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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61화. 대리 수령인 강도윤과 대리인 문태식 보관 중 일러스트

260-261화. 대리 수령인 강도윤과 대리인 문태식 보관 중

260화. 대리 수령인 강도윤

내 멱살을 잡아챈 것은 손이 아니었다. 수십 장의 누런 서류 뭉치와 날카로운 철심, 덕지덕지 붙은 붉은 종이 테이프가 뒤섞여 손 비슷한 모양을 만든 '결재판'이었다.

"윽, 이거 놔! 난 택배 대리 수령 같은 거 신청한 적 없다고!"

목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낡은 사무용품들의 집합체라기엔 그 아귀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결재판의 틈새마다 박힌 병원 접수번호표들이 마치 비늘처럼 파르르 떨리며 나를 문 안쪽의 어둠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 너머, 문태식의 목소리가 들렸던 B1-000 안쪽은 방금 연 냉동고처럼 차가운 숨을 뿜었다.

[경고: 대리 수령 절차 개시]

[시-스템 ㅇㅗ류 : 원소유주 불ㅁㅕㅇ]

[임시 보관함 지정: 강도윤]

[동의 여부: 생략 가ㄴㅡㅇ?]

눈앞에 나타난 M-17의 상태창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글자들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게 부서져 있었고, '동의 여부' 칸은 제멋대로 체크 표시를 만들려 들었다.

"누가 생략 가능이래! 야근수당도 안 주는 주제에 강제 배송까지 시키냐!"

나는 이를 악물며 왼손에 쥔 검은 우산을 문턱에 가로로 박아 넣었다. 우산은 단순한 천과 살대의 조합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들어온 수많은 망자의 증언을 머금은 지팡이가 되어 버티고 섰다. 끼이익, 결재판 괴물의 철심이 내 셔츠를 찢으며 살을 파고들려 할 때였다.

"강도윤 씨, 버티세요! 대리 수령은 원소유주 확인 없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윤서하의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그녀는 내 몸을 잡아당기는 대신, 내가 방금 문패 뒤에서 떼어낸 '한○희'의 이름 조각을 낚아채 결재판의 중심부, 즉 붉은 종이 테이프가 뭉쳐진 심장부로 찔러 넣었다.

"증거물 제2호, 원소유주 식별 코드 미일치! 이 절차는 무효입니다!"

윤서하의 외침이 괴물의 손목을 때린 것처럼 종이 더미가 꺾였다. 결재판 괴물이 기괴한 종이 마찰음을 내며 주춤하는 사이, 백연이 다가왔다. 그녀의 하얀 우산살이 내 오른손등 위에서 검게 번져가는 낙인과 공명하며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도윤 씨, 미안해요. 나 때문에… 잠깐만, 1초만 참아요!"

백연이 자신의 손목에 찬 신생아 팔찌를 낚아챘다. '태어나지 못한 이름'들의 시간이 응축된 그 물건이 희게 빛나자, 주변의 공기가 끈적하게 늘어났다. M-17의 상태창이 아주 잠깐, 0.1초 단위로 멈춰 서며 등록 시간을 뒤로 밀어냈다.

"도윤 형! 문 안쪽에는 진짜 문태식 씨가 있어요! 딸기우유랑 낡은 식권 냄새가 나요!"

가온이 코를 킁킁거리며 외쳤다. 녀석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런데 이 괴물은 달라요! 이건 장례식장 냉동고 냄새랑… 아주 비싼 가죽장갑 냄새, 그리고 붉은 종이 테이프의 독한 풀 냄새밖에 안 나요! 목소리는 가짜예요!"

가온의 외침과 함께 내 머릿속에서 '잔향청취'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1999년 2월 14일. 색이 빠진 복도 끝에 검은 가죽장갑을 낀 사내가 자개 단추 달린 코트를 입고 서 있었다. 그는 퇴근하지 못한 사람들을 마치 폐기물 처리하듯 분실물 대장에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낡은 경비복 차림의 문태식이었다.

"그만해. 이 사람들은 물건이 아니야."

"문태식 씨, 당신도 미복귀자가 되고 싶나?"

"나 하나 미복귀 뜨는 게 낫지. 이 애 이름은 안 넘겨."

문태식은 결재판을 몸으로 막아서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문패 뒤 좁은 틈새로 밀어 넣었다. 그것은 한○희라고 적힌 이름 조각의 절반이었다. 누군가의 '원소유주 서명'을 시스템으로부터 숨기기 위한 고육지책. 가죽장갑의 사내가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문태식의 가슴에 붉은 종이 테이프를 감았다.

'그래서였나.'

문태식은 누군가를 대신해 보관소의 '분실물'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스템이 나를 새로운 '대리 수령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나, 식권 아직 세 장이나 남았다고!"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검은 우산을 문턱에서 밀어냈다. 지레의 원리로 튕겨 나간 우산 끝이 결재판 괴물의 중심을 강타했다. 윤서하가 제시한 이름 조각의 인력이 괴물의 형태를 무너뜨렸고, 백연이 벌어준 1초의 틈이 절차의 연결고리를 끊어냈다.

"지금이에요!"

가온과 윤서하가 내 양팔을 붙잡고 뒤로 힘껏 잡아당겼다.

콰아앙-!

분실물 보관소의 문이 숨을 빨아들이듯 닫혔다. 복도에는 소독약 냄새와 먼지만 남았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살았나?"

"절차는 일단 중단된 것 같습니다."

윤서하가 안경을 고쳐 쓰며 내 손을 살폈다. 그런데 살아났다고 말하기엔 손등이 너무 뜨거웠다. 내 오른손등, 백연의 낙인이 있던 자리 옆에 작고 선명한 원형 도장 자국이 남았다. 검은 잉크가 살 속으로 스며든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었다.

[알림: 대리 수령 절차 '보류']

[상태: 임시 보관 중인 물품이 존재함]

"보류라니. 분실물 센터에서 독촉 전화라도 돌리겠다는 거야 뭐야."

나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내 발치에 무언가 툭 떨어졌다. 아까 문패를 떼어낼 때 같이 끼어 있었던 모양인지, 먼지 쌓인 낡은 접수표 한 장이 바닥에 뒤집힌 채 떨어져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나는 무심코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1999년의 날짜가 찍힌, 누렇게 변색된 병원용 접수표였다. 하지만 그 위에 적힌 글자를 본 순간, 숨이 목구멍에서 멈췄다.

[원소유주: 강도윤]

[회수 예정일: 1999. 02. 14]

[비고: 대리인 문태식 보관 중]

"…어?"

등골이 차갑게 굳었다. 1999년 2월 14일. 내가 태어나기도 전, 혹은 갓난아기였을 그때에 나는 이미 이 기괴한 분실물 보관소의 '물건'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태식은 나를 대신해 그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손등의 도장 자국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25년 전의 내가 분실물이었다면,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도윤 형, 왜 그래요? 얼굴이 너무 하얀데…."

가온의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내 이름이 적힌 1999년의 접수표를 쥔 채, 닫힌 000호의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 안쪽에서 들리던 딸기우유 냄새가, 아주 잠깐 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오래전 헤어진 누군가가 건네는 인사처럼.

261화. 대리인 문태식 보관 중

손에 든 종이 쪼가리는 차가웠다. 냉동고에서 갓 꺼낸 물건처럼 차가운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척추를 두드렸다.

[원소유주: 강도윤]

[회수 예정일: 1999.02.14]

[비고: 대리인 문태식 보관 중]

내 이름이다. 한 글자도 틀리지 않은 강도윤. 1999년이면 내가 갓 태어났을 무렵이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응애 하고 첫 울음을 터뜨리기도 전에 발행된 택배 접수표라는 소리다. 그것도 보관 물품이 '나' 자신인.

“와, 나 출생신고를 분실물 센터에서 한 건가? 우리 부모님이 나를 어디 휴게소 화장실에 두고 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보관소 출신이었네.”

농담으로 넘기려 했지만 목소리가 갈라졌다. 쇳소리가 섞인 웃음은 입술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목구멍 안쪽에서 자갈처럼 굴러다녔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낡은 종이의 모서리가 내 떨림을 따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강도윤 씨.”

윤서하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그녀는 내가 쥐고 있는 접수표를 바로 뺏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투명한 증거 봉투를 꺼내 내 손 근처에 대기시켰다. 그녀의 시선은 정확히 '비고'란을 꿰뚫고 있었다.

“그거, 일단 제가 보관해도 될까요? 아니, 아니군요. 이건 강도윤 씨가 직접 들고 계시는 게 낫겠습니다. 보류 상태인 절차가 언제 다시 활성화될지 모르니까요.”

그녀는 장갑을 낀 손으로 접수표의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비고란에 적힌 ‘대리인 문태식 보관 중’이라는 문구. 이게 지금 이 괴상한 대리 수령 절차를 막아 세운 쐐기입니다. 문태식 씨가 당신의 소유권을 대리해서 25년 동안 보관해왔다는 뜻이죠. 보관 만료일이 1999년이었는데도 말입니다.”

“태식 형님이 제 유통기한을 억지로 늘려놓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무슨 냉동 보관도 아니고.”

내 농담에 윤서하는 웃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접수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백연이 다가와 내 손등을 살폈다. 아까 결재판 괴물과 접촉했을 때 남은 검은 도장 자국. 작은 원형의 낙인은 마치 살점 안쪽으로 스며든 먹물처럼 번져 있었다. 백연의 손등에 새겨진, '태어나지 못한 것'들을 붙잡는 하얀 낙인이 내 손등의 검은 도장과 공명하듯 미세하게 빛났다.

“방향이…… 반대예요.”

백연이 내 손등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제 낙인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들을 이승에 묶어두는 닻입니다. 그런데 도윤 씨 손등에 찍힌 이 도장은…… 이미 잃어버린 것을, 원래 주인에게 강제로 회수하려는 ‘반환표’ 같아요. 마치 누군가 당신을 ‘분실물’로 규정하고 되찾아가려는 것처럼.”

“분실물이라니. 나도 나름대로 세금 꼬박꼬박 내는 대한민국 시민인데. 분실물 신고는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잃어버린 워라밸 같은 거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가온이 코를 킁킁거리며 접수표 근처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녀석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형, 이거 냄새가 이상해요.”

“이상해? 25년 된 종이인데 곰팡이 냄새라도 나냐?”

“아뇨. 낡은 식권 냄새랑 딸기우유 냄새가 나요. 태식 아저씨 냄새요. 그런데 그 안쪽에…… 신생아실 소독약 냄새랑, 형이 들고 있는 그 검은 우산 천 냄새가 섞여 있어요.”

가온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근데 이건 형 냄새가 아니에요. 뭐랄까, 아주 오래된 ‘강도윤’이라는 사람의 빈자리 냄새 같아요. 원래 거기 있어야 했는데, 지금은 비어 있는 공간에서 나는 먼지 냄새 같은 거요.”

빈자리 냄새. 녀석은 가끔 냄새로 사람 멘탈을 찢는다.

그 순간, 내 손목의 M-17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홀로그램 팝업이 지직거리며 깨진 글자들을 쏟아냈다.

[개체 강도윤: 생존 확인…… 오류!]

[원소유주 기록과 현재 개체 데이터 불일치율 99%]

[대리인 문태식 보관 설정: 만료(Expired)]

[경고: 재회수(Re-collection) 절차 대기 중……]

“이놈의 시계는 도움이 안 돼. 업데이트 좀 하라니까.”

나는 M-17을 흔들어 껐지만, 마지막 문구는 망막에 잔상처럼 남았다. ‘재회수’. 누군가 나를 다시 가져가려 한다. 25년 전의 예약이 이제야 실행되려는 것처럼.

그때였다. 닫히지 않은 B1-000 분실물 보관소의 문틈 사이로, 아까보다 훨씬 또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고 묵직한, 하지만 어딘가 피곤함이 서린 그 목소리.

─그건 네 손에서 읽어라.

태식 형님이었다. 문 너머 어딘가, 저 어둠 깊숙한 곳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서하가 읽어야 할 게 아니야. 도윤아, 네가 직접 읽어야 한다.

“형님? 문태식 씨! 거기 있습니까? 지금 당장 나와서 이 식권 냄새 나는 상황 좀 설명해 봐요!”

나는 문 안쪽으로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형님은 나를 지키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게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직접 선택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접수표를 뒤집었다. 빛바랜 누런 종이 뒷면.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평범한 뒷면인 줄 알았는데, 특정한 각도로 비추자 아주 미세한 압인 흔적이 보였다. 글자라기보다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으로 꾹꾹 눌러 쓴 자국 같았다.

육안으로는 읽을 수 없었다. 잔향청취를 써야 한다. 하지만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걸 읽는 순간, 손등의 검은 도장은 더 깊게 박힐 것이고, 나는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게 될 거라고.

“도윤 씨, 위험합니다. 기운이 심상치 않아요. 일단 지부로 복귀해서 정밀 분석을……”

윤서하가 내 팔을 잡으려 했다. 평소라면 잽싸게 그녀의 말을 따랐을 거다. 위험한 일은 질색이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25년 동안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보관’되어 왔다면, 그 이유 한 줄 정도는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

“윤 경위님, 원래 야근의 시작은 미확인 서류 한 장부터거든요. 이걸 안 읽으면 오늘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잔향청취를 발동했다.

[스킬: 잔향청취(A)를 사용합니다.]

[대가로 개체의 '존재 소유권' 일부가 침식됩니다.]

시야가 뒤틀렸다. 지하 복도가 순식간에 밀려나고, 코를 찌르는 알코올 소독약 냄새가 몰려왔다.

1999년의 어느 병원 복도였다.

낡은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갓난아기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그중 가장 끝자리, 이름표도 제대로 붙지 않은 아기 침대 옆에 웬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고, 손에는 내가 지금 들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검은 우산의 천 조각을 들고 있었다.

“이 애 이름은 아직 가져가지 마.”

익숙한 목소리. 젊은 시절의 문태식이었다. 그의 옷차림은 꾀죄죄했지만 눈빛만큼은 지금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그는 가죽 장갑을 낀 남자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아직 이 애는 자기 이름조차 불러보지 못했어.”

가죽 장갑의 남자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복도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우리가 회수하는 건 이름이 아니다, 문태식. 우리는 플래그를 회수할 뿐이지.”

“플래그?”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너무 많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어. 회수하지 않으면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거다. 이건 자비야.”

가죽 장갑의 남자가 접수표를 내밀었다. 문태식은 그 종이를 거칠게 낚아채며 자신의 품 안으로 아기 침대를 끌어당겼다.

“그럼 내가 보관하지. 이 애가 자기 플래그를 스스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그 플래그를 전부 꺾어버릴 때까지.”

장면이 일렁이며 깨졌다. 내 손등의 도장 자국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형! 정신 차려요!”

가온이 내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손등의 도장은 이전보다 훨씬 진해져, 이제는 피부 위에 입체적으로 돋아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접수표 뒷면, 압인되어 있던 글자들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건 단순한 보관 사유가 아니었다.

[회수 사유: 사망 플래그 과잉 보유(Over-possession of Death Flags)]

[비고: 폐기 예정 사유 ─ 사망 플래그 회수 실패 시 개체 소멸.]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퇴근길마다 주워 들던 그 재수 없는 플래그들이, 사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들고 있던 소지품이었다니.

“분실물 치고는 너무 무거운 걸 맡겨놨잖아, 태식 형님.”

검은 우산의 천이 내 손길에 반응하듯, 빗물에 젖은 것처럼 순식간에 검게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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