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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43화. 새벽 4시 44분행과 반품자 본인 확인 일러스트

142-143화. 새벽 4시 44분행과 반품자 본인 확인

제목: 142-143화. 새벽 4시 44분행과 반품자 본인 확인

제목: 142화. 새벽 4시 44분행

새벽 4시의 국도는 무채색의 연옥 같다. 전조등이 가르는 공기는 차갑다 못해 날카로웠고, 아스팔트 위로 깔린 안개는 마치 누군가 토해놓은 가느다란 숨결처럼 차체를 감싸고 돌았다.

삐비비빅―!

정적을 찢고 고막을 긁어대며 울려 퍼지는 알람 소리에 나는 핸들을 꽉 쥐었다. 이현우가 설정한 알람음이었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와 비명 소리를 합성해 만든 것 같은 이 끔찍한 소음은, 졸음운전 방지가 아니라 탑승자 전원의 정신적 살해를 목적으로 제작된 게 분명했다.

“아, 제발 현우 씨. 다음엔 그냥 평범한 경적 소리로 하면 안 될까요?”

뒷좌석에서 반가온이 괴로운 듯 귀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보조석의 이현우는 퀭한 눈으로 태블릿 화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평범한 소리로는 우리 뇌의 방어 기제를 뚫을 수 없습니다. 자, 10분 지났습니다. 다들 출석 체크하죠. 늦으면 존재 권한 뺏깁니다.”

이게 무슨 신입 사원 워크숍 아이스브레이킹 지옥인가 싶지만, 불행히도 이건 생존 문제다. 고객센터라는 이름의 괴물은 우리의 ‘이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까.

“강도윤.”

내가 먼저 내 이름을 뱉었다. 입안이 껄끄러웠다. 내 이름이 내 것인지, 아니면 형의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 중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감각이 혀끝에 맴돌았다.

“윤서하.”

옆에서 서하가 짧게 답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표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보지 못했다면, 나는 그녀가 평소처럼 태연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표 뒤편에 어린 [대체 개체 : 03번]이라는 잔영을 나도 봤다. 우리 중 누구도 온전한 ‘나’로 서 있지 못했다.

“이현우입니다.”

“반가온이에요.”

체크 완료. 이현우가 알람을 껐다. 차 안은 다시 기괴한 정적에 휩싸였다. 10분마다 반복되는 이 의식은 마치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삭제’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재판 같았다.

백업 로그의 기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삭제 대상: 강도윤]

20년 전, 양평의 그 폐건물에서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었다. 시스템의 논리에 따르면 나는 처음부터 ‘반품’되어야 할 불량품이었고, 폐기되어야 할 쓰레기였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서른 살의 육신을 입고 핸들을 잡고 있는가.

답은 하나뿐이다. 형, 강도원이 대신 들어갔으니까.

“형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에 이현우의 타이핑 소리가 멈췄다. 그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복구된 로그의 한 구절을 읽어 내려갔다.

“도윤 씨, 이거 좀 더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20년 전 기록을 심층 복구해봤는데, 강도원 씨 말입니다. 그분은 사건 당일에 휘말린 게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사건 발생 72시간 전 기록에 이미 이름이 올라와 있습니다. [보호자 0번]이 아니라, [임시 매니저 후보자 : 강도원]으로요. 그러니까 시스템은 사고 전부터 형님을 노리고 찍어둔 겁니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드득, 가죽 비명 소리가 들렸다. 형은 내가 삭제되는 걸 막기 위해 우연히 몸을 던진 게 아니었다. 놈들이 쳐놓은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거다. 동생이라는 불량품을 ‘정상 출고’ 상태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시스템의 부품으로 팔아넘긴 셈이다.

“정말 짜증 나네.”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자기 인생을 무슨 중고거래 사이트 포인트처럼 써버리다니. 형이나 나나 형제 아니랄까 봐 가성비 따지는 꼴 하고는.”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타버릴 것 같았다. 죄책감은 눅진한 타르처럼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누려온 20년의 평범한 일상은 형이 지불한 연체료였던 셈이다.

“도윤 씨, 앞을 봐요.”

윤서하의 낮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내비게이션의 화면이 지직거리며 일그러지고 있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목적지 명칭이 실시간으로 변했다.

[경기도 양평군... 아니, 고객센터 반품 창구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창밖도 이상해요.”

반가온이 창문에 코를 갖다 대며 킁킁거렸다.

“냄새가 계속 섞여요. 방금까지는 젖은 흙 냄새였는데, 갑자기... 비닐 포장지 냄새랑 병원 소독약 냄새가 나요.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 강 대리님 냄새요. 겁에 질려서 울고 있는 냄새.”

가온의 말대로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스쳐 지나가는 도로 표지판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양평 12km]라고 적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삭제 보류자 전용 주차장]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고, 지나치는 휴게소의 안내판은 [미수령 보관함 입장 전 본인 확인 필수]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세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물류 창고로 변해가는 기분이었다.

“현우 씨, 로그에 뭐 더 나오는 거 없어?”

“지금... 이상한 잔향이 섞여 들어오고 있습니다. 차량 시스템이랑 동기화된 것 같아요. 들어보세요.”

이현우가 태블릿을 카오디오에 연결하자, 스피커에서 노이즈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라기보다, 기계가 단어를 조합해 뱉어내는 파열음에 가까웠다.

― 지직... 동생은... 반품 불가... 지직...

― 형은... 교환 가능...

―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20년 전... 미결재 건...

“닥쳐.”

나는 오디오 볼륨을 확 줄여버렸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교환 가능이라고? 형이 무슨 1+1 행사 상품이라도 된단 말인가.

“강도윤.”

윤서하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내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차가운 그녀의 체온이 전해지자 요동치던 심박수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흔들리지 마요. 당신 이름은 당신 거야. 그들이 뭐라고 라벨을 붙이든, 지금 핸들을 잡고 있는 건 강도윤 당신이라고.”

그녀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녀 역시 [03번]이라는 낙인과 싸우고 있으면서도 나를 붙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방을 주시했다.

새벽 4시 44분.

어느 순간부터 안개가 걷히고,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종착지에 도착했다. 지도상으로는 분명 폐허가 된 공장 부지나 숲이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은 낯설 정도로 익숙한 풍경이었다.

“...편의점?”

가온이 멍하니 내뱉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밝게 빛나는 낡은 건물 하나가 있었다. 간판은 빛이 바래 이름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진열대와 형광등 불빛은 영락없는 편의점이었다. 하지만 자동문 위에 달린 전광판에는 기괴한 문자가 흐르고 있었다.

[24시간 고객센터 - 반품 및 폐기 전문]

“도착했네요. 우리 인생의 민원실에.”

나는 차를 세우고 문을 열었다. 소독약 냄새와 오래된 종이 상자 냄새가 코를 찔렀다. 20년 전의 공기가 이곳에 고여 있는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자동문 앞으로 걸어갔다. 센서가 작동하지 않는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데 발치에 무언가 걸렸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 들었다.

낡고 때 묻은, 어린이용 플라스틱 이름표였다. 노란색 바탕에 조잡한 글씨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치원 소풍 때나 썼을 법한 물건. 20년 전 그날, 산속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나의 조각.

이름표 뒷면을 돌려본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서늘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성명: 강도윤]

[분류: 삭제 대상 (접수 완료)]

[대기 시간: 20년 0개월 0일]

[상태: 반품자 본인 내방 확인됨. 처리 절차를 시작합니다.]

딸깍.

동시에, 20년 동안 멈춰 있던 시계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편의점의 자동문이 천천히, 비명을 지르며 열리기 시작했다.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따뜻한 편의점의 온기가 아니라,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냉장 폐기실의 냉기였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어디선가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음성. 나는 이름표를 손에 꽉 쥔 채, 형이 기다리고 있을 그 어둠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제목: 143화. 반품자 본인 확인

자동문이 열리며 들려온 “어서 오세요, 고객님”이라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범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밤샘 근무의 피로에 찌들어 기계적으로 내뱉는, 딱 그 정도의 채도와 명도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이 20년 전 사라진 폐건물 터에 갑자기 솟아난 유령 편의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공기의 위화감이었다. 겉모습은 분명 낡은 편의점이었는데, 폐부로 스며드는 공기는 알싸한 병원 소독약 냄새와 눅눅한 관공서 서류더미 냄새,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냉동고의 서늘함이 뒤섞여 있었다.

“이거, 인테리어 컨셉이 좀 난해한데. 미니멀리즘이랑 관료주의의 악마적 결합인가.”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숨기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내 등 뒤로 윤서하와 이현우, 반가온이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자동문은 우리가 모두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철컥’ 소리를 내며 잠겼다.

내부 구조는 기괴했다. 분명 편의점 진열대가 늘어서 있는데, 그 위에는 삼각김밥이나 컵라면 대신 노랗게 바랜 서류 봉투와 투명한 비닐팩에 담긴 이름표들이 가득했다. 천장에는 병원 민원실에서나 볼 법한 ‘접수/수납’ 안내판이 달려 있었고, 그 아래로 이어진 컨베이어 벨트는 편의점 계산대를 통과해 어두운 안쪽 냉장실—혹은 시체 안치실처럼 보이는 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형, 저거 봐요.”

이현우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입구 바로 옆에 놓인 기기를 가리켰다. 은행이나 동사무소에 있는 번호표 발권기였다. 그런데 화면에 뜬 메뉴가 가관이었다.

[ 반품자 본인 확인 ]

[ 삭제 보류자 접수 ]

[ 대체 근무자 상담 ]

[ 폐기 처분 이의 신청 ]

“반품자 본인 확인이라니. 내가 무슨 주문 제작한 커스텀 피규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사이즈가 안 맞아서 반품이면 차라리 다행이게.”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뭐라도 눌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 화면에 닿기 직전, 서하 씨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그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쥐는 힘만큼은 확고했다.

“안 돼요, 도윤 씨. 함부로 누르지 마세요.”

서하 씨의 눈은 번호표 발권기가 아니라, 내 목등덜미 어딘가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목 뒤, ‘대체 개체 : 03번’이라는 낙인이 찍힌 곳이 셔츠 너머로 붉게 번져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이건 그냥 기계가 아니에요. 절차를 밟게 만들어서, 당신이 이 시스템의 규칙에 동의했다고 확정하려는 거예요. 내 이름을 공격하고 지우려 했던 방식이랑 똑같아요. 버튼을 누르는 순간, 당신은 ‘삭제 대상’이라는 지위를 스스로 인정한 꼴이 돼요.”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여기서 나갈 수도 없잖아요. 20년 동안 대기 중이라는데, 여기서 더 기다리면 내 환갑잔치를 여기서 하겠어.”

농담을 던졌지만 손등에 돋은 소름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가온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저씨, 여기 냄새가 이상해. 사람이 기다리는 냄새가 아니야. 물건이 쌓여서 썩어가는 냄새… 아니, 반품되기를 기다리는 ‘물건’들의 냄새만 나.”

가온이가 가리킨 진열대 위를 보았다. 상품 이름표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날짜와 이름이 적힌 사망신고서들이 상품처럼 정렬되어 있었다. [사망자: 김OO / 사유: 실종 / 상태: 반품 대기 중]. 소름 끼치는 것은 그 서류들 사이로 익숙한 이름들이 몇몇 보였다는 점이다.

그때, 내 손바닥 안에 쥐여 있던 어린 시절의 플라스틱 이름표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지 마.’

머릿속에서 익숙한 환청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잔향청취. 이 이름표에 머물러 있던 20년 전의 기억이 내 뇌를 직접 긁어내리는 감각이었다.

시야가 일순간 화이트아웃 됐다.

거센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어린 나는 누군가의 손을 필사적으로 잡고 있었다. 거칠고 단단한, 하지만 나를 절대로 놓지 않으려 힘을 주던 손. 형이었다.

‘도윤아, 절대 네 이름 말하지 마. 누가 물어봐도, 저 기계가 뭐라고 해도 대답하지 마.’

강도원의 목소리였다. 형의 손목에는 지금 내가 차고 있는 ‘백설’ 팔찌와 닮은, 차갑고 둔탁한 금속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형은 나를 등 뒤로 숨기며 눈앞의 거대한 ‘무언가’와 거래를 하고 있었다. 아니, 일방적인 통보를 듣고 있었다.

‘동생은… 삭제하지 마세요. 대신 내가 갈 테니까.’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형의 존재가 흐릿해졌다. 그 기억의 끝에서 느껴진 것은 내 이름표 뒷면에 새겨지던 서늘한 낙인의 감촉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현우가 노트북을 발권기에 연결한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도윤 형, 이거 봐요. 제가 로그를 땄는데…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었어요. 이미 형 전용 접수번호가 20년 전부터 발행된 상태로 대기열에 걸려 있어요.”

이현우가 내민 화면에는 붉은 글씨가 점멸하고 있었다.

[ 대기 번호: D-0000 ]

[ 고객명: 강도윤 (삭제 보류자) ]

[ 지연 시간: 175,200시간 (약 20년) ]

[ 특이사항: 장기 미결재 건. 본인 방문 시 즉시 처리 요망. ]

“이건 함정이에요. 가온이가 맡은 ‘진짜’ 대기열이랑 이 시스템이 보여주는 ‘가짜’ 대기열이 섞여 있어요. 시스템은 형이 스스로 ‘반품자’라고 시인하는 절차만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요.”

서하 씨가 내 이름을 다시 한번 불렀다.

“강도윤 씨. 정신 차려요. 지금 당신 이름이 지워지려고 하고 있어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내 손바닥의 이름표에 적힌 ‘강도윤’이라는 글자가 마치 물에 젖은 잉크처럼 번지며 [삭제 대상]이라는 글자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서하 씨는 자기 목 뒤의 통증을 참으며 내 손을 꽉 쥐었다. 자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그 처절한 의지로 내 존재를 이 공간에 붙들어 매고 있었다.

“현우 씨, 이 대기열을 우회할 순 없나요? 우리가 절차를 밟는 게 아니라, 시스템의 허점을 찔러서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서하 씨의 외침에 현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폭주하듯 달렸다.

“잠시만요… 이 대기열 서버… 관리자 계정이 열려 있어요. 아니, 열려 있다기보다 누군가 안에서 문을 열어준 것 같은데…?”

현우의 목소리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편의점 벽면에 매달린 낡은 TV 화면이 지직거리며 바뀌었다. 광고 영상 대신 투박한 텍스트들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 현재 상담 가능 직원: 강도원 ]

[ 상태: 영구 근무 중 (결재 권한 보유) ]

[ 대기 중인 상담 고객: 강도윤 (1명) ]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형의 이름. 영구 근무 중이라는 기괴한 상태 메시지.

그때, 천장에 매달린 낡은 스피커에서 치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나 그리웠고, 꿈속에서조차 잊지 못했던,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낮은 저음.

—도윤아.

형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생기가 없었다. 마치 수만 번 녹음된 테이프를 돌리는 것처럼 건조하고 무미건조했다.

—번호표를… 버려. 그거 받지 마. 절차에 응하지 마.

목소리는 간절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형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발권기에서는 ‘지이잉—’ 하는 기분 나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이현우도 손을 떼고 있었다. 그런데도 발권기의 입구에서는 빳빳한 종이 한 장이 천천히 밀려 나왔다.

하얀 종이 위에는 검은 글자로 단호하게 적혀 있었다.

[ D-0000 ]

[ 강도윤 님, 상담석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

[ 상담원: 강도원 ]

종이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편의점 안쪽,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힌 냉동고의 육중한 철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아주 조금, 열렸다. 그 틈새로 20년 전 그날과 똑같은 차가운 눈 안개가 쏟아져 나왔다.

“반품하러 왔더니, 점원이 우리 형이라니.”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번호표를 집어 들었다. 형이 버리라고 했지만, 이 종이는 자석처럼 내 손가락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서비스 센터 평점 테러라도 해야겠네. 여기 서비스가 너무 불친절하잖아.”

입술을 깨물며 농담을 뱉었지만, 눈앞의 안개 속에서 느껴지는 형의 잔향은 너무나도 차갑고, 또 슬펐다. 나는 열린 문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20년 전 끝내지 못한 거래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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