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145화. 상담석으로 가는 냉동고와 대체 상담원의 목소리
제목: 144-145화. 상담석으로 가는 냉동고와 대체 상담원의 목소리
제목: 144화. 상담석으로 가는 냉동고
살다 보면 손에 묻은 치킨 기름조차 잘 안 닦여서 짜증이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손바닥에 붙은 건 고작 지방과 나트륨의 결정체가 아니었다.
[D-0000 / 강도윤 님, 상담석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자동으로 출력된 번호표는 종이라기보다 갓 잡아 올린 생선의 비늘처럼 내 손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털어내려 손을 휘둘렀지만, 종이 쪼가리는 내 지문 사이에 뿌리라도 내린 듯 요지부동이었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내 살점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거 뭐야, 안 떨어져. 무슨 고객센터 번호표에 접착제를 발라놨어?”
농담조로 뱉었지만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 종이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었다. 내 기억 구석에 처박혀 있던, 유치원 시절 옷깃에 매달려 있던 플라스틱 이름표의 감각. 차갑고 딱딱한 ‘절차’의 시작점이었다. 이걸 쥐고 있는 한, 나는 이 기괴한 시스템이 규정한 ‘반품 대상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윤서하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그녀의 서늘한 눈동자가 번호표를 훑더니, 지체 없이 그것을 떼어내려 힘을 주었다.
“윽……!”
짧은 신음과 함께 윤서하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녀의 소매 아래로, 평소 숨겨져 있던 [대체 개체 : 03번]이라는 낙인이 잉크가 번지듯 검게 치솟아 올랐다.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아니, 살이 얼어 터지는 냄새에 더 가까웠다.
“서하 씨, 손 떼요! 이거 보통 물건이 아냐.”
“가만히 있어. 이거…… 절차의 일부야. 당신을 끌고 가려는 ‘손잡이’라고.”
윤서하는 고통을 짓씹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강도윤, 정신 차려. 이름표에 먹히지 마. 당신은 반품될 물건이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가 이명이 들리는 내 고막을 강제로 열고 들어왔다. 그 덕분에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 내 손바닥과 번호표 사이에서 흐릿한 안개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20년 전, 눈보라 속에서 사라진 내 과거의 조각들이었다.
“강도윤 씨, 여기 봐요. 제 눈을 피하지 마세요.”
이현우가 다급하게 태블릿을 두드리며 끼어들었다. 그의 안경 너머로 수천 개의 코드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번호표를 강제로 떼어내면 도윤 씨의 ‘존재 로그’ 자체가 찢겨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시스템은 이미 도윤 씨를 ‘입장 대기자’로 고정했어요. 취소 버튼이 없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럼 그냥 이대로 끌려가라는 거야? 난 환불 정책에 동의한 적 없는데.”
“아뇨, 로그를 비틉니다. ‘강도윤’이라는 단독 객체가 아니라, ‘감시자들을 동반한 피신청인’으로 입장 경로를 재구성할게요. 제가 임시 앵커를 박겠습니다. 우리가 떨어지지 않게.”
이현우의 손가락이 허공을 갈랐고, 내 시야 오른쪽 끝에 파란색 [Log Backup Active]라는 문구가 작게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힌 냉동고 문이 기분 나쁜 기계음을 내며 완전히 개방되었다.
쿠우우우―.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단순한 냉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20년 동안 묵혀둔 겨울의 원한이었다.
우리는 홀린 듯 냉동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아니, 끌려 들어갔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공간의 경계가 무너졌다. 발밑은 분명히 편의점 특유의 매끄러운 타일 바닥이었으나, 고개를 들어 보면 끝도 없이 길게 뻗은 병원 복도가 겹쳐 보였다. 천장에는 관공서에서나 볼 법한 형광등이 깜빡거렸고, 벽면에는 냉동고용 스테인리스 선반이 늘어서 있었다.
“……냄새가 이상해요.”
반가온이 코를 훌쩍이며 내 옷자락을 꽉 쥐었다.
“오래된 소독약 냄새랑, 먼지 쌓인 플라스틱 냄새. 그리고…… 비린내가 나요. 눈이 녹아서 썩은 것 같은 비린내요.”
선반 위에는 상품 대신 다른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구멍 난 어린이용 털장갑, 주인을 잃고 때가 탄 테디베어, 반쯤 찢어진 초등학교 가정통신문, 그리고 겹겹이 쌓인 미수령 택배 상자들. 상자 겉면에는 수신인의 이름이 검은 매직으로 지워져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존재가 지워진 이들의 유품을 모아놓은 창고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선반 위에 놓인 낡은 장갑 하나에 손을 뻗었다.
[잔향청취가 강제 활성화됩니다.]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도윤아, 자. 이거 껴.’
환청이 아니었다. 폐부를 찌르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형, 강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야 속의 형은 고작 열두 살이었지만, 눈빛만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어른 같았다. 형은 내 손에 너무 큰 장갑을 끼워주며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제부터 게임이야. 누가 물어봐도 절대 네 이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왜? 이름 말하면 선생님이 사탕 안 준대?’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되물었다. 형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목에는 백설 팔찌와 똑같이 생긴, 기분 나쁘게 번쩍이는 금속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아니, 사탕보다 무서운 걸 줄 거야. 그러니까 도윤아, 누가 널 부르면 넌 그냥 ‘아무개’라고 해. 형이 대신 대답할게. 모든 대답은 형이 할 거야.’
형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시스템이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이름이 곧 수거 목록이 된다는 것을. 형은 자신의 이름을 내주고 내 이름을 숨기려 했다.
“도윤 씨! 정신 차려요!”
윤서하의 외침에 눈을 떴다. 어느새 나는 통로 중간에서 멈춰 서 있었다. 내 손이 닿았던 장갑은 이미 차가운 성에로 뒤덮여 바스러지고 있었다.
“가짜예요.”
반가온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킁킁거렸다.
“방금 그 목소리는 진짜 형 냄새가 섞여 있긴 한데, 끝맛이 써요. 기계가 흉내 내는 냄새예요. 진짜 형 냄새는…… 훨씬 더 무서운데, 그래도 따뜻하거든요. 이건 그냥 차가울 뿐이에요.”
가온이의 말대로였다. 이 공간은 내 기억을 파먹으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상담’이라는 미명 하에 내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려는 수작이다.
복도 끝에서 다시 스피커가 울렸다. 이번엔 목소리가 아니었다. 영수증 프린터가 미친 듯이 종이를 뱉어내는 소리, 냉동고 팬이 돌아가는 불길한 금속음, 그리고 누군가 서류 뭉치를 탁탁 정리하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대기 번호 D-0000. 상담석이 준비되었습니다.]
복도 끝, 유일하게 불이 켜진 부스가 보였다. 병원 접수대와 은행 상담창구를 기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그곳은 반투명 유리로 가려져 있었다. 유리 너머로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우리는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이현우는 계속해서 태블릿을 조작하며 우리 주위에 보이지 않는 방어벽을 쳤다.
“상담 구역 진입합니다. 도윤 씨, 절대로 먼저 입을 열지 마세요. 어떤 질문이 나와도 제가 설정한 ‘감시자 동행’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상담석 앞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 차가운 스테인리스 데스크 위에 두 가지 물건이 놓여 있었다.
20년 전 형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낡고 긁힌 금속 팔찌.
그리고 유치원 시절 내가 가슴에 달았던, 내 이름 ‘강도윤’ 세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플라스틱 이름표 원본.
이름표에는 바늘이 돋아나 있었다. 마치 내 가슴팍에 다시 꽂히기를 기다리는 생물처럼.
치익, 치이익―.
천장의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섞인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내드립니다. 배정된 상담원 강도원은 현재 ‘영구 근무’ 상태로 인해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상담 지연 방지를 위해, 시스템이 규정한 대체 상담원을 호출합니다.]
“대체 상담원?”
윤서하가 검을 고쳐 쥐며 경계했다.
그때, 상담석 너머의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일어났다. 유리에 비친 그 실루엣은 형의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야윈, 하지만 골격만큼은 지독하게 낯익은 형태.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 목소리는 형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내 목소리’였다.
“형 대신 내가 남겠습니다.”
그림자가 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니까 도윤아, 넌 이제 그만 반품되어도 돼.”
내 손바닥에 붙어 있던 번호표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내 살점을 뚫고 혈관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제목: 145화. 대체 상담원의 목소리
손바닥에 들러붙은 번호표는 이제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기생충처럼 내 혈관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하얀 종이 질감이 투명해지며 살갗 아래로 스며들자, 내 팔뚝 위로 푸른 정맥 대신 기계적인 코드들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상태: 본인 동의 처리 중 (45%...)]
[경고: 절차 이행 지연 시 존재 로그에 영구적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야, 이거 환불 규정이 너무 빡빡한 거 아냐? 나 아직 서명도 안 했는데 자동 결제되는 시스템이라니,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할 거야.”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농담을 던지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이 시스템의 거대한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 갈려 나갈 것 같았다. 목소리가 젖은 낙엽처럼 바스락거렸다.
상담 부스 너머, 반투명한 유리창 뒤로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나와 똑같은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나와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고할 곳은 없어, 도윤아. 여기가 그 모든 민원이 종착하는 마지막 창구니까.”
그림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목구비가 흐릿한 그 얼굴은 마치 덜 깎인 조각상 같기도 했고, 거울 속에 비친 내 지친 모습 같기도 했다. 그는 시스템이 내 기억과 죄책감을 버무려 급조해낸 ‘대체품’이었다. 혹은, 20년 전 그날 형의 손을 놓치지 않고 함께 삭제되었어야 했을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이거나.
“형은 너 대신 20년을 여기서 일했어. 연차도, 휴가도, 퇴근도 없이. 네가 밖에서 컵라면을 먹고 헌터 등급을 고민하며 평범하게 ‘생존’하는 동안, 강도원은 이곳의 부품이 되어 네가 흘린 존재의 부채를 갚아온 거야.”
대체 상담원이 서류 뭉치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사락, 사락. 그 소리가 내 심장을 긁어내리는 것 같았다.
“이제 정산할 차례야. 네가 ‘정상 삭제’를 받아들이면, 형은 이 영구 근무에서 해방될 수 있어. 너라는 오류를 바로잡는 것만이 형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야. 넌 이제 그만 반품되어도 돼.”
[상태: 대체 상담 전환 완료]
[동의율: 62%... 진행 중]
혈관을 파고드는 번호표의 열기가 뜨거웠다. 정말 그럴까. 내가 사라지면 형은 저 지옥 같은 ‘상담석’에서 내려올 수 있는 걸까. 20년의 빚을 갚는 방법이 고작 내 소멸이라면, 그건 지나치게 싼값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도윤 씨! 정신 차려요! 그거 동의하지 마요!”
옆에서 윤서하의 비명이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리며 흐릿해지던 의식을 붙잡았다. 서하의 쇄골 위, [대체 개체 : 03번]이라는 낙인이 마치 불에 달궈진 인장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에 몸을 떨면서도 내 옷소매를 꽉 쥐고 놓지 않았다.
“이건 상담이 아니야. 강요라고! 저들이 하는 방식, 내가 제일 잘 알아. 당신의 죄책감을 먹고 자라는 괴물일 뿐이야!”
“서하 씨, 낙인이…….”
“상관없어! 내 이름 불러준 건 당신이잖아. 그러니까 당신 이름도 당신이 지켜!”
그녀의 절규 사이로 이현우의 날 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는 허공에 투사된 홀로그램 로그 창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도윤 씨, 속지 마세요! 저 대체 상담원 놈, 뭔가 이상해!”
현우의 안경테가 파랗게 번뜩였다.
“시스템 로그를 뜯어봤는데, 저 상담원 파일 생성 시각이 20년 전이 아니에요. 불과 몇 분 전, 그러니까 도윤 씨가 ‘백설’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회복하고 보호자 0번의 자격을 되찾은 직후에 생성됐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저건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자기혐오’를 기반으로 시스템이 실시간 렌더링한 가짜라는 소리입니다! 과거의 데이터가 아니라 현재의 독이라고요!”
그때, 코를 킁킁거리던 반가온이 내 앞을 막아서며 낮게 그르렁거렸다. 아이의 눈동자가 야수처럼 세로로 찢어졌다.
“형 냄새가 아니야. 저기서는…… 아저씨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을 때 나는, 그 끔찍하고 비린내 나는 냄새밖에 안 나.”
가온의 말은 쐐기처럼 내 가슴에 박혔다. 형의 냄새가 아니다. 내가 나를 미워할 때 나는 냄새. 시스템은 내 가장 약한 고리를 알고 있었다. 내가 나를 버리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상담석 데스크 위에 놓인 낡은 금속 팔찌를 잡았다. 형이 차고 다녔던, 이제는 광택마저 죽어버린 그 팔찌.
손끝이 닿는 순간, 잔향청취(殘響聽取)가 강제로 폭발했다.
지지직, 도윤…… 아…….
시스템의 노이즈 섞인 음성 사이로, 아주 가느다란 실금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체 상담원의 매끄러운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갈라지고 지친, 하지만 분명한 온기를 가진 목소리.
오지 마……. 네가 돌아오면, 나는 진짜로…… 영원히 여기서 못 나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를 구하려고…… 너를 지우지 마. 도윤아, 넌 살아야 해. 그게 내가 여기 남은…… 유일한 이유니까…….
대체 상담원의 실영이 일렁이며 일그러졌다. 가짜가 내지르는 비명이 환청처럼 들렸다.
[동의율: 89%... 90%...]
시스템 문구가 눈앞을 가득 메웠다. [승인] 버튼이 내 손바닥의 번호표 위로 떠올랐다. 누르기만 하면 끝이었다. 형을 대신해 내가 부품이 되고, 형은 자유를 얻는(다고 시스템이 주장하는) 계약.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은 형의 구원이 아니라, 형의 20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배신이라는 것을.
“미안하지만, 난 서비스 불만족으로 이 상담 종료하련다.”
나는 번호표가 박힌 손바닥을 꽉 쥐었다. 혈관 속의 코드가 비명을 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동의하지 않아.”
[경고: 본인 동의가 거부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망치지도 않아. 내가 직접 가서 형을 데려올 거니까.”
내 선언과 동시에, 손바닥을 파고들던 번호표가 바스러지며 하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본인 동의 처리 중]이라는 붉은 문구가 깨진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났다.
동시에 상담 부스 뒤쪽의 벽이 기괴한 기계음을 내며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곳은 일반 상담객은 결코 볼 수 없는, 어둡고 습한 ‘직원 전용 통로’였다.
차가운 냉기가 그 통로 안쪽에서부터 몰려나왔다.
백설을 깨우지 마…….
통로 깊은 곳에서 형의 진짜 목소리가 아주 작게, 간절하게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내가 쥐고 있던 금속 팔찌가 순식간에 새하얀 성에로 뒤덮이며 얼어붙었다. 마치 무언가 거대한 것이 깨어나려 한다는 경고처럼.
“도윤 씨, 저기 좀 봐요!”
이현우의 가리킨 곳을 보았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윤서하의 손등.
그녀의 이름표 뒤에 새겨져 있던 [대체 개체 : 03번]이라는 글자가 지직거리며 변하고 있었다. 마치 잉크가 번지듯 숫자가 지워지더니, 새로운 글자가 그 자리를 채웠다.
[대체 개체 : 00번 후보]
그것은 승격일까, 아니면 더 깊은 수렁으로의 추락일까.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팔찌를 주머니에 넣고, 열린 통로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퇴근은커녕, 이제 진짜 야근의 시작이었다.
지옥 같은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