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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화. 불을 끄면 남는 이름과 3분짜리 보호자 일러스트

200-201화. 불을 끄면 남는 이름과 3분짜리 보호자

200화. 불을 끄면 남는 이름

어둠은 단순히 빛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아가리였고, 그 안에는 수천 개의 혓바닥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비상등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꺼진 순간, 내 혀끝에는 낯선 이름 하나가 낚싯바늘처럼 걸려 올라왔다.

강도윤.

내 이름이다. 주민등록상으로도, 협회 등록증으로도, 심지어는 밀린 월급을 독촉할 때 부르는 그 석 자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잇몸을 타고 흘러나오려는 음절은 그게 아니었다. 발음하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영구적으로 변질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나는 어금니가 으스러져라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혈향이 확 퍼지며 뇌를 자극했다. 다행이다. 아직은 강도윤으로 죽을 수 있겠어.

“……도윤 씨? 손, 너무 세게 잡았어요.”

어둠 속에서 윤서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내 손바닥 아래에서 아이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내가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건지, 아이가 내 존재를 붙들고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때, 주머니 속의 여성용 라이터가 스스로 불을 켰다.

치익, 하는 마찰음과 함께 솟아오른 불꽃은 파란색이었다. 기괴할 정도로 선명한 푸른 불꽃은 주변을 밝히는 대신, 벽면에 박힌 이름표 슬롯들만을 정밀하게 조준했다.

달칵, 달각, 다다닥.

마치 고장 난 카지노의 슬롯머신처럼 글자들이 미친 듯이 회전했다. [제2 보호자 후보: 윤서하의 대체명]이라는 문구가 떴던 칸이 경련을 일으켰다. 글자의 획들이 분해되고 재조합되기를 반복했다. ‘ㅇ’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ㅅ’의 파편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마치 시스템이 정답을 내놓기를 거부하며 비명을 지르는 듯한 형상이었다.

“……이거, 엄마 글씨 맞아요.”

윤서하가 떨리는 손으로 메모지를 낚아챘다. 아까의 당혹감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감정을 거세한 현장검증 모드. 그녀는 메모지를 코끝에 가져다 대더니, 이내 코트 소매의 먼지를 손끝으로 훑었다.

“종이는 30년 전 협회에서 쓰던 기록용 갱지. 탄 자국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번졌어. 누군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태우려다 중단한 흔적이야. 코트 소매의 마모 상태를 봐. 이건 단순히 오래된 게 아니라, 특정한 장비를 반복적으로 착용해서 생긴 닳음이야. 헌터용 구속구 아니면…… 기록 장치 연결부.”

윤서하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검지 끝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그녀는 라이터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와 코트의 냄새를 대조하며 낮게 읊조렸다.

“가온아, 확인해.”

반가온이 조심스럽게 코트에 코를 가져다 댔다. 평소라면 ‘엄마 냄새가 나요’라고 천진하게 말했을 녀석이, 이번에는 미간을 찌푸리며 신중하게 단어들을 골랐다.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 복잡해요. 오래된 병동 세탁실의 락스 냄새, 비 맞은 검은 우산의 눅눅한 천 냄새. 그리고…… 협회 기록실 지하에서 나는 그 특유의 금속 태그 냄새가 겹쳐 있어요. 아, 그리고 아주 작은 아이의 머리카락 냄새도요.”

가온이 코트 안감을 들추더니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 단추 하나가 없어요. 실밥이 뜯긴 게 아니라, 아주 정교하게 잘려 나갔거나…… 무언가에 끼어서 강제로 뽑힌 흔적이에요. 아주 작은 금속 단추요.”

내 옆에서 내내 숨을 죽이고 있던 아이가 코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불 끄는 아줌마…….”

“뭐? 저분이 누군지 알아?”

내가 묻자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내 옷자락을 꽉 쥐었다.

“이름은 몰라요. 여기 오면 이름을 두고 가야 하니까. 불이 켜지면 이름을 빼앗기고, 불을 끄면 길이 열린다고 했어요. 아줌마는 항상 불을 끄고 다녔어요. 그래야 우리가 안 들킨다고.”

나는 라이터의 푸른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불을 끄면 길이 열린다고? 하지만 내 시야 한구석에서는 기록 대리인의 경고창이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주의: 정식 증인 확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경고: 최초 점화 장소 이탈 및 소화 시도 시, 증인 자격이 박탈되며 기록망에서 영구 소멸됩니다.]

[증인 안정화율: 14%]

[남은 유예 시간: 32:12]

“이봐, 대리인 씨. 불 끄면 죽는다며? 근데 애는 꺼야 길이 열린다는데, 누구 말이 맞는 거야?”

허공에서 대리인의 비릿한 목소리가 울렸다.

― 정식 증인이 되지 못한 자의 말은 노이즈에 불과합니다. 강도윤 헌터, 시스템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 ‘역사’를 확정하는 중입니다.

“역사 좋아하시네. 난 그냥 퇴근하고 싶을 뿐이라고.”

나는 라이터를 끄는 대신, 바닥에 굴러다니던 빈 우유병 하나를 발로 끌어당겼다. 흐린 유리 표면에 푸른 불꽃이 반사되었다. 직접 불을 끄는 게 위험하다면, 우회하는 수밖에. 유리 표면의 굴절을 이용해 ‘꺼진 불의 잔향’을 보는 건 헌터 시험 때는 가르쳐주지 않는, 현장형 잡기술 중 하나였다.

나는 우유병의 흐릿한 표면 너머로 시선을 고정했다.

순간,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색이 바랜 필름처럼, 30년 전의 B4 보호자 대기실이 겹쳐 보였다.

젊은 시절의 문태식이었다. 지금보다 머리숱이 훨씬 많고 어깨가 꼿꼿한 그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 한 여자와 격렬하게 다투고 있었다. 여자는 방금 가온이 묘사한 그 코트를 입고 있었다.

“서하가 오면 불을 꺼야 해요, 문 국장님. 그 애가 이 기록에 묶이게 할 순 없어요.”

여자의 목소리는 서늘하면서도 절박했다. 문태식이 신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불을 끄면 기록망이 보호자 후보를 잃어버려! 시스템이 폭주하면 이 아이의 이름은커녕 존재 자체가 지워진단 말이야!”

“지워지는 게 나아요. ‘도구’로 기록되는 것보다는.”

여자가 코트 소매를 거칠게 휘두르자, 무언가 반짝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작은 금속 단추였다. 단추는 또르르 굴러가 이름표 슬롯 장치 사이의 좁은 틈새로 빨려 들어갔다.

챙그랑!

그 날카로운 파찰음과 함께 현실의 풍경이 돌아왔다.

발밑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대기실 한구석, 먼지 쌓인 채 방치되어 있던 아이용 장난감 자판기가 혼자서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낡은 기계음과 함께 자판기의 배출구가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는 동전 투입구 대신, 아주 작은 금속 단추 하나가 딱 들어맞을 법한 빈 홈이 드러나 있었다.

과거의 여자가 던진 단추. 그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B4 기록망의 물리적 열쇠였다.

“도윤 씨, 저거…….”

윤서하가 자판기의 홈을 향해 다가가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벽면의 이름표 슬롯 전체가 미친 듯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윤서하의 칸이 아니었다. 내 이름이 있어야 할 위치, 혹은 내가 삼켰던 그 낯선 이름이 있어야 할 위치의 슬롯이 멈췄다.

[대체 보호자 승인 대기: 00:03:00]

이름 대신 뜬 것은 붉은색 타이머였다. 그리고 그 위로 새로운 문구가 한 글자씩 새겨졌다.

[강도윤의 보호자 후보]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강도윤이 보호자 후보가 아니라, 강도윤‘의’ 보호자 후보? 주객이 전도된 문장에 사고가 정지하려던 그때, 귓가에서 대리인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언제나 여유만만하게 나를 비웃던 그 기분 나쁜 기척이, 처음으로 당혹감에 젖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예정에 없던 기록인데.”

대리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라이터의 푸른 불꽃 너머로, 자판기 홈 안쪽에서 붉게 빛나기 시작하는 ‘단추’의 잔상을 보았다. 3분. 그 시간이 지나면 내가 알던 강도윤이라는 기록은 영원히 뒤틀릴 것이다.

201화. 3분짜리 보호자

철컥, 하는 기계음과 함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름표 슬롯 장치의 구식 플라스틱 판이 뒤집히며 나타난 글자는 선명했다.

[대체 보호자 승인 대기: 00:03:00]

[강도윤의 보호자 후보]

숫자가 1초씩 줄어들 때마다 대기실 천장에 매달린 비상등이 맥박처럼 점멸했다. 째깍, 째깍. 아니, 그건 소리가 아니라 진동에 가까웠다. 내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박혀 있는 무언가가 타이머의 리듬에 맞춰 함께 뛰기 시작했다.

“강도윤의 보호자 후보……?”

입 밖으로 내뱉은 목소리가 낯설게 갈라졌다. 보통 보호자라고 하면 내가 이 아이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어야 맞다. 그런데 문장은 정반대였다. 시스템은 지금 내가 아닌 ‘누군가’를 나의 보호자로 세우려 하고 있었다.

서른 살 먹은 헌터에게 보호자라니. 이 무슨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져주는 프리미엄 서비스인가 싶어 실소가 터질 뻔했지만, 손등에 돋은 소름이 그 농담을 막아 세웠다. 이건 나를 지켜주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소유권을 누군가에게 넘기겠다는 선고였다.

“강 주임님, 움직이지 마요.”

윤서하의 목소리가 채찍처럼 날아와 내 발끝을 묶었다. 그녀는 장난감 자판기 앞에 바짝 다가가 있었다. 평소의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기색이었지만, 단추 모양 홈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건드리지 마세요. 이건 단순한 자판기가 아니에요.”

그녀의 시선이 자판기 옆면으로 흐르는 배선을 훑었다.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은 전선들, 그리고 바닥에 길게 그어진 긁힘 자국. 윤서하는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자판기와 슬롯 장치가 연결된 접합부를 가볍게 쓸었다.

“먼지가 눌린 모양새나 바닥의 마찰 흔적을 보세요. 이건 아이들을 달래려고 나중에 가져다 놓은 게 아니에요. 처음부터 이 방의 설계 구조에 포함되어 있었어요. 기록을 입력하고 출력하는…… 일종의 아날로그 단말기예요.”

“단말기? 500원 넣으면 캡슐 대신 운명이라도 뱉어준다는 건가?”

“운명보다는 훨씬 값싼 걸 취급했을 거예요.”

옆에 서 있던 반가온이 코를 킁킁거렸다. 녀석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냄새가 고약해요. 아주 오래된 사탕 냄새가 나는데, 그 밑에 소독약이랑…… 피가 바짝 말라서 철분만 남은 비린내가 섞여 있어요. 그리고 이건…….”

반가온이 자판기 동전 배출구에 손을 가져다 대려다 멈칫했다.

“이름을 삼킨 동전 냄새가 나요.”

“그게 뭔데. 은유적인 표현이면 사양한다. 나 지금 머리 복잡하거든.”

“말 그대로예요, 형. 여긴 돈을 받는 곳이 아니에요. 아이들의 이름표 조각이나, 옷에 달린 금속 단추 같은…… 그 사람을 증명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기록 매개체’를 통행료로 받은 거예요. 그걸 넣어야만 문이 열리거나, 기록이 갱신되는 구조예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 옆에 서 있던 아이가 발등을 비비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본능적인 공포가 서려 있었다.

“……저기에 넣으면 엄마가 바뀌어요.”

아이가 웅얼거렸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아이와 눈을 맞췄다.

“엄마가 바뀐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처음엔 엄마였는데…… 그다음엔 보호자라고 불렀어요. 그다음엔 선생님이 번호로 불렀고…… 나중에는 아무도 안 불렀어요.”

아이의 기억 파편이 대기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바스러졌다. 아이는 자기 손목에 채워진 낡은 환자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기록 대리인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녀석의 얼굴에는 여전히 비굴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아까와는 달리 말끝이 미세하게 씹히고 있었다.

“허, 이거 참 곤란하게 됐군요. 예정에 없던 기록입니다. 시스템이 강도윤 씨를 ‘미확정 자산’으로 분류한 모양이에요. 자, 자,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승인 절차가 완료되기 전에 취소하십시오!”

“취소?”

“그 라이터! 라이터 불꽃을 자판기 홈에 가까이 대고 ‘승인 거부’라고 말하세요! 그럼 시스템이 과부하를 일으키며 해당 기록을 삭제할 겁니다. 얼른요! 2분도 안 남았습니다!”

기록 대리인의 목소리가 다급해질수록 내 의심은 깊어졌다. 이 바닥에서 악당이 친절하게 해결책을 제시할 때는 보통 두 가지 경우다. 진짜 죽기 직전이거나, 아니면 그 해결책이 더 큰 덫이거나.

윤서하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 마세요. 저 대리인, 아까부터 말이 꼬이고 있어요. ‘거부’라는 단어가 기록망에서 어떤 효력을 가질지 모릅니다. 이름 자체를 포기하는 권한 위임일 수도 있어요.”

“그럼 어쩌라고? 저 타이머가 0이 되면 난 생판 모르는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텐데. 보호자랍시고 나타난 놈이 문태식 같은 인간이면 난 그날로 은퇴하고 양어장이나 가야 한다고.”

농담을 던졌지만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고였다. 타이머는 [00:01:45]를 가리키고 있었다. 붉은 숫자가 눈을 찌를 듯 선명했다.

나는 반가온을 돌아봤다.

“가온아, 아까 그 코트에서 떨어진 단추 냄새 기억하지?”

“네. 아주 선명해요. 빗물에 젖은 구리 냄새랑 세탁실 냄새가 섞인…….”

“그 단추랑 똑같은 ‘잔향’이 이 방 어딘가에 또 있는지 찾아봐. 자판기 안쪽 말고, 지금 당장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곳에.”

반가온이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콧날이 파르르 떨리며 공기의 흐름을 읽었다. 1초가 1년처럼 느껴지는 압박감 속에서, 반가온의 손가락이 천천히 방향을 가리켰다.

자판기도, 슬롯 장치도 아니었다.

그 끝이 향한 곳은 아이가 꼭 쥐고 있던 낡은 환자 팔찌였다.

“아이 손목이에요. 팔찌 안쪽에서…… 똑같은 금속 냄새가 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겁먹은 듯 팔을 뒤로 감추려 했지만, 윤서하가 먼저 아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얘야, 무서워하지 마. 네 팔찌 안에 있는 걸 잠깐만 보여줄 수 있니?”

윤서하의 목소리에는 수사관 특유의 단호함과, 한 인간으로서의 조심스러움이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녀는 억지로 팔을 끌어당기지 않았다.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 찰나의 정적이, 1분 1초가 급한 타이머 소리보다 더 크게 방 안을 채웠다.

아이는 윤서하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팔을 내밀었다.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플라스틱 팔찌 안쪽, 살이 닿는 부분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테이프로 조잡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떼어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완전한 단추는 아니었다. 절반이 깨져 나간, 톱니바퀴 문양이 새겨진 반쪽짜리 금속 조각.

“이건…….”

“보호 열쇠였던 것 같아요.”

윤서하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예요. 이걸 빼앗기면 정말로 모든 걸 잃어버린다는 걸. 그래서 기록망이 닿지 않는 팔찌 안쪽에 숨겨두고 있었던 거죠.”

[00:00:45]

타이머가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준비하듯 붉은 빛을 강렬하게 내뿜었다. 슬롯 장치에서 끼익, 하는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문구가 바뀌었다.

[보호자 후보 식별 중……]

장치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빛의 줄기가 대기실을 훑었다. 그 빛은 나를 지나쳐, 내 바로 옆에 서 있는 아이에게 고정되었다.

말도 안 돼. 이 아이가 나의 보호자라고? 이 작은 아이가?

“도윤 씨, 결정해야 해요.”

윤서하의 외침과 함께 아이가 내 옷자락을 꽉 쥐었다. 아이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00:00:20]

기록 대리인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놈들! 그건 열쇠가 아니라 족쇄다! 그걸 자판기에 넣는 순간, 너희는 영원히 이 B4의 기록에 묶이게 될 거야! 어서 불을 꺼! 승인을 거부하란 말이다!”

“강 주임님!”

나는 손바닥 위의 단추 조각을 움켜쥐었다. 차갑고 딱딱한 금속의 감각이 신경을 타고 뇌를 자극했다. 라이터의 푸른 불꽃이 내 주머니 속에서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불을 끄고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저 아이의 손을 잡고 불확실한 기록 속으로 뛰어들 것인가.

[00:00:10]

[00:00:09]

숫자가 줄어들수록 대기실의 그림자들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상등 불빛 아래서 내 발치에 붙어 있어야 할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벽면을 타고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림자는 사람의 형상을 갖추더니, 천장을 덮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결코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려왔다.

— ……내 이름을 돌려줘.

그건 내 목소리였다.

변성기조차 지나지 않은 어린 시절의 나도 아니고, 기록 속에 박제된 타인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서, 방금 전까지 윤서하와 반가온에게 빈정거리던 ‘강도윤’의 목소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목소리가 그림자 속에서 울려 퍼졌다.

— 내 이름을…… 돌려줘.

나는 굳어버린 채 내 그림자를 바라봤다.

벽면에 거대하게 투사된 내 그림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00:00:01]

타이머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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