살 손가락이 멈칫했다. 놈은 짜증 섞인 기계음을 내뱉으며 서류 더미를 뒤적였다.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네가 제출한 답변이 ‘제갈후(諸葛候)’의 인가 범위를 벗어났다. 2004년 6월 3일, 네가 포기했던 그 계약의 잔향이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너는 기억을 거부하고 있지.]
제갈후.
72화에서 들었던 이름이 다시 한번 명확하게 들려왔다.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어떤 직책 같기도 한 그 명칭. 그리고 2004년 6월 3일.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흐릿한 날이다. 어머니가 사라졌던 날이자, 내가 처음으로 ‘시스템’의 그림자를 보았던 날.
-도윤 오빠…… 으윽!
무전기에서 한지율의 짧은 신음이 들렸다.
-지율아! 정신 차려! 도윤 씨, 지율이 동기화율 수치가 미쳤어요! 3%밖에 안 남았는데, 여기서 더 오르면……!
윤서하의 다급한 외침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지율의 동기화율이 낮다는 건 그만큼 ‘시스템’에 덜 오염됐다는 뜻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시스템이 강제로 동기화를 시도할 때 버틸 힘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심사관. 거래하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놈의 바코드 얼굴을 노려봤다.
“그놈의 제갈후인지 뭔지 하는 놈이 남긴 계약, 내가 다시 검토하겠어. 대신 밖에 있는 사람들 낙인부터 멈춰. 그건 내 기록이지 걔들 기록이 아니잖아.”
[기록은 전염된다. 네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 너의 오염은 그들의 부채가 되지. 멈추고 싶다면 담보를 내놔라.]
“담보?”
[너의 이름, 너의 기억, 혹은 너의 관계 중 하나. 무언가를 살리려면 무언가를 지워야 하는 것이 대리 보관 계약의 기본 원칙이다.]
심사관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텅 빈 칸들이 가득했다. 내가 무엇을 적느냐에 따라 윤서하와 한지율의 운명이 결정될 터였다.
이현우가 내 팔을 붙잡았다.
“강도윤, 함부로 사인하지 마. 저 새끼들 말장난에 놀아나는 거야.”
“알아요. 근데 지금 안 적으면 지율이가 죽어.”
나는 펜을 잡았다. 손이 떨렸다. 내 이름을 지워야 할까? 아니면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무엇을 내줘야 놈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때였다. 심사관의 서류 봉투 얼굴에서 지직거리는 웃음소리 같은 소음이 새어 나왔다.
[아, 정정할 사항이 생겼군. 신청자 강도윤.]
“뭐?”
[담보 설정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외부에서 새로운 기록이 갱신되었다. 보증인 윤서하의 지위가 변경되었군.]
스피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서늘해졌다.
[윤서하는 더 이상 너의 보증인이 아니다. 그녀는 방금 너의 기록에 대한 ‘대리 집행권’을 획득했다. 이제 그녀는 너의 보호자가 아니라, 네가 평생 갚아야 할 기록의 ‘채권자’로 재분류되었다.]
“채권자……? 서하 씨가?”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가 나를 상대로 뭘 했다는 건데?
혼란에 빠진 내 귓가에 무전기 너머 한지율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도윤 오빠, 보여요! 6월 3일…… 그날 오빠가 본 게……!
지익, 치지직!
무전이 강한 노이즈와 함께 끊겼다. 그리고 내 눈앞의 심사관이 처음으로 기괴하게 입구멍을 벌리며 말을 맺었다.
[심사 종료. 한지율의 동기화율이 임계치를 돌파했다. 축하한다, 강도윤. 이제 네 과거를 대신 기억해 줄 ‘그릇’이 완성되었군.]
창구의 검은 우산들이 일제히 접히며 사방이 어둠으로 내려앉았다.
멀리서, 누군가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제목: 75화. 과거를 대신 기억하는 그릇
낡은 스피커에서 ‘치익’ 하는 노이즈가 터져 나왔다. 은행 창구에서나 들릴 법한 단조로운 호출음이 귓가를 찔렀다. 서류철로 된 몸뚱이를 뒤틀며 수동 심사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 우산살 같은 손가락이 허공을 휘젓자, 눈앞에 떠 있던 ‘수동 심사 창구’라는 글자가 지지직거리며 일그러졌다.
“금일 업무 종료되었습니다. 미비된 서류는 채권자에게 직접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아, 만족도 조사는 링크를 보내드릴 테니 잊지 마시고요.”
심사관의 목소리는 녹음된 안내 멘트처럼 건조했다. 바코드뿐인 얼굴이 나를 한 번 훑더니, 그대로 검은 우산 천막 속으로 스르륵 녹아들었다. 창구가 접히는 소리는 마치 거대한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야, 강도윤! 정신 차려!”
이현우의 억센 손길이 어깨를 흔들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대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사관이 사라진 자리에는 검은색 기름 같은 액체와 함께 종이 한 장이 덜렁 떨어져 있었다.
[기록 압류 예고 통지서]
대상자: 강도윤
사유: 후견 기록실 인덱스 혼선 및 대리 보관 계약 불이행.
특이사항: 보증인 윤서하의 권리 승계(채권자로 재분류).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살다 살다 내 기억을 압류하겠다는 예고장은 처음 받아본다. 사채업자도 추억까지 털어가지는 않는데, 이 시스템이라는 놈들은 인정사정이 없다.
“도윤아,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채권자? 윤 팀장이 왜?”
“몰라, 나도. 그 사람이 멋대로 내 과거를 경매에 부쳤나 보지.”
나는 농담을 던지며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하지만 농담은 방어기제일 뿐, 머릿속은 이미 과부하 상태였다. 윤서하가 채권자가 됐다고? 그 말은 이제 내 기억의 소유권이나 다름없는 ‘기록 회수 권한’이 그녀에게 넘어갔다는 뜻이다. 나를 지켜주던 보증인이 아니라, 내가 빚을 갚아야 할 대상이 됐다는 소리다.
그때였다. 끊겼던 무전기에서 지독한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아, 윽! 아아악!
한지율의 비명이었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한 게 몸 안으로 억지로 밀고 들어올 때 내는 짐승 같은 울부짖음.
“한지율! 지율아!”
이현우가 무전기를 붙들고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건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아니, 숨소리 사이에 다른 소리가 섞여 있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기계적인 비프음, 그리고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
순간, 시야가 뒤집혔다.
검은 우산 천막이 사라진 틈새로, 대기실 바닥의 균열 사이로 환상이 밀려들었다. 아니, 이건 환상이 아니다. 한지율의 눈을 통해 전이되는 ‘기억’의 조각이었다.
‘동기화율 임계치 돌파.’
심사관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한지율이 내 과거를 대신 기억할 ‘그릇’이 되었다는 그 말이.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20년 전의 풍경이 강제로 망막에 박혔다.
2004년 6월 3일.
눅눅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낡은 병원의 복도였다. 조명은 깜빡거리며 자지러졌고, 벽면에는 곰팡이가 지도처럼 피어 있었다. 어린아이의 시점이었다. 내 시점이었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박철수였다. 지금보다 훨씬 젊고, 훨씬 살벌한 기운을 풍기는 남자. 그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도윤아, 여기 사인해라.
박철수가 내민 종이에는 ‘후견 기록실 대리 보관 계약서’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내 어린 손목에는 흰색 병원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 위에는 기괴하게도 숫자가 아닌 바코드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거 하면, 엄마 볼 수 있어요?
어린 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 속의 나는 울고 있었다. 박철수는 대답 대신 내 손에 펜을 쥐여주었다. 서명란에는 이미 한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후견인: 제갈후(諸葛候)]
한지율의 비명과 함께 장면이 툭 끊겼다. 다시 대기실의 차가운 바닥이 느껴졌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바닥을 긁었다. 방금 본 게 뭐지? 제갈후? 그 이름이 왜 거기서 나와?
“도윤아! 한지율 상태가 이상해!”
이현우가 나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무전기 너머 한지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너무 차분해서 기괴할 정도였다.
……보여요. 2004년. 병실. 아저씨가 서 있었고, 형은 울고 있었어.
“지율아, 그만해! 연결 끊어!”
내가 소리쳤지만 한지율은 멈추지 않았다.
아, 그런데…… 이상해요. 내 기억이…… 내가 유치원에서 찍었던 사진이 안 보여요. 대신 그 자리에 형의 병원 팔찌가 들어와 있어. 도윤 형, 내 머릿속이 형 걸로 채워지고 있어. 아파…… 너무 뜨거워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릇이 된다는 것의 대가. 한지율은 내 과거를 대신 보관하는 대신, 자신의 기억을 소거당하고 있었다. 내 부채를 대신 짊어지며 통증까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제길, 이게 무슨 시스템이야! 왜 지율이가 내 똥을 치워야 하냐고!”
내가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자, 허공에서 다시 한번 시스템 메시지가 점멸했다.
[알림: 채권자 윤서하가 ‘기록 압류 권한’을 행사합니다. 한지율의 의식 내에 임시 보관소를 설정합니다.]
“윤서하……!”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채권자가 되었다는 건, 단순히 권력을 휘두르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내 기억을 말소하거나 파괴하지 못하도록, 자기가 직접 그 ‘채무’를 떠안겠다는 뜻이다. 한지율을 그릇으로 삼아 내 기억을 보존하고, 자신은 그 기록을 관리하는 감시자가 됨으로써 나를 보호하려는 무모한 선택.
“야, 강도윤. 너 또 무슨 생각 해.”
이현우가 내 멱살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분노와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너 여기서 또 무슨 담보 걸고 뛰어들려고 하지 마. 네 몸뚱이는 이미 네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윤 팀장이 저러는 건 네가 살아남길 바라기 때문이야. 네가 네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순간, 저 사람들의 노력은 다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거라고!”
“……알아. 나도 안다고.”
나는 이현우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빈정거릴 여유조차 사라졌다. 입안에서 비린 피 맛이 났다.
“근데 이대로 있으면 지율이가 죽어. 내 기억이 쟤 뇌를 다 태워버릴 거라고.”
그때, 무전기 너머로 한지율이 짧게 신음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낮게 흘러나왔다. 마치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인형처럼, 감정이 거세된 목소리였다.
도윤 형.
“어, 지율아. 듣고 있어. 말하지 마. 조금만 참아.”
아뇨, 들어야 해요. 아까 그 기억 속에서…… 꼬마였던 형이 나를 보고 말했어요. 아니, 미래의 형한테 전해달라고 했어요.
나는 숨을 멈췄다. 2004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뭐라고 했는데.”
한지율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헐떡거렸다. 무전기 너머로 윤서하의 다급한 외침과 기계음이 뒤섞여 들려왔다. 한참의 정적 끝에, 한지율이 내뱉은 문장은 내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2004년의 강도윤이 말했어요. 서명을 마치고 박철수 아저씨가 나갈 때, 혼자 남은 형이 거울을 보고 이렇게 속삭였어요.
한지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를 살리지 마.”
주변의 소음이 일순간 사라졌다. 이현우의 당혹스러운 표정도, 대기실의 기괴한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살리지 마.
그것은 20년 전의 내가, 오늘날의 나에게 보내는 단 하나의 유언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손목의 시계가 미친 듯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6월 3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