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231화. 미도착된 서명의 분실함
230화. 미결제된 증언의 유통기한
유리 사물함들이 끝도 없이 늘어선 복도는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하지만 그건 소리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수만 개의 유리 상자 안에서 갇힌 문장들이 제각기 벽을 두드리는 진동이 서로 상쇄되어 만들어진, 질식할 것 같은 압력이었다.
말풍선들이 투명한 유리 벽 안에서 물고기처럼 퍼닥거렸다. 어떤 것은 비명이었고, 어떤 것은 흐느낌이었으며, 어떤 것은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유언이었다.
“……꼭 입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전시장 같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가장 앞에 선 사물함 앞에 멈춰 섰다.
[ 관리 번호 : 742-MT ]
[ 품목 : 문태식 / 미개봉 증언 ]
[ 수령 권한 : 강도윤 ]
그 안에는 점장님이 입던 때 묻은 편의점 조끼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조끼 주머니에는 항상 꽂혀 있던 모나미 볼펜과 영수증 뭉치가 그대로였다. 금방이라도 점장님이 나타나 ‘도윤아, 유통기한 지난 거 폐기 찍었냐?’라고 물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바로 옆 사물함이 내 시선을 강탈했다. 텅 빈 공간에 오로지 검은 우산 하나만이 세워져 있었다. 비에 젖지도, 마르지도 않는 그 불길한 우산 위로 시스템 메시지가 점멸했다.
[ 다음 수령 대기자 : M-17 ]
“……아.”
내 손을 잡고 있던 아이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M-17의 작은 어깨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아이는 사물함 속에 든 검은 우산을, 아니, 그 우산이 상징하는 ‘보관’이라는 행위 자체를 응시하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물건.
이곳에서 아이는 생명이 아니라, 순번을 기다리는 재고에 불과했다.
“저기요, 안내원 양반.”
나는 뒤에 버티고 선 검은 제복의 안내원을 돌아보았다. 놈은 여전히 문태식의 목소리와 실루엣을 빌린 채 무미건조하게 서 있었다.
“우리 점장님 증언 좀 꺼내려고 하는데. 이거 비밀번호나 지문 인식 같은 거 필요합니까? 아니면 뭐, ‘열려라 참깨’라도 외쳐야 하나?”
[ ― 문태식의 증언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수령권자의 서명, 그리고 ‘보관료’가 필요합니다. ]
“보관료? 와, 요즘 세상에 편의점 택배도 선불 아니면 착불인데. 이거 완전 악질 코인락커네.”
나는 짐짓 어깨를 으쓱하며 농담을 던졌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까지 들려왔지만, 입을 멈추면 그대로 공포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742일.
그 긴 시간 동안 이 안에서 썩지 않고 보관된 진실이 무엇일지, 그리고 그 대가가 무엇일지 생각하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돈으로 됩니까? 아님 뭐, 카드 결제? 할부도 되나?”
[ ― 보관료는 화폐로 지불할 수 없습니다. ]
안내원의 고개가 기괴할 정도로 천천히 꺾였다.
[ ― 강도윤 님이 742일 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는 증명’ 하나를 제출하십시오. ]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는 증명. 그건 내가 742일 전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날 이후의 내 삶이 ‘부재중’이었다는 것을 확정 짓는 행위였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없었음을 증명해야 한다니. 이보다 더 지독한 역설이 어디 있을까.
“형, 여기 냄새가 다 달라.”
가온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사물함 사이를 살폈다. 녀석의 예민한 감각이 이 공간의 비릿한 정보들을 읽어내고 있었다.
“어떤 칸은 피 냄새가 나고, 어떤 칸은 병원 소독약 냄새가 지독해. 저쪽은 방금 뜯은 편의점 비닐봉투 냄새고…….”
가온이가 문태식의 사물함 앞으로 다가갔다. 녀석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런데 점장님 칸은…… 라이터 기름 냄새보다 다른 게 더 진해. 이건,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 냄새야. 그런데 젖지 않았어. 아주 따뜻하고…… 방금 누군가에게 건네준 것 같은 냄새야.”
커피.
점장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커피를 건넸던 걸까. 그게 나였을까, 아니면 나를 데려가려던 ‘그것’이었을까.
“도윤 씨, 비켜나세요.”
서하 씨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손에 든 명찰 조각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 요란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금이 간 틈새로 푸른빛이 새어 나왔고, 그녀의 콧날을 타고 붉은 선혈이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하 씨! 무리하지 마요. 명찰 상태가―”
“읽어야 해요. 지금 안 읽으면…….”
서하 씨가 이를 악물며 사물함의 데이터를 강제로 파싱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데이터의 파도 속에서 격렬하게 흔들렸다.
“문태식 씨의 증언 안에…… 도윤 씨의 기록만 있는 게 아니에요. M-17. 이 아이의 ‘최초 보관 기록’이 같이 묶여 있어요. 점장님은 도윤 씨만 지킨 게 아니라, 이 아이가 반품되는 것도 막고 있었던 거예요.”
그 말이 신호탄이었을까.
갑자기 옆 칸의 빈 사물함이 덜컥거리더니, 안에 들어있던 검은 우산이 스스로 펼쳐졌다.
[ 시스템 경고 : 수령 대기자 M-17의 보존 등급 하향. ]
[ 상태 : 이름 미확정 / 보호자 대리인 권한 약화. ]
[ 판정 : 반품 가능 품목으로 전환합니다. ]
“아, 아악!”
우산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그림자가 촉수처럼 뻗어 나와 M-17의 발목을 낚아챘다. 아이가 사물함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유리가 마치 액체처럼 일렁이며 아이를 집어삼키려 했다.
“이게 어디서 남의 애를 보관하려고 들어!”
나는 본능적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손 끝에 잡힌 것은 아까 라이터와 함께 묶어두었던 임시 보관 영수증, 그리고 예전에 얻었던 낡은 500원짜리 토큰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영수증 꼬리를 우산의 살대 사이에 끼워 넣고, 그 위에 500원 토큰을 던졌다.
“계산원 권한 행사! 해당 품목은 ‘분실물’로 재분류한다! 보관료는 이 토큰으로 선결제!”
[ 띠링―! ]
[ 분류 변경 : 반품 → 분실물 공동 보관 중 ]
[ 보관료 결제 완료. 일시적인 입고 유예가 승인됩니다. ]
아이를 끌어당기던 검은 그림자가 힘없이 풀려나갔다. 우산은 다시 접혀 사물함 구석으로 처박혔다. M-17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다. 그저 ‘반품’을 ‘분실물’로 돌려놓아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진 500원 토큰의 표면이 매끄럽게 깎여나가며, 이전에 보이지 않던 문구가 드러났다.
[ 최초 구매자 : 강도윤 ]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이 토큰을 산 적이 있었나? 아니면, 742일 전의 내가 이미 무언가를 결제했던 걸까.
그때였다.
철컥―.
무거운 기계음과 함께 문태식의 사물함 유리가 천천히 미끄러져 열렸다. 차가운 라벤더 향기와 따스한 커피 냄새가 뒤섞여 쏟아져 나왔다.
조끼 주머니에서 힘없이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열지 영수증이었다.
나는 홀린 듯 영수증을 주워 들었다.
[ 품목 : 증언 열람 서비스 (단회성) ]
[ 결제 방식 : 대리인 승인 ]
그리고 영수증 하단, 서명란에 적힌 글자를 본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내 이름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유려하지만 힘 있는 필체로,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윤서하 씨의 것과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은 필체가 적혀 있었다.
「원본 열람 승인」
“……서하 씨?”
나는 떨리는 손으로 영수증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서하 씨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자신의 깨진 명찰과 영수증의 서명을 번갈아 보더니, 창백해진 입술을 떨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이건…….”
그녀의 시선이 허공 어딘가를, 혹은 아주 먼 미래나 과거를 향했다.
“그건 제가 쓴 게 아니에요. 도윤 씨.”
서하 씨가 피 섞인 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젖지 않는 비처럼 내 가슴을 적셨다.
아직 쓰지 않은 서명이 이미 742일 전의 영수증에 남아 있다.
사물함 안에서 점장님의 조끼가 크게 흔들렸다. 마치 이제야 진짜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231화. 미도착된 서명의 배송조회
윤서하 씨의 손가락 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영수증에 박힌 자신의 필체를 만지는 그녀의 손끝은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듯 창백했다. 내가 알던 그녀의 결단력 있는 눈동자는 지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그녀의 목소리는 젖은 종이처럼 힘없이 찢어졌다. 나는 그녀에게 건넸던 영수증과, 그녀의 깨진 명찰, 그리고 내 오른손 바닥의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번갈아 보았다.
“서하 씨, 진정해요. 이거 뭐, 요즘 유행하는 폰트 같은 거일 수도 있잖아요. ‘윤서하체’ 같은 거. 편의점 포인트 많이 쌓으면 만들어 주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졌지만, 내 목소리도 조금은 떨리고 있었다. 유머는 비겁한 자들의 방패다. 지금 내 눈앞에 닥친 이 기괴한 인과관계를 외면하고 싶어서,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안내원의 목소리가 내 얄팍한 방패를 가차 없이 뚫고 들어왔다.
[ ― 그것은 위조된 것이 아닙니다. ]
문태식의 가죽을 쓴 안내원이 고개를 기괴한 각도로 꺾었다.
[ ― 이 구역에서 시간은 선형적인 흐름이 아니라, 적치된 물류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미래 서명’이 아니라, ‘미도착 서명’입니다. 742일 전의 물류창고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던 승인서가, 이제야 제 주소지를 찾아 입고된 것뿐입니다. ]
“미도착 서명……?”
시간을 물류처럼 취급한다고? 택배 상자 속에 내일의 내가 보낸 서명이 들어있었다는 소린가. 그렇다면 742일 전, 내가 이곳에 오기도 전에 누군가는 이미 내 열람 권한을 승인했다는 뜻이 된다.
윤서하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홀린 듯 사물함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문태식 점장님의 낡은 조끼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부풀어 올랐다. 조끼 주머니에 꽂혀 있던 모나미 볼펜에서 검은 잉크가 피처럼 흘러나오더니, 허공에 기묘한 일렁임을 만들어냈다.
“형, 조심해! 냄새가…… 냄새가 갑자기 확 변했어!”
가온이가 내 옷자락을 꽉 쥐며 외쳤다.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차갑고 비릿한 보관소의 공기 사이로, 지독하게 익숙하고 따스한 냄새가 끼어들었다. 싸구려 프리믹스 커피의 달큰한 향기. 그리고 누군가의 축축한 우산에서 떨어지는 빗물 냄새였다.
잉크의 일렁임 속에서 장면이 투사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영상이라기보다, 누군가의 망막에 새겨진 잔상에 가까웠다.
742일 전, 새벽 3시 15분.
우리 편의점 계산대였다.
창밖에는 억수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편의점 내부의 형광등은 수명이 다했는지 지직거리며 점멸했다. 화면 속 문태식 점장님은 평소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이 서 있었다.
검은 우산을 든 손님.
우산 끝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바닥은 젖지 않았다. 손님의 얼굴은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해 보이지 않았지만, 우산 손잡이에 새겨진 기묘한 문양의 도장과 소매 아래로 살짝 드러난 손목의 ‘바코드’ 낙인만큼은 선명했다.
“……아니, 그러니까 손님. 제 말 좀 들어보시라니까요.”
점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의 그 비겁하고 생활감 넘치는, 하지만 묘하게 고집스러운 말투였다.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서 손님 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우리 알바생 녀석이 좀 맹해 보여도 일은 참 잘해요. 폐기도 제때제때 찍고, 손님들한테 인사도 잘하고. 근데 이 녀석을 지금 ‘품목’으로 가져가시겠다고 하면 곤란하죠. 아직 계약 기간도 남았는데.”
검은 우산의 손님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공중으로 글자들이 바코드처럼 배열되며 의미를 전달했다.
[ ― 강도윤 : 구매 완료 전 품목. 시스템 미등록 자산. 회수 대상. ]
[ ― M-17 : 초기 불량품. 폐기 및 반품 절차 가동. ]
그 옆에는 아주 작은 아이가, 지금 내 옆에 있는 M-17보다 조금 더 어린 모습의 아이가 쇼핑 바구니 안에 구겨 넣어진 채 떨고 있었다.
점장님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기 조끼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는 계산대 밑에서 몰래 꺼낸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 하나를 손님 앞에 툭 던졌다.
“에이, 손님. 장사 하루 이틀 하십니까? 애 하나랑 알바 하나 값을 한꺼번에 깎아 달라는 손님은 살다 살다 처음 봅니다. 이거 덤으로 드릴 테니까, 일단 이 영수증에 제가 사인 좀 해둘게요. ‘위탁 보관’으로 돌려달라 이 말입니다.”
점장님은 필사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는 검은 우산의 손님과 대등하게 맞서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기 편의점의 재고를 지키려는 구질구질한 관리인처럼 굴면서, 나와 아이를 한꺼번에 빼돌릴 틈을 찾고 있었다.
증언 속의 점장님이 나를 힐끗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계산대 구석에서 잠들어 있는 ‘742일 전의 나’를 보았다.
“도윤아, 너는 진짜 나한테 월급 가불해달라고 하면 안 된다…….”
점장님의 중얼거림이 가슴을 찔렀다. 나는 그가 나를 속인 줄 알았다. 나를 이곳에 팔아넘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계산대라는 최전선에서, 검은 우산이라는 절대적인 재해를 상대로 협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 이상해.”
가온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증언의 환상 속으로 손을 뻗었다.
“이 커피 냄새 사이에…… 다른 게 섞여 있어. 아주 차갑고 날카로운 냄새. 서하 씨 명찰에서 나던 그 금속 냄새랑 똑같아.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히 있어.”
가온이의 말에 서하 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증언 속 점장님의 손에 들린 서류 뭉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점장님이 협상을 위해 내민 서류들, 그중 하나가 바람에 날려 계산대 위에 펼쳐졌다.
[ 보호자 후보 사전 배정표 ]
그 서류의 제목을 읽는 순간, 서하 씨의 손끝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사물함의 유리벽을 긁었다.
서류의 칸칸마다 이름들이 적혀 있었지만, 대부분 검은 줄로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칸, ‘윤서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을 법한 자리에는 거친 가위질 자국과 함께 비어 있는 칸만이 남겨져 있었다.
“내 이름이…… 지워져 있어…….”
그녀의 중얼거림은 공포보다는 허망함에 가까웠다. 누군가 그녀를 보호자 후보에서 강제로 탈락시킨 것일까, 아니면 그녀 스스로가 그 자리를 지운 것일까.
그 진실을 더 확인하려던 찰나였다.
쿠르릉―!
보관실 전체가 거대한 진동과 함께 울부짖었다. 사물함의 유리 벽들이 일제히 붉은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 위기 : 허가되지 않은 열람이 감지되었습니다. ]
[ 시스템 경고 : 증언의 유통기한을 강제로 연장하는 행위를 중단하십시오. ]
“아, 또 시작이네! 여긴 뭐만 하려고 하면 경고야!”
사물함들 사이에서 수만 개의 말풍선들이 쏟아져 나왔다. 평범한 텍스트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변해 우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 무단 침입 ], [ 권한 없음 ], [ 반품 예정 ] 같은 글자들이 공기를 찢으며 내 뺨을 스쳤다.
“가온아, 아이 데리고 내 뒤로 숨어!”
나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손바닥의 흉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계산원 권한 행사! 해당 텍스트들은 전부 ‘미발행 영수증’으로 처리한다!”
내 손끝에서 투명한 빛의 실들이 뻗어 나갔다. 날아오던 말풍선 칼날들이 허공에서 힘없이 꺾이며 하얀 감열지 형태로 접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들을 한데 모아 임시 파일철 스킬로 묶어버렸다.
서걱, 서걱.
종이 뭉치들이 바닥에 쌓였다.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왔을 때, 점장님의 조끼 주머니에 꽂혀 있던 모나미 볼펜이 스스로 튀어 올랐다.
볼펜은 바닥에 떨어진 영수증 뒷면에 미친 듯이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 다음 증언은 231번 사물함이 아니라 000번 분실함에 있다. ]
[ 도윤아, 거기서 ‘너’를 찾아라. ]
글씨는 거기서 멈췄다. 볼펜은 툭 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000번…… 분실함?”
나는 고개를 들어 복도 끝을 보았다. 보관실의 가장 깊은 곳,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둠 속에 단 하나의 육중한 철제 함이 놓여 있었다. 다른 유리 사물함들과는 달리, 그것은 마치 안의 내용물을 절대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듯 수십 개의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홀린 듯 그곳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심박수가 미친 듯이 빨라졌다.
분실함 정면에는 낡은 라벨이 붙어 있었다.
[ 분류 : 분실물 ]
[ 품목 : 강도윤의 귀가(歸家) ]
[ 보관자 : 윤서하 ]
[ 특이사항 : 수령 금지. ]
내 심장이 내려앉았다.
내 ‘귀가’가 분실물로 처리되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고? 게다가 보관자가 윤서하 씨라고?
“제가…… 이걸 보관했다고요? 도윤 씨의 귀가를?”
윤서하 씨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분실함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서하 씨, 잠깐만요! 이거 좀 이상해요. 수령 금지라고 적혀 있잖아요.”
내가 그녀를 말리려던 그때였다.
분실함 안쪽에서, 둔탁한 두드림 소리가 들려왔다.
쾅, 쾅, 쾅!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
그것은 소름 끼치도록 익숙한, 아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내뱉는 내 자신의 목소리였다.
― 서하 씨, 절대 저 문 열지 마세요.
분실함 속에서 ‘나’의 목소리가 절규하고 있었다.
― 거기 있는 강도윤은, 진짜가 아니에요!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내 앞에 서 있는 윤서하 씨를 보았다.
그녀의 손은 이미 자물쇠 하나를 부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