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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271화. 최종 수거자 윤서하와 보호자 강도윤 일러스트

270-271화. 최종 수거자 윤서하와 보호자 강도윤

270화. 최종 수거자 윤서하

철퍽, 소리가 났다.

발밑을 채운 검은 물은 고여 있는 게 아니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조금씩 출렁이며 내 운동화 밑창을 적셨다. 비좁은 관리실 안, 오래된 서버 팬이 비명을 지르며 돌아가는 소리와 도트 프린터가 종이를 뱉어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막을 긁어댔다.

그리고 그 어둠의 한복판에서, 검은 우산을 쓴 형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그림자라기엔 지나치게 또렷했다. 우산 끝에서 떨어진 검은 물방울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탄 플라스틱 냄새가 진동했다. 살아 있는 누군가라기보다 B-04 관리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이 출력해낸 잔향 자동응답, 관리자 승인 인터페이스에 가까웠다.

검은 우산의 아래,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이 윤서하를 향했다.

[최종 수거자(Final Collector) 확인.]

기계음도, 사람의 목소리도 아닌 것이 뇌 안쪽을 직접 울렸다.

[예약된 절차를 이행하십시오. 대리 납부자 문태식의 채무 이행 지연. 사망 보류 시간 유지를 위해 대체 제물을 반납 처리하십시오.]

형체의 손이 천천히 나를 가리켰다. 소름이 돋았다. 저 무미건조한 손가락 끝에 내 목숨이 달렸다는 사실보다, 저놈이 나를 ‘대체 제물’이나 ‘반납품’ 정도로 취급한다는 게 더 열 받았다.

“와, 요즘은 사후세계도 전자결재 시스템이 아주 잘 되어 있네요?”

나는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방어기제라는 건 참 편리하다.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헛소리가 잘 나오니까.

“근데 이거 노동법 위반 아닙니까? 퇴근한 사람 붙잡아놓고 이런 거 시키면 야근수당은 챙겨주나 보네. 아니면 포괄임금제라서 그냥 퉁치는 건가?”

윤서하의 등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녀의 손에 쥐인 칼집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지 않았다. 대신 정면의 형체와 그 뒤로 떠오른 반투명한 시스템 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창에는 우리 셋의 상태가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보호자 계약자: 문태식 (상태: 대리 납부 중)]

[최종 수거자: 윤서하 (상태: 예약됨)]

[반납 대상: 강도윤 (상태: 미결제 낙인)]

“도윤 씨, 농담하지 마세요.”

윤서하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그 안에 담긴 긴박함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낡은 신생아 팔찌가 붉게 점멸하며 비프음을 내뱉었다. 병원 호출벨 소리와 똑같은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백연 씨, 기록 끝났습니까?”

“잠시만요, 거의 다 됐어요…!”

백연은 구석에서 카메라와 스캐너를 미친 듯이 돌리고 있었다. 렌즈 필터를 통해 투사되는 데이터 로그가 그녀의 태블릿 화면 위로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단말기를 쥔 손목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찾았어요! 서하 씨, ‘최종 수거자’라는 건 직위가 아니에요. 이건… 이건 시스템 오류예요!”

백연의 목소리가 관리실 안을 울렸다.

“이름표 교환 절차가 꼬이면서 마지막에 남은 이름표가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못하고 붕 떠버린 거예요. 시스템은 그 이름표를 ‘수거해야 할 잔액’으로 인식했고, 그게 서하 씨한테 자동 부여된 거라고요. 서하 씨가 나빠서가 아니라, 이 기계적인 시스템이 당신을 도구로 찍어 누르는 거예요!”

그 순간, 시스템 창의 선택지가 바뀌었다.

[1. 수거 실행 (대상: 강도윤)]

[2. 계약 승계 (대상: 윤서하)]

[3. 미등록자 일괄 말소 (경고: 시스템 초기화)]

형체가 윤서하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검은 우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윤서하의 신발을 적셨다.

[수거를 시작하십시오. 수거자 윤서하.]

윤서하가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눈동자에 흔들림이 일었다. 그녀는 칼집을 고쳐 쥐더니,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진짜로 나를 반납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 만약 그녀가 살기 위해 나를 택한다 해도 내가 할 말이 있을까?

“서하 씨?”

내 부름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내 어깨 너머에 있는 구식 서버 단말기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전광석화처럼 손을 뻗었다.

나를 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억지로 뜯어내듯 잡아당겨, 서버 측면에 있는 ‘신생아 팔찌 슬롯’에 강제로 처박았다.

지지직!

강렬한 스파크가 튀며 관리실 전체가 휘청였다.

“내가 수거자라면.”

윤서하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수거 방식도 내가 정해.”

[인증 시작: 최종 수거자 윤서하.]

[권한 역이용 감지. 시스템 보안 프로토콜 작동 중….]

그와 동시에 관리실의 벽면이 일렁였다. 젖은 담요 냄새가 진동하며, 신생아실 B4의 구석에 숨어 있던 잔향들이 일제히 이곳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열두 명의 아이들이었다.

이름도 없이 번호로만 불렸던, 화재 기록에서조차 지워졌던 미등록 사망자들. 그들은 괴물의 모습이 아니었다. 반투명한 형체로 나타난 아이들은 각자 작고 가느다란 손을 뻗어 윤서하의 옷자락을, 그리고 시스템 화면을 붙잡았다.

…름.

내 이름은….

추워, 엄마. 나 여기 있어….

잔향청취가 폭주했다. 나는 머리를 쪼개는 듯한 통증 속에서도 아이들의 목소리를 잡아냈다.

“백연 씨! 지금 적어요! 빨리!”

나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0402번, 노란 담요! 이름은 김지후! 0511번, 분유 냄새나던 아이, 박예은! 0820번…!”

내가 뱉어내는 파편 같은 정보들을 백연이 신들린 듯 기록했다. 아이들은 윤서하를 끌어내리려는 게 아니었다.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 줄 유일한 ‘수거자’에게 제발 자기 이름도 함께 가져가 달라고, 이 차가운 시스템 로그 속에 자신들을 한 줄이라도 새겨달라고 매달리고 있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한○희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서하야, 이름표를 바꿔야 해. 그래야 네가 살아. 하지만 기억해라. 마지막 이름표는 언젠가 모든 빚을 끌어안게 될 거야. 그게 네 운명이란다.

절박하면서도 잔인한 설계자의 목소리. 그녀는 딸을 살리기 위해 다른 아이들의 존재를 지웠고, 그 대가로 서하를 거대한 빚의 수거자로 만들었다. 선의와 죄가 같은 목소리 안에서 서로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그 뒤로 젊은 시절 문태식의 흐릿한 잔향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에 사인하면 서하가 산다는 거죠? 다른 건 상관없습니다. 절차 같은 건 몰라요. 그냥 사인을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는 자신이 서명하는 종이가 어떤 지옥의 계약서인지 알지 못했다. 무지가 죄라면 그는 죄인이겠지만, 그 절박함만큼은 진짜였다.

“도윤 씨! 거의 다 됐어요! 아이들의 데이터를 강제로 삽입하고 있어요!”

백연의 외침과 함께 윤서하가 단말기 화면의 버튼을 눌렀다.

[선택: 이름표 재분류(Re-classification)]

시스템이 비명을 질렀다. 검은 우산을 쓴 형체가 분노한 듯 우산을 크게 휘둘렀지만, 윤서하의 칼집이 그 궤적을 막아섰다. 깡! 하는 금속음이 관리실을 뒤흔들었다.

[경고: 재분류 대상 목록이 규격을 초과했습니다.]

[대상자: 강도윤, 윤서하, 외 미등록 사망자 12명.]

[재분류 승인을 위해 원본 보호자의 생체 서명이 필요합니다.]

“원본 보호자?”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한○희일까? 아니면 지금 저 밖에서 버티고 있는 문태식 이사장? 그들의 서명이라면 지금 당장 구할 수 없다. 실패인가?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도트 프린터가 미친 듯이 종이를 뱉어내며 마지막 문장을 출력했다. 서버 화면에는 붉은색 글자가 선명하게 박혔다.

[원본 보호자(Original Guardian) 확인 중….]

[일치하는 생체 데이터 발견.]

[승인 대기 중: 강도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 이름이 왜 거기서 나와?

“도윤 씨?”

윤서하와 백연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 꽂혔다. 나 역시 당황스러워 입만 벙긋거렸다. 나는 이 병원과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니, 상관이 없어야 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분명하게 내 이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재분류 승인을 위해 보호자 강도윤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관리실 안쪽 어둠 속에서 검은 우산의 형체가 고개를 꺾으며 나를 보았다. 그것의 얼굴 없는 면상에서 처음으로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이 교활한 시스템이 내민 또 다른 함정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의 눈빛과 윤서하의 떨림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내 손가락이 화면에 닿기 직전, 도트 프린터가 마지막 종이 한 장을 더 뱉어냈다.

그 종이에는, 20년 전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필체로 쓰인 내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271화. 보호자 강도윤

치익, 치익.

도트 프린터의 헤드가 낡은 리본을 짓누르며 종이 위를 긁는 소리가 좁은 관리실 안에 비명처럼 울렸다. 습기를 머금어 눅눅해진 종이가 느릿하게 혓바닥을 내밀듯 기계 밖으로 밀려 나왔다.

그 종이 가장 아랫단에, 너무도 익숙한 세 글자가 박혀 있었다.

[원본 보호자: 강도윤]

“……이게 왜 내 이름이야?”

헛웃음이 터졌다. 20년 전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면 나는 기껏해야 꼬마였다. 그런데 종이에 적힌 필체는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정갈했다. 지금의 내 글씨체와 닮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훨씬 더 단단하고 차가운 느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내가 이곳에 와서 서명이라도 했다는 건가? 아니면 미래의 내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와서 이름을 빌려준 건가? 그것도 아니면…….

“강도윤 씨, 손 떼요.”

차가운 손이 내 손목을 낚아챘다. 윤서하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모니터 화면에 뜬 [승인 대기 중]이라는 붉은 글자를 쏘아보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힘이 들어간 손길이 내 맥박을 압박했다.

“누르지 마세요. 함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맞아요, 도윤 씨! 이거 절차가 너무 이상해요.”

백연이 태블릿 PC를 미친 듯이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녀의 안경 너머로 데이터 스크롤이 빠르게 반사되고 있었다.

“보호자 승인이라는 게 단순한 동의가 아니에요. 이 시스템에서 ‘보호자’는 대상자의 존재 가치를 보증하는 보증인이나 다름없거든요. 만약 지금 저 버튼을 누르면, 저 열두 명의 아이들이 가진 ‘미등록 부채’가 전부 도윤 씨한테 넘어갈 수도 있다고요!”

“보증? 아, 나 진짜 살면서 연대보증은 부모 자식 간에도 서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는데.”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빈정거렸다. 하지만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사후세계 관리소라는 곳이 세상에서 제일 악질적인 사채업자처럼 굴고 있었다.

그때, 관리실 한구석에 서 있던 검은 우산의 형체가 일렁였다. 형체라기보다는 어둠을 뭉쳐놓은 것 같은 그것이, 마치 녹음된 테이프를 재생하듯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승인 제한 시간 300초.]

[보호자 승인 지연 시, 규정에 따라 미등록자 12인에 대한 데이터 일괄 말소 절차를 시작합니다.]

말소. 그 단어가 떨어지자마자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웅웅거리는 서버 팬 소리 사이로 아이들의 울음 섞인 잔향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 아저씨.

— 아저씨가 우리 아빠예요?

— 우리,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손들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젖은 담요 냄새와 탄 플라스틱 냄새가 뒤섞인 비릿한 공기 속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가냘프고 선명했다.

나는 프린터에서 갓 나온 종이를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렸다.

[잔향청취를 시도합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코를 찌르는 소독차 냄새.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병원 복도. 그 복도 끝에 내가 서 있었다. 아니, 지금의 내가 아니라 훨씬 작은 체구의 내가.

『내 이름을 빌려줄게.』

어린 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앞에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나는 아주 소중한 것을 건네주듯 속삭이고 있었다.

『이름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대. 그러니까 내 이름을 써.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내가 꼭 데리러 올게.』

상대의 얼굴을 보려 했지만, 화면에 노이즈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주변에 서 있던 어른들이 급하게 다가와 대화를 끊어버렸다. “도윤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했지!”라는 날카로운 꾸짖음과 함께 기억의 조각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강도윤 씨! 정신 차려요!”

윤서하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어느새 내 손가락이 화면의 승인 버튼 근처까지 다가가 있었다. 그녀는 아예 내 몸을 밀쳐내며 앞을 가로막았다.

“당신이 보호자라면 더더욱 혼자 결재하지 마. 이건 당신 혼자 책임질 문제가 아니야.”

“윤 형사님, 저 애들 목소리 안 들려요? 말소라잖아요. 그냥 삭제 버튼 누르듯이 지워버리겠대요, 저 기계 놈들이.”

내 목소리가 떨렸다. 무서웠다. 이 버튼 하나에 내 인생이, 혹은 내 영혼이 저당 잡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하지만 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존재’가 지워지는 걸 구경만 하는 건 더 무서웠다.

“도윤 씨, 잠깐만요! 이거 보세요!”

백연이 스캔한 기록물의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한○희라는 이름 옆에 아주 작게 주석이 달려 있었다.

[보호자: 혈연관계 유무와 상관없이, 이름표의 재분류 및 존재 가치를 증언하는 최종 증인.]

“증인……?”

“네! 그러니까 이건 부모라는 뜻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존재했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시스템이 도윤 씨의 이름을 ‘담보’로 요구하는 건, 도윤 씨의 증언이 그만큼 강력한 효력을 가졌기 때문이고요.”

백연의 설명에 머릿속의 회로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스템은 나를 유도하고 있었다. 내가 독단적으로 승인하게 해서, 모든 부채와 책임을 내 이름 석 자에 묶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예상하지 못한 답을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

[승인 제한 시간 60초.]

검은 우산의 형체가 점점 더 짙어졌다. 관리실 벽면의 도트 프린터가 미친 듯이 종이를 뱉어내며 경고음을 울렸다. 삑, 삑, 삐익— 고막을 찢는 듯한 소음 속에서 나는 화면을 응시했다.

승인 버튼 옆에 작은 입력창이 하나 보였다. ‘기타 요청 사항’ 혹은 ‘증언 보류’.

나는 화면에 손을 올렸다. 윤서하가 다시 내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번엔 내가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윤 형사님, 백연 씨. 나 좀 도와줘요.”

“뭘 하려는 거죠?”

“이 시스템, 독박 쓰게 만드는 게 전문인 것 같은데…… 그럼 판을 키워야죠. 나 혼자 보증 서는 게 아니라, 우리 셋이 같이 서는 걸로.”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원본 보호자: 강도윤] 뒤에 강제로 커서를 위치시켰다. 헌터 실기 시험 때 배웠던 시스템 강제 조작 매뉴얼, 사실 낙제점에 가까웠지만, 그거라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재분류 승인을 하되, ‘단독 증언’이 아니라 ‘공동 보호 증언’으로 변경합니다. 증언자 명단에 윤서하, 그리고 백연 이름을 넣을게요.”

“그건 위험해요! 도윤 씨뿐만 아니라 우리까지 엮일 수 있다고요!”

백연이 비명을 질렀지만, 손은 이미 자기 태블릿을 서버 포트에 연결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기록자답게 매서웠다.

“연대보증은 피하라고 했지만, 이건 보증이 아니라 ‘증명’이잖아요. 우리 셋이서 이 애들이 여기 있었다는 걸 봤다고 우기면, 이 기계도 어쩌지 못할 거 아닙니까?”

윤서하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며 화면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증언자로 등록해. 지연되는 시간만큼 문태식 씨의 생명 유지 장치도 꺼져가고 있어. 망설일 시간 없어.”

나, 윤서하, 그리고 백연의 손이 모니터 화면 위로 겹쳐졌다.

[입력: 공동 보호 증언자 - 강도윤, 윤서하, 백연]

[추가 증언자: 미등록 사망자 12인 자가 증언 포함]

시스템이 예상치 못한 경로를 감지하자 관리실 안의 기계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서버실의 냉각팬이 폭주하며 뜨거운 바람을 쏟아냈다. 모니터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깨지더니, [원본 보호자: 강도윤]이라는 글자가 잘게 부서지며 [공동 보호 증언 중……]이라는 문구로 재구성되었다.

[오류: 규정되지 않은 승인 방식입니다.]

[오류: 데이터 충돌 발생.]

[오류: ……재분류 프로세스 임시 허용.]

“됐다!”

백연이 소리쳤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철커덩!

관리실의 육중한 철문이 안쪽에서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천장에 달린 비상등이 붉게 점멸했다. 화면 속 문태식의 이름 옆에 떠 있던 ‘사망 보류’ 카운트다운이 순식간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00:05.

00:04.

“이봐, 문이 안 열려! 시스템이 우리를 가두고 있어요!”

윤서하가 문고리를 잡아당겼지만 소용없었다. 검은 우산의 형체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관리실 깊숙한 곳, 잠겨 있던 낡은 철제 서류 캐비닛 하나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그 안에서 툭, 하고 낡은 서류철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먼지를 풀풀 풍기며 펼쳐진 서류의 제목은 이랬다.

[B-04 2차 반출 명단 (기밀)]

나는 홀린 듯 그 서류로 다가갔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 위로 붉은 비상등 불빛이 번졌다. 그곳에는 이곳에서 나간, 혹은 나가려 했던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첫 번째 칸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두 번째 칸에는 윤서하의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칸.

잉크가 번져 흐릿하지만 분명하게 읽을 수 있는 그 이름표를 본 순간, 백연의 숨소리가 멎었다.

[반출 대상자: 백연 (199X-XX-XX)]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백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떨어뜨릴 듯 손을 떨며, 자신의 이름이 적힌 그 기록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내 이름이, 왜 여기……?”

백연의 목소리가 관리실의 폐쇄된 공기 속에서 힘없이 흩어졌다.

문태식의 사망 보류 시간은 0을 기록했고, 관리실의 모든 불이 일시에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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